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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변화
김현수 중령이 주희에게 부대원들의 치료를 부탁했다. 주희는 흔쾌히 승낙하고는 독에 중독된 부대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걸어준 보호 때문에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 다시금 그녀의 능력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승한은 고개를 돌려 나무 위를 살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이 올라가 있었는데, 이제 보니 보이지 않았다.
“저 찾으십니까?”
“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승한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활을 등에 멘 채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전 구로동을 담당한 헌터 김영유라고합니다.”
“안양지역 헌터 김승한입니다. 그런데 혹시 다른 분들은 없습니까?”
승한은 혹시 그 외에 다른 헌터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영유는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없습니다. 수지맞지 않는 일이라고 다들 오기를 꺼려했거든요.”
“……하긴. 그럴 만도 하죠.”
돈이라는 대가를 준다고 해도 보스는 껄끄러운 상대였다. 다른 괴물들과는 달리 상대하다가 죽을 위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에게 보상을 받을 수 없다며 못이 박힌 이상, 사실상 보스를 상대로 싸우는 건 자선사업이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대부분 헌터들은 군대가 보스를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 녀석을 겪어보지 않은 헌터들이 대다수겠지.’
헌터들 중, 보스와 직접 싸워본 헌터의 수가 얼마나 될까? 보스는 한 지역에 두 마리 정도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보스와 직접 싸워본 헌터는 열 명 중 한 명 정도도 되지 않을 것이다.
보스를 겪어본 헌터와 그렇지 않은 헌터.
그리고 군대.
이 차이는 분명할 것이다. 일반적인 괴물과 보스의 차이는 이전에도 분명 있었지만 이번 경우엔 훨씬 컸다. 그리고 아마 그 차이는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문제는 보스를 겪지 않은 군부대가 헌터들의 필요성을 실감하느냐 하는 건데…….’
승한은 김현수 중령과 보랏빛으로 피부를 물들은 채 죽어있는 군인들을 바라봤다. 속이 쓰리긴 하지만 저들의 희생으로 인해 정부는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피해를 입고도 아무 생각이 없지는 않겠지.’
승한은 정부의 선택을 믿기로 결정했다. 이런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승한도 어찌 할 생각이 없었다. 이후부터도 헌터들이 자발적으로 아무런 대가 없이 계속해서 움직인다면 정부는 그것을 이용할 것이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덕분에 보스의 핵을 찾을 수 있었어요.”
“무슨 말을요. 저도 핵을 찾을 수는 있어도 그걸 제거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혼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저보다 훨씬 뛰어난 분이 와 계셨네요.”
영유는 승한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함께 싸우고 있던 윤재의 능력도 대단했지만, 보라색 거미를 거의 혼자서 막아내다시피 하고 있는 승한은 다른 헌터들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였다.
허공을 미끄러지듯 밟고, 거대한 보라색 거미를 힘으로 압도하다시피 밀어내기도 했다. 더군다나 [광휘]를 이용해 보라색 거미의 회복을 눈에 띌 만큼 늦추기까지 했는데, 그 모든 능력이 너무나도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무언가 눈에 띌 만큼 특이한 능력은 아니었지만, 괴물들과의 싸움에 가장 완벽한 능력이었다.
“뭘요. 김영유씨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핵이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냥 제 능력의 특이점 때문입니다. 승한씨 능력처럼 엄청 위력적인 능력은 아니긴 한데… 괴물의 약점을 보는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약점이요?”
“네. 보스의 핵도 약점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작게 나눠진 괴물들 중, 핵이 어떤 녀석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활은 그냥 제가 쓰는 무기 종류일 뿐이고요.”
승한은 영유의 능력에 대해 작은 호기심이 생겼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이제 막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된 사이에 서로의 능력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는 건 별로 모양이 좋지 않았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런데 타임 포인트는… 저 혼자 얻은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어차피 그대로 시간이 지났어도 승한씨는 보스를 처리할 수 있었을 겁니다. 대신 저기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죽었겠지만요.”
영유는 군인들을 비롯해 대피소 안쪽에 있는 사람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승한은 언제고 시간이 지나면 핵이 무엇인지 찾아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승한이 조급했던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결정적으로 영유에게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승한이 아닌, 그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지금 당장 승한뿐이지만 말이다.
저벅-.
그 때, 부대원들을 통솔하던 김현수 중령이 승한과 영유, 그리고 윤재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지치고 힘이 없어진 얼굴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승한은 그의 인사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부대원들 때문인지, 아니면 괴물과의 싸움 탓에 심신이 지친 건지 그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위쪽에 보고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승한씨가 말씀하신 대로, 괴물들의 위험성과 헌터들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건의를 해 봐야겠습니다. 원래는 시간이 멈췄을 때를 제외하고는 헌터들을 끌어들일 생각이 없었지만… 분명히 알겠습니다. 헌터들이 없으면 피해가 훨씬 늘어날 뿐이라는 걸.”
김현수 중령은 꽤나 느낀 게 많은 모양이었다. 그냥 하는 말 같지는 않아서 승한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희생이 많긴 하지만…….’
