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13화 (11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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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7스테이지

나르샤는 깨지 않는 승한을 보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집 구경도 잠시, 승한은 해가 질 때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그녀는 승한의 집에 혼자 있는 신세가 되었다.

한 번은 불안한 마음에 승한을 깨우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승한은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단순히 잠에 든 게 아닌 듯 잠결에 뒤척이거나 하지도 않았다.

나르샤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승한을 더욱 거세게 흔들었지만 승한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나르샤는 결국 승한을 깨우려다 포기하고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쭈그려 앉았다.

철그럭-.

“승한아! 누나 왔다!”

그 때, 승한의 집 문이 열리며 승아가 들어왔다. 나르샤는 승한 외에 다른 사람이 나타나자 깜짝 놀라 급하게 옷장 안으로 숨어들었다.

겉옷을 아무렇게나 거실에 벗어둔 승아는 승한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승한을 본 승아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자네?”

며칠 동안 못 본데다가 멀리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고 했던 터라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승한은 어디 다친 데가 없어보였다. 승아는 승한이 잠을 깨지 않도록 불을 끄고 문을 닫아주었다.

나르샤는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승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옷장에 숨어 몸을 쪼그렸다. 승한이 있어야 승아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르샤에 대해 설명을 해주던지 할 텐데, 승한이 없으면 나르샤는 영락없이 보통 괴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체 언제 깨어나시는 거에요?’

나르샤는 옷장의 문을 조금 열어 어두운 방 안에서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승한을 바라봤다. 그렇게 나르샤는 좁고 어두운 옷장 속에서 승한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

서걱-.

성화를 담은 검격이 악마의 알을 반으로 베고 그것을 좌우 두 개로 나누었다. 쪼개어진 알을 바라보던 승한은 그 안에서 나올 무언가와 스테이지 완료 메시지를 기다렸다.

[스테이지 7.2]

달성 조건 : 소악마(小惡魔)를 죽여라. 완전한 탄생 시간을 지키지 못한 악마는 힘을 온전히 갖추지 못한 채 태어났다. 그를 죽여 새로운 악마가 자라나는 것을 막아라.

제한시간 : --

남은시간 : -

보상 7.3스테이지로의 이동

승한은 다음 스테이지가 바로 진행되자 깜짝 놀랐다.

‘현실로 돌아가지 않아?’

6스테이지에서는 한 번의 스테이지가 진행될 때마다 하루씩 현실로 귀환하곤 했다. 하지만 7스테이지는 스테이지가 바뀔 때에도 현실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스테이지를 진행했다.

진행 자체는 5스테이지와 비슷했다. 그 때도 5.1스테이지와 5.2스테이지가 연달아 이어졌으니 말이다.

‘소악마라… 저 안에서 뭔가 나오는 건가?’

반으로 베어진 알은 안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기운이야말로 악마의 알에서 느껴지던 불길한 기운의 정체였다.

“조심하십시오. 뭔가 나옵니다.”

“다들 준비해라!”

아게일을 비롯한 천족들은 이제 더 이상 승한의 말을 흘려 듣지 않았다. 당장 마물과 같은 존재의 기척을 느끼는 것만 해도 승한이 아게일보다 뛰어난 면모를 보였고, 실력도 이 자리에 있는 천족들 중 어느 누구보다 으뜸이었다.

천족들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알을 중심으로 원을 그렸다. 알속에서 흘러나오던 연기는 점차 옅어지며 그 속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다?’

알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집채만 한 크기의 알 속은 텅텅 비어있었다. 애초에 그 속에 들어있던 게 탁한 기운의 연기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달리, 승한은 그 속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승한뿐만이 아니라 아게일을 비롯한 다른 천족들도 느끼고 있었다. 그만큼 그 작은 생물의 꿈틀거림은 소름이 끼쳤다.

“……엄청난 게 태어났군.”

“아니, 저 정도면 엄청나진 않죠. 제대로 태어나지 못한 녀석이니까요.”

