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32화 (1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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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올림포스

이윽고 승한이 우려하던 말이 제우스의 입에서 떨어졌다.

‘설득시키라고?’

골치 아픈 일이 벌어졌다. 하필이면 최고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우스가 승한을 반대하는 편이라니.

아무래도 신들 사이에서도 승한에게 힘을 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의견이 분분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포세이돈의 입지도 적지 않았고, 승한이 이룬 바도 적지 않으니 일단 힘을 주기는 준 듯했다.

‘그래도 그렇지 지들이 선택해 놓고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승한은 속으로 불평하면서도 일단 지금 이 상황을 빠져나가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궁금증을 해결하는 건 고사하고 벼락을 맞고 죽게 생겼으니 말이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격을 보이면 되겠지.”

“어떤 자격을 말입니까?”

“[올림포스]의 힘을 가질 자격. 네가 그 힘에 걸맞는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 보여야 한다.”

제우스의 대답은 두루뭉술했다. 승한은 대체 어떻게 해야 자신이 힘을 가질 자격을 증명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하던대로 하면 된다.”

하데스의 대답에 승한은 속으로 ‘대체 내가 하던 게 뭔데?’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곧 그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고는 손을 들었다.

우우우웅-.

아무 것도 없던 승한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 빛은 곧 승한의 손에서 뭉치더니 한 자루의 검으로 변했다.

“저건…….”

“아롤 녀석의 검인가? 맞지?”

“오래간만에 보는군.”

신들이 술렁거렸다. 포세이돈과 하데스와는 달리, 다른 신들은 승한이 듀란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승한이 듀란달을 꺼내보이자 그들은 아롤의 검을 승한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대체 아롤은 이들에게 뭘 한 거지?’

붉은 천사는 물론, 그리스 신들 역시도 아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검인 듀란달까지 알아볼 정도라면 아롤이 이들에게 끼친 영향이 결코 적지 않다는 뜻이었다.

승한은 잡생각을 떨쳐버리고 헤스티아를 힐끗 바라봤다. 그녀는 승한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보였다.

화르르륵-.

승한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한계까지 듀란달에 성화를 머금었다. 듀란달을 꺼내들었을 때와는 달리 신들은 큰 반응이 없었다.

“저게 성화…….”

“저걸 인간이 쓰는 건 처음 보는데?”

반응을 보인 신은 딱 두 명이었다. 헤스티아와 아레스였다.

아무래도 듀란달과는 달리 성화에 대해서는 다른 신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승한은 듀란달에 성화를 머금고는 검을 들고 제우스를 바라봤다.

“그걸로 끝인가?”

“아직 남은 게 있지 않습니까?”

승한은 마지막 남은 자신의 밑천을 털어놓았다.

그그그그그-.

[올림포스]의 힘이 승한을 중심으로 사방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승한은 제우스를 비롯해 신들 하나하나를 힘으로 짓눌렀다.

물론 아무리 승한이 애를 쓴다고 해도 신들이 승한의 힘에 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승한이 아무리 헌터들 중에서는 뛰어나다 해도 상대는 신들이었다. 애초에 승한이 가지고 있는 힘의 근원이 바로 그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승한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의 힘이 이 정도라는 것을 말이다.

“제대로 다루는 것 같은데?”

“그래도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어? 잠깐일 수도 있잖아?”

“글세, 성화를 저 정도로 다루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신들은 승한을 가운데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생각보다 괜찮다는 이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이들, 아무래도 그들이 바로 승한을 반대하는 신들인 모양이었다.

승한은 제우스의 표정을 살폈다. 여전히 그는 표정이 없었다. 보좌에 팔꿈치를 올려 손으로 턱을 괴고, 무표정하게 승한을 내려다보았다.

승한은 그런 제우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다른 신들을 비롯해 궁전 안을 짓누르고 있던 [올림포스]의 힘을 제우스에게로 집중시켰다.

“재롱인가?”

턱을 괴고 있던 팔이 움직였다. 제우스는 처음으로 허리를 세우고 승한을 바라봤다. 승한은 처음으로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생각에 더욱 그를 강하게 짓눌렀다.

고작 1레벨일 뿐이지만 [올림포스]의 힘은 승한의 능력인 [증폭]에 힘입어 더욱 강해진 상태였다. 제우스가 승한의 힘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지만 그 힘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는 괜찮군.”

제우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자리에 있는 신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아레스.”

제우스의 부름에 보좌에 앉아있던 신들 중 황금색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일어났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전쟁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 신이었는데, 인상이 제법 사나워보였다.

“살펴봐라.”

“네, 아버지.”

아레스는 제우스를 향해 고개를 한 번 까닥이고는 승한의 앞으로 뛰어 내려왔다. 승한은 아레스가 자신의 앞에 서자 제우스를 짓누르고 있던 힘을 풀고는 그를 마주 바라봤다.

‘신을 상대하라고?’

승한은 아레스가 자신의 앞에서 검을 들고 서자, 잔뜩 긴장했다. 제우스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건 긍정적인 반응이라 생각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신과 싸움을 붙인다는 건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걱정 마라. 널 죽이는 건 아버지의 역할이니까.”

저벅-.

아레스는 승한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황금색 갑옷과 방패, 그리고 기다란 장검을 들고 있는 그는 전쟁터의 장군과 같은 느낌이었다. 승한은 그가 왜 신화에 전쟁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당신도 제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래. 한가락 재주는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아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

“……이건 너무 치사하지 않습니까?”

“난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뿐이다.”

승한은 아레스를 가지고 자신을 시험하는 제우스를 올려다보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올림포스]까지 괜히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쩔 수 없지.’