어쩌면 이번 싸움으로 죽은 이들로 인해서 김현수 중령을 비롯한 정부가 마음을 바꿔먹을지도 모른다. 다음 번 괴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미리 상황을 바꿔둘 수 있다면, 추후에 죽을 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희생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작은 희생으로 더 큰 피해를 막는다. 그렇게 속을 달래던 승한이 쓰게 웃었다.
‘개소리군.’
한 명이 죽든, 열 명이 죽든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의 죽음과 열 사람의 죽음이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열 손가락이 아픈 것보다 한 손가락이 아픈 게 낫다고 아프지 않은 건 절대 아니었다.
“주위에 다른 괴물들은 없습니까?”
“네? 더 도와주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보통 괴물들은 총기류로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녀석들을 잡는 일까지 나설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돕는 건 어디까지나 총기류가 통하지 않는 보스에 한해서입니다. 그리고!”
승한은 마지막에 힘을 주어 말을 잠시 끊었다.
“다음부터는 이런 도움은 없을 겁니다. 아마 그건 저뿐만 아니라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책임과 의무만 있고 보상은 없는 상태에서 일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대해서 돈이라는 물질적인 문제로 저울질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승한 개인만이 아니라 다른 헌터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물질적인 보상이 반드시 필요했다.
헌터들의 자발적인 도움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장 이번 일만 하더라도 헌터들 중 아무런 보상 없이 나선 헌터는 승한을 비롯한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보상은 어디까지나 동기부여에 불과했다. 무언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일을 하기 위한 동기가 필요했고, 정부는 헌터들을 움직이기 위해 그 동기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승한은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을 걱정했다.
그리고 그것을 중령씩이나 되는 사람이 모를 리 없었다.
“위에는 제가 연락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후에 연락을 드릴 테니 승한씨의 영상구를 넘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영상구는 무슨 일로……?”
“CCTV에도 영상이 찍히긴 했겠지만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스와 싸웠던 기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듣기로는 승한씨는 방금 전 괴물을 포함해 두 마리의 보스와 싸우셨으니, 그 기록이 위쪽에 전달하기에는 훨씬 나을 겁니다.”
생각보다 김현수 중령의 태도가 훨씬 적극적이었다. 아무래도 부대원들이 눈앞에서 죽은 게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승한은 그의 요구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영상구는 정부에 제출을 해야 할 것이고, 다시 돌려받기로 되어있었으니 그 후에 김현수 중령에게 넘겨주면 되는 일이었다.
몇 군데 연락을 넣던 김현수 중령이 승한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승한과 윤재, 주희, 그리고 뒤늦게 도움을 준 영유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서울 쪽 다른 대피소의 보스는 다 처리가 된 모양입니다.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우리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
세 번째 괴물들의 출현.
첫 번째 스컬레톤과 두 번째 리자드맨의 출현과는 달리, 그보다 훨씬 더 강한 괴물이 출현했지만 피해 자체는 썩 크지 않았다. 재앙이라고 할 수 있었던 두 번의 괴물들의 출현과는 달리, 미리 대처를 잘 해둔 덕분에 군인들의 피해는 조금 있을지언정 실질적인 피해를 입은 시민들은 많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는 괴물들의 사체는 여전했다. 그거라도 없었다면 괴물이 나타났는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괴물들의 사체는 수많은 군인들이 모두 나서서 처리해야 했다. 독을 가지고 있는 괴물이라 독에 대비를 하면서 치워야 했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
결국 사람들은 일요일 하루를 꼬박 대피소에 있어야했다. 남아있는 괴물들의 처리보다는 괴물들의 사체를 치우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영유는 승한과 짧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따로 연락처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둔 이상 언제든지 전음구를 통해 연락을 할 수는 있었다. 영유의 능력이 꽤나 인상 깊었던 승한은 그와는 언제고 빠르게 만난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승한은 곧장 호계동에 있는 호계체육관으로 향했다. 보스를 잡느라 바로 찾지는 못했지만, 승아와 어머니가 있는 호계체육관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호계체육관에 도착한 세 사람은 강동훈 소령이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세 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승한은 강동훈 소령을 향해 가장 먼저 가슴에 달고 있던 영상구를 내밀었다. 윤재와 주희의 것까지 총 세 개의 영상구를 받아든 강동훈 소령이 그것을 박스 안에 넣어두었다.
“금천구에서 보스를 처리하고 오는 길입니다.”
승한의 말에 강동훈 소령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도 어떤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 영상을 보고 난 뒤, 52향토보병사단 김현수 중령님께 전해주십시오. 아니, 가능하면 그 영상을 직접 보시고 김현수 중령님과 이야기를 좀 나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강동훈 소령은 승한이 조금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평생 군대에 몸을 담으며 어지간히 담이 센 강동훈 소령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승한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승한이 막 강동훈 소령에게 영상구를 건네준 때였다.
-김승한씨. 저 안석환입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와 승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일이 다 끝난 마당에 그가 따로 연락을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음구를 꺼내 손에 쥔 승한이 대답했다.
“무슨 일입니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혹시 시간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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