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57화 (5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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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안

안철환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부드럽게 휘어졌다. 즐거운 상상을 할 때 드러나는 그의 특징이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확실한 겁니까?”

“감히 누구에게 묻는 거지?”

안철환의 물음에 안석환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밖에서 보여주던 능글거리는 모습과는 전혀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죄송합니다.”

“쯧. 한심한 놈.”

안철환은 손에 쥐고 있던 작은 구슬을 던졌다. 안석환은 날아온 구슬을 받아 손에 쥐고는 눈앞에 가까이 가져와서 살폈다.

“이게 바로…….”

“그래. 괴물의 몸에서 나온 핵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괴물이 나타났을 때도 그렇고, 이번 괴물도 그렇고, 모든 괴물들의 몸에는 그와 비슷한 게 있다. 점점 구슬의 크기도 커지더군.”

“이게 이번에 나타난 괴물의 겁니까?”

“아니. 그건 독 때문에 쓰기가 어려워. 물론 쓰려면 쓸 수는 있지만… 독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돈과 시간 때문에 수지가 안 맞아. 영 돈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괴물의 등장에 헌터도 헌터지만, 여러 기업에서는 괴물의 사체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던 괴물들의 사체는 지구에 없던 생명체라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여러 기업이 괴물의 사체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스컬레톤 때문이었다. 살과 내장을 가진 다른 괴물과는 달리, 스컬레톤은 오직 뼈밖에 없는 괴물이었다. 인체학적으로 절대 움직일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런 괴물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분명 어떤 에너지원이 있다는 뜻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여러 기업은 은밀히 괴물의 사체를 사들였고, 그 사체를 연구했다.

그리고 발견해낸 게 바로 이 핵이라는 구슬.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에너지의 활용이었다.

“이 정보는 어디까지나 극비다. 다른 기업에서도 괴물들의 핵을 통한 에너지 자원의 추출에 대해서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보는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을수록 더 가치가 있는 법이지.”

“네. 입단속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단속은 무슨. 네놈이나 입조심 하라는 소리다.”

안철환은 안석환을 향해 경멸에 가까운 시선을 보내고는 의자를 돌렸다. 그는 통 유리 너머로 보이는 전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음에 나타나는 괴물이 독을 가지고 있지만 않다면, 이 괴물들의 핵은 어마어마한 돈이 될 거다. 그리고 이 핵을 구하는 게 바로 안석환, 네놈이 만들 헌터 연맹의 주 일거리가 될 것이야. 알겠느냐?”

안철환의 엄한 목소리에 안석환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

승한은 지하철을 타고 경기도 광명으로 향했다. 김현수 중령이 있는 52향토보병사단의 사령부가 있는 곳이었다.

김현수 중령이 승한을 비롯한 헌터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일전의 일로 빚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맛있는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는 이유가 컸다.

주희는 따라오지 않았다. 그녀는 김현수 중령과 할 말이 없다며 자리를 거부했다. 원래는 금천구에 있는 보스를 잡는데 반대했던 만큼, 감사의 인사를 받기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도 있었다.

52향토보병사단의 사령부는 도심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린 승한은 윤재와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택시를 타고 부대 앞에서 내리니, 김현수 중령이 부대원 몇 명을 데리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마중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하, 그럴 수 있겠습니까? 어디까지나 제가 빚을 진 입장이고, 제가 안양으로 찾아뵈었어야 하는데요.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요즘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정부와 군대가 뒤숭숭하다는 것쯤은 승한도 예상하고 있었다. 김현수 중령이 안양까지 찾아오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일단 식사부터 하면서 이야기 할까요? 조금만 나가면 제가 아는 꽤 괜찮은 식당이 있습니다. 아, 두 분 다 해산물 좋아하시죠?”

“저야 뭐든 잘 먹습니다.”

“저도요.”

승한과 윤재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김현수 중령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부대 앞에서 차를 타고 도심으로 나갔다. 조금만 나가면 된다고 하더니, 철산역까지 가서야 차가 멈췄다.

“여깁니다.”

김현수 중령이 승한과 윤재를 안내한 곳은 겉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고급 일식집이었다. 한 번도 와 본 적 없던 고급 식당의 모습에 승한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흰색 바탕의 깔끔한 디자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종업원이 다가와 자리를 안내했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천막으로 가려진 방에 자리를 잡았다.

“너무 부담되시지 않겠습니까?”

“목숨 값 치고는 싸죠. 마누라에게 바가지는 좀 긁히겠지만 말입니다.”

가장 값싼 코스가 1인에 6만원이었고, 비싼 코스는 10만원까지도 했다. 김현수 중령은 전복과 회, 전복죽과 게살스프, 게살 샐러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랍스타가 나오는 코스를 추천했다.

“잘 먹겠습니다. 사실 이런 데는 처음이라 좀 낯설군요.”

“저도 딱 두 번 와 봤습니다. 제 돈으로 사먹은 것도 아니고, 연대장님이 사 주셨죠.”

잠시 후, 빠르게 상이 차려졌다. 가장 먼저 전복과 활어 회가 나왔다.

