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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글세,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군. 아마 전부는 아닐 거다. 그건 반칙이니까.”
이미 아롤은 한 번 세상을 구한 적이 있던 영웅이었다. 그런 그의 힘을 완전히 빌려올 수 있다는 건, 여러모로 말이 되지 않았다.
또한 아롤 역시 [강신]의 능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강신]이 얼마만큼의 힘을 승한에게 전해줄 수 있는지 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능력을 직접 가지고 있는 승한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빌려오는 힘에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승한은 그 점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그럼 결국 빌려오는 힘 보다는, 저 스스로가 강해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당장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 녀석이 끝은 아니잖아요?”
승한의 물음에 아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악마가 대단하긴 해도, 그가 끝은 아니었다. 벌써부터 반악마가 나타난 게 의외긴 하지만, 그 다음이 분명 존재했다.
“당신의 힘을 모두 빌려올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저 스스로가 강해지는 편이 낫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네. 당장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그러지 않도록 아롤님께서 도와 주셔야죠.”
승한의 말에 아롤이 피식 웃었다.
“말은 참 잘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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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백색 공간이 사라지고, 승한의 눈앞에는 다시금 반악마가 나타나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승한을 향해 달려들 것 같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승한은 [성검]의 레벨을 2레벨가지 올린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타임 포인트는 남아있었다.
[2048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신’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보유 타임 포인트 : 195735p]
이것으로 [강신]의 레벨이 7레벨까지 올랐다. 또한, [강신]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타임 포인트까지 갖추었다.
승한은 능력을 획득하고 처음으로 [강신]을 사용했다.
[100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신’을 사용합니다.]
[‘영웅 아롤’의 영혼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능력 - 성검’의 레벨이 일시적으로 1레벨 상승합니다.]
‘안녕, 반갑네.’
승한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아롤의 목소리에 씩 웃었다. 영혼이 몸에 깃들었다더니, 그의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직접 들을 수가 있었다.
‘저도 반갑습니다.’
‘저 녀석이야? 와, 생긴 거 한 번 곱상하게 생겼네. 나랑 싸웠던 녀석은 험악했었는데.’
머릿속에서 울리는 아롤의 목소리에 승한은 피식 웃었다. 그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꽤나 유쾌한 부분이 있었다. 붉은 천사나 다른 그리스의 신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성검]의 레벨이 벌써 3이라… [강신]에 이런 효과가 있었나?’
‘애초에 아롤님의 힘을 빌려온 이상, [성검]의 레벨에 영향을 미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 능력의 레벨이 일시적으로 오를 거라고는 저도 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래?’
1레벨이었던 [성검]의 레벨이 능력의 레벨을 하나 올리고, [강신]을 사용함으로서 3레벨이 되었다. 승한은 듀란달에서 느껴지던 힘과 자신의 몸 안에 있던 힘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음을 느꼈다.
“이제 준비가 끝난 건가?”
반악마는 승한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승한은 그가 자신의 상태를 살피며 무언가를 준비하기를 기다려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악당들이 꼭 그러다 죽더라.”
“네가 죽으면, 악당은 네가 되는 건가?”
“그렇게 되나? 근데 죽는 건 너일 것 같은데.”
승한은 자신이 생겼다.
3레벨의 [성검]의 능력은 대단했다. [성검]은 단순히 듀란달의 힘을 키우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듀란달에 담긴 아롤의 힘을 더욱 많이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승한이 가진 힘도 훨씬 증폭시켜 주었다.
거기에 승한이 가진 능력인 [증폭]이 더해지고, 아롤의 영혼이 승한의 몸속에 깃들어 있었다. 아롤의 검술과 힘, 그 모든 능력들을 더욱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성검]의 레벨이 1레벨이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말이다.
화르르륵-.
듀란달에 성화의 불빛이 이글거렸다. 승한은 반악마와의 싸움에 힘을 아낄 생각이 없었다. 가진바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야 그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Go.’
아롤의 목소리에 승한의 몸이 날아들었다. 성화를 풀풀 날리며 날아든 승한은 그대로 검을 아래로 휘둘렀다.
사악-.
공간을 가른 검격이 반악마에게로 향했다. 무언가를 감지한 반악마는 곧장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자리가 크게 베어지며 바람을 흩날렸다.
승한의 검격이 허공을 벤 것이었다. [백검]처럼 허공을 날아간 검격이 아닌, 공간을 격하고 그 자리를 직접 베어낸 검격이었다.
“키키키킥! 신난다!”
반악마가 승한의 위에서 나타났다. 두 손을 모아쥔 반악마가 그대로 승한을 위에서 내려찍었다.
콰앙-!
승한은 서둘러 방패를 위로 들었다. [올림포스]의 힘이 방패를 감쌌다. 다행히 승한은 반악마의 공격을 방패로 막아낼 수 있었지만,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힘이……!’
아무리 위에서 내려찍었다지만 힘이나 움직임 모두가 승한보다 한참 웃돌았다. 당장 방패만 해도 [올림포스]의 힘을 둘렀는데도 충격이 상당했다.
만약 [올림포스]의 레벨이 1레벨인 상태였다면 아레스와 싸울 때처럼 방패가 부수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디갔지?’
‘오른쪽.’
아롤의 목소리에 승한은 급이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팔이 날아오고, 승한의 검과 손톱이 부딪혔다.
콰드드드득-.
승한이 밟고 있는 지면이 쓸려 뒤로 밀려났다. 아주 조금 승한이 힘에서 밀린 것이었다.
“호오!”
“뭘 감탄하고 있어?”
화르르르륵-.
