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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말레이시아
[37500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기분 좋은 메시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승한은 하나 남아있던 쌍둥이 마족의 목을 검으로 꿰뚫고, 그 힘을 흡수했다. 역시나 성화의 힘은 아주 조금 늘어났을 뿐이지만 두 마리의 쌍둥이 마족이 준 타임 포인트는 상당했다.
‘75만 타임 포인트라…….’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고작 둘의 마족을 베었을 뿐인데, 600마리의 마족들을 벤 것과 같은 수치의 타임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다. 입가에 지어진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엄청나군.’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던 승한은 주위를 둘러봤다. 쌍둥이 마족과 싸우는 사이, 대부분의 마족들은 이미 정리가 된 상태였다. 윤재의 능력도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서 이제는 불바다를 한 번만 사용해도 웬만한 마족들은 맥을 못 쓰고 타 죽었다.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윤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아마 지금의 윤재라면 마화를 가지지 않은 외뿔 마족이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마족들이 정리되었다. 두 마리의 보스가 출현해서 가장 큰 위험지대로 알려져 있던 말라카를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5분 정도였다. 승한은 더 이상 남아있는 마족들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윤재와 이지훈 대위가 타고 있는 주작 위로 올라갔다.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죠.”
“버, 벌써 끝난 겁니까?”
“네.”
“보스가 둘이나 있지 않았습니까?”
“방금 제가 싸우는 것 보시지 못했습니까? 그 녀석들이 보스입니다.”
승한의 대답에 이지훈 대위는 혀를 내둘렀다.
‘대체 이 사람들은…….’
이지훈 대위는 보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말레이시아 내에 있는 헌터들 중 말라카에 나타난 보스의 손에 죽은 헌터가 벌써 다섯이었다. 더 이상 헌터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말레이시아 정부는 한국 정부의 손을 빌려 뛰어난 헌터에게 보스의 처리를 부탁했다. 그리고 그 헌터가 바로 승한과 윤재였다.
말레이시아 정부와 말레이시아 헌터들이 포기할 정도로 수준이 높은 괴물이 바로 보스였다. 그런데 승한은 말라카에 있는 보스를, 그것도 둘이나 한꺼번에 상대해 불과 5분만에 쓰러뜨렸다. 그것도 생채기 하나 입지 않고 말이다.
승한의 활약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윤재도 만만치 않았다. 홀로 그 많은 마족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렸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보통 마족들만이 아니라 세 개 이상의 뿔을 가진 마족들이 상당히 많았다.
“다음 목적지가 어디냐니까요?”
“다, 다음 목적지는…….”
이지훈 대위는 승한의 독촉에 다시 지도를 폈다. 승한과 윤재는 다시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
승한과 윤재는 말레이시아에서 정확히 이틀을 머물렀다.
아니, 머물렀다기보다는 말레이시아 내를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말레이시아 헌터들의 발이 닿지 않거나 지원이 필요한 지역을 말이다.
그리고 바로 승한과 윤재가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이 돌아왔다. 한국 시간으로 화요일 점심때였다. 말레이시아에 남아있던 마족들이 모두 정리가 된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승한 헌터. 김윤재 헌터. 덕분에 한시름 덜 수 있었습니다.”
모하드 소장은 승한과 윤재는 물론, 한국을 비롯해 타국에서 온 모든 헌터들을 치하하며 친히 마중을 나왔다. 소장이라면 결코 낮은 직급이 아닐 텐데도 그는 제 발을 쉬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희도 그냥 공짜로 한 일은 아닌데요.”
승한은 모하드 소장이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게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자선사업이나 봉사활동이라도 왔다면 모를까, 충분한 대가를 받고 한 일에 이렇게까지 감사의 인사를 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사실 내가 미안하지.’
승한은 지난 이틀 동안 말레이시아에 남아있던 마족들을 쉬지 않고 사냥했다. 그렇게 획득한 타임 포인트는 원래라면 말레이시아 내에 있는 헌터들이 획득했어야 할 점수였다.
더군다나 승한은 자신이 죽인 마족들의 사체에 한하여 그 사체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상태였다. 그것은 고스란히 승한의 실적으로 나타나고, 더군다나 한국 정부에서도 추가적인 수당이 나올 것이다.
‘이틀 동안 한 일치고는 금액이 어마어마하지.’
획득한 타임 포인트와 추가적은 돈까지. 승한은 말레이시아 땅에서 뽑아먹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뽑아먹었다. 그런 만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승한은 모하드 소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모하드 소장은 승한과 짧게 악수한 후, 그와 가볍게 포옹했다.
윤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는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나르샤에게까지 똑같이 하지는 않았다. 나르샤는 승한과 윤재를 따라 모하드 소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곧 이지훈 대위가 운전하는 군용기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모하드 소장은 승한과 윤재, 나르샤가 타고 있는 군용기가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끝난 건가?”
“그렇습니다. 김승한 헌터와 김윤재 헌터의 귀국으로 한국 정부에서 파견 온 헌터는 모두 돌아갔습니다.”
모하드 소장의 물음에 뒤에 있던 장교가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모하드 소장의 표정이 갑작스럽게 어두워졌다.
“……아니. 끝은 아니겠군. 닷새 후면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할 테니.”
“……그럴 확률이 큽니다. 매 주 일요일마다 이 난리를 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한 중 일에서 파견 온 헌터들의 성과는 어떻게 되지? 그들의 성과에 따라 우리가 각 정부에 지급해야 할 보상이 달라질 텐데.”
“한 중 일에서 파견 온 헌터의 수는 합이 백 명입니다. 중국 정부에서 육십, 한국 정부에서 스물, 일본 정부에서 스물입니다.”
