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72화 (7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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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섯번째 꿈

“네?”

무슨 소린가 싶어 승한이 되물었다. 그러다가 그 의미를 깨닫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혹시… 벌써 스테이지가 끝났어요?”

“응. 난 너도 끝난 줄 알았는데?”

“전 아직 남아있어요.”

윤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인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놀람은 승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럼 혹시 새로운 능력도 얻었어요?”

“그래. 어찌어찌 통과는 했어.”

“무슨 능력이에요?”

윤재가 5스테이지를 통과하고 얻은 능력이 주작이었고, 4스테이지를 통과하고 얻은 능력이 바로 여우비였다. 두 가지 능력 모두 대단한 능력이었던 만큼, 6스테이지의 능력도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윤재는 그런 승한의 기대를 산산이 깨뜨렸다. 윤재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나중에 알려줄게.”

“네? 왜요?”

“넌 아직 능력을 못 얻었다며? 나중에 너도 능력을 얻고 나면 같이 공개하는 게 더 재밌지 않겠어?”

“저도 나중에…….”

“지금 나만 먼저 알려주기는 싫어서. 이해해라.”

승한은 한숨을 푹 내쉬며 치사하다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윤재가 능력을 얻었다는 것으로 한 가지 확실해진 게 있었다.

“이번 스테이지는 시작도 그렇고, 진행까지도 다 다른가 보네요.”

“그래. 아무래도 스테이지 종료 날짜는 헌터 개개인마다 다른 모양이다. 생각도 못했는데…….”

지금까지는 모든 헌터들이 같은 날, 비슷한 틀의 스테이지를 해결해왔다. 4스테이지까지는 하나의 스테이지로 이루어져 있었고, 5스테이지는 두 개의 스테이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스테이지는 하루에 한 번씩, 여러 단계로 나누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헌터들 간에 스테이지 완료 날짜도 달랐다. 아무래도 헌터 개개인에 맞춰서 스테이지가 변화하는 모양이었다.

‘설마 나 혼자 스테이지가 안 끝난 건 아니겠지?’

**

승한은 윤재와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지고 학교를 찾았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근처에 보이던 택시를 타고 학교 언덕을 올라갔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다. 학자금에 생활비에, 혼자 전부 벌어서 사용하려던 승한은 한 푼이 아쉬웠다. 택시는 거녕,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기 일쑤였다.

‘이제는 차를 사도 될 정도니.’

계약금 1억에 성과급 1억, 괴물들을 처리하고 얻은 추가 성과급이 2억이 조금 넘었다. 총 4억에 달하는 돈이 승한의 통장에 입금되어 있었다.

고작 한 주만으로 벌어들인 돈이었다. 아마도 다음 번에는 이 배 정도 되는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택시비가 아까운 게 아니라 값비싼 외제차라도 끌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인생 역전인가?’

승한은 피식 웃으며 학과로 올라갔다. 오후 수업이 끝났는지 학과는 꽤나 시끌벅적했다. 학과에 도착해서 승한을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바로 학준이었다.

“어! 승한이냐?”

“오랜만인 것 같다?”

“웬일이냐? 요즘 학교도 잘 안 나오더니. 농구 하자고 해도 안 나왔잖아?”

“농구는 무슨.”

학준은 친한 동기들끼리 있는 대화방에 종종 농구나 게임방에 가자고 연락을 하곤 했다. 승한은 학준과 개인적인 연락보다는 동기들끼이 있는 대화방을 주로 이용해서 연락을 하곤 했는데, 그 대화방에서 매일 모임을 나가지 않겠다고 답하는 바람에 통 만날 일도, 따로 연락 할 일도 없었다.

“얼마 전에 애들이랑 고기 먹으러 갔었는데 너 없더라? 알바 그만 뒀어?”

“그렇게 됐지.”

“왜? 집에 무슨 일 있냐?”

학준이 조금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항상 조금씩 장난 끼가 보이는 그였지만, 예전부터 승한이 고민이 있으면 자주 상담을 해주거나 하던 그였다.