생각해 보면 이런 식당도 이제 별로 부담스럽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헌터 일을 시작한 첫 주에만 하더라도 호계동 지역의 성과급까지 더해 2억의 돈이 들어왔다. 추가적으로 영상구를 통해 괴물을 얼마나 잡았는가에 따라 내일 중으로 돈이 더 들어올 예정이기도 했다.

맡은 지역 외에 추가적으로 괴물을 잡으면 한 마리에 300만원의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사람에 10만원이나 하는 코스 요리도 별로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돈 벌기가 이렇게 쉬웠나?’

승한은 자신의 검에 학살되었던 거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녀석들이 한 마리에 300만원이라니, 돈 벌이가 참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승한이 특별한 능력을 얻었고, 그 중에서도 뛰어난 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전복과 회를 다 먹을 때쯤, 다음으로 게살이 들어간 스프와 전복죽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게살 셀러드와 껍질이 반쯤 벗겨진 거대한 랍스타가 나왔다.

승한과 윤재, 김현수 중령은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첫 인상과는 달리 김현수 중령은 꽤나 유쾌한 인물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만큼 아는 지식도 많았는데, 시시콜콜한 대화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음식이 바닥났다.

“맛있네요.”

“입에 맞으신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배가 불러오자 승한은 슬슬 본론을 꺼냈다. 식사 대접이 목적이긴 했지만 김현수 중령은 통화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던 것이다.

“아, 그게…….”

승한의 물음에 김현수 중령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며 유쾌했던 표정에 순식간에 그늘이 드리웠다.

“사실 드리기가 죄송한 말씀입니다.”

“죄송하다고요?”

“네.”

김현수 중령은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승한씨가 말씀하셨던 부분에 대해서는 통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예산입니다. 승한씨도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헌터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고 계시죠?”

승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가 총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몰라도, 활동하고 있는 헌터는 대략 3천 명 정도였다.

“그들 모두에게 기본 성과급을 지급하게 되면 대략 3천억 정도의 예산이 소모됩니다. 한 해가 아닌, 한 주에 3천억입니다. 일 년이 약 51주 정도 되니, 최소 15조 이상의 예산이 소모되는 것이죠.”

15조. 아무리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돈이라 해도,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이었다. 아마 이 정도 액수도 다른 곳에 들어갈 돈을 어찌어찌 끌어 모았을 것이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들어갈 지출. 한두 푼도 아니고, 승한씨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적어도 한 해에 5조원 이상의 지출이 추가적으로 생겨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정부는 이 예산을 매울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없습니다.”

“하긴. 괴물을 잡는다고 진짜 돈이 되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탄광에서 금을 캐는 광부는 임금을 받지만, 결국 그들이 캔 금은 돈이 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헌터들이 잡는 괴물의 시체는 돈은커녕, 길바닥에 뿌려지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큰일이군요. 헌터들이 아무런 보상도 없이 제대로 괴물들과 싸우려 할지…….”

헌터들에게 있어서 괴물의 존재는 타임 포인트를 주는 사냥감이자, 반대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게임은 사냥을 하면서 강해지다 죽고 부활을 반복하지만, 현실은 게임과는 달리 한 번 죽으면 그대로 끝이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헌터들이 아무런 보상도 없이, 무작정 타임 포인트 하나만 바라보고 괴물들과 싸울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보상 없이 타임 포인트의 확보를 위해 나서는 헌터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 수가 적을 것임은 분명했다.

“그 대신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용병 형식을 사용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용병 형식이요?”

“네. 모든 헌터들에게 그런 식으로 돈을 지불할 수 없으니, 타임 스톱이 끝난 이후에 정부가 독자적으로 움직일 유능한 헌터 몇 명을 따로 고용할 예정입니다. 지역별로 몇 명씩을 구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유능한 헌터 백 명을 생각중입니다.”

최대한 예산을 아끼면서 시간이 다시 움직였을 때를 대비한 모양이었다. 백 명이라면 너무 적지 않나 싶었는데, 대피소의 위치가 가족들이 있는 위치와 맞물리거나 승한이나 윤재처럼 보상 없이 움직이는 헌터들도 있는 걸 감안하면 그런대로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어쩔 수 없겠지.’

예산이 부족하다는데 없는 예산을 만들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헌터들이 중요하다지만 반드시 필요한 곳에 들어가는 예산을 빼돌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정부도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헌터들은 어떻게 선정할 생각입니까? 보상은 어떤 식으로 측정되고요?”

“정부에서 고용할 100명의 헌터는 기존 헌터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정될 예정입니다. 현재 헌터들에게서 받아놓은 영상구를 통해 선별 작업에 들어간 상태이고, 보상은 논의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 기존 헌터들에게 지급되는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추가 성과급이 주어질 것 같습니다.”

“기존보다 더 많이요?”

승한은 지금 헌터들이 받는 돈만 해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주에 최소 1억, 많으면 2억 이상의 돈을 만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보다 더 많은 액수의 추가 성과급이라면 군침을 흘릴 만했다. 그렇게 몇 주만 일을 하게 되면 아마 평생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네. 혹시 관심 있으십니까?”

“그 정도 보상이라면 당연히…….”

그 때, 승한은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네. 그 설마입니다.”

김현수 중령이 승한과 윤재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저희는 승한씨와 윤재씨, 두 분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순위가.. 많이 올랐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오늘만 같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다들 추천은 누르시고 보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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