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87화 (87/223)

0087 / 0223 ----------------------------------------------

15. 마족

그 나르샤가?

살았다며 눈물 흘리고,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던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승한은 설마 하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야.’

외뿔 마족이 말한 나르샤는 승한이 아는 나르샤와는 전혀 달랐다. 어쩌면 이름만 같은 다른 마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거나.’

6스테이지가 끝나고 이틀 정도가 지났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 사이 나르샤의 생각이 반대로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승한이 있는 이 세계와 나르샤가 있는 세계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승한은 머리가 복잡해져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나르샤가 날 죽이라고 명령했다는 소리군.”

“그래. 그걸 위해서 내가 여기로 온 거고 말이야.”

“그럼 다른 마족들은 여기 왜 온 거지? 나 하나 잡겠다고 이 많은 마족들을 데리고 온 건가?”

“글쎄, 그것까지 네가 알 필요가 있을까? 쓸데없이 너무 이야기가 길어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외뿔 마족은 더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애초에 나르샤와 관련된 이야기만 아니었으면 외뿔 마족은 승한과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쉽네. 제일 중요한 이야기였는데.’

괴물들이 이 세상을 습격한 이유. 그것이 바로 승한이 가장 듣고자 했던 이야기였다. 어쩌면 그 이유를 알게 되면 괴물들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상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승한은 검과 방패를 들고 능력을 사용했다.

화륵-.

승한은 다른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성화를 사용해 검에 둘렀다. 어차피 외뿔 마족은 승한이 성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힘이 어떤 힘인지도 모르지 않았다.

“그게 성화인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이제 몸으로도 알게 될 걸?”

승한은 윤재와 차재훈을 내버려두고 움직였다. 다른 마족들이 있기는 해도 윤재는 이미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의 레벨이 올라가 있었고, 옆에는 윤재와 비교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가진 차재훈도 있었다.

승한이 보스인 외뿔 마족만 제대로 상대한다면 두 사람이 위험할 일은 없을 터. 승한은 [백검]에 성화를 담아 크게 검을 휘둘렀다.

화악-!

성화의 검격이 날아가 허공을 베었다. 외뿔 마족은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져 위로 올라가 있었다.

외뿔 마족이 허공을 밟으며 움직였다. 높이 뛰어 오르기는 해도 비행 능력이 없던 다른 마족들과는 달리, 외뿔 마족은 마치 허공을 땅처럼 밟고 움직였다.

‘[귀신]과 비슷한 능력인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외뿔 마족이 승한의 앞으로 날아왔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빠른지 승한이 잠시 놓칠 정도였다.

콰앙-!

외뿔 마족이 뻗어온 주먹이 승한의 방패 위를 두드렸다. 그 충격이 제법 강했는데, 방패를 잡은 팔까지 충격이 전해질 정도였다.

한 번 공격을 실패한 외뿔 마족이 다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곤 쉴 세 없이 움직여 승한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깡, 까까강-!

콰앙-!

외뿔 마족은 승한과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았다. 승한이 사용한 성화의 힘을 피하기 위함인지 사방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옆과 뒤를 노렸다.

‘빠르다.’

승한의 눈은 외뿔 마족의 움직임을 제대로 쫒지 못했다. 움직임 자체는 승한보다 조금 더 빠른 정도였지만, 승한은 지금껏 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적을 상대해보지 못했다.

방패로 막고, 가끔씩 검을 휘둘러 외뿔 마족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정도. 정면으로 싸운다면 성화를 이용해 단숨에 불태울 수 있겠지만, 외뿔 마족도 그것을 염려했는지 정면으로 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피잇-.

승한의 왼쪽 옆구리에 작은 상처가 생겨났다. [수호신]덕분에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처가 생겨났다는 점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한 번 생겨난 이후로 계속해서 자잘하게 생겨나고 있었다.

“이 파리 같은 놈이…….”

승한은 이를 뿌득 갈며 [백검]을 크게 휘둘렀다. 바로 왼쪽에서 달려드는 외뿔 마족을 향해, 검격을 전방위에 걸쳐 휘둘렀다.

