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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변화
카아아아악-!
섬뜩한 울음소리가 거대 거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전과는 달리 [광휘]의 빛에 당한 자리가 회복되는 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느려졌다. 아니, 회복이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윤재의 능력에는 아무리 공격을 당해도 멀쩡하던 거대 거미가 승한의 칼질 한번 한번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뭐가 달라진 거지?’
윤재는 승한의 움직임이 눈에 띌 만큼 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 승한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단순히 [광휘]의 빛이 조금 더 밝아진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라고 보기엔 거대 거미를 상대하는 승한의 움직임에는 한껏 여유가 묻어나왔다. 조금도 조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지금은 주희가 걸어준 버프도 없는데 말이다.
주희는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는 승한을 향해 버프를 걸어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승한은 거대 거미가 공격하면 검으로 베고, 방패로 막아냈다.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던지 온 몸이 눈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 거미가 승한의 움직임을 놓칠 정도였다.
“저걸 막아?”
승한을 지켜보던 윤재가 깜짝 놀랐다.
거대 거미의 다리를 비롯한 공격을 승한은 별로 어려움 없이 막아내거나 오히려 검을 휘둘러 반격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보여주기 어려웠던 모습이었다.
‘단순히 [광휘]의 능력만 올라간 게 아니야.’
이전에는 거대 거미의 힘을 못 이겨 방패로 막아내더라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막아낼뿐더러, 거의 대부분 반격을 하고 있었다.
타닥-.
승한이 풀쩍 뛰어 거대 거미의 다리를 밟고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거대 거미의 머리 위까지 날아 오른 승한은 그대로 검을 가로로 눕혔다.
휘리릭-.
촤아아악-!
둥글게 회전한 검이 그대로 거대 거미의 머리를 베어 넘겼다. 비명을 지를 머리가 사라진 거대 거미는 몸을 크게 휘청거렸다. 아무리 재생이 된다고 해도 고통까지 없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베어진 머리의 단면에 [광휘]의 빛이 아른거렸다. 머리는 재생되지 않고, 그 자리가 거품이 나면서 부글부글 끓었다. 역시나 승한의 검에 당한 자리는 재생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윤재는 이때다 싶어 다시금 공격을 준비했다.
화르르륵-!
윤재의 손에서 거대한 불의 구체가 생겨났다. 지름이 족히 3미터는 되었는데, 윤재의 능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 크기의 불이었다.
쐐애애애액-.
콰과과광-!
윤재가 쏘아낸 불의 구체가 거대 거미의 잘려나간 머리의 단면에 박히더니 그대로 터져나갔다. 머리가 없기 때문에 비명은 지르지 못했지만, 거대 거미는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쳐댔다.
지금까지 윤재의 공격에 당하면 항상 빠르게 회복을 하곤 했던 거대 거미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승한의 능력이 거대 거미의 회복을 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촤르르르륵-.
그 때, 파란 거미 하나가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승한 역시 파란 거미가 달려드는 것에 반응해 움직였다.
쉬이이이익-.
쩌억-.
파란 거미와 거의 동시에 움직인 승한의 검이 파란 거미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파란 거미는 급하게 다리를 오므려 몸을 보호했는데, 그 보호한 다리까지 베어버린 것이다.
승한이 파란 거미를 베자, 그 짧은 사이 거대 거미가 승한의 위를 덮쳤다. 승한에게 베어진 몸을 아직까지도 회복하지 못한 거대 거미는 승한을 아예 몸으로 짓눌러 버리려는 건지 몸을 높게 띄우더니 그 위를 짓눌러버렸다.
쿠웅-!
높이서 떨어진 거대 거미의 무게에 땅이 울렸다. 윤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승한아!”
하지만 걱정 가득한 그 외침이 무색할 만큼, 승한은 아무렇지 않았다.
촤악-.
사아악-!
승한의 검이 거대 거미의 등을 뚫고 나왔다. 처음 거대 거미에게 먹혔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머리가 없는 거대 거미는 비명을 지르지 못했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승한은 등을 뚫고 나온 즉시 몸을 위로 띄우더니 그대로 거대 거미를 향해 검을 크게 내리쳤다.
서-걱-.
거대 거미의 몸이 반쯤 베어졌다. 머리부터 등의 정 중앙까지 베어진 거대 거미의 몸속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내장도 없이 시커먼 체액과 살점과 같은 진득한 고체로 가득 차 있는 몸속은 보기 흉물스러울 정도였다.
“어떻게…….”
윤재는 갑작스럽게 거대 거미와 파란 거미를 동시에 압도하는 승한을 보며 입을 크게 벌렸다. 아무리 능력의 레벨을 몇 개씩 올렸다고 해도, 이건 정도를 지나칠 정도로 갑자기 너무 강해져 버린 것이다.
그 뒤로 승한은 거대 거미의 몸을 그야말로 난도질했다. 몸을 베고, 또 베고, 두 조각에서 네 조각으로, 다섯 조각으로 나누었다.
“후우-.”
승한은 나누어진 거대 거미의 몸뚱이를 열 조각으로 나눈 뒤에 잠시 숨을 골랐다. 아직까지도 꿈틀거리는 거대 거미의 살덩어리들은 녀석이 살아있음을 알려주었다.
“이건가?”
승한은 거대 거미의 몸을 난도질 하던 중, 녀석의 몸속에 있던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돌을 발견했다. 붉은색에 심장처럼 계속해서 뛰고 있는 물체였는데, 분명한 건 심장은 아니었다.
심장이라기보다는 동력원. 마치 기계를 움직이는 어떤 장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 전체에 힘을 전달하고, 그로 인해 움직이게 하는.
‘……더러워.’
