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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섯번째 꿈
“……대체 수가 얼마나 되는 겁니까?”
승한은 질릴 정도로 나타나는 좀비 거인들의 수에 저도 모르게 물었다. 다행히 자칼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해 주었다.
“무한.”
“네?”
“나르샤님이 성화를 피우지 않는 이상, 저것들은 계속해서 나타나겠지. 그리고… 그 녀석이 다시 부활할 테고.”
자칼의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승한은 대체 ‘그 녀석’은 또 누구일까 했는데,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자칼이 말하는 ‘그 녀석’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어차피 이야기를 들어 보면 목적을 이루어 내면 부활하지 못할 녀석인 것 같았다. 부활한다고 하면 그것이 아마 스테이지의 최종 목적이 될 테고 말이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승한은 스테이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될 일이었다. 거기에 생각이 필요하다면 모를까, 명확한 목적이 있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번 스테이지의 목적이 성화라는 걸 피우는 건가?’
제한시간이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정해져 있는 10시간 안에 저 뱀 동굴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게 목적인 모양이었다. 승한은 바로 눈에 보이는 곳에 도달해야 할 곳이 보이자 더욱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것들부터 처리해야겠지.’
승한의 눈에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좀비 거인들이 비춰졌다. 나르샤를 업고 있는 자칼은 눈앞에 있는 좀비 거인들에게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조금씩 뒤로 주춤거리고 있었다.
“길을 뚫겠다.”
“뭐?”
“잘 따라오기나 해. 나르샤님 다치지 않게.”
승한은 그 말을 뒤로 남기고 곧장 앞으로 튀어나갔다. 자칼과 가렝이 뭐라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승한은 검을 잠시 내려놓고, 방패를 앞으로 들었다. 그리고 방패에 [강화]와 함께 [수호신]의 문양을 그려 달려들었다.
꽈아앙-!
퍼퍼퍼펑-!
승한과 부딪힌 좀비 거인들의 몸이 터져나가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승한은 폭발 사이를 뚫고 계속해서 전진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폭발이 일어나자, 승한이 지나간 길로 거대한 길이 만들어졌다. 좀비 거인들의 폭발은 주변에 있는 다른 좀비 거인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지라, 좀비 거인들은 아군 좀비 거인들의 폭발에 물러나 옆으로 주춤거렸다.
“이런… 미친…….”
가렝은 승한이 만들어낸 길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길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설마하니 이렇게 무식한 방법을 사용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가자.”
그 때, 마찬가지로 멍하니 있던 자칼이 정신을 차리고 승한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저 많은 좀비 거인들을 어떻게 뚫고 가나 했는데, 승한이 알아서 길을 만들어 줬으니 그 길을 따라 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좀비 거인들이 다시 길을 막아설 것이니 서둘러야했다.
“저 분은… 대체 어디서 오신 분일까요?”
나르샤의 목소리가 자칼의 귓가에 조용히 파고들었다. 좀비 거인들이 등장한 순간부터 자칼의 등에 업혀 있던 그녀는 계속해서 품고 있던 승한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녀의 목소리에 자칼은 저 멀리서 방패를 들고 우직히 좀비 거인들을 밀어내고 있는 승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글쎄요.”
그리곤 높은 붉은색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서 내려 줬나 봅니다.”
처음 자칼은 승한의 존재를 크게 의심했다. 아무리 나르샤가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승한의 존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승한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서 정체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녀는 지금 한 명의 힘이 절박한 상태였다. 승한의 실력만 확실하다면 그의 정체가 무엇이든, 힘이 될 수 있을 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네.”
자칼의 눈이 저 멀리, 거대한 뱀의 아가리로 향했다.
“반드시… 성화를 피워야 합니다.”
**
[스테이지 6.2]
달성 조건 : 마족 여인 나르샤를 도시까지 안전하게 호위하라.
제한시간 : 10시간
남은시간 : 3 : 01 : 18
보상 : 6.3스테이지로의 이동
승한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까지 3시간이라는 여유가 남아있었는데, 비교적 빨리 스테이지를 완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힘드네.’
도대체 얼마나 되는 좀비 거인들을 죽였는지 모르겠다. 승한의 방패에 부딪힌 좀비 거인들은 그 압도적인 힘에 밀려서 몸이 터져나가거나 찍어 눌렸다.
승한은 그렇게 터져나간 좀비 거인의 폭발을 [수호신]으로 방어해냈다. 기본적으로 방패가 몸을 지켜준다지만, [수호신]의 힘이 없다면 그 피해를 완전히 방어해 내기는 힘들 것이었다.
‘방패를 바꾸고 갑옷을 구해두길 잘했어.’
승한의 방패에는 방어 능력에 대한 추가 효과가 붙어있었다. 갑옷에는 추가적인 방어 능력이 있지는 않지만, 평범한 일상복을 입는 것보다는 몸을 보호하는데 훨씬 용이했다.
만약 방패와 갑옷을 사지 않았다면 크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든 피해를 입기는 했을 것이다. 지금보다 [수호신]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힘도 더 많이 필요했을 것이고 말이다.
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악(惡)에 대한 추가 피해라는 효과가 있는 검은 어찌 보면 [광휘]라는 승한의 능력이나 ‘단죄의 빛’이라는 주희의 능력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승한의 검은 헌터들의 능력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승한은 좀비 거인을 상대로 힘을 최대한 아낄 수 있었다.
‘앞으로 조금!’
승한은 바로 코앞까지 가까워진 거대한 뱀 모양의 동굴을 보며 눈앞에 있는 좀비 거인들을 밀어냈다. 좀비 거인들은 역시나 나르샤가 뱀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듯,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꾸륵, 꾸르륵-.