“나, 헌터 됐다.”

“……뭐?”

“헌터 됐다고. 아마 이제 학교 안 나올 것 같다.”

어깨를 으쓱이며 별 일 아닌 것처럼 하는 말에 학준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는 잠시 얼떨떨해 하더니 승한의 팔을 잡고 바로 아래층으로 끌고갔다.

“야, 자세히 좀 말해 봐.”

“자세히 말할 게 없어.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능력을 얻었고, 요즘 TV에서 떠들썩한 헌터가 된 거지. 그냥 운이 좋았어. 그게 다야.”

“운이 좋아? 그럼 너도 그 괴물들이랑 싸우고 그래? 그 덩치 큰 거미들이랑?”

“거미들이랑도 싸우고… 아마 다음번엔 또 다른 녀석들이랑 싸우겠지.”

어깨를 으쓱이며 승한이 가볍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애들 얼굴이나 볼 겸, 휴학계 내려 왔다.”

“휴… 내 주위에 헌터가 한 명쯤 없나 하긴 했는데, 설마 네가 헌터일 줄이야. 세상도 참 말세다. 너 같은 녀석이 헌터라니…….”

“나 같은 녀석이 어떤 녀석인데?”

“멋진 녀석. 나중에 나 죽을 거 같으면 살려 줘야 된다. 알았냐?”

생각보다 학준의 반응은 크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겉보기와는 달리 속이 깊은 녀석이니 이런 반응이 승한이 더 편할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리라.

“당연하지.”

“요즘 TV에서 헌터들이 해외로 뜨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설마 넌 아니지?”

반달 모양으로 장난스럽게 눈을 그리며 묻는 학준에게 승한은 바로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당연히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학준은 승한을 더욱 째려봤다.

“설마, 너?”

“설마는 무슨 놈의 설마.”

승한은 결국 피식 웃었다.

“아니야.”

**

승한은 학교에서 친한 동기들을 몇 명 만났다. 같은 학번 때부터 친하게 지내오고 같은 년도에 군대를 다녀온 친구는 학준을 비롯해 꼭 셋뿐이었고, 그밖에는 김도의 조교가 한 명 있었다.

학과장에게 헌터 일로 인해 학교를 휴학해야겠다고 말하자 난리가 났다. 생각보다 헌터라는 직업이 가지는 사회적 인지도가 대단한 모양이었다. 지금껏 승한을 있는 듯 마는 듯 여기던 학과장이 호들갑을 떨며 심지어 학교 밖까지 직접 마중을 나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김도의 조교는 승한에게 밥을 사주겠다며 나섰다. 김도의 조교와 학준을 비롯해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저녁과 함께 간단하게 술을 마신 승한은 알딸딸한 상태로 집으로 들어왔다.

“승한아, 너 술 마셨어?”

집으로 돌아온 승한을 누나인 승아가 맞았다. 승한은 겉옷을 벗어 벽에 걸어놓으며 대답했다.

“조금.”

“웬 일로?”

“……누나가 물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감자칩 하나에 캔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는 승아의 모습은 술 마시고 들어왔냐는 질문을 하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승아는 캔 맥주를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나야 자주 마시잖아.”

“나가서 친구들이랑 마셔.”

“그러다 취하면 또 마중 나오려고? 그리고 난 이렇게 혼자 마시는 게 좋더라. TV도 한가롭게 보면서.”

“저녁은? 먹었어?”

“시간이 몇 신데, 당연하지. 아, 혹시 배고프면 엄마가 갈비찜 해 놨어. 먹어.”

“됐어. 먹고 왔어.”

승한은 화장실에서 양치를 한 후, 바로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식사와 함께 간단하게 한 잔 한 것뿐이지만 술기운이 올라서 조금 알딸딸했다. 원래 술이 그리 강한 편도 아니었고, 근래 들어 일이 많아서 술을 거의 끊다시피 하기도 했다.

‘헌터가 되도, 술은 안 세지네.’

