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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안
“저요?”
윤재의 반문에 승한이 잠시 고민했다.
무엇 때문일까?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돈이었다.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위해서 평일부터 주말까지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던 승한에게 한 주에 억 단위 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는 결코 놓치기 어려웠다. 가능하면 지금 이 기회에 평생 돈 걱정 할 필요가 없을 만큼 돈을 벌어둘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돈 때문만은 아니지.’
돈도 중요하긴 중요했다. 만약 괴물들이 나타나는 이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세상은 다시 멀쩡히 돌아갈 것이고 벌어둔 돈은 영원할 테니까. 어쩌면 특별한 능력을 얻고 괴물들이 나타난 이 순간이 기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승한이 괴물들의 출현을 달가워하는 건 아니었다. 승한도 괴물이 싫기는 마찬가지였다.
승한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킬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망하거나, 괴물들로부터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 지는 건 절대 반갑지 않았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세상이 망해버리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승한은 자신이 괴물들과 싸우는 이유를 명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
“이유가 필요해요?”
“응?”
“안 싸우면 다른 사람이 죽잖아요. 싸우면 전 돈을 벌고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싸우면 돈이라는 보상이 돌아오고,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다.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에 무신경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과연 승한이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돈과 다른 모르는 사람의 생명,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장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른다. 승한은 모르는 사람의 생명을 자기 자신의 안락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정의의 사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자기 자신의 안락함을 위해 뻔히 죽을 사람을 내버려두는 이기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승한의 대답에 윤재는 피식 웃었다. 그 말이 바로 정답이었다.
“나도 그래. 돈도 좋고, 사람 목숨도 중요하고. 뭐, 어느 쪽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난 사람 목숨이지만.”
“형은 그럴 것 같았어요.”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냐? 아무리 돈도 중요하다지만. 난 그렇게 안 배웠어. 그래서 돈과 사람 목숨을 저울질 하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윤재는 그렇게 말하며 주희를 돌아봤다. 윤재와 승한, 주희는 서로 말을 놓기로 한 상태라 이제는 편하게 물었다.
“주희 너는?”
“돈. 그리고 제 목숨. 이거 말고는 관심 없어요, 사실.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굳이 저를 희생하면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그거야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확고하네, 생각보다.”
“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데 왜 굳이 위험을 자처하는지 모르겠어요. 승한이 오빠나, 윤재 오빠나.”
어찌 보면 주희의 생각이 가장 일반적이고, 대부분 사람들의 솔직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승한과 윤재와는 다른 생각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승한과 윤재, 주희는 모두 생각하는 게 달랐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문득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승한이 피식 웃었다.
“무슨 생각이든 어차피 괴물을 죽어야 하는 건 똑같네. 그나저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형이 주희 능력을 가졌어야 할 것 같아요. 주희 능력이 누구를 죽이기보다는 보호하고, 살리는 능력이잖아요?”
“오빠, 그게 무슨 소리에요?”
“윤재형 성격에 그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면 잘 어울리지 않겠어? 게임이나 영화에 나오는 프리스트 같은 느낌일 것 같은데.”
“……그건 그렇겠네요.”
주희도 승한의 말에 반박하기는 어려웠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능력은 윤재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안석환은 대체 언제 오는 걸까요?”
“약속시간 아직 멀었잖아. 우리 먼저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는 거였으니, 천천히 기다리면 되겠지.”
“이제 십 분 밖에 안 남았는데…….”
드르르륵-.
그 때, 카페 문이 열리며 사람이 한 명 들어왔다. 노랗게 물들인 훤칠한 인상의 남자, 안석환이었다.
“마침 왔네요.”
“아, 다들 모여 계셨군요. 죄송합니다. 좀 늦었죠?”
약속시간까지는 아직 십 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네 명이 모이는 자리에서 가장 늦게 와서 예의상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안석환은 훤칠하다고 할 수 있는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샛노랗게 물들인 머리나 인상은 전형적인 동네 양아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정부와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헌터들과 대화를 하는 걸 보면 인상과 말투, 행동은 전혀 딴판이었다.
“아닙니다. 일찍 오셨는데요.”
“하하. 그래도 좀 더 일찍 왔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럼 잠시만…….”
안석환은 카운터에서 음료를 주문하고는 빈자리인 주희의 옆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었는데, 안석환이 오자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 자리가 조용해졌다.
“윤재씨와는 몇 번 이야기를 해 봤는데, 승한씨와 주희씨는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 하는 건 처음이군요. 아, 얼굴을 익힐 때 몇 마디 나누긴 했었네요.”
안양 지역의 헌터들은 필수적으로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알아 두어야 했다. 때문에 한 자리에 모여서 얼굴과 이름을 익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승한과 주희는 그 때 안석환과 자기소개와 같은 형식적인 대화를 몇 마디 나눴다.
“기억나요. 안석환씨는 워낙 튀셔서요.”
“튀긴 튀죠. 그러려고 한 머리니까요. 뭐,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도 다른 헌터들보다 튀는 일이기도 하고요.”
안석환은 남들보다 조금 긴 자신의 노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제가 좀 튀는 걸 좋아하는 면도 있고 말이죠. 그러니까 이런 감투를 뒤집어 쓴 게 아니겠습니까?”
