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02화 (102/223)

0102 / 0223 ----------------------------------------------

17. 말레이시아

“반갑습니다, 모하드 소장님. 한국 지역의 헌터, 김승한이라고 합니다.”

승한은 입으로 말하면서 함께 전음구로 모하드 소장에게 말을 전했다. 윤재 역시도 마찬가지로 모하드 소장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김승한 헌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 지역의 헌터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실력자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과찬입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희 국민들이 죽어가고 도시는 파괴되고 있습니다. 김승한 헌터와 김윤재 헌터와 같은 분들이 절실합니다.”

말레이시아는 헌터들의 수가 부족한 나라였다. 반면 인구를 그렇게까지 적은 편은 아니라 시민들을 지킬 헌터 인력이 부족했다.

“그런데 이쪽에 있는 여인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겠군요. 살이 익지 않고서야 붉은색의 피부를 가진 인간이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알기로 붉은 색의 피부는…….”

“모하드 소장님.”

승한은 모하드 소장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며 나르샤의 어깨를 잡았다.

“제가 책입집니다.”

“…….”

모하드 소장은 잠시 말없이 승한의 눈빛을 바라봤다. 승한의 호언장담이 먹힌 건지, 아니면 더 이상 승한과 말싸움을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인지 그냥 넘어갔다.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별 일이 없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지시를 따라 움직여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모하드 소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전음구를 집어넣고 뛰쪽에 있는 군인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그러자 그가 승한과 윤재에게로 다가와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승한과 윤재, 나르샤, 그리고 함께 온 이지훈 대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모하드 소장의 옆으로 다른 군인이 다가왔다.

“소장님, 그녀는 아무래도 괴물 같습니다. 모자를 쓰고 군복을 입긴 했지만…….”

“알고 있다.”

모하드 소장의 대답에 군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모하드 소장은 그녀가 괴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소리였다.

“왜 그냥 두신 겁니까?”

“미잔 중령.”

“충!”

“자네는 지금 우리가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나?”

모하드 소장의 물음에 미잔 중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차마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대답할 수 없는 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계급이 깡패라고 모하드 소장은 할 말을 모두 꺼냈다.

“아니. 지금 우리는 저들에게 숙여야 하는 입장이다. 저들 한국에게, 그들이 보유한 헌터라는 사람들에게 말이지. 그리고 방금 보았던 김승한이라는 헌터는 한국의 헌터들 중에서도 최고라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괴물을 데리고 온 것도 묵인해야 한다는 겁니까?”

“당장 문제를 일으키기 전이라면 그렇게 해야겠지.”

“하지만…….”

“혹시라도 그들이 이 일을 문제 삼아 지원을 무르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모하드 소장의 물음에 미잔 중령은 또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말레이시아 국내에도 헌터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모든 괴물들을 정리하는데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할 테고 그동안 발생할 물적, 인적 피해는 고스란히 군 내부의 책임으로 돌아올 것이다.

“저들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맞춰 주게. 알겠나?”

**

군 막사 하나를 배정받은 승한과 윤재는 이지훈 대위를 통해 말레이시아 군부대의 요청을 전해 들었다. 이지훈은 승한과 윤재, 나르샤가 있는 막사 안으로 거대한 지도를 하나 들고왔다.

펄럭-.

지도는 거의 성인 남성을 대(大)자로 펴 놓은 것만큼 거대했다. 말레이시아 전역이 그려진 지도로, 그 중 남쪽 지역 한 곳에 큼지막한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지금부터 저희가 움직여야 할 방향에 대해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지훈 대위는 붉은 점을 기다란 막대기로 가리켰다.

“여기가 바로 저희가 있는 지역입니다. 말레이시아 남서부 지역으로, 한국으로 치면 광주 정도 됩니다.”

이지훈 대위는 들고 있는 막대기를 위쪽으로 옮겼다. 조금 올라가던 막대기는 곧 멈춰 하나의 도시 이름 위에서 멈췄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희의 최종 목적지는 말레이시아 남서부의 주요 도시인 말라카입니다.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말라카까지 올라가며 괴물들을 정리할 계획에 있습니다.”

“저 길 중에 다른 헌터들의 개입은 없었습니까? 말레이시아의 헌터들은요?”

“말레이시아의 헌터들은 수도인 쿠알라룸부르와 그 외의 도시로 퍼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말라카에는 괴물들의 보스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곳을 담당하던 헌터들이 모두 당한 모양입니다.”

말레이시아의 인구는 한국긔 절반인 3천만 정도였다. 반면, 국토 면적은 한반도 전체보다 훨씬 넓었다.

국토 면적 대비 인구밀집도는 한국에 비해 바닥인 수준. 더군다나 인구 대비 헌터의 수도 한국에 비해 훨씬 떨어졌다. 때문에 말레이시아는 자국의 헌터들만으로 자국 땅 전부를 괴물들로부터 보호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보스가 나타난 지역이라면 더더욱 방어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말레이시아 내에서는 실력이 뛰어난 헌터의 수가 부족했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말라카에 있는 보스의 처리와 그 길에 있는 괴물들의 소탕인 겁니까?”

“네.”

“시민들은요?”

“말레이시아 정부도 한국처럼 대피소를 만들어 놓은 상태입니다. 여기 지도에 그려진 파란색 점들이 바로 그 대피소의 위치입니다만, 몇 군데 대피소는 이미 괴물들에게 습격당한 모양입니다.”

