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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말레이시아
콰아아아-.
사아악-!
아래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이지훈 대위는 입을 쩍 벌렸다. 침이 고이는 것도 모른 채 이지훈 대위는 그저 아래에서 승한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구구구구-.
하늘에서 거대한 백염의 파도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땅은 불바다가 되고, 수많은 마족들이 온 몸을 까맣게 태우며 쓰러졌다.
하지만 승한의 성화를 가운데로 모여든 마족들은 수없이 많았다. 못해도 족히 수백은 되어보였다. 승한과 윤재가 주작을 타고 이동하며 마족들을 한데 모은 결과였다.
그리고 승한은 그 가운데로 뛰어들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가 검을 한 번 크게 휘두르면 주위에 있는 마족들은 픽픽 쓰러졌다. 윤재가 날린 백색 화염은 마족들의 몸을 까맣게 불태웠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놀라운 점은 승한과 윤재의 싸움은 주변에 있는 그 어떤 건물에도 손상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승한은 가능한 마족들과 함께 건물에 피해를 주지 않게끔 검을 휘둘렀고, 윤재의 불은 정확하게 마족들만 골라서 태웠다.
‘이게… 헌터?’
아니, 모든 헌터들이 이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말레이시아에 아무리 헌터들이 부족하다고 해도 괴물들 때문에 이 고생을 할 이유가 없었다.
헌터들 중 정점에 있는 두 사람이었다. 특히 승한은 한국 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운 업적을 세웠다. 그는 보라색 거미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도 국내에 나타난 두 마리의 보스를 모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치했다.
그간 이지훈 대위는 왜 그렇게 정부가 헌터들에게 신경을 쓰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이 아무리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강해져봤자 총기를 가진 군인보다 강할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윤재가 불러낸 주작을 처음 보면서부터 깨어졌고, 이어서 승한과 윤재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는 자기 스스로가 부끄러운 지경에 이으렀다. 이지훈 대위는 순식간에 정리된 마족들의 시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마어마하군.’
감탄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인간을 아득히 벗어난 두 존재의 싸움을 지켜보며 경외감을 키울 뿐이었다.
백 단위가 넘는 마족들은 순식간에 정리가 됐다. 주작은 단지 마족들이 따라오는 속도에 맞춰 움직이다 적당히 수가 많아졌다 싶을 때 멈춰 승한과 윤재의 싸움을 지켜본 게 전부였다. 승한과 윤재에게 있어서 마족의 수는 의미가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승한은 [귀신]을 이용해 수십 미터 높이에 떠 있는 주작의 위로 올라왔다. 이지훈 대위는 사람이 허공을 밟고 움직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놀라웠지만, 이미 앞에서 크게 놀랐던 터라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었다.
“다, 다녀오셨습니까?”
“지금 여기가 어디쯤입니까?”
승한의 물음에 이지훈 대위는 급히 지도를 펼쳤다. 그리곤 처음 출발한 지역과 말라카의 중간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부근입니다.”
“중간쯤이군요.”
“네. 생각보다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출발한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적당합니다. 오히려 생각보다 괴물들의 수가 없어서 의외네요.”
“괴물들의 출현은 인구에 비례해서 수가 나타납니다. 말레이시아의 국토 면적은 한반도에 비해 반 배 정도가 더 크지만 인구는 한국의 절반 정도입니다. 당연히 같은 땅덩이에 괴물의 수가 훨씬 적을 수밖에요.”
한 시간 가까이 주작을 타고 이동하면서 내내 마족들을 끌어모았다. 그렇게 모여든 마족의 수가 고작 백 마리가 조금 넘는 정도였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족히 오백 마리는 넘게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주변에도 피해를 줄 테고, 너무 과하게 모이면 승한과 윤재도 어떻게 될지 몰라 그렇게까지 마족들을 모으진 않았지만 같은 국토 면적 대비 마족들의 수가 심하게 적었다.
‘생각보다 더 빨리 이동할 수 있겠어.’
승한은 지도에 표시된 지역을 다 도는데 족히 반나절 이상은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헌터들은 그 반나절도 대단히 빠르다고 생각할 테지만 반나절은커녕, 세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문제는 말라카에 있다는 보스인가?’
승한은 씩 웃었다.
‘가능하면 그냥 외뿔 마족이 아니고 베이모 같은 녀석이었으면 좋겠군.’
승한에게 있어서 더 이상 마족들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외뿔 마족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2레벨의 성화와 3레벨의 [불굴의 육체], 그리고 새로운 능력인 [올림포스]까지 있는 이상 외뿔 마족쯤은 이제 몇 마리가 달려들어도 무섭지 않았다.
그나마 위협이 되려면 베이모 같은 마족이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이제는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전과는 달리 승한의 성화가 2레벨로 올랐기 때문이었다.
‘마화를 가진 마족이 있다면 오히려 환영할 일이지. 타임 포인트도 두둑이 주고, 성화의 힘도 늘려 주니까.’
승한은 방금 전 마족들과의 싸움에 성화를 사용하면서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 성화를 사용하는데 부담이 덜해. 분명 2레벨로 오르고, 위력이 강해졌는데 부담이 1레벨 때와 달라진 게 없을 정도야.’
2레벨의 성화는 승한이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고 강했다. 아주 조금 힘을 끌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의 불길이 나타나니 말이다. 아무래도 2레벨의 성화에 적응을 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성화의 축복].
새로운 능력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 능력 덕분에 승한은 성화를 더욱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내심 2레벨의 성화를 다룰 수 있을까 걱정했던 승한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승한은 베이모와 같은 마족에게서 성화의 조각을 흡수할 생각이었다. 이전에는 조금 불안정한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성화의 힘에 점차 익숙해지고 그 힘의 본질에 대해 깨달아가고 있는 만큼 그 힘을 빼앗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불굴의 육체]의 레벨을 하나, 성화의 레벨을 하나. [올림포스]는… 웬만해서는 레벨을 올리기가 쉽지 않겠어.’
