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61화 (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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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섯번째 꿈

승한은 잘 몰랐지만 뱀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 4스테이지의 남색 문에서 만난 뱀과는 덩치도 덩치지만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가죽이 훨씬 질기다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송곳니에 있는 독이 문제였다. 수적으로도 열 마리나 되어서 한 명을 옭죄어 오는데, 조금이라도 이빨에 당하면 극독이 묻어 금방 사망하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애초에 승한에게는 그 송곳니가 통하지 않을뿐더러, [불굴의 육체]와 [귀신]을 통한 강한 힘과 움직임은 뱀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6스테이지에 하나의 능력을 10레벨까지 달성했다는 것 자체가 승한이 보통 헌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단순히 괴물로부터 살아남는 게 이번 스테이지의 내용인가? 너무 단순한데?’

5스테이지는 성주의 딸인 공녀를 호위하라는 내용의 스테이지였다. 4스테이지만 하더라도 3스테이지까지의 내용과는 구도가 많이 달랐다.

때문에 승한은 6스테이지는 무언가 또 다른 형식으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단순히 괴물들로부터 일정 시간 동안 살아남으라는 맥없는 스테이지가 나타났다.

‘화요일에 스테이지가 진행된다는 게 그나마 다른 점이려나?’

분명 스테이지의 진행 날짜는 5스테이지까지와는 다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꺼림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6.1스테이지라는 건, 다음 스테이지가 있다는 뜻이겠지.’

5스테이지만 놓고 봐도 5.1스테이지와 5.2스테이지로 나누어져 있었다. 각 스테이지마다 완료 조건이 다르고, 그 스테이지를 모두 완료하였을 때야 비로소 능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구구구구구-.

“하긴, 이대로 끝날 리가 없지.”

승한은 발밑에서 또 다시 느껴지는 진동에 중얼거렸다. 잠시 내려놓았던 검과 방패를 들고, 다시금 손에 힘을 쥐었다.

쉴 틈이 없었다. 밭밑에서 뱀들이 기어다니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뱀들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파악-!

다시금 뱀들이 황무지 위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

파악-.

바닥에 쓰러져서 꿈틀거리던 뱀의 머리에 검이 박혔다. 고통에 울부짖으며 거대한 몸을 비틀던 뱀의 몸이 축 늘어졌다.

“후아, 징그럽게 많네.”

계속해서 뱀을 베어가던 승한은 마지막 뱀이 쓰러지자 그 머리 위에 앉았다. 그러곤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지간히도 많이 죽였군.”

승한의 몸에는 뱀들을 베며 튄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뱀들의 피는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에 가까웠는데, 피가 굳으며 완전한 검은색에 더욱 가까워졌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싸우느라 몰랐는데, 이미 승한의 주위는 황무지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많은 뱀들이 흩어져 있어 어지럽기만 했다.

피가 흘려진 황무지 땅은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에 가까워졌다. 피가 머금어진 땅이라는 생각에 순간 속이 거북했지만, 승한은 눈살을 찌푸리는 것으로 넘기고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스테이지 6.1]

달성 조건 : 한 시간을 버텨라.

제한시간 : -

남은시간 : 00 : 14 : 11

보상 : 6.2스테이지로의 이동

“얼마 안 남았군.”

14분이면 금방이었다. 더군다나 계속해서 나타나던 뱀들도 점차 수가 줄어가더니 이제는 아예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만한 크기의 뱀이 황무지 밑에 꽤나 많이 서식하는 모양인지,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승한에게 겁을 먹은 건지, 아니면 더 이상 이 주변에 뱀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건지 방금 전을 기점으로 더 이상 뱀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만하면 난이도 자체가 그리 낮지는 않은데.’

애초에 뱀들의 송곳니가 통하지 않아서 그렇지, 뱀들은 그리 약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수도 어마어마해서 다른 헌터들은 그리 수월하게 통과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승한에게는 난이도가 비교적 쉽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승한은 더 이상 뱀이 나타나지 않자 남은 14분은 그 자리에 앉아 쉬기로 결정했다.

“검과 방패는 좀 바꿔야겠군.”

승한은 사용하고 있는 검과 방패를 보며 중얼거렸다. 계속해서 괴물들을 향해 휘두르던 검은 어느새 날이 꽤 많이 무뎌져 있었고, 방패도 여기저기가 찌그러졌다. 아무리 승한이 [강화]와 함께 [수호신]을 사용했다고 해도 내구도가 무한해 지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14분이라는 시간 동안에는 할 게 없었다. 보유하고 있는 타임 포인트에도 여유가 있었고, 승한은 그 동안 장비를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상점.”

[무기]

[방어구]

[소비]

오래간만에 보는 목록이었다. 승한은 가장 먼저 [무기]를 살폈다.

검, 창, 도, 활, 도끼, 메이스 등등, 여러 가지 장비의 목록이 나타났다. 당연히 그 중에서 승한이 관심을 가지는 무기는 검이었다.

가장 위쪽으로 50타임 포인트의 검부터 승한이 사용하고 있는 100타임 포인트의 검, 그리고 1만 타임 포인트가 넘어가는 검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1만 타임 포인트가 넘는 검들은 단순히 강도나 경도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효과들이 붙어있었다.

“……장비를 진작 맞출 걸 그랬나?”

무기들 중에서 승한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건 바로 가격이 1만 타임 포인트나 하는 검이었다. 강도나 경도는 승한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검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사용자가 지정한 능력의 레벨을 하나 올려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밑에는 ‘첫 번째 능력에 한해서’라는 제한이 붙어있었다. 예전이라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을 테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능력은 아마 10레벨 이전의 능력을 의미하는 거겠지.’

