소설리스트

헌터타임-46화 (46/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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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붉은 거미

치이이-.

검으로 베어진 자리가 꿈틀거리며 회복되었다. 더디긴 하지만, 껍질과 함께 그 표피가 베어지면 다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승한은 그런 자리를 집중적으로 베고, 또 베었다. 그렇게 승한이 거대 거미의 배를 완전히 베었을 때였다.

꾸르륵-.

“헉!”

거대 거미의 배의 껍질과 함께 그 안쪽의 살이 올라와 승한을 덮쳐왔다. 승한은 급히 검을 휘둘렀지만, 워낙 범위가 넓어 다 베어내지 못했다.

더욱이 떨어져 나온 살점은 승한의 손을 묶어냈다. [강인함]의 레벨이 높아 웬만한 자동차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는 승한이었지만, 거대 거미의 살점을 찢어발길 정도는 되지 못했다.

“승한아!”

윤재가 승한이 있는 곳을 향해 다급히 불을 쏘았다. 어차피 승한은 [수호신] 때문에 큰 피해를 입지 않으니, 공격을 해서라도 승한을 구할 생각이었다.

콰콰쾅-!

윤재가 쏘아낸 불이 거대 거미의 다리에 막혔다. 거대 거미는 윤재가 쏘아낸 불이 승한을 구하기 위함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

꾸물거리며 승한을 집어삼키던 거대 거미의 배가 마치 입이라도 되듯 승한을 먹어치웠다. 승한의 몸이 거대 거미의 몸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윤재와 주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그리고 그 순간, 거대 거미의 온 몸에 있는 눈들이 씩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

꿀렁-.

끼기기긱-.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숨도 쉬어지지 않는다. 뜨거운 독이 온 몸을 감쌌다. 아니, 독이라기보다는 다른 어떤 기운이었다.

‘먹힌 건가?’

승한은 거대 거미의 몸속에 있는 어떤 기운에 몸을 덜덜 떨었다. 독과는 완전히 다른, 그보다 근본적인 어둠에 가까운 힘이었다.

‘보스는 보스군.’

다른 거미과 비교해서 더 강하다, 약하다를 따질 수준이 아니었다. 이 거대 거미는 녀석들의 근본이었다.

거미들이 거대 거미에게 스스로 먹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애초에 다른 거미들 모두가 이 거대 거미로부터 비롯해 태어난 자식들. 즉, 거대 거미는 다른 거미들의 어미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낳아준 어미에게 몸을 바치는 건 이들의 세계에서는 지극히 당연했다.

‘내가 살아 있는 건… [수호신] 덕분인가?’

승한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몸에서 빛나고 있는 [광휘]의 빛과 [수호신]의 문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두 가지 힘은 거대 거미의 몸속에 있는 어둠을 밀어내고, 승한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 승한의 힘이 다하게 되면 사라질 것이다. 승한의 힘은 무한하지 않으니까.

검을 쥔 손에 아무리 힘을 줘도, 거대 거미의 몸속을 찢어발길 정도는 아니었다. 승한은 이대로 죽기를 기다려야 하나 싶다가, 지금까지 획득한 타임 포인트를 떠올렸다.

지금까지는 타임 포인트를 획득해도 그 타임 포인트를 사용할 시간이 없었다. 전투 중에 획득한 타임 포인트를 사용하다가 자칫 거대 거미에게 당할 염려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대 거미의 몸속이었다.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지만 타임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여유는 있었다. 아니, 애초에 타임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승한은 획득한 타임 포인트를 확인했다.

[보유 타임 포인트 : 32585p]

꽤나 많은 타임 포인트가 쌓여있었다. 이전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양의 포인트였다. 하긴, 노란 거미만 해도 두 마리에 초록 거미까지 잡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파란 거미를 잡지 못한 게 아쉽군.’

승한의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지금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윤재가 구해주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거대 거미의 몸속에 있으면 언젠가 죽을 목숨이었다. 승한의 능력으로는 거대 거미의 몸속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하니, 남은 포인트를 이용해 능력의 레벨을 올려 탈출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광휘].’

[128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광휘’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화아아아악-!

능력의 레벨을 하나 올리자 승한의 몸에서 빛나던 [광휘]의 빛이 더욱 밝아졌다. 그 때문인지 승한의 몸을 옭죄던 거대 거미의 살덩어리가 조금식 뒤로 물러났다.

[광휘]의 레벨을 하나라도 더 올릴 수 있다면 탈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광휘]의 레벨을 다음으로 올리는데 필요한 타임 포인트는 25600이었다. 지금 당장 승한에게 그런 타임 포인트는 없었다.

‘하나는 [수호신]에.’

[64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수호신’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남은 타임 포인트인 19785로는 능력을 두 개 올릴 수 있었다. 12800과 64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해서 각각 하나씩. 64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해서 올릴 수 있는 능력은 [민첩함]과 [수호신]중 하나였는데, 지금 당장은 [민첩함]보다는 [수호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하나는…….’

승한은 마지막 능력을 고민하다 결국 [강인함]에 투자했다.

[128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인함’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능력 - 강인함’ 10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능력 - 강인함’이 ‘능력 - ’불굴의 육체‘로 변화합니다.]

“어?”

**

펑, 퍼퍼펑-!

끼요오오-.

불이 터지고, 환한 불빛이 거대 거미의 몸을 비췄다. 그 중에 파란 거미는 하늘에 떠 있는 주작을 향해 아파트를 밟으며 날아들었다.

윤재와 주희는 승한이 거대 거미에게 먹히고 난 뒤로 거대 거미를 둘이서 상대하고 있었다. 윤재의 능력도 레벨이 꽤나 높아져서 위력이 제법 되었지만, 직접적으로 검으로 베어내는 승한에 비해 단일 대상에게 가하는 위력을 현처히 떨어졌다.