아게일의 중얼거림에 승한은 그의 말을 정정했다.

느껴지는 힘 자체는 작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저 알속에 있는 소악마는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친 악마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악마로 탄생했어야 할 존재가 승한이 알을 베어버리는 바람에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부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정도라…….’

승한은 긴장을 풀지 않고 검에 성화의 힘을 머금었다. 아직 상대는 해보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소악마라는 존재는 지금껏 승한이 상대해 온 어느 존재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거대한 알 속에서 흘러나오던 연기가 멎어들었다. 승한은 알 속에 있는 자그마한 존재를 발견하고는 그를 향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소악마라는 존재를 시험해 보기 위한 공격이었다.

파앙-!

검격과 함께 날아가던 성화의 힘이 작게 터져나가며 소멸되었다. 비록 성화의 힘 자체를 그렇게 많이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쉽게 공격이 막힌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킥킥. 뭐야 이 불장난은?”

알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마치 쇠를 긁는 소리를 사람의 말로 바꿔 놓은 듯했다. 기분 나쁜 목소리에 승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

‘생긴 건 멀쩡하군.’

소악마는 예상 외로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주 흉측한 얼굴을 하고 있거나 마족처럼 생겼을 거리 생각했는데, 의외로 뿔이 없는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피부가 검다는 정도. 하지만 그 정도야 승한의 세계에 있는 흑인 남성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얼굴도 멀끔하게 생긴 것이 영락없이 보통 사람이었다.

“왜, 악마라고 이상하게 생겼을 줄 알았어?”

저벅-.

깨어진 알 속에서 소악마가 걸어 나왔다. 여전히 알 속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가 몽글거리며 흩어지고 있었지만 소악마의 형체와 얼굴을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소악마의 말은 이제 갓 태어난 존재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승한은 이제 막 알에서 부활한 소악마라 언어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사고구조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헌데 녀석은 비웃음을 짓는 듯한 표정도 그렇고 대화 방식도 그렇고 이제 막 태어난 존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나저나 그 불장난은 제법 익숙한데, 천사 놈에게 받은 힘인가?”

“……이 힘을 알아?”

“그럼, 알다마다. 모를 리가 있나.”

승한은 소악마가 성화의 힘에 대해 아는 듯이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막 태어난 존재가 어떻게 붉은 천사가 가지고 있던 힘인 성화에 대해 알고 있단 말인가?

“아주 짜증나는 짓거리를 해 놨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다시 온전한 몸뚱이로 태어날 수 있었는데 말이지. 네놈을 보니 아무래도 붉은 천사가 보낸 모양이지? 우리가 다시 태어나는 걸 막으라고?”

“……악마라고 해서 좀 더 험악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입이 싸군.”

“아, 맞다. 꽤 오랫동안 입 다물고 있어서 그런가 봐. 이해해. 킥킥.”

소악마는 승한을 비롯해 주위에 있는 다른 천족들을 둘러봤다. 천족들은 소악마와 눈을 마주칠때마다 잘게 몸을 떨었다. 아게일 역시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소악마의 시선에도 멀쩡한 건 승한뿐이었다. 오히려 승한은 반대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소악마의 심기를 건드렸다.

“왜 처 웃지?”

“아니, 좀 긴장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 만해?”

“알이 막 깨어졌을 때는 사실 불안했거든. 이만한 힘을 가진 녀석을 내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하고. 사실 도망쳐야 하는 건가 생각까지 들었는데, 그럴 수도 없고…….”

승한은 하늘을 향해 흩어지고 있는 연기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알고 보니 거품이네?”

“……무슨 개소리지?”

“내가 느꼈던 두려울 만큼 거대한 마기는 너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아니야. 지금 이 순간에도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는 이 연기지. 아마도 넌 그 알 속에서 이 연기를 흡수하고 있었겠지?”

승한의 말이 정곡이었던 걸까? 소악마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의 대답이 어떻든 간에 승한은 이미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는 연기가 자신이 느꼈던 거대한 힘의 원천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이 힘을 모두 흡수했다면 정말 끔찍했겠어.’