그 순간, 뱀의 아가리 앞에 보여 있던 좀비 거인들이 한데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 몸을 이어가더니 스스로의 몸을 녹혀 한데 뭉쳐들었다.
마치 점토가 뭉치듯, 좀비 거인들이 하나의 거대한 거인으로 만들어졌다. 10미터가 훌쩍 넘는 덩치의 좀비 거인은 과연 폭발하게 되면 얼마나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아, 이거 어렵네.”
눈앞을 어지럽히던 수많은 좀비 거인들이 사라진 건 환영할 일이었다. 아무리 크다고 해도 승한은 충분허 눈앞에 있는 거대한 좀비 거인을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로인한 폭발. 과연 승한은 자신이 그 폭발에서 견딜 수 있을지, 나르샤가 그 폭발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르샤님을 데리고 먼저 들어가라.”
승한은 뒤따라온 자칼에게 말하며 방패를 들었다. 자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승한은 자칼의 옆을 따라 뱀의 아가리 안으로 향했다. 그러자 좀비 거인이 승한과 자칼을 향해 손을 뻗어왔다.
사악-.
승한의 검이 좀비 거인의 팔을 베어냈다. 다른 한 팔이 앞으로 나아가는 나르샤와 자칼, 가렝에게로 향했는데 그 순간 승한의 몸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서걱-.
쿵-.
좀비 거인의 팔이 땅 아래로 떨어졌다. 좀비 거인은 승한이 아닌, 나르샤가 목적인 듯 승한을 무시하고 움직였다.
“어딜 가려고?”
승한이 눈을 빛내며 좀비 거인의 움직임을 묶었다. 먼저 다리를 베고, 몸을 쓰러뜨렸다.
콰앙-!
무거운 몸뚱이가 넘어지며 흙먼지가 날렸다. 아무리 좀비 거인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덩치가 거대해졌다고는 하나, 피부가 단단해지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죽으면서 스스로 자폭한다는 것이었는데…….
‘죽이지 않는 이상, 폭발하지는 않는 건가?’
승한이 일부러 녀석을 죽이지 않고 다리를 베어 쓰러뜨린 이유는 바로 폭발을 막기 위함이었다. 혹시라도 큰 폭발이 일어나 나르샤와 자칼, 가렝이 휘말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승한의 노력은 아무래도 헛수고였던 모양이었다.
꾸르르륵-.
좀비 거인의 몸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좀비 거인에 비해서는 느린 속도였지만, 그것은 분명 폭발하기 직전의 반응이었다.
“젠장!”
승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움직였다. 다리를 [강화]하고, [귀신]을 이용해 최대한 빠르게 허공을 내달렸다. 순식간에 승한의 몸이 나르샤를 업고 있는 자칼에게로 도달했다.
그들은 이미 뱀 모양의 거대한 동굴의 입구까지 도달해 있었다. 승한이 다가오는 기척에 나르샤가 뒤를 돌아봤다.
“엎드려어어어-!”
승한이 입이 찢어져라 소리치며 방패를 들어올렸다. 몸을 돌려 스스로의 몸과 나르샤의 몸이 가려지게 만들고, 방패에 [수호신]의 문양을 그렸다.
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동굴 앞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은 좀비 거인을 중심으로 사방을 휩쓸었다.
뜨거운 열기가 동굴의 안까지 전해졌다. 승한은 자칼과 함께 그의 등에 업혀 있는 나르샤를 품에 안고 방패를 등껍질처럼 둘렀다. 한 차례 폭발이 지나가자 승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위를 살폈다.
“쿨럭. 으, 냄새.”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좀비 거인이 폭발하며 몸에서 나던 악취를 사방에 뿌린 탓이었다. 두어번 기침을 내뱉던 승한은 고개를 돌려 나르샤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으십니까?”
“네, 네. 전 괜찮아요.”
나르샤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바로 옆으로 가렝이 몸에 그을린 상처를 입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렝!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범위만 넓었지, 그리 충격이 강하진 않았어요. 아무래도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좀비 거인과 나르샤와 자칼, 가렝의 사이에는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 덕분에 가렝은 조금 살이 타거나 그을린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
“이 정도는 금방 낫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다행이에요.”
나르샤는 자칼의 등에서 내려왔다. 승한은 나르샤의 안전을 확인한 뒤, 뱀의 모양을 한 거대한 동굴의 내부를 살폈다.
‘크긴 엄청 크군.’
단순한 동굴이라고 보기엔 모양부터 크기까지 범상치 않았다. 뱀의 얼굴만 하더라도 족히 높이가 백 미터는 됨직했다.
입 속으로 들어가는 동굴의 안은 얼마나 깊은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황무지 한 가운데 이런 동굴이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감사해요. 덕분에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질 않았네요.”
나르샤가 승한을 향해 웃어보였다. 자칼과 가렝은 처음과는 달리 승한을 향해 꽤나 호의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승한의 실력을 확인하고, 몸을 날려 나르샤를 구하려 한데서 믿음이 간 모양이었다.
“승한이라고 합니다.”
“승… 한? 어려운 이름이네요.”
“이름이 중요하겠습니까?”
“하긴. 그건 그러네요. 승한씨, 당신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저들과 무슨 관계인 건지, 왜 저를 도우려 하는 건지…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묻지 않을게요. 하지만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릴게요. 저는, 저희들에게는 지금 당장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나르샤의 말에 승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는 말이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전 애초에 당신을 도우려고 그 황무지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승한.”
그렇게 나르샤의 얼굴에 보석같은 웃음이 지어진 순간이었다.
[6.2스테이지를 완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