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73화 (7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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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섯번째 꿈

승한은 동굴이 흔들린다는 생각에 더욱 속도를 가했다. 간신히 쫒아오고 있던 자칼과 가렝은 승한이 더욱 속도를 내자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였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지?”

“아무래도 성화가 원래의 모습을 찾으며 아포피스가 움직이는 것 같아요. 아마도 다시 봉인되지 않기 위한 아포피스의 몸부림이겠죠.”

승한의 중얼거림에 업혀있던 나르샤가 대답했다. 하긴, 그 자그마한 성화를 매개체로 하고 있었다면 봉인이 반쯤 풀렸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속도면 금방 탈출하겠군.’

천장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무너질 것 같다는 느낌이라도 들면 모르겠는데 아무런 일도 없으니 오히려 더 불안감만 고조되었다.

‘뭘 놓치고 있는 거지?’

그렇게 나르샤를 업고 동굴 밖으로 나가던 순간이었다.

파악-.

쨍-!

옆구리에서 찔러온 날카로운 금속의 느낌에 승한이 황급히 방패를 틀어 방어했다. 두 개의 금속이 부딪히며 불똥을 튀었고, 승한은 잠시 다리를 멈추고 옆으로 물러났다.

“잽싸긴 하군.”

승한은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보며 눈을 찡그렸다. 살아남아 있던 마족이 있었나 싶었는데, 전혀 다르게 생긴 녀석이었다.

“이건 또 무슨 검둥이지?”

승한의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검은 물체는 사람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마치 검은 점액질이 깔끔하게 뭉쳐서 기본적인 사람의 형태를 갖춘 것처럼 얼굴이 없고, 팔은 손 대신에 시커먼 송곳으로 되어있었다.

꼭 인형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우스꽝스럽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승한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존재보다 그가 위험하다고 느껴졌다.

-성화를 피운 게 너냐?

등 뒤에 업혀 있는 나르샤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자칼과 가렝 역시 마찬가지였다.

승한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이 검은 인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이 거대한 동굴, 아니 아포피스라는 거대한 뱀과 같은 악마가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포피스인가?”

-물었다, 인간. 정말 성화를 피운 게 네놈이냐?

꿀꺽-.

헛것이 들린 게 아닐까 했지만 역시 아니었다. 그들에게 질문을 던진 건 아포피스였다. 이 거대한 동굴을 울리는 목소리가 바로 그 증거였다.

승한은 날카로운 송곳으로 만들어진 팔을 들어 올리는 검은 인영을 바라봤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지만 그것은 바로 아포피스의 분신이었다.

“……맞다.”

-어떻게 인간이 성화를… 아니, 성화의 빛을 가지고 있던 거지? 그 힘을 누구에게 받았나? 그 녀석을 만나기라도 한 건가?

“나도 몰라. 자고 일어나니까 고맙게도 누가 이 힘을 주더라고. 그런데 넌 이 힘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거짓말 하지 마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동굴이 크게 흔들렸다. 온 몸을 짓누르는 힘에 승한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서둘러 힘을 끌어올렸다.

“……설마 봉인이 풀린 겁니까?”

“아니요. 풀렸던 봉인이 다시 강해지고 있어요. 지금은… 봉인이 강해지면서, 아포피스가 발악을 하는 것에 불과해요.”

“결론은 봉인은 아직 그대로다?”

“네. 확실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저희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가 없죠.”

-잘 아는군. 정말이지 짜증나는 종족이야.

목소리가 떨릴 때마다 나르샤는 깜짝깜짝 놀랐다. 입술을 깨물던 나르샤가 아포피스의 분신인 검은 인영을 노려봤다.

“어차피 봉인된 것, 이만 조용히 사라져 주세요. 당신은 아직 만 년은 더 봉인되어 있어야 해요.”

-재수 없는 마족들의 이기적인 생각은 여전하군. 너희들이 우리로 인해 탄생되었음을 모르는 건가?

“마족은 악마로 인해 파생되고, 천족은 천사들로 인해 파생되었다. 그 말을 믿으라고요?”

-악(惡)을 근간으로 하는 악마, 그리고 마족. 성(聖)을 근간으로 하는 천사, 그리고 천족. 이들 사이를 갈라놓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그리고 너희 마족들은 바로 이 어미를 봉인시킨 역천(逆天)을 저지르고 있음에, 당장 저 빌어먹을 성화를 꺼뜨리고 나를 해방하라-!