실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놀다 보니 역시 즐거웠다.

‘그래, 역시…….’

가지 말자.

승한은 결정을 내렸다. 미국행이 좋기야 하겠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왕창 벌 수 있다고 해도 돈이야 한국에서도 벌 수 있었다. 한국에 있는 다른 사람들, 자신의 공백으로 피해를 입게 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남겨두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나기엔 어깨가 무거웠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돈은 얼마를 버느냐보다는 어떻게 버는가가 중요한 거라고.

적어도 승한은 더 큰 욕심을 위해 떳떳하지 못할 생각은 없었다.

“후련하네.”

승한은 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결정을 마쳐서 그런지 잠이 스르륵 잘도 쏟아졌다.

**

다시 스테이지를 시작하고 처음 눈에 보인 모습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르샤였다. 어떤 감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지 그 자리에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가렝과 자칼은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기쁜 얼굴로 나르샤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나르샤가 죽지 않았다는데 감동한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나르샤는 정신없이 연거푸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다리가 풀려서 떨리는 걸 보면 아무래도 긴장이 풀려 힘이 없는 모양이었다.

[스테이지 6.4]

달성 조건 : 마족 나르샤를 데리고 아포피스의 몸 밖으로 탈출해라.

제한시간 : 2시간

남은시간 : 2시간

보상 : ??

승한은 새로운 스테이지가 생겨나자 눈을 번쩍 떴다. 스테이지의 내용과 함께, 제한시간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다음 스테이지가 없다!’

지금까지는 스테이지의 보상이 다음 스테이지로의 이동이었다. 헌데 이번 보상은 ‘??’로 표시되어 있었다. 즉, 다음 능력을 획득할 수 있는 스테이지라는 뜻이었다.

스테이지의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2시간 안에 아포피스의 몸속에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워낙에 몸이 기다란 아포피스였지만 승한이 작정하고 나르샤를 업고 뛴다면 삼십 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그리 어렵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 쉬우니 또 이상하게 느껴졌다.

5스테이지만 해도 마지막 순간, 승한이 자칫 방심하고 공녀 은가람을 배신자 위진에게 넘겼으면 그대로 스테이지가 끝날 뻔했다. 승한은 분명 이번 스테이지도 그런 굴곡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네, 네?”

“어서 여길 빠져 나가야 합니다.”

승한의 말에 나르샤가 고개를 들었다. 자칼과 가렝도 이상한 눈으로 승한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소리지?”

“설명 할 시간 없어. 어서!”

승한은 나르샤를 들어 업었다. 힘없이 쓰러져 있던 그녀를 업고 승한은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바로 뒤에서는 타오르기 시작한 성화가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자칼과 가렝은 승한의 뒤를 쫒아 달리기 시작했다. 승한의 움직임은 그 둘이 간신히 쫒아올 만큼 빨랐다.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승한의 옆으로 바짝 쫒아온 자칼이 물었다. 이전같았으면 바로 손톱을 꺼내들고 덤벼들었을 자칼과 가렝이었지만, [광휘]를 이용해 성화를 되살려 나르샤를 구한 순간부터 이미 그 둘은 승한에 대한 신뢰도가 쌓인 상태였다.

“자세히 설명은 못하겠군.”

“설명을 못하겠다니?”

“그냥…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늦기 전에 이곳을 나가야 돼.”

애매모호한 대답에 자칼이 무슨 소린가 싶어 나르샤를 바라봤다. 나르샤는 아직 눈가에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채로 승한의 등에 손을 얹었다.

“이 분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어요.”

“……의심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하지만 이분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런 걸 거예요. 이제 믿을 수 있어요.”

목숨을 구해준 빚이 그만큼 큰 걸까? 나르샤와 자칼, 가렝은 완전히 승한을 믿고있었다. 괜히 반발하며 시간을 끄는 것보다는 나아서 다행이긴 했다.

구구구구구-.

그 때, 동굴이 흔들리며 천장이 무너졌다. 아니, 정확히는 아포피스의 몸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무너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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