알 속에 가득 차 있던 연기들. 그것은 순수한 마기를 집약해 놓은 에너지였다. 그리고 소악마는 알 속에서 단순히 부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승한이 알을 깨뜨림으로 인해 알 속에 있던 힘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물론 지금까지 흡수한 힘이 있긴 했지만 소악마는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부화하고 말았다.

“넌 다른 멍청이들과는 좀 다르군. 그 년한테 선택을 받아서 그런가?”

천사를 ‘년’이라고 비하해 부르는 말에 다른 천족들이 울컥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의 목숨이 아까운 건지, 아니면 아게일의 지시가 없어서인지 바로 달려들거나 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비록 생전에 가지고 있던 힘의 일부에 불과할지 모르나, 천사도 아니고 고작 천족 따위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무리 천사가 힘을 줬다지만, 천족이 가질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을 터.”

“말 한번 참 많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제 막 태어난 꼬맹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 동안 저 안에 혼자 있으면서 그렇게 심심했냐?”

악마가 새처럼 알에서 부화한다고 했을 때부터 이상하긴 했다. 그런데 악마의 탄생은 아무래도 새로운 악마의 탄생이 아닌, 과거에 죽었던 악마가 새로이 힘을 되찾아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모양이었다.

“제대로 된 악마도 아니고, 생기다 만 악마가 무섭진 않은데, 어쩌지?”

“살다 보니 이 듀리안님을 천족 나부랭이가 깔보는 일도 다 있군. 그년에게 받은 힘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내 친히 가르쳐 주마.”

소악마 듀리안은 승한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뿔이 없어서인지 보통 사람처럼 보여 승한은 바로 검을 휘두르기가 껄끄러웠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마기는 분명 악마의 기운이었다.

‘저 녀석만 죽이면 된다 이거지?’

말은 쉽게 했지만 승한은 듀리안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알 속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의 연기를 모두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충분히 위협적인 상대였다.

승한은 처음부터 모든 성화의 힘을 이끌어냈다. 승한의 검에 노란빛이 감도는 성화의 불길이 맺혔다. 처음 날아온 붉은색의 성화가 아닌, 노란빛이 감도는 성화를 바라보는 듀리안의 눈이 살며시 커졌다.

“제법 힘을 다룰 줄 아는군.”

“제법인 정도가 아닐 걸?”

승한은 듀리안보다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신]을 이용해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한 승한은 듀리안의 머리 위로 검을 내리쳤다.

까앙-!

승한은 자신의 검을 막아낸 또 다른 검은색의 검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통 사람과 같던 듀리안의 손이 검은색 검으로 변해 있었다.

“너, 보통 천족은 아니지?”

“……알아서 뭘 하려고?”

“재미있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천사놈의 장난질만이 아니라 다른 냄새도 섞여있어.”

사악-.

깡-!

승한은 듀리안의 검을 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증폭]의 힘을 성화에 적용시켜 승한은 성화의 불길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동시에 승한은 [백검]의 힘을 듀리안이 있는 공간으로 한데 모아 성화의 힘을 잘게 나누어 난도질하듯 뿌렸다.

촤아아아아악-.

화르르륵-!

성화의 불길이 듀리안의 몸 위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온 몸에 자잘한 상처들이 생겨나고, 베어진 자리에서 검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듀리안은 자신의 몸에 하나 둘씩 생겨나는 상처들을 보며 표정을 점차 일그러뜨렸다.

“잔재주를…….”

“어디 이것도 잔재주인지 볼까?”

쿠우우-.

거대한 압력이 듀리안의 몸 위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올림포스]의 힘이 몸을 짓눌러오자 듀리안도 그 힘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움직임을 멈추고 잠시 휘청거렸다.

승한은 [올림포스]의 힘을 방패에 실었다. 산처럼 거대한 무게와 단단함이 방패에 더해지자, 승한은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듀리안의 얼굴을 들이받았다.

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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