아포피스의 음성이 나르샤를 노렸다. 그녀는 몸을 파르르 떨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승한은 [광휘]를 이끌어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화악-.

[광휘]는 이전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단 1레벨 차이일 뿐이었지만 8레벨과 9레벨 사이에는 꽤나 큰 차이가 있었다. [광휘]의 빛에 직접 노출된 검은 인영이 흔들렸다.

“네놈이 엄마든 아빠든 그건 필요 없고, 그만 떠들고 좀 비켰으면 좋겠는데. 갈 길이 바쁘거든.”

-성화를 가진 인간아, 내가 왜 봉인될 것을 알면서도 네 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하느냐?

“……날 죽이려고?”

-잘 아는구나.

승한은 긴장했다. 어쩐지 너무 쉽다고 했더니, 넘어야 할 산이 꽤나 높았다.

아무리 봉인되기 직전의 상태라 해도 상대는 아포피스의 악마였다.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태양신과 싸우는 대적 악마인 그에게서 살아남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구구구구구-.

다시 한 번 아포피스의 몸뚱이가 흔들렸다. 조각조각 부서진 돌멩이 같은 부스러기는 승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승한의 몸에서 [광휘]의 빛이 강해져 사방을 밝혔다. 승한은 나르샤를 자칼과 가렝에게 맡기고 아포피스의 분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악-.

아포피스의 분신은 승한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하고 목이 베어졌다. 살아있는 생물이 아닌 찰흙을 벤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런 반응도 없고, 너무 쉽게 베어졌다. 승한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푸욱-.

그리고 그 순간, 승한의 눈에 나르샤를 껴안고 머리가 꿰뚫리는 가렝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사이, 아포피스의 다른 분신이 나타나 나르샤를 노린 것이다.

“젠장!”

승한은 서둘러 나르샤의 옆으로 다가갔다. 자칼이 손톱을 휘둘러 아포피스의 분신을 공격했다. 역시나 찰흙처럼 흩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촤악, 촤아악-.

그 순간, 사방에서 수많은 검은 인영이 솟아올랐다. 아포피스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은영은 표정도 없고, 형태도 모호했다. 승한은 나르샤 대신 죽어서 쓰러진 가렝의 시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몇 마리나 되는 거야?”

승한은 사방을 둘러싼 검은 인영들을 보며 검과 방패를 들었다. 천장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계속해서 흔들렸고, 자칼은 가렝의 시신을 잠시 힐끔거리다 나르샤의 옆을 지키고 섰다.

‘그리 강하지는 않아. 저 손에 있는 송곳 같은 것만 조심하면… 문제는 나르샤를 지켜야 한다는 건데.’

혼자서 탈출하려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승한은 [귀신]을 이용해 허공을 미끄러지듯 지나갈 수 있었고, 눈앞에 가득한 검은 인영들은 충분히 방패로 밀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르샤를 지켜야 한다는 것. 수가 많은 만큼 눈먼 송곳에라도 잘못 찔리게 되면 나르샤는 죽게 될 것이고, 스테이지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도… 방법이 없겠지.’

천장을 뚫고 갈 수도 없고, 어차피 눈앞에 있는 아포피스의 분신들을 뚫어낼 수밖엔 없었다. 승한은 나르샤의 몸을 어깨에 들처 업었다.

“꽉 잡으십시오. 자칼, 너도 잘 따라와라.”

“……알았다.”

피잇-.

승한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귀신]을 이용해 허공을 밟고, 아포피스의 분신들 사이를 단숨에 빠져나갔다.

아포피스의 분신들은 그 수가 끝이 없었다. 아포피스의 몸속에는 이미 끝없이 아포피스의 분신들이 흩어져 있었다. 수천은 물론, 수만 마리는 훨씬 넘어보였다.

자칼은 승한을 잡고자 높이 뛰어올라 아포피스의 분신들을 밟고, 벽을 타고 달렸다. 아포피스의 분신들은 승한과 자칼을 잡고자 높이 뛰어올랐다.

사아아악-.

꾸르르륵-.

승한의 검이 아포피스의 분신들을 베고 지나갔다. 승한은 방패로 밀어내며 부딪혀서 멈추기보다는, 가로막는 분신들을 베어내고 길을 트는 것을 선택했다.

