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66화 (66/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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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섯번째 꿈

눈을 뜬 승한은 멍하니 상체를 일으킨 채 중얼거렸다.

“……역시 끝이 아니었네.”

거대한 좀비 거인을 보고, 혹시라도 이게 스테이지의 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르샤가 할 일은 한가로이 동굴 안으로 걸어가 성화라고 하는 불을 피우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6.2스테이지가 끝났음에도 아직 능력을 얻지 못한 것을 보면 아직까지 스테이지는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일요일이 되는 날까지 계속해서 이 스테이지가 이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겠군.”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덧 9시였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던 승한치고는 늦잠을 잔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몸이 꽤나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물론, 머리는 복잡했다. 앞으로 어떤 스테이지가 남아있을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난이도가 꽤 높은데… 다른 헌터들이 통과할 수 있으려나?’

헌터들마다 스테이지의 내용이 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난이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모든 헌터들이 진행하는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승한과 같다면, 승한이 아는 비교적 수준이 낮은 헌터들은 이번 스테이지를 통과하기가 꽤나 어려울 것이다.

‘윤재 형 정도나 되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렵겠는데?’

좀비 거인들의 수준은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었지만, 수가 많고 장기적인 싸움으로 진행되었다. 만약 장기적인 싸움이 불가능한 헌터나 수가 많은 괴물들을 상대하기 어려운 능력을 가진 헌터라면 스테이지의 진행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한두 명이면 몰라도 절반 이상의 헌터들이 능력을 획득하지 못하면 다음 번 괴물들의 등장에 헌터들의 가치가 폭락하고, 피해가 커질 수도 있었다. 승한은 그 점이 우려되었다.

늦은 아침을 챙겨먹은 승한은 그대로 씻고, 밖으로 나섰다. 오전 중에 김현수 중령과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속은 윤재와 주희 역시 함께 자리를 가지기로 되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승한은 먼저 윤재, 주희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

“와 계셨네요?”

약속한 장소로 나가보니 카페에 윤재가 먼저 나와서 앉아있었다. 윤재는 항상 약속 시간에 삼십 분씩 일찍 나와 있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도 어김이 없었다.

“너도 일찍 왔네.”

“김현수 중령이 오기로 한 시간이 11시였죠?”

“그랬지. 아직 오십 분 정도 남았는데?”

김현수 중령과는 11시쯤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계약서를 작성하고, 점심을 먹기로 되어있었다. 주희는 아마도 11시에 딱 맞춰서 나올 것이다.

“그런데 왜 일찍 보자고 한 거야?”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좀 하려고요. 스테이지에 관련된 이야기도 하고 싶고요.”

“그거 때문이라면 말도 마라. 골치 아픈 게 걸렸어.”

윤재는 자신이 진행 중인 스테이지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윤재는 다른 누군가를 호위하거나 목적지로 가는 게 아닌, 어떤 물건은 모으는 미션을 진행한 모양이었다.

“별 이상한 장소에 다 숨겨져 있더라고. 총 일곱 개인데, 모으는데 애먹었어.”

승한은 윤재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르샤와의 만남과 좀비 거인으로부터 쫒기고 좀비 거인들이 합쳐서 만들어진 거인과 그 거인의 폭발까지, 세세한 하나하나를 모두 설명했다.

“……난이도가 좀 높은데?”

“그러게요. 좀비 거인도 수준이 그리 낮은 편도 아니고 말이죠. 힘 자체는 검은 거미와 비슷한데, 죽으면서 자폭하는 점을 생각하면 그보다 난이도가 더 높죠.”

“그런 놈들이 수백? 거의 네 시간 동안 끝없이 나왔다고?”

“네.”

“이거 내가 투정 부릴 게 아니었네. 내가 그런 스테이지를 진행했으면 그냥 실패였겠다. 하긴, 처음 거대한 뱀들과 싸웠다고 했을 때부터 난이도가 높긴 했지.”

윤재는 고민하더니 말했다.

“혹시 헌터마다 스테이지의 난이도의 차이가 있는 건 아닐까?”

“난이도 차이요?”

“그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적어도 내가 아는 헌터들 중에선 네가 최고야. 안석환도 그 점은 인정했고, 나나 너나 김현수 중령과 정부가 선택할 정도로 수준이 높은 편에 속하는 헌터고… 그런 너와 내가 고전할 정도면, 다른 헌터들은 그냥 실패한다고 봐야겠지.”

“역시… 그렇죠?”

“그래. 그런데 정작 너와 나만 놓고 봐도 난이도의 차이가 있는데, 다른 헌터들은? 만약에 이번 스테이지를 다른 헌터들이 통과하게 된다면, 헌터들마다 스테이지의 난이도 차이가 있다는 게 입증되는 것 아닐까?”

윤재의 말은 꽤 그럴듯했다.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수준이 낮은 헌터들까지 모두 스테이지를 통과한다면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대체 왜요? 스테이지의 난이도에서 차이가 날 이유가…….”

“기준이 없지는 않지. 능력의 레벨이나, 지금까지 획득한 타임 포인트 같은. 결국 우리들의 힘은 타임 포인트를 획득해서 올린 능력의 레벨 아니겠어?”

이 또한 가설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럼 결국 타임 포인트를 많이 획득한 헌터가 불리하다는 거네요.”

“뭐, 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

“어떻게요?”

“솔직한 말로, 다른 헌터들에 비해 승한이 네 능력은 사기성이 심하거든. 그 [광휘]라는 능력이나, [수호신]이라는 능력이나. 특히 [수호신]은 거의 밸런스 붕괴 수준 아니야?”

윤재의 말에 승한은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승한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자신의 능력은 다른 헌터들에 비해 사기적인 면이 많았으니까.