승한은 그 물체를 보는 순간, 여러 가지 감정들이 솟아났다.
‘불길해. 끔찍해.’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거미들의 어미인 거대 거미의 본체를 눈앞에서 마주한 승한은 녀석의 본체가 생각보다 작다는 사실에 더욱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 들어있는 힘은 승한이 가진 [광휘]의 힘과 정 반대가 되는 힘이었다. [광휘]가 저 힘의 상극이 되는 것처럼, 거대 거미가 가진 힘 또한 승한이 가진 [광휘]의 힘에 상극이 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승한이 가진 힘이 더 강하지만…….
만약, 거대 거미보다 그 힘이 더 강한 존재가 나타나게 된다면?
‘생각하기도 싫군.’
승한은 거대 거미의 핵을 향해 다가갔다. 그것을 살아 있기라도 하듯 [광휘]를 두른 승한이 다가가자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심장도 아닌 것이, 마치 심장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잘 가라.”
쉬이익-.
승한의 검이 새빨간 거대 거미의 핵을 내려쳤다. 그것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듯 맥없이 반으로 베어지더니 액체처럼 바닥에 녹아내렸다.
스스스스스-.
그리고 그 액체는 곧장 어떤 힘으로 변해 수증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수십, 수백의 거미들을 먹어치우고 거대 거미의 몸속에 있던 모든 힘이 집약되어 있던 거대한 독과 힘을 가지고 있던 증기였다.
[5000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녀석의 핵을 베었을 때에야 비로소 타임 포인트 획득 메시지가 떠올랐다. 승한은 진한 안도감을 느끼며 긴장이 풀려 바닥에 있는 거미의 시체에 주저앉았다.
“하아아-.”
한숨과 함께 승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까지도 구름이 잔뜩 껴서 우중충한 하늘이었는데, 적어도 가족들은 안전하다는 생각에 그리 썩 나쁘지만은 않게 보였다.
‘내가 대체 뭘 깔고 앉아 있는 건지.’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깔고 앉아 있는 시체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파란 거미의 시체였다. 처음에만 하더라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올 만큼 징그럽게 생긴 녀석들이었는데, 이제는 그 녀석들의 시체를 깔고 앉아 쉴 정도로 익숙해졌다.
사실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싸우고, 죽이다 보니 징그럽거나 무섭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앉아서 쉬기 편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타임 포인트도 어마어마하게 벌었군.’
거의 바닥을 드러낼 만큼 타임 포인트를 싹싹 긁어서 사용한 승한이었다. 그런데 거대 거미와 파란 거미 두 마리를 잡고 획득한 타임 포인트가 이전까지 획득한 타임 포인트를 모두 더한 것만큼이나 많았다.
거대 거미만 하더라도 5만 타임 포인트, 게다가 파란 거미고 무려 24000타임 포인트를 주었다. 합쳐서 74000타임 포인트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 정도면 아무리 승한이 가진 능력의 레벨이 높다고 해도 능력의 레벨을 몇 개씩이나 올릴 수 있었다.
‘[불굴의 육체]가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네.’
승한은 거대 거미의 몸속에서 있던 변화를 떠올렸다.
처음에 승한은 거대 거미의 몸속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광휘]의 레벨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었는데, 문제는 승한이 가진 타임 포인트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강인함]의 레벨을 한 단계 더 올리는 것이었다. 근력이라도 더 강해지면 탈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능력의 성질이 바뀐다니. 상상도 하지 못했어.’
능력의 레벨이 10레벨에 도달하자, [강인함]이라는 능력이 사라지고 다른 능력이 생겨났다. 아니, 그것은 비슷한 계열의 상위 능력으로의 변화였다.
[불굴의 육체]는 사실상 [강인함]과 뚜렷한 차이가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인함]이 10레벨이 되고, [불굴의 육체]로 능력이 바뀐 후, 승한은 지금까지 내지 못했던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었다.
고작 1레벨 차이였지만, 그 1레벨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오죽하면 지금까지 고전하고 있던 거대 거미와 파란 거미를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스테이지 1 - 불굴의 육체]
* 등급 : 上
* 분류 : 고유 지속
* 레벨 : 1
* 요구 타임 포인트 : 128000p
승한은 [불굴의 육체]의 능력을 확인했다. 능력의 이름이 바뀌면서 능력의 힘이 바뀌고, 다 좋았지만 바뀐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무슨 요구 타임 포인트가 이래?’
128000타임 포인트.
분명 능력의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다음 레벨까지 요구하는 타임 포인트의 수치가 너무 심하게 높아져 있었다.
능력의 레벨을 하나 올릴 때마다 다음 레벨에 요구하는 타임 포인트는 2배였다. 헌데, 12800타임 포인트에서 128000타임 포인트로, 무려 10배나 요구 수치가 올라가 버린 것이다.
128000이라면 보스인 거대 거미와 파란 거미를 잡은 승한도 가지지 못한 수치였다.
‘설마 다음 레벨마다 요구 수치가 10배씩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
끔찍한 생각이 문득 들어 승한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매번 요구 타임 포인트가 10배씩 올라가는 거라면 다음 번엔 무려 100만이 넘는 타임 포인트가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능력의 효과가 좋다고 해도 그만한 포인트를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싶었다. 지금 당장만 해도 128000타임 포인트가 있다고 해도 그 포인트를 [불굴의 육체]에 쏟아 부을 것 같지는 않았다.
‘등급이 상(上)이라… 이전보다 상위 능력이라는 소리인가?’
승한은 [불굴의 육체]에 대한 설명 중, ‘등급’에 주목했다. 타임 포인트의 수치야 올라갈 수도 있는 거였지만, 전혀 새로운 항목이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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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이번 편은 분량이 좀 짧네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