콰과과과과-!

승한의 [백검]이 허공의 한 공간을 갈기갈기 찢었다.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게 아닌,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공간을 베어버릴 때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그 힘 속에는 성화의 힘이 조금씩 감돌고 있었다. 외뿔 마족은 간신히 승한의 검격을 피해 움직였지만, 성화의 열기까지 모두 피할 순 없었다.

치이이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외뿔 마족의 가슴에 작은 불꽃이 일렁거렸다. 워낙에 작은 힘인데다가 직접적인 성화가 아닌, 검격에 묻어있던 힘일 뿐이라 그런지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다.

“……이게 성화인가?”

타닥, 타닥-.

성화는 꺼지지 않고 계쏙해서 외뿔 마족의 가슴에 남아있었다. 마치 그가 죽을 때까지 꺼지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외뿔 마족은 손을 들어 가슴을 툭툭 쳐서 불을 꺼뜨렸다. 손에서 살타는 연기가 나고, 가슴 쪽에 묻어있던 불이 꺼졌다. 외뿔 마족은 눈살을 찌푸렸다.

“짜증나는군.”

“그럼, 성화가 애들 불장난인 줄 알았나?”

“그 힘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네놈은…….”

외뿔 마족은 승한이 가진 재주가 성화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아쉬운 쪽은 승한이었다.

‘차라리 우습게 보고 정면으로 달려들면 편할 텐데.’

지금껏 승한은 자신보다 느린 적들을 상대해왔다. 미세한 차이이긴 하지만 외뿔 마족의 움직임은 1레벨의 [귀신]을 가진 승한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승한이 가진 진짜 능력은 [귀신]을 이용한 우월한 움직임이 아닌, 3레벨의 [불굴의 육체]와 성화라는 힘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외뿔 마족을 잡을 정도로 승한의 움직임이 빠르진 않았다.

‘[귀신]의 레벨도 올려야 하나? 타임 포인트가 꽤 많이 필요하겠는데…….’

승한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파리처럼 쏘아대는 게 귀찮긴 해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외뿔 마족의 움직임이 빠르긴 해도 녀석에게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승한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외뿔 마족에게 치명적이었다.

성화라는 힘이 있었으니 말이다.

반면 외뿔 마족의 공격은 승한에게 별다른 타격이 되지 못했다. 그래봤자 작은 생채기, 혹은 손톱보다 조금 얕은 상처를 입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점점 승한은 외뿔 마족의 움직임이 눈에 익었다. 아무리 빨라도 아예 눈에 보이지 않는 정도는 아니었고, 그 공격에 반응할 정도까지 감각을 끌어 올리는데 시간이 걸린 것뿐이었다.

쉬익-.

외뿔 마족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한은 녀석의 움직임에 맞춰 함께 움직였다. 왼쪽으로 돌아가던 외뿔 마족과 승한이 만났다.

외뿔 마족이 깜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해 빌빌거리던 승한이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인 것이다.

사실 승한의 움직임은 외뿔 마족에 비해 그리 느리지 않았다. 외뿔 마족이 승한보다 나은 건 아주 조금 움직임이 빠르다는 정도. 그리고 그 정도는 조금만 눈에 익숙해 지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외뿔 마족도 승한과 접근전으로 싸워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뒤만 잡히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마주고보 앞에서 싸우면 승한이 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까앙-!

승한이 휘두른 검이 외뿔 마족의 팔과 부딪혔다. [증폭]의 힘과 함께 성화를 두른 승한의 검은 외뿔 마족의 팔을 반쯤 베어냈다.

상처를 타고 성화의 불이 베어들었다. 외뿔 마족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승한은 멈추지 않고 집요하게 녀석을 쫒았다.

콰앙-!

뒤로 물러나던 외뿔 마족을 승한의 방패가 들이받았다. 움직임은 더 빠를지 몰라도, 힘은 승한이 훨씬 한수 위였다. 무엇보다 [증폭]으로 인해 승한의 방패는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어서 거기 부딪힌 외뿔 마족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카악!”