제우스도 승한이 아레스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살펴 보라’는 의미는 아레스로 하여금 승한이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라는 뜻이었다.

문제는 아레스가 승한에게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포세이돈이나 하데스와 같이 승한을 지지하는 신이 상대였다면 조금은 덜 무서웠을 텐데 말이다.

“역시, 해 보자고?”

아레스는 방패를 들어 올리는 승한을 보며 씩 웃었다. 그는 제우스와는 달리 표정에 감정의 변화가 완연하게 드러났다. 재미있다는 듯, 하지만 가소롭다는 듯 그의 입가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인 미소가 걸렸다.

승한은 아레스를 바라보며 검을 가슴까지 잡아당기고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아레스는 승한이 먼저 덤빌 생각이 없고, 방패를 이용해 버틸 생각이라는 것을 자세에서 알아차렸다.

“들어오라고?”

퉁-.

아레스의 발이 조금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승한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는 기다란 장검을 승한의 머리 위까지 치켜들었다.

“그래, 가 주마!”

쐐애애액-!

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승한은 앞으로 내밀었던 방패를 올려 머리를 보호했다. 그 순간, 승한은 [올림포스]의 힘을 비롯해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방패에 집중시켰다.

꽈앙-!

검으로 방패 위를 두드렸건만 마치 미사일이라도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승한은 크게 몸을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불시에 얻어맞은 공격도 아니고, 작정하고 정면에서 내려쳐오는 검을 막아냈음에도 이만한 충격이었다.

‘힘이…….’

승한은 아레스의 힘에 깜짝 놀랐다. 아레스는 다른 어떤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레스의 검에서는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는 순수하게 검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그런데 [올림포스]와 성화, [증폭]의 힘까지 모두 사용한 승한을 단숨에 밀어냈다.

쩍-.

방패에 금이 갔다. 승한은 적잖이 금이 간 방패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의 격돌로 방패가 부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법 단단하군.”

아레스는 자신의 검을 한 번 막아낸 승한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번이라고 해도 신이 휘두른 검을 막아냈다는 건 승한이 이미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긴, 우리 힘을 받아갔으면 그 정도는 해야지.”

“……멋대로 힘을 준 건 당신들 아닙니까?”

“난 반대했다.”

“그렇다고 줬다 뺏기입니까? 치사하게.”

승한의 말에 아레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금 검을 들었다.

“내 검을 백 번만 받으면 인정해 주지.”

승한은 방금과 같은 공격을 백 번이나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미 방패는 금이 간 상태였다. 멀쩡한 상태에서도 힘든데, 금이 간 방패로 아레스의 공격을 계속해서 막아내기는 어려워보였다.

하지만 아레스는 그런 승한의 사정을 전혀 봐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다시금 승한의 정면으로 달려오며 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승한은 아레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못 막아.’

한 번은 더 막을 수 있다 쳐도, 방패가 작살날 것이다.

승한은 왼 손에 들고 있는 방패 대신 오른손에 있는 검을 들어올렸다. 듀란달에 성화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백의 검에 황금색의 불길이 타오르며 아레스의 검을 향해 동시에 뻗어갔다.

쩌엉-!

성화를 머금은 듀란달과 아레스의 검이 부딪혔다. 승한은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눈을 부릅떴다. 얼마나 힘이 센지 검을 잡은 손아귀가 터져 찢겨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방패로 막아냈을 때와 같이 뒤로 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승한은 듀란달을 들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레스는 승한과 검을 맞대며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또 막아?”

“그럼… 한 번을 막았는데 두 번을 못 막겠습니까?”

“아롤의 검 때문인가? 다른 검이었으면 검이 박살났을 텐데, 장비가 좋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레스는 속으로는 승한을 다시 보고 있었다. 아무리 성검 듀란달이 아롤의 검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아레스와 검을 맞대고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는 건 그만한 실력과 배짱이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장비의 영향도 적지 않겠지만 말이다.

빠악-!

그 순간, 승한은 자신의 어깨를 후려치는 충격에 크게 몸을 휘청거리며 다시금 뒤로 물러났다. 겨우겨우 [올림포스]의 힘을 몸에 두르고 있어서 버텨내긴 했지만, 그 충격은 고스란히 승한의 몸에 남았다.

“크읍…….”

“싸움을 검으로만 하나?”

아레스는 왼 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흔들었다. 검을 맞대고 있는 상태에서 아레스가 방패를 휘둘러 승한을 공격한 것이었다.

승한과 싸움 방법은 비슷했다. 방패의 용도를 방어에 국한시키지 않고, 공격과 방어를 자유자재로 섞었다. 아레스의 경우는 특히 승한이 반격을 할 생각을 하지 않다 보니 방패를 완전히 무기로 사용할 생각인 듯했다.

“인간을 상대로 너무 치사한 것 아닙니까?”

“네가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건 인정하지. 한 번은 운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두 번은 우연이라 할 수 없지. 그리고 생각보다 몸도 튼튼한 모양이야.”

아레스의 방패에 얻어맞았음에도 승한은 비교적 멀쩡했다. 4레벨의 [불굴의 육체]와 더불어 [올림포스]의 힘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받은 힘뿐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몸이 제법 튼튼하군. 그건 누구에게 받은 힘이지? 천사도 아니고, 검의 힘도 아닌 것 같은데…….”

“그 누구의 힘도 아닙니다.”

“그럼 네 힘이야? 그건 좀 칭찬할 만한데? 사실 난 빌려오는 힘따위는 인정 할 생각이 없거든.”

아레스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승한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승한은 아레스의 검과 방패를 모두 보며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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