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59화 (5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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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하나의 길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승한에게 연락을 받은 안석환은 손에 쥐고 있던 전음구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고급스러운 스포츠카의 문을 열고 운전대를 잡은 안석환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김승한이라…….”

안석환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를 잡은 헌터는 몇 명 있었다. 서울 지역에 있는 헌터들 중에서도 제법 실력이 있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헌터들을 제치고 안석환의 머릿속에 가장 깊게 박힌 헌터는 다름 아닌 승한이었다.

안석환이 같은 지역에 있는 헌터라는 점도 있었지만, 영상구를 통해 확인한 그의 실력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정도였다. 안석환은 아버지인 안철환에게서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얻은 헌터들의 영상을 모두 훑어본 상태였다.

‘이 녀석은 꼭 영입해야 하는데…….’

안석환은 운전대를 잡은 채, 시동을 걸 생각도 않고 머리를 굴렸다.

‘문제는 정부 놈들이 이미 녀석에게 접촉을 했을 거라는 거지.’

안석환이 급하게 승한을 비롯한 다른 헌터들을 만나고 다닌 이유는 바로 정부가 실력이 뛰어난 헌터들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안석환이 뛰어난 헌터들과 함께 만들고자 하는 헌터 연합과 같은 목적이어서 자칫 일이 꼬일 수 있었다.

그런데 헌터들 중, 헌터 연합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거나 가입을 보류한 이들이 몇몇 있었다. 그리고 승한 역시 바로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능구렁이 같은 정부 놈들.”

부웅-.

안석환이 타고 있던 차에 시동을 걸었다. 당장 내일 승한과 윤재와 주희, 세 사람을 함께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안석환은 승한의 얼굴을 떠올리며 스포츠카를 밟기 시작했다. 텅 빈 차도 위를 붉은색의 스포츠카가 질주했다.

**

“화안기업의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총리의 물음에 집무실에 앉아있던 대통령이 대답했다.

“안 회장이 또 무슨 일을 하려는 것 같긴 하더군요.”

“각 기업들이 괴물의 사체를 수거해 간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다 제재 할 수 없어 내버려 두었습니다. 수가 너무 많고 전국적으로 나타났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에는 헌터들에게까지 접근을 보이고 있습니다.”

“헌터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고?”

“화안기업 아닙니까? 국내 제일,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하긴, 안 회장이 능력이 좋긴 하죠. 옛날부터.”

대통령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하지만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안철환 회장이라면 분명 무언가 구린 일을 꾸미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뭐가 말입니까?”

“안 회장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아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총리의 물음에 대통령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벌써 조사 중인 것 아닙니까?”

“……알고 계셨습니까?”

“총리님 성격이야 잘 알죠.”

대통령의 대답에 총리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집무실 책상에서 조금 떨어진 소파에 앉았다. 대통령도 서류 더미에서 빠져나와 총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안 회장에게 둘째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요? 안 회장 아들은 한 명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알려져 있었지만, 얼마 전에 조사해 보니 한 명이 더 있더군요. 굳이 숨길 생각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워낙 눈에 띄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죠.”

총리의 말에 대통령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안 회장에게 또 다른 아들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쪽 기업의 족보가 콩가루라는 것쯤은 이미 예전부터 잘 알고 있던 바였으니까.

“그런데요?”

“그 둘째 아들이 이번에 헌터가 된 모양입니다. 이름은 안석환이고, 일곱 살 때부터 안 회장과 따로 떨어져 안양에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총리는 가지고 온 서류 몇 장을 내밀었다. 안석환과 관련된 신상 정보였다.

안석환. 총리는 물론, 대통령도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안양 지역에서 두각을 드러낸 헌터 중 한 명으로, 그의 이름은 바로 오늘 회의 중에서도 거론되곤 했다. 안양 지역의 헌터들 중, 연락의 중심으로 정부와 이야기가 오고가던 헌터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자가 안 회장의 아들이었습니까?”

“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 참 좁군요.”

“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아냈는지 아십니까?”

총리의 물음에 대통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상 정보를 봐서가 아닙니까?”

“아닙니다. 안 회장이 안석환을 중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총리의 말에 대통령이 눈살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적지 않은 나이에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주름이 더욱 늘어났다. 그는 지금부터 이어질 총리의 말이 바로 본론임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안 회장이 둘째 아들인 안석환을 필두로 헌터 연맹을 구축하려는 모양입니다. 그가 가진 돈과 인맥, 권력, 그리고 안석환이라는 뛰어난 헌터를 내세운다면 전국에 있는 헌터들을 한데 모으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죠.”

“……곤란하군요. 헌터들이 그의 손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헌터들은 지금 정부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애초에 흩어져 있는 헌터들에게 보상을 내세워 일거리를 주고, 한 지역별로 헌터들을 배치해 현재의 헌터 시스템을 만들어낸 건 바로 정부였다.

그런데 그 사이로 화안기업이 안석환이라는 얼굴을 내세워 숟가락을 올리려고 한다. 아니, 상 전체를 가져가려고 한다.

현 상황에서 헌터들이 화안기업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들의 손에 국가 전체가 좌우될 수도 있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대체 안 회장은 왜 헌터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겁니까? 헌터들이 돈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요.”