지금 당장 승한이 욕심이 나는 능력은 [불굴의 육체]와 성화, 그리고 [올림포스]였다. [불굴의 육체]와 성화는 레벨을 올릴 엄두가 나는데 비해, 5스테이지의 능력인 [올림포스]는 2레벨로 올리는 데에만 200만이 넘는 타임 포인트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이만한 수치의 타임 포인트는 당장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올림포스]의 레벨은 아무래도 다음 번 괴물이 나타났을 때 올리던가 해야할 것 같았다.
‘[백검]의 레벨도 금방 10레벨까지 올릴 수 있겠어.’
승한이 말레이시아에 선뜻 온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타임 포인트의 확보 때문이었다.
한국에는 이미 헌터들이 자리를 많이 차지한 상태였다. 그런 만큼 대부분의 마족들은 정리가 된 상태였고, 더 이상 타임 포인트를 확보할 곳이 없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외국은 다르다. 타임 포인트를 확보할 수 있는 자리는 얼마든지 있었다. 마족이 남아있다는 건 그만큼 확보할 수 있는 타임 포인트가 남아있다는 소리였다.
“이지훈 대위님.”
“네?”
“모하드 소장에게 연락해 주십시오. 말라카까지 괴물들을 정리하고 나면 어디로 가면 되냐고.”
“지, 지금 말입니까?”
“네. 세 시간 후면 말라카에 도착할 겁니다.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괴물들과 함께 보스를 잡고,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승한의 거침없는 행보에 이지훈 대위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속도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빠른데,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마족들을 모아 바로 말라카까지 가겠다니.
“괜찮겠습니까? 다른 괴물들도 문제지만, 말라카에 보스가 있을 확률이 높은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위험성이…….”
“괜찮습니다. 이미 괴물의 보스는 두 번이나 잡아 봤습니다. 그 때에도 백 마리 정도의 괴물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이지훈 대위는 승한의 요청에 바로 무전기를 꺼냈다. 무전기 너머로 모하드 소장의 목소리로 말레어가 흘러나오고, 이지훈 대위가 모하드 소장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승한은 계속해서 주작을 타고 이동하며 성화의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2레벨의 성화는 간단히 힘을 흘려 보내는 것만으로도 꽤나 붉은 성화의 기운이 겉으로 많이 드러나 있었다.
마족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녀석들은 악마의 최면에 걸려 성화의 힘을 가진 승한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주작은 마족들이 따라붙는 속도에 맞춰 이동했다. 마족들의 움직임은 결코 느리지 않았다. 성화의 힘을 집요하게 쫒으며 쉬지 않고 따라왔다.
“곧 말라카에 도착합니다.”
모하드 소장과의 대화를 끝마치고 지도를 보고 있던 이지훈 대위가 말했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던 승한은 멀리 바다를 발견했다.
“휘유. 많이도 따라붙었네요.”
“아무래도 말레이시아 주요 도시였던 만큼, 말라카 근처에는 거주하는 인구가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족들의 수를 확인한 승한이 감탄하듯 말하자 이지훈 대위가 설명을 늘어놓았다. 어렸을 때 말레이시아에서 살았다더니 아는 게 꽤나 많았다.
그 순간, 승한은 씩 미소를 지었다. 친숙하고도 반가운 기운이 가까이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화.’
그것은 이전에 베이모에게서 느꼈던 것과 같이 어둡게 물든 마화의 힘이었다. 거리가 그리 가깝지는 않아서인지 희미한 정도였지만 확실했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승한이 가진 성화의 레벨이 2레벨로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는 나르샤와 베이모를 눈앞에 두고도 마화의 힘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으니 말이다.
나르샤는 성화를 잃은 상태라 그런지 마화의 힘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승한은 점차 몸이 말라카에 가까워질수록 마화의 힘이 진하게 느껴졌다.
‘베이모보다 더 크군.’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마화의 힘이 꽤나 강렬하게 느껴졌다. 반길 만한 일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꺼림직한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말라카의 상공에 도착했을 때, 승한은 베이모보다 거대한 마화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화가… 둘이야?’
마화는 하나가 아니었다. 거리가 멀어서 그 힘이 하나로 느껴졌을 뿐, 베이모와 같은 기운이 두 개였다.
그리고 그것은 베이모와 같은 힘을 가진 마족이 둘이 있다는 뜻이었다. 한국에 단 하나밖에 나타나지 않은 마화를 가진 마족이 가뜩이나 마족도 많이 나타나지 않은 말레이시아에 둘이나 나타난 것이다.
승한이 듣기로 말레이시아에 나타난 보스는 말라카에 나타난 보스 하나뿐이었다. 이번 괴물의 출현에서는 보스의 수가 전에 비해서 훨씬 적은 편이었는데, 승한은 한국에 비해 인구가 적은 말레이시아에는 한 마리의 보스가 나타난 게 전부일 것이라 생각했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재수가 없는 건지…….’
어느 쪽인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보다 승한은 자신이 베이모와 같은 마족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가능할 것까진 없었다. 잘만 싸우면 베이모와 같은 마족 둘을 제압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승한은 괜히 위험 부담을 안고 가기보다는 좀 더 확실한 길을 걷기를 원했다.
‘어쩔 수 없나?’
승한은 결국 보유하고 있던 타임 포인트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언제고 투자를 해야 한다면, 당장 눈앞에 벽이 있을때 사용하는 게 맞았다.
[512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보유 타임 포인트 : 2263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