[강인함]과 [민첩함], [강화]까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광휘]는 괴물들을 상대할 때 엄청난 이점을 부여해주었다. [수호신]은 말 할 필요도 없이 말 그대로 ‘절대적인’ 방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능력의 레벨이 높을수록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획득하는 능력의 수준이 높아진다?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확인된 건 없었다. 하지만 그 가설이 진짜라면 승한은 앞으로도 다른 헌터들에 비해 점점 더 비약적으로 강해질 것이다.

물론, 스테이지를 무사히 통과한다는 전제 하겠지만 말이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뭐,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야. 그냥 단지 운 좋게 네가 사기적인 능력을 얻었을 수도 있고, 재수 없게 네가 너무 난이도가 높은 스테이지에 당첨된 것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것보다는 높은 난이도의 스테이지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게 가능성 있고 현실적이지 않냐?”

“그러네요.”

승한은 그 뒤로 윤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이 능력과 스테이지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밖에는 타임 포인트의 사용에 관한 이야기 등, 주로 헌터 일이나 능력에 관한 이야기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스테이지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주희가 도착하고 뒤이어 김현수 중령이 도착했다. 김현수 중령은 약속한 대로 정부와 헌터간의 용병 계약서를 꺼내 세 사람 앞에 내밀었다.

“기본적인 틀은 앞서 작성했던 계약서와 비슷합니다. 다른 게 있다면…….”

계약서 자체는 한 번 작성한 계약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승한은 다섯 장씩이나 되는 계약서를 꼼꼼이 읽다가 물었다.

“용병 계약을 하게 되면, 타 국가에도 지원을 가게 되는 겁니까?”

“네. 아무래도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는 괜찮지만, 동남아에는 헌터의 수가 부족하고 국력이 약한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국가의 경우, 각 나라에서 헌터들을 지원하기로 조항을 맺었습니다.”

“그 헌터들이 바로 용병 헌터들이다?”

“기본적으로 여유가 되는 용병 계약을 맺은 헌터 분들에게는 타 국가로의 지원 시 추가 보상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물론 그를 통해서 저희들도 보상을 약속 받았고요. 아마도 타국으로의 지원이 국내에서의 지원보다 더 크게 이루어 질 겁니다.”

현재 헌터 한 명의 가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주변에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총기류가 잘 통하지 않는 괴물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이윤이 남는 일이었다.

역시나 세상은 점점 헌터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괴물들의 등장에 무기를 지원해야 할 국가들이 자국의 헌터들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괴물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헌터들의 수준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고, 헌터들에 대한 기대치와 비중은 거욱 커질 것이다.

‘썩 좋은 일은 아니지만…….’

계약서에 큰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승한은 계약서에 싸인을 마쳤다. 윤재와 주희 모두 강동훈 소령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동훈 소령은 인근 식당에서 세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한과 윤재, 주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세 사람 모두 대학생이었는데, 헌터 일을 시작한 뒤로 학교는 잘 가지 않았다. 그나마 윤재가 학교에 가려고 나갔었는데, 당장 오늘 강동훈 소령과의 약속으로 학교를 결석했다.

‘당장 다음 주 부터는 바빠지겠네.’

스테이지를 완료하고, 이번 일요일 다시금 괴물들이 나타난다면 승한의 일은 훨씬 바빠질 것이다. 용병 계약을 통해서 국내에 나타난 괴물들을 모두 정리하고 국외에까지 지원을 나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능한 돈을 벌어둘 수 있을 때 벌어두는 게 좋긴 하겠지만 자라온 나라를 떠나서 괴물들과 싸워야 한다니 싱숭생숭했다. 그렇게 승한이 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띠리리리리-.

“누구지?”

모르는 번호였다. 친구들도 아니었고, 강동훈 소령이나 김현수 중령도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정부나 군대 쪽에서 다른 번호로 연락이 온 것일 수도 있으니 승한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김승한씨 되십니까?

통화음 너머로 조금 어눌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억양이 보통 한국인 같지는 않았고, 한국어가 유창한 외국인처럼 들렸다.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주한미군에 모거스 대령이라고 합니다. 잠시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

잠시 후, 승한의 집 앞으로 번쩍이는 차 한 대가 나타났다. 직접 집 앞으로 찾아오겠다던 모거스 대령의 차는 흔히 볼 수 없는 이름 모를 고급스러운 외제차였다.

“타십시오, 미스터 김.”

“……모거스 대령님이십니까?”

“맞습니다.”

군복을 입은 말끔한 백인 남성은 의외로 젊었다. 대령쯤 되면 나이가 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김현수 중령보다도 젊어보였다.

일단 기다리기는 했지만 승한은 그를 경계했다. 자신의 번호를 어떻게 알아낸 건지, 그리고 무슨 용건인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당신을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무엇보다 미스터 김은 저희가 어찌할 수 있는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는 미스터 김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 말이 맞았다. 아무리 군인이라고 해도 승한은 헌터였다. 그것도 헌터들 중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실력자. 설사 총을 들이민다 하더라도 [수호신]이 있다면 방어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승한은 조금 경계를 누그러뜨린 채 모거스 대령이 타고 있는 차의 뒷좌석에 앉았다. 잠깐 정도 대화를 나누는 정도야 어렵지 않았다. 해를 가하려 한다면 역으로 돌려주면 되는 일이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신이 있기에 승한은 경계하지 않고 차에 탈 수 있었다.

앞에서는 다른 군인이 차를 운전하고 있었고, 조수석에도 마찬가지로 한 명의 군인이 타고 있었다. 승한이 모거스 대령의 옆자리에 앉자, 차가 다시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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