사실상 모든 능력이 10레벨을 달성하게 되면 별 소용이 없는 효과였다. 더군다나 영구적이 아닌 일시적인 상승. 만약 검을 놓게 되면 능력의 레벨 상승도 사라지게 된다.

‘더군다나 능력의 레벨을 하나 올리게 되면, 다른 능력으로 바꿀 수도 없으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승한은 눈여겨봤던 검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의 효율에 기대어 타임 포인트를 낭비할 만큼 승한은 약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타임 포인트가 저렴한 다른 검을 구하던가, 아니면 조금 더 타임 포인트를 지불하더라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검을 고르고 싶었다.

결국 승한은 2만 타임 포인트를 주고 검을 구입했다. 능력의 레벨을 올려주는 효과는 없지만, 강도와 경도가 높고 무엇보다 악(惡)에 대한 추가 피해가 걸려 있는 검이었다.

‘주희가 걸어준 [단죄의 빛]이랑 효과가 비슷한데.’

물론 주희의 버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버프와 중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녀의 버프와 중첩되면 더 큰 힘을 낼 가능성이 컸다.

방패를 고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1만 포인트를 하는 방패 중, 방어력 자체보다 훨씬 매력적인 효과가 붙어있는 방패가 있었던 것이다.

‘방어 능력과 관련된 능력의 효과 증폭이라… [수호신]과 잘 맞겠어.’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었다. 혹시나 다른 방패들 중, 더 괜찮은 게 없을까 해서 둘러봤지만 가격대비 이보다 더 좋은 방패는 없었다.

결국 검과 방패에 3만 타임 포인트나 투자했다. 하지만 별로 아깝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능력 한 두개를 올리는 것보다 더 큰 효율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직 6만이 넘는 타임 포인트가 남아있었다.

‘굳이 갑옷을 사야 할까?’

승한은 스스로 [수호신]에 의지하는 경향이 늘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 뱀들과의 싸움에서만 보더라도 [수호신]에 의지해서 뱀들의 공격을 굳이 피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능력 하나에 의지하는 습관을 들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게 마음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갑옷의 여부에 갈등이 되었다. 갑옷이 생기게 되면 더더욱 능력과 함께 스스로의 방어력에 기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일부러 방어력을 신경 쓰지 않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다음 괴물이 어떤 녀석일지도 알 수 없고, 혹시라도 [수호신]이 뚫릴 위험성도 있었다.

“역시… 필요하겠지?”

승한은 결국 [방어력]에서 갑옷 목록을 확인했다. 갑옷은 기본적으로 100타임 포인트를 요구했는데, 가벼운 가죽 갑옷부터 무거운 철제 플레이트 메일, 그리고 몇 가지 능력이 있는 갑옷도 있었다.

승한은 여벌의 목숨 셈으로 갑옷을 구해도 많은 타임 포인트를 소모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능력이 붙어있는 값비싼 갑옷보다는 방어력 위주의 갑옷을 택했다.

3000타임 포인트.

승한이 구입한 갑옷의 가격이었다. 이전 같으면 이 정도 타임 포인트도 비싼 느낌이 있었을 텐데, 워낙 가지고 있는 타임 포인트가 많다 보니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도 부르주아가 다 됐군.’

갑옷을 구입하자 승한의 몸에는 저절로 갑옷이 입혀졌다. 간단하게 두르는 가죽 갑옷이었는데, 충격의 흡수와 함께 가죽 자체도 질겨서 웬만한 철제 갑옷보다 방어력이 뛰어났다.

무엇보다 움직임에 큰 제약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무거운 플레이트 메일의 경우, 움직임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죽 갑옷은 관절 부분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갑옷 자체가 움직이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갑옷의 장점이었다. 단순히 질기기만 한 가죽 갑옷이었다면 3000타임 포인트나 주고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승한이 구입한 가죽 갑옷은 사용자가 움직이는데 전혀 제약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효과가 걸려 있는 갑옷이었다. 역시나 갑옷을 입고 움직이자, 마치 아무 것도 몸에 걸치지 않은 것처럼 움직이기가 편안했다.

방어력보다는 편안한 움직임에 중점을 둔 갑옷. 승한은 나름대로 중간에서 타협을 보았다.

“시간이 꽤 많이 지났군.”

검과 방패, 갑옷을 모두 사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제 3분가량이 남아있었다. 10분이 넘게 쇼핑을 했다니, 스테이지 진행 중에 지나치게 한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은 3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때.

“이, 이게 다 뭐야?”

누군가의 목소리가 승한의 귀에 들려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말뜻을 알아들었음에도 처음 듣는 생소한 언어라는 점이었다.

‘누구지?’

승한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뱀들의 시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뱀의 시체를 밟고 위로 올라갔다.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세 명이었다.

한 명의 여인과 두 명의 남자. 그들은 뱀의 시체 더미를 살피며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스테이지의 시작인가? 하긴, 슬슬 시간이 되긴 했지.”

아무래도 남은 3분이라는 시간은 의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미 다음 스테이지의 시작은 예정되어 있었고, 그 시작은 저들과의 만남이 될 것이다.

기다리기가 지루해 승한은 지체 없이 움직였다. 뱀들의 시체 사이를 지나쳐 승한의 몸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순식간에 승한의 몸이 세 명의 사람들에게로 가까워졌다.

“잠깐! 누가 있어!”

그 때, 앞장서 오던 여인이 한쪽 손을 들며 소리쳤다. 그들의 눈에 빠르게 다가오는 승한의 모습이 비춰졌다.

‘어라?’

가까이서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승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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