현 아시아 대륙에서 말레이시아가 직접적으로 헌터라는 인력을 빌려올 수 있는 곳은 한국과 중국, 일본이 대표적이었다. 이전부터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떠오르던 세 국가는 보유한 헌터에 있어서도 강대국의 면모를 보였다.
말레이시아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인도라는 나라 역시 중국에 못지않은 헌터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에게서 지원을 바라는 건 힘들었다. 때문에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게 각각 나누어서 헌터 지원을 요청했다.
“각국 헌터들의 성과 전체를 1로 보았을 때, 중국 헌터들의 성과가 4할 5푼, 한국 헌터들의 성과가 3할 5푼, 일본 헌터들의 성과가 2할입니다. 총 보상 액수는 위안화로…….”
“잠깐, 한국 헌터의 성과가 조금 이상한데? 헌터는 고작 스물이면서 성과는 3할 5푼이라고?”
“시정하겠습니다.”
모하드 소장의 지적에 장교는 손에 들고 있는 자료를 살폈다. 혹시라도 자신이 실수한 게 있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다시 확인해 봐도 틀린 부분이 없었다. 아니, 틀리다기보다는 어처구니 없는 자료가 있었다.
“그게… 한국 헌터들의 수준이 중국과 일본의 헌터들보다 다소 높습니다.”
“그렇다고 그 정도나 차이가 나나?”
“물론 아주 심한 차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헌터들의 수준이 높다고 해도, 두 배 가까이 성과를 높일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그 자료는 어떻게 된 거지?”
“두 명의 헌터가 말도 안 되는 실적을 세웠습니다.”
‘두 명의 헌터’라는 말에 모하드 소장의 눈이 뒤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군용기가 정착되어 있던 텅 빈 자리가 있었다.
“설마…….”
“그 설마가 정답입니다. 김승한 헌터와 김윤재 헌터, 그 둘은 다른 헌터들보다 족히 열 배에 달하는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둘이서 스무 명에 달하는 헌터의 몫을 해 낸 것입니다.”
보고를 올리던 장교는 자료를 다시 한 번 확인하더니 말을 정정했다.
“……시정하겠습니다. 열 배가 아닙니다.”
“열 배가 아니라니?”
“열 배라는 수치는 통계적인 괴물들의 수치일 뿐, 그들이 잡은 괴물 중 두 마리가 보스라는 점을 간과했습니다. 말라카에 있던 보스에게 자국의 헌터 다섯이 당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이룬 성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합니다.”
장교의 보고에 모하드 소장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군용기가 떠난 자리를 바라봤다.
보스를 두 마리나 잡고, 다른 헌터들에 비해 각각 열 배나 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말레이시아로 파견 온 다른 헌터들도 결코 수준이 낮은 헌터들이 아니었는데 이 정도 성과였다.
‘괜히 최고라 말하는 게 아니었군.’
모하드 소장은 승한과 윤재라는 든든한 헌터를 보유한 한국이 괜히 부러워졌다.
**
승한과 윤재, 나르샤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막 한국 땅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때가 조금 넘은 3시쯤이었다.
이지훈 대위는 부대로 돌아가 강동훈 소령을 비롯한 장교들에게 보고를 올렸다. 안양 지역에서 말레이시아로 파견을 나간 헌터는 승한과 윤재밖에 없어서인지 군부대 안에서 집중되는 시선이 꽤 많았다.
“……정말 이만한 성과를 모두 두 사람이서 해냈다?”
“그렇습니다. 저도 함께 따라다니며 봤는데… 모두 사실입니다.”
강동훈 소령의 물음에 이지훈 대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지훈 대위는 지난 이틀 동안 승한과 윤재를 따라다니며 그들이 괴물들을 잡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강동훈 소령도 이지훈 대위가 보고한 성과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가 거짓 보고를 올릴 이유도 없을뿐더러, 어차피 곧 말레이시아에서 보상이 떨어지면 밝혀질 일이었다.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단지 너무 놀라서 확인 차 물었던 것이었다. 때때로 사람은 너무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나면 보고 들어도 믿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강동훈 소령의 반응은 바로 그런 경우였다.
“두 분은 바로 집으로 갔나?”
“네. 보고는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가족들이 걱정할 거라고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군.”
강동훈 소령은 손에 들고 있는 자료를 챙겼다. 그 자료 속에는 이지훈 대위가 승한과 윤재를 따라다니며 기록한 일지 같은 것도 기록되어 있어 양이 꽤 많아 차차 읽어볼 생각이었다.
“사체 문제는 어떻게 됐나?”
“말레이시아 내에서 한국 헌터들이 정리한 괴물의 사체에 관해서는 소유권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렇군.”
괴물의 사체 확보. 그것은 한국 정부가 근래 들어서 가장 신경을 쓰는 사안이었다. 돈도 돈이었고, 새로운 에너지원의 확보는 추후 새롭게 에너지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는 자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니?”
“김승한 헌터가 괴물의 사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습니다. 괴물을 잡은 건 자신이니, 그 사체에 대한 소유권은 당연히 자신에게도 있지 않겠느냐고.”
승한은 이틀 동안 이지훈 대위와 이야기를 하던 중, 괴물의 사체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전했다. 그를 통해서 강동훈 소령에게, 그리고 그 위쪽의 군부대를 비롯한 정부에게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길 바란 것이다.
그리고 이지훈 대위는 승한의 말을 그대로 강동훈 소령에게로 전했다. 그리고 그 말은 강동훈 소령에게는 물론, 괴물의 사체를 반드시 필요로하는 정부에게까지도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이거 골치 아파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