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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섯번째 꿈
스테이지 속에서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일까? 승한은 잠에서 깨어나고 나서 다시 한 번 더 잠을 청했다. 도통 자고 일어난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오래간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시간이 벌써 11시였다. 항상 아침을 챙겨먹던 승한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기상시간이었다.
‘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 되는군.’
방문에 붙어있는 강의 시간표를 보니 목요일에는 오후 강의만 있는 날이었다. 문득 학교나 갈까 하는 생각과 함께 모거스 대령의 제안이 떠올랐다.
‘일단 가족들과 상의를 해 봐야 하나?’
이미 누나인 승아와 어머니는 출근한 상태였다. 어머니나 승아나 모두 자기 일로 바쁘게 살고 있었다. 특히 승아는 승한과는 달리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회사에 취직해서 요즘 바쁜 상태였다.
거실로 나온 승한은 TV를 켜고 냉장고를 열었다. 아침을 걸렀으니 조금 이른 점심이라도 챙겨 먹을 생각이었다. 평소 집에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식당 쪽에서 아르바이트도 자주 하고, 혼자서 밥을 차려먹은 적이 많아서 요리는 그런대로 잘 하는 편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살피던 승한은 참치 통조림을 발견하고는 김치볶음밥을 하기로 결정했다. 능숙하게 양파를 썰던 승한의 눈길이 TV속으로 향했다.
“또 괴물들 이야기네.”
TV뉴스에서는 온통 괴물들과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했다. 정부 정책도 온통 괴물의 등장에 관한 방안이었고, 어느 연예인이 괴물들에게 죽은 이야기도 화제거리였다.
탁탁탁탁-.
조금만 식칼에 힘을 주자 금방 양파가 썰려 나갔다. 너무 오래 써서 날이 무뎌진 식칼이었지만, [강화]를 사용하자 어느 명검도 부럽지 않을 만큼 예리해졌다.
기름을 넣고 달군 후라이펜에 김치와 양파를 넣고 볶았다. 조금 뒤에 설탕과 참치를 넣고 볶다가 밥을 넣자, 그런대로 먹을만한 김치볶음밥이 만들어졌다.
승한은 식탁에서 혼자 수저를 들고 계속해서 뉴스를 시청했다. 막 한 입을 뜨려는 순간, 다음 보도가 이어졌다.
-각국 정부에서 타국의 헌터들을 빼돌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던 일들이 중국 정부에서 한국의 헌터를 빼돌리려다가 적발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른…….
승한은 잠시 멈칫하더니 수저를 내려놓았다. 남 일 같지 않은 기사였다.
‘미국이 아니라 중국도 난리인가 보군. 아니, 아마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
헌터들을 빼돌리는 일은 꼭 미국에서만 계획 중인 일이 아니었다. 국력이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대적으로 계획하고 실행중인 일종의 프로젝트였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자국의 헌터들의 관리에 주의를 기울일 전망입니다. 이는 한국 정부뿐만이 아닌, 타국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상으로…….
“주의를 기울여?”
승한은 뉴스를 보며 턱을 괴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일지는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없는 말을 지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정부의 고위 관계자와의 인터뷰가 있었다는 뜻. 그렇다면 신빙성이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일단 정부의 리액션을 먼저 봐야 하나?’
고민하던 일들이 뒤로 밀어졌다. 승한은 생각을 멈추고 다시 볶음밥을 입 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때.
-다음 뉴스입니다. 괴물의 사체를 이용한 에너지 가공 기술이 개발되어 화제를…….
“뭐?”
승한이 수저를 떨어뜨렸다. 깜짝 놀랄 만한 기사 때문이었다.
띠리리리리-.
그리고 그 때, 승한의 스마트폰을 통해 누군가의 전화가 걸려왔다.
**
괴물의 사체를 이용한 에너지원의 개발은 화안기업에서 이루어졌다. 다른 기업들 역시 괴물의 사체가 새로운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그것을 이용한 기술의 개발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화안기업이 개발한 기술은 괴물의 에너지를 원자력과 석유 등의 에너지원의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괴물의 에너지를 여러 형태의 에너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것은 애초에 헌터라는 특정한 능력자의 도움이 있었기에 개발할 수 있었던 기술이라,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기업은 한정되어 있었다.
헌터를 보유하지 못한 기업은 기술의 개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기술의 개발 방법을 눈치 챈 기업에서는 에너지를 변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헌터를 수소문했지만, 그러한 능력을 가진 헌터는 많지 않았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기술이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괴물의 수가 무한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석유도 마찬가지였지만 문제는 괴물의 사체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고, 그 사체를 관리하는 게 정부라는 것이다.
괴물의 사체가 돈이 된다! 그것은 즉, 헌터들의 가치가 다시 한 번 뛰어 오르는 일이었다. 괴물의 사체를 관리하는 정부는 기업에게 괴물의 사체를 팔아 돈을 빨아들일 구멍을 얻은 셈이었다.
“괴물의 사체를 다른 에너지로 바꾼다라… 것 참 신기한 기술이군.”
대통령은 화안기업이 발명해낸 기술에 대해 듣고는 감탄을 터뜨렸다. 그의 앞에는 괴물의 주 에너지원이라는 핵이 담겨있는 투명한 상자가 놓여져 있었다.
“이게 그 괴물의 에너지원입니까?”
“네. 물질의 에너지를 변형시키는 어느 헌터의 능력을 이용해 에너지 사용법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현대 기술로 그 방법을 거의 재현해 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이 핵 하나의 가치는 어느 정도입니까?”