대피소가 습격당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벌어지지 않은 일이었다. 설령 괴물이 조금 남았다 해도 그건 헌터들이 맡은바 구역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려서일 뿐, 헌터 인력이 부족하다거나 군사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한국은 헌터 강국이다. 여차하면 여유가 되는 지역에서 헌터들이 다른 지역으로 지원을 갈 수도 있었고, 조금 부족한 손은 군인들이 담당하면 그만이었다. 점차 헌터들 간의 지역 연계도 체계화가 되어가는 만큼 대피소가 습격당해 시민의 피해가 입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미 거미들이 나타났을 때부터 그런 사례가 나타나고 있었다. 더군다나 마족들이 난리를 치는 통에 인적 피해 외에 재난 피해까지 덩달아 발생하고 있었다.

“아, 참. 말씀드린 건 어떻게 됐습니까?”

“괴물의 사체 관련 문제 말입니까? 그거라면 이야기가 잘 됐습니다. 김승한 헌터와 김윤재 헌터가 담당한 구역에서 나온 괴물의 사체에 관한 소유권은 인정해 주겠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괴물의 사체에 관한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사체 하나에 한화로 천만 원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하긴, 말레이시아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지원을 온 헌터들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자칫 마찰이라도 발생해서 타국에서 온 헌터들이 일을 미적지근하고 느리게 해결할 경우, 그만큼 말레이시아 자국에는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도움을 받아놓고 거기서 발생한 이득을 자국이 챙기려고 하는 행태를 곱게 봐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나저나 길을 모르니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겠군요.”

“길이라면 안내원이 한 명 따라 붙을 겁니다. 지리에 해박한 말레이시아 군인으로, 말라카까지 가는 길을 차로 안내할 겁니다.”

“차로 이동하면 속도가 줄을 텐데요?”

“하긴, 김윤재 헌터의 능력을 이용해 움직이는 게 훨씬 빠르긴 하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떻게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말레이시아에 살다가 한국으로 집을 옮겨서 조금 미숙하긴 하지만 지도를 보면 방향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말라카까지 가는 길도 알고 있습니다. 세 분도 말레이시아 사람보다는 한국인인 제가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어쩐지 말레어를 꽤나 유창하게 한다 했더니 어릴 때 말레이시아에서 살았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말레이시아 사람의 도움을 받을 일은 길을 벗어나지 않게 안내할 것 외에는 없었는데, 이지훈 대위가 방향을 잡아줄 수 있다면 굳이 안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환영이죠.”

“그럼 그렇게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합시다.”

“지금 바로요?”

“한시가 급합니다. 말라카에 있는 대피소는 이미 습격당한 상태지만, 그 아래 지방에 두 개의 대피소가 더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의 수가 족히 십만 명 정도로, 이곳까지 당하게 되면 인명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납니다.”

미적지근하게 행동하다가 자칫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어깨가 무거워진 승한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출발하죠.”

**

이지훈 대위는 승한과 윤재를 대신해 모하드 소장에게 말을 전했다. 안내원을 거절하고 무전기 하나와 지도를 빌렸다.

이동 수단도 필요 없었다. 어중간한 이동수단보다는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주작이 훨씬 이동에 용이했다. 웬만한 헬기보다 주작이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까아아악-.

윤재의 주작은 등 뒤에 승한과 윤재, 나르샤, 그리고 이지훈 대위를 태운 채 이동했다. 백 미터 가까이 날아오른 주작을 꽉 붙들며 이지훈 대위가 감탄했다.

“신기합니다. 불로 만들어진 새가 있다는 것도, 그 새 위에 올라타 있는데 전혀 뜨겁지 않다는 것도 말입니다. 무엇보다 흰색 불은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당연하게도 윤재는 그 주작의 위에 올라타 있는 승한과 나르샤, 이지훈이 주작의 열기에 타지 않도록 배려해 두었다. 그리고 그런 윤재의 의지를 받은 주작은 세 사람에게 조금의 열기도 전하지 않았다.

나르샤에게는 그렇게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이미 그녀는 오래 전부터 성화라는 힘을 몸에 품고 있던 몸. 그런 만큼 자신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불이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잘못해서 떨어지면 그대로 사망이니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새가 워낙 커서 그런지 별로 흔들린다는 느낌도 없습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지훈 대위는 주작 위에 앉아서 지도를 펴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주작의 흰색 불 위에 지도를 펼친 이지훈 대위는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 방향으로 쭉 가면 됩니다. 아마 이 근처부터 괴물들이 보일 겁니다.”

“그래요?”

이지훈 대위의 말에 승한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역시 작은 도시 곳곳으로 마족들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까지 헌터들의 발길이 닿지 못한 도시. 가장 처음 승한과 윤재가 말레이시아 안에서 행동하기 시작할 곳이었다.

“바로 움직이지 않으십니까?”

“일일히 여기저기 발로 뛰어다닐 필요 없습니다.”

“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기다려 보십시오.”

승한의 말에 윤재가 주작을 아래로 움직였다. 높게 날아 오르던 주작이 지상과 가까워졌다. 승한은 이지훈 대위와 나르샤가 떨어지지 않도록 꽉 잡아주었다.

화륵-.

그 순간, 승한의 몸에서 성화의 불길이 일어났다. 승한의 몸에서 일어난 성화 역시 윤재가 불러낸 흰색 주작의 불처럼 이지훈 대위와 나르샤에게는 어떠한 열기도 가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운은 도시 아래에 있는 마족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괴물들이… 모여든다?”

이지훈 대위는 못 본 걸 본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르샤는 마족들이 성화의 힘에 이끌려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마족들의 목적 중 하나가 성화의 힘을 가진 승한을 죽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마족들이 몰려드는 것을 확인한 승한이 씩 웃었다.

“그럼, 첫 개시 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