허공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점 덕분에 승한은 분신들로부터 큰 제약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땅에 있는 분신들이 아니었다.

촤아악-.

승한의 얼굴을 얇게 베며 송곳니가 지나갔다. 승한은 눈을 부릅뜨며 바로 옆에 있는 분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악-.

몸이 반으로 베어지며 분신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승한은 다리를 계속해서 움직이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땅이 아니라 천장에서도 나오는 건가?’

아포피스의 분신은 사방에서 나타났다. 녀석들은 바닥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천장과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벽에서도 나타나 승한과 나르샤를 노렸다.

하나 다행이라면 나르샤보다는 승한의 목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포피스의 목적은 승한의 목이었다. 나르샤가 성화의 불을 밝힐 수 있는 마족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목도 노리고는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아포피스를 봉인하는 성화를 밝힌 사람이 바로 승한이었다.

‘나르샤를 노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승한은 자신을 노리는 이상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승한은 [수호신]으로 보호받고 있었지만 나르샤는 송곳니에 잘못 찔리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자칼이 나르샤를 지켜줄 것이다. 가렝이 나르샤를 구했듯이, 자칼 역시 나르샤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것이다. 나르샤와는 달리 승한은 가렝이나 자칼이 어떻게 되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자칼, 뒤!”

사악-.

쩡-!

승한의 외침에 자칼이 뒤쪽에서 날아오던 송곳니를 손으로 쳐냈다. 손에 작은 상처가 생기며 자칼이 신음을 흘렸다.

“큭.”

충격 때문에 자칼에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수많은 검은 인영들이 일제히 송곳니를 들고 자칼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칼!”

나르샤가 깜짝 놀라 자칼의 이름을 불렀지만, 승한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여기서 시간을 끌고 자칼을 구하러 가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많았다.

당연히 자칼을 구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르샤는 승한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자 깜짝 놀랐다. 나르샤가 승한의 어깨 세게 잡았다.

“어디 가는 거예요! 지금 자칼이…….”

“돌아갈 시간 없습니다.”

승한은 나르샤의 외침을 매몰차게 무시했다. 하지만 나르샤는 아직까지 자칼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뒤를 돌아봤다.

푸부부북-.

그 순간, 나르샤의 눈에 아포피스의 분신들에게 몸이 꿰뚫리는 자칼의 모습이 들어왔다. 나르샤는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자칼, 가렝…….”

“어쩔 수 없습니다.”

승한은 최대한 매몰차게 말했다. 지금 당장 나르샤를 달랠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었다.

“구할 수 있었잖아요?”

“그러다 나르샤님이 잘못 되면요?”

“하지만…….”

“나르샤님.”

사악-.

승한은 눈앞에 있는 분신 하나를 베며 말했다.

“전, 나르샤님만 무사하면 됩니다.”

“네?”

“자칼과 가렝도 나르샤님을 지키려다 죽은 겁니다. 나르샤님이 잘못 되면, 그 둘이 죽은 의미가 없습니다.”

승한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말이 술술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자칼을 구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르샤도 느끼는 게 있었는지 입을 다물고 승한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가렝이 죽고, 자칼도 죽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부터 한 평생 함께 옆에 있던 둘이원래 죽었어야 할 자신을 대신해서 죽었다.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고, 기력이 없이 몸이 축 늘어졌다.

-설마 이게 끝이라고 생각한 거냐?

아포피스의 목소리가 울린 그 순간, 승한의 눈앞으로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한 인간이 나타났다.

============================ 작품 후기 ============================

4월 1일이 되었습니다.

전업을 생각하고 학교를 휴학한지도 벌써 몇 달이 됐네요. 더 플레이어 연재 시작 7월 22일부터 오늘까지, 8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쉼없이 달려왔습니다.

독자님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4월 이후로 한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원고료 쿠폰 베스트 진입입니다.

노블레스를 연재하는 작가들에게 있어서 조회수 못지 않은 수익이 쿠폰이고, 전업을 생각하는 이상 여러분께 쿠폰을 바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 2편씩 쉼없이 달려왔고, 어느 분들에게는 부족할지 몰라도 많은 분들에 비해 성실하게 달려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염치 불구하고 말씀드립니다.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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