대통령은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 분명했지만, 생각해 보면 화안기업이 헌터들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기업은 어디까지나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였다. 국가의 국익과 안위를 생각해야 하는 정부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단체인 것이다. 정부는 시민들의 안전과 국가적 피해를 막기 위해 헌터들에게 보상을 약속하고 그들의 힘을 빌렸다지만, 자선사업을 하는 단체도 아닌 화안기업이 굳이 헌터들을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헌터들이 아니라, 괴물들이 돈이 될 수도 있지요.”

“괴물들이요? 죽어버린 괴물의 사체가 돈이 된다는 소립니까?”

정부 역시 괴물의 사체를 연구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왜 갑작스럽게 괴물들이 나타난 것인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 그들의 몸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것인지, 몸 구석구석을 해부하고 연구했다.

하지만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없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스컬레톤과 리자드맨, 거미들, 모두가 비슷한 모양에 다른 크기의 구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연구 결과 그것은 괴물의 심장으로 판명되었다. 괴물들은 그 힘을 에너지로 삼아 괴물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정부 역시 그 에너지를 사용할 방법에 대해서 연구 중에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는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화안기업에서 고무적인 성과를 이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연구가 끝났을지도 모르죠.”

“그게 무슨 이유에서건 헌터 연합이 만들어지고, 그 연합이 안 회장의 손에 들어가는 건 막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안 회장의 손에 제대로 놀아날 수도 있어요.”

대통령은 총리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 역시 그렇게 되는 것만은 막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헌터 연맹이 만들어지는 것부터 막아야 하는데, 당장 그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실타래처럼 얽혀오는 상황들에 대통령은 아닌 밤중에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아야했다.

“안 회장과 연락할 수 있겠습니까?”

**

다음 날, 승한은 윤재, 주희와 함께 안석환을 만났다. 세 명이 함께 모여 약속시간보다 십 분 정도 일찍 나가있었는데, 의외로 안석환이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일찍 오셨군요.”

“지난번에는 제가 늦지 않았습니까? 오늘은 제가 기다리고 있어야죠. 아, 커피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안석환은 친근하게 다가와 승한과 윤재, 주희에게서 마시고 싶은 음료를 주문받았다. 하지만 정작 음료를 주문한 사람은 주희뿐이었다.

“그래, 생각은 많이 해 보셨습니까?”

안석환은 어제처럼 서론은 늘어놓지 않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 승한은 잠시 대답하지 않고 윤재와 주희의 눈치를 봤다.

이미 주희와는 이곳에 오기 전에 김현수 중령의 제안에 대해 언질을 한 상태였다. 그리고 헌터 연맹과 정부의 제안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이 될지에 대해 고민하라고 말해두었다.

김현수 중령의 제안에 대해서 막 알게 된 주희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제안에 더 끌리는 듯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안현수가 말한 헌터 연맹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 섣불리 판단할 순 없었다. 승한이 다시금 안석환과 자리를 가진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안석환씨는 정부에서 제안을 받지 않았습니까?”

“제안이요? 아, 혹시 용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역시 받으셨군요.”

“받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지요. 들은 게 있어서요. 역시 승한씨도 용병 제안을 받으신 겁니까?”

안석환이 제안을 받지 않았다는 점은 의외였다. 하지만 알고는 있다니 이야기를 하기에 어려울 건 없었다.

“네. 저와 윤재 형, 주희. 세 사람 모두 정부로부터 용병 제안을 받았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급으로 억 단위가 넘어간다지요? 하긴, 승한씨 같은 헌터가 아니면 누구에게 그런 제안을 하겠습니까?”

그 순간, 안석환의 눈빛이 잠시 날카롭게 번뜩였다가 다시 부드럽게 휘어졌다. 승한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으나,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터라 꼬집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승한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헌터 연맹은 저희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습니까?”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 질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군요.”

안석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석환이 꽤나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승한은 혹시 자신이 너무 어렵게 물어봤나 싶어 쉽게 물었다.

“정부는 저희에게 돈이라는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어제 안석환씨가 말씀하셨듯이, 헌터 연맹은 아직 확실히 자리를 잡지 않은 상태입니다. 정부와는 다르게 말이죠.”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승한씨 말은 정부의 보상을 포기하고 헌터 연맹을 택하면 어떤 대가를 받을 수 있느냐, 그것 아닙니까?”

“바로 그겁니다.”

승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석환이 피식 웃었다.

“왜 그래야 합니까?”

“네?”

“왜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치 우리가, 헌터 연맹이 정부와 적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군요.”

안석환의 대답에 승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윤재와 주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한 쪽을 택하지 않아도 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당연히 더 큰 보상을 약속하거나, 돈 이외의 헌터 연맹의 장점에 대해서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때, 승한은 지금껏 자신이 놓치고 있던 사실을, 크나큰 착각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르지 않았어.’

헌터 연맹과 정부.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두 개의 세력이었다. 헌터 연맹은 정부의 독단적인 행보를 막기 위해 모인 이익 집단이었으니 당연히 정부와 충돌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두 집단 모두 걷는 길은 같았다. 애초에 길은 두 개가 아니었다.

헌터가 할 일은 하나.

괴물을 사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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