“지원은 대체 언제지?”

윤재는 승한이 거대 거미에게 먹힌 뒤, 곧장 다른 지역에 연락을 취했다. 승한이 거대 거미에게 먹힌 것과 그를 구출하기 위해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거리상으로나 윤재가 아는 실력 면에서나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헌터는 바로 안석환이었다. 윤재는 안석환을 비롯해 여유가 되는 헌터들에게 곧장 지원을 요청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다.

“당연하죠. 아직 5분밖에 안 됐어요.”

“젠장! 이러다 승한이…….”

승한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윤재가 다급해졌다.

“진정해요. 꺄아악!”

쉬이이익-.

바로 옆으로 파란 거미의 다리가 지나갔다. 주작이 몸을 비틀어 파란 거미의 다리를 피해냈는데, 몸을 크게 기울이는 바람에 주희와 윤재가 떨어질 뻔했다.

“저 녀석도 문제네.”

거대 거미는 차라리 공격이 통하는 모습이라도 보였다. 금방 회복되는 게 문제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파란 거미는 애초에 윤재의 불이 통하지도 않았다. 단단한 건 둘째 치고 불에 대한 내성이라도 있는 건지 윤재의 공격을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두 놈밖에 안 남았는데 이게 무슨 고생인지…….”

“그 두 놈이 문제죠.”

파란 거미와 거대 거미. 고작 둘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둘이 가장 문제였다. 만약 주작을 타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이동 수단이 없었던 둘은 진작 죽었을 것이다.

‘승한의 빈자리가 크긴 크군.’

윤재는 문득 승한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윤재도 다른 헌터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다. 광역으로 불을 쏘아낼 수 있는데다가, 주작을 소환한 이동능력과 공격 능력은 노란 거미까지도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윤재의 한계는 명확했다.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 한계가 정해지지 않은 승한과는 달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승한은 홀로 파란 거미와 거대 거미, 그리고 그밖에 다른 수많은 거미들을 상대했다. 거대 거미의 다리와 머리를 베어버리기도 했다.

“저걸 어떻게 잡죠?”

주희의 물음에 윤재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지원을 기다리던가 해야죠.”

지금 당장 윤재와 주희가 거대 거미를 잡을 방법은 없었다. 아무리 공격을 해도 빠르게 회복을 해버리니 잡을 방법이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승한의 능력인 [광휘]는 거대 거미의 회복을 눈에 보일 만큼 저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거대 거미의 다리를 잘라내고, 머리를 잘라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꽤나 더디게 회복되었다.

어쩌면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베어내다 보면 거대 거미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거대 거미라 해도 온 몸이 난도질되어 수십, 수백 조각으로 나뉘어지면 다시 재생하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윤재에게는 승한과 같은 공격 수단도, 거대 거미의 회복을 저지할 능력도 없었다. 결국 승한이 없다면 거대 거미를 잡을 방법이 없었다.

“도망가죠.”

“도망이요?”

“네. 어쨌든 잡을 방법이 없잖아요? 여기 계속 있다가는 우리도 죽어요.”

주희의 이야기는 냉정하고, 현실적이었다. 사실 그녀의 말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윤재는 그 말을 곧장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다른 때였다면 곧장 수긍하며 다른 헌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도망가면, 승한은 죽어요.”

“벌써 죽었을지도 몰라요.”

“바로 옆에 있는 호계도서관에는 저희 가족들이 있습니다. 주희씨 가족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윤재의 물음에 주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윤재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자살할 순 없잖아요.”

“…….”

혼란스러웠다. 이대로 계속 싸워봤자 답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망가기에는 승한과 호계도서관에 있는 가족들이 걸렸다.

윤재는 주희와는 달리 그렇게 이성적이지 못했다.

꾸르르륵-.

키에에에엑-.

그 순간, 거대 거미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졌다. 몸을 비틀며 좌우로 움직이더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이상 현상에 윤재와 주희가 깜짝 놀랐다. 거대 거미는 비틀거리더니 그 자리에 쿵, 하고 주저앉았다. 까닭은 알 수 없지만 괴로워서 몸부림 치는 것 같았다.

“왜, 왜 저러지?”

“승한입니다!”

윤재가 반색하며 소리쳤다. 주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거대 거미를 내려다보았다.

“승한씨요?”

“네. 저 녀석 뱃속에는 승한이 있지 않습니까? 그 녀석, 죽지 않았어요!”

촤아악-!

윤재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거대 거미의 등을 뚫고 승한이 튀어나왔다. 검으로 등에 큰 구멍을 뚫어낸 승한의 몸에는 이전보다 더욱 밝아진 [광휘]의 빛이 머금어져 있었다.

사아아악-.

승한의 검이 거대 거미의 등을 난도질했다. 빠르게 검을 휘둘러 거대 거미의 온 몸에 있는 눈을 베고, 몸속으로 [광휘]의 빛을 흘려보냈다.

카아아악-!

거대 거미가 비명을 내질렀다. 반달 모양으로 휘어져 있던 녀석의 눈들의 동공이 작게 좁아졌다. 처음으로 거대 거미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촤라라락-.

거대 거미가 몸을 크게 흔들며 승한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승한은 끝까지 거대 거미의 몸에서 떨이지지 않고 등 위에서 움직였다.

승한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등에 검을 깊게 꽂고, 그 위를 가로질렀다. 순식간에 거대 거미의 등이 반으로 크게 갈리며 머리까지 베어졌다.

그리고 그 상처 부위를 [광휘]의 빛이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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