승한은 그의 말에 멋쩍게 웃었다. 실없는 이야기나 하려고 만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안석환과 깊은 친분을 맺으려고 만난 것도 아니었다. 승한은 어디까지나 일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안석환을 만난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말에 다짜고짜 본론만 말하라며 까칠하게 답하기도 애매했다. 무슨 일이든 나쁜 의도로 만나자고 한 게 아닌 이상은 안석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좋았다.
“소문 들었습니다. 세 분이서 호계동에 나타난 보스와 구로구에서 나타나 금천구로 넘어온 보스까지, 무려 두 마리의 보스를 잡았다고요. 한 마리는 남색, 게다가 한 마리는 보라색이었다지요?”
“소문이요?”
“네. 벌써 이야기가 자자합니다. 서울 지역에서도 구로구와 금천구 쪽에서는 조금씩 세 분에 대해서, 정확히는 승한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요. 실력이 아주 대단한 헌터라고요.”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나온 겁니까?”
“정부에 제출한 영상구와 CCTV가 있는 이상 소문이 도는 건 금방이죠. 뭐, 제가 알기로 서울 지역에서 퍼진 소문의 출처는 김영유라는 헌터로부터지만요.”
승한은 금천구에서 보라색 거미를 잡을 때 만난 김영유를 떠올렸다. 사근사근한 말투에 꽤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는데, 입은 꽤 가벼운 듯했다.
‘이런 걸 떠벌릴 줄이야…….’
속에서는 한숨이 나왔지만 어찌 보면 잘 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실력이 있는 헌터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몸값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었다. 다른 이들의 입을 움직여서 더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저 혼자 한 일도 아닙니다.”
“물론 윤재씨도 대단하시더군요. 그 정도 범위을 공격할 수 있는 헌터는 흔하지 않습니다. 주희씨 능력도 인상 깊었습니다. 무려 열 명씩이나 되는 사람에게 능력을 걸어줄 수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두 분 다 대단하다는 점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안석환은 윤재와 주희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과장된 손짓이었지만 절대 빈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승한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윤재와 주희 역시 뛰어난 헌터라는 점만은 분명했다. 물론 다른 지역의 헌터들과 비교해서 아주 우월한 정도는 아니었다. 맡은바 지역에 있는 괴물들을 처리한 헌터들 중, 윤재나 주희와 같은 실력을 가진 헌터들이 없지는 않았다.
“영상구를 통해 승한씨가 싸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방금 전 승한씨는 여기 두 분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했죠? 물론 두 분의 도움도 컸지만… 제가 보기엔 승한씨 혼자서도 보스를 잡기엔 충분해 보였는데, 아닙니까?”
안석환의 질문에 승한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이긴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윤재와 주희의 앞에서 바로 그 사실을 수긍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침묵은 긍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사실 윤재와 주희도 그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승한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각 지역에 있는 괴물들이 호계동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호계동을 담당하고 있던 박향근과 이주호, 차상민 헌터가 일찍 죽었습니다. 그리고 보스를 중심으로 모여든 괴물들과 남색으로 변한 보스까지, 승한씨가 모조리 죽이셨죠.”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승한의 물음에도 안석환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승한씨는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바로 금천구로 넘어갔습니다. 다른 헌터들은 망설일 때, 승한씨는 망설이지 않았죠. 그리고 그곳에서 괴물의 최종 형태로 추측되는 보라색으로 변한 보스를 잡았습니다.”
안석환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책상 위로 손을 모았다. 승한은 그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평촌 지역에 있는 보스를 잡은 사람이 저입니다. 노란색으로 변한 보스를 잡고 얻은 타임 포인트가 2만 5천이었습니다. 타임 포인트의 배분 방법이 발견되지 않은 지금, 보스를 잡은 타임 포인트를 독점해서 이 정도입니다.”
“2만 5천…….”
승한은 생각보다 노란색으로 변한 거대 거미가 많은 포인트를 주지 않았다는데서 놀랐다. 보스도 아닌 파란색 거미가 2만 4천 타임 포인트를 주었는데, 고작 1천 포인트밖에 더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보스 자체의 포인트보다는 보스가 먹어치운 거미의 수에 따라 포인트의 수치가 결정되는 모양이었다. 노란색 거미는 파란색 거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수의 거미들을 먹었을 테니, 포인트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생각보다 적어서 놀라신 겁니까?”
“사실… 그렇습니다.”
승한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지만 명색이 보스가 파란색 거미와 비슷한 타임 포인트를 주었다는 건 의외이긴 했다. 하지만 정작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윤재와 주희야말로 가장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2만 5천……?”
“어마어마하네요. 승한 오빠가 보라색 거미를 잡고 제가 얻은 타임 포인트가 고작 1만이었는데…….”
승한이나 안석환과는 달리 윤재와 주희는 보스를 잡아본 경험이 없었다. 다수의 괴물을 잡는데 특화되어 있던 윤재는 노란색 이상의 거미를 잡지 못했고, 주희는 승한이 남색 거대 거미를 잡을 때 버프를 걸어주지 못한 상태였다. 유일하게 주희는 승한이 보라색 거미를 잡을 때 버프를 걸어주어 승한이 획득한 타임 포인트의 일부를 얻을 수 있었다.
윤재와 주희, 두 사람에게 있어서 안석환의 입에서 나온 2만 5천 타임 포인트라는 수치는 한 번에 획득할 수 있는 타임 포인트치고는 아득히 높은 수치에 불과했다.
“잠깐.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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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애매한 부분에서 나눠졌네요..
아직 절단신공이 미숙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