승한의 방패가 들이받은 얼굴을 감싸 쥐며 외뿔 마족이 땅 아래로 떨어졌다. 승한은 다시 한 번 허공을 밟아 땅 아래로 떨어지는 외뿔 마족을 향해 성화를 담은 검격을 휘둘렀다.

쉬이이익-!

콰아아아-.

성화를 담은 검격이 땅 아래를 가르며 검흔을 남겼다. 외뿔 마족은 충격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 검격을 맞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급히 몸을 옆으로 날려 피해냈다.

그리고 그 정신이 없는 와중에 승한의 몸이 외뿔 마족의 위에서 떨어졌다.

콰앙-!

위에서 내려친 검을 막아낸 외뿔 마족의 팔이 크게 베어졌다. 뼈가 드러날 만큼 베어진 팔에는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성화의 불길이 스며들었다. 양 팔 모두가 성화의 불길에 타기 시작한 외뿔 마족은 승한을 향해 이를 갈았다.

“네놈…….”

“이래도 내가 성화밖에는 없어 보이나?”

꾸구구국-.

승한의 검이 외뿔 마족의 팔을 짓눌렀다. 날카로운 검날이 팔뚝을 파고들었는데, 그 힘이 어찌나 센지 외뿔 마족은 승한의 검을 뿌리칠 수 없었다.

촤아악-.

외뿔 마족의 손이 승한의 얼굴을 향해 뻗어왔다. 승한은 머리를 틀어 팔을 피해냈는데, 외뿔 마족은 바로 손을 내려 승한의 어깨를 잡았다.

꽈악-.

기다란 손톱이 승한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바위조차도 찢겨낼 단단한 손톱이었다. 외뿔 마족의 손톱은 승한이 입고 있는 가죽 갑옷을 뚫고, 승한의 피부를 뚫어내고 상처를 입혔다. 단순히 손톱만으로 [수호신]의 방어력을 뚫어낼 정도라면, 녀석의 손은 승한의 가슴을 뚫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뿔 마족은 단순히 악력만으로 승한의 어깨를 찢어낼 수 없었다. 그러기엔 가죽갑옷과 승한의 능력인 [수호신]의 방어력이 제법 뛰어났다. 만약 승한이 [증폭]의 힘을 가지지 않았다면 이보다 더 큰 상처를 입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수가 실패한 외뿔 마족에게 다가올 일은 하나뿐이었다.

사악-!

승한의 검이 외뿔 마족의 팔을 베어냈다. 하나의 팔이 베어져 나가며 승한의 검은 그대로 외뿔 마족의 가슴을 길게 베었다.

화악-!

베어진 팔의 절단면과 가슴의 상처로 성화의 불길이 일어났다. 다른 때와는 달리 성화의 불길은 조금이지만 황금색의 빛을 머금고 있었는데, 그 힘이 평소보다 훨씬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진짜 성화다.”

승한의 의지가 성화에 전달되었다. 한 번 불이 붙은 성화는 모든 것을 태우고자 하는 승한의 의지를 받아 외뿔 마족의 몸 전체로 번졌다.

콰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악-!”

성화의 불에 타오른 외뿔 마족이 비명을 질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승한을 몰아붙이는 것 같던 그는, 단 한 번 승한에게 주도권을 쥐어주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보스라는 걸까? 외뿔 마족은 바로 죽지 않고 성화에 불타는 중에도 승한을 향해 덤벼들었다. 아무래도 승한의 성화로는 외뿔 마족을 바로 불태워 죽이기에는 부족한 모양이었다.

외뿔 마족이 남은 한쪽 팔을 승한을 향해 뻗었다. 하지만 성화에 불타며 휘청거리던 외뿔 마족이 더 이상 승한에게 위협이 될 수는 없었다.

쿵-!

“쓸데없이…….”

방패로 외뿔 마족의 손을 막아낸 승한이 검을 높게 들었다. 그리곤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콰아아아아-!

승한의 [백검]이 외뿔 마족의 몸을 반으로 베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