“지금 당장 시장에서의 가치는 3천만 원 정도로 측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기술이 활성화 되고 다른 기업에서도 기술을 재현해 낸다면, 약 2천만 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여러 기술자들이 매달려 분석해 낸 결과였다. 오차는 조금 있을지 몰라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었다.
“3천만 원이라… 어마어마하군요.”
“네. 이 작은 핵 하나에서 뽑아낼 수 있는 에너지가 상당한 모양입니다. 화력 에너지로 변형시키면 이 작은 핵 하나로 어마어마한 열을 낼 수도 있고, 자동차를 만들면 족히 십 년 동안 달려도 멈추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대단하군요. 이 작은 구슬이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니…….”
화안기업에서 개발한 기술도 대단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기술의 근간은 헌터의 능력이었다. 물론 그 능력을 대체할 기술도 현재 완성 단계에 가깝게 만들어져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헌터의 능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런 기술이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헌터들이 더더욱 중요해 지겠어요.”
“네. 괴물의 사체가 돈이 된다는 게 밝혀진 이상, 그들의 가치는 이전보다 몇 배는 뛰어올랐습니다. 강력한 화기나 미사일로 자칫 핵이 날아가기라도 한다면 그만큼 손해니까요.”
“자국의 헌터에게 접근한 국가가 어디 있습니까?”
“현재로서는 중국과 일본, 미국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산유국의 재벌들이 따로 헌터들에게 접근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접촉한 헌터는요?”
“안양 지역의 안석환, 김승한, 김윤재 헌터, 서울 지역의 김창윤, 이소라 헌터입니다. 그밖에 다른 헌터들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확실히 안양 지역에 우수한 헌터가 많군요.”
총리가 말한 헌터들은 정부에서 따로 신경을 쓰고 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헌터들이었다. 이들 모두에게는 정부가 특별히 용병 계약을 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긴, 그만큼 실력이 뛰어나니 타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접근을 했을 터였다.
헌터들의 가치가 폭등할 게 뻔한데, 우수한 헌터들을 뻔히 가로채려는 타국의 수에 당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래도 그들과는 따로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군요.”
**
승한의 집 근처에서 가까운 카페는 괴물이 나타났을 때에도 꾸준히 문을 열어온 곳이었다. 커피 맛이 괜찮고 분위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는데, 근래 들어서는 손님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승한은 먼저 준비를 마치고 카페에 나와있었다. 커피를 절반쯤 마셨을 때, 카페 문을 열고 약속한 사람이 나타났다.
“형, 여기요.”
카페 안으로 들어온 윤재가 승한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간단한 복장을 입고 나온 윤재는 커피를 주문하고는 바로 승한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이에요? 형이 먼저 만나자고 다 하고.”
윤재를 먼저 찾는 쪽은 늘 승한이었다. 윤재는 누군가에게 먼저 잘 연락을 하는 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만남을 주선한 사람은 늘 승한이었는데, 윤재가 먼저 둘이서 만나자고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뭔데요?”
“혹시 너도 모거스 대령이라고 만난 적 있어?”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승한의 표정이 굳었다. 혹시나 했는데 윤재에게도 모거스 대령이 접근한 모양이었다.
“형도요?”
“역시. 하긴, 나에게 접근했는데 너에게 접근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지 윤재는 놀라지 않았다. 따뜻한 커피가 나오자 머그잔에 차가운 손을 식히며 윤재가 말을 이었다.
“이야기 다 들었으면 설명할 필요 없겠네. 어떻게 할 거냐?”
“……글쎄요.”
“너도 고민 많이 했을 텐데. 미국으로 갈 생각이냐? 아니면 아직 갈등 중?”
“아직 갈등 중이에요. 정부의 리액션을 먼저 보고, 그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서요.”
승한의 대답에 윤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는 미국으로 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한국에 남으려고요?”
“그래.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미국에 가면, 내 빈자리 때문에 죽게 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는데… 먹고살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뭐하러 거길 가?”
“……그래요?”
예상하지 못한 반응은 아니었다. 윤재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의 목숨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헌터라는 능력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웅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 승한은 그런 점 때문에 윤재라는 사람에게 끌렸다.
“뭐, 너에게 그런 선택을 강요할 건 아니지만… 그냥 만나서 네가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듣고싶었어. 모거스 대령이 정말 너에게 접근한 게 맞는지도 확인하고 싶었고.”
“주희는요?”
“연락 해봤는데 주희에게는 접근 안 한 것 같더라. 뭐, 우리 둘에게 접근하고 그 다음에 주희에게 접근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아직은 아니야.”
윤재는 커피를 후후 불어 마셨다. 그러곤 승한을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가능하면 너도 안 갔으면 좋겠다.”
“생각… 해볼게요.”
승한은 윤재의 말에 머리를 긁었다. 윤재가 자신을 아끼고 친하게 생각하고는 있다지만 그 한 명 때문에 선택에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승한은 윤재와는 달리 성인군자의 그릇은 아니었다.
“참, 넌 어떻게 됐냐?”
분위기를 바꿔보려는지 윤재가 물었다. 승한은 윤재가 무엇을 물어보는지 바로 알아차리고는 대답했다.
“이제 막 6.3스테이지는 통과했어요. 그런데 다음 단계에 대체 뭐가 나올지…….”
“잠깐, 잠깐. 무슨 소리야?”
윤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너 혹시 아직 스테이지가 안 끝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