승한의 검에서 성화의 불길이 일어났다. 황금색의 불이 반악마의 손 전체를 감싸기 시작하며 그의 손을 그을렸다. 반악마도 성화의 힘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이 힘은 확실히 성가시군. 인간의 힘이 아닌데?”
“……아직도 내가 그냥 인간으로 보이나?”
촤악-.
승한은 반악마의 손과 맞대고 있는 듀란달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손아귀가 크게 베어지며 반악마의 손에서 핏물이 튀었다.
반악마는 승한이 자신의 손을 베어내자 급히 손을 떼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3레벨의 [성검]덕분인지 승한의 듀란달은 이전보다 악에 대한 저항력과 추가적인 피해가 훨씬 강해진 상태였다. 더군다나 아롤의 힘 역시 상당히 전해져 승한의 힘과 검술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확실히 보통 인간은 아니군.”
반악마가 씩 웃었다.
콰드드득-.
그의 어깨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승한은 반악마가 무언가를 하려는 낌새를 눈치 채고는 듀란달을 휘둘렀다. [백검]의 검격이 날아갔는데, 반악마는 손을 들어 검격을 막아냈다.
콰드드득-, 우드득-.
반악마의 어깨에서 검은색의 날개가 돋았다. 박쥐의 날개를 닮은 그것은 반악마의 몸 전체를 가릴 만큼 거대했다. 두 개의 뿔과 날개를 가진 반악마는 이제 완전한 악마로 보였다.
‘……날개까지 가지고 있어? 저거 반악마 맞아?’
아롤의 당황한 목소리가 승한의 머릿속에 울렸다. 아무래도 아롤이 생전에 상대했던 반악마와 승한의 눈앞에 있는 반악마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날개가 왜요?’
‘뿔과 날개. 악마들이 가지고 있는 상징이자, 힘이지. 근데 저걸 둘 다 가지고 있는 반악마도 있나? 저걸 반악마라고 부를 수 있나?’
‘……위험한 거예요?’
‘너 이제 큰일 났다.’
간단하게 돌아온 대답이었지만 승한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반악마가 아롤이 상대했던 반악마보다 훨씬 강한 상대인 모양이었다.
‘젠장. 난 밑천 끝났는데…….’
승한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점검했다.
[불굴의 육체]가 5레벨, [귀신]의 레벨이 2레벨, [증폭]이 1레벨, 성화가 3레벨, [올림포스]가 2레벨, [성검]이 3레벨.
다른 헌터들은 겨우 하나씩 올리는 게 고작이라는 두 번째 능력을 몇 개씩이나 올린 승한이었다. 그럼에도 눈앞에 있는 반악마 하나를 잡기가 힘들었다.
‘겁먹지 마.’
‘……누가 쫄게 만들었는데요?’
‘난가? 뭐, 아무튼 별로 쫄 필요 없어. 생각했던 것보다 넌 훨씬 강해.’
속에서 잡담을 나누는 사이, 반악마가 모든 날개를 꺼내들고는 몸을 숙였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하지.”
쿵-.
반악마가 걸음을 내딛었다. 그 순간, 승한이 반악마를 향해 한 손을 뻗었다.
쿠구구구구-.
[올림포스]의 힘이 반악마의 몸을 압박했다. 거대한 산이 짓누르는 압박 속에서 반악마가 달려들었다.
동시에 승한이 쥐고 있는 듀란달의 검 끝이 하늘로 올라갔다. 산을 벨 듯한 기세로 승한이 검을 아래로 내려쳤다. 검에는 성화의 힘이 가득 실려있었다.
콰아아아-!
성화의 검격이 십여 미터까지 솟아올랐다. 반악마와 부딪힌 성화의 검격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힘을 머금고 있었다. 듀란달이 지닌 힘과 성화의 힘, 그리고 검에 머금고 있는 [올림포스]의 무게가 더해진 결과였다.
승한의 듀란달은 날개를 펼치고 달려든 반악마를 막아냈다. 반악마의 손아귀가 반쯤 베어졌다. 승한이 휘두를 수 있는 최고의 일격을 정면에서 받아낸 결과였다.
‘무시무시하군.’
[올림포스]의 힘에 몸이 짓눌린 상태에서 반악마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래도…….’
승한의 입가에 다시금 웃음기가 머금어졌다.
“할 만하잖아?”
콰드드득-.
듀란달이 반악마의 손바닥 안으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갔다. 손바닥의 살을 베고, 뼈를 베었다. 반악마의 손과 승한의 듀란달 중, 승한의 듀란달이 더 강했다.
“크윽.”
반악마가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뒤로 물러났다. 승한은 그런 반악마를 [올림포스]의 힘으로 짓누르며 쫒아갔다.
반악마는 [올림포스]의 힘에 짓눌리는 중에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날개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가 가진 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산을 어깨에 떠받히면서도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애초에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이 승한보다 훨씬 빠르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올림포스]의 힘에 짓눌린 채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에는 역시 한계가 있었다. 승한은 결국 반악마를 따라잡았고, 다시금 그의 검이 반악마의 몸을 꿰뚫었다.
푸욱-.
“카악!”
반악마가 비명을 질렀다. 듀란달이 반악마의 배 한가운데를 꿰뚫은 것이었다. 신성한 성검이, 성화를 머금고 그의 뱃속을 헤집었다.
그 고통은 반악마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아무리 고통을 모르는 악마라 해도, 듀란달과 성화가 가진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반쪽밖에 되지 않는 악마임에야 승한의 능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됐다!’
승한이 속으로 쾌재를 부른 순간.
꾸르르륵-.
반악마의 손과 배, 그리고 승한이 입힌 자잘한 모든 상처가 부글거리며 작은 거품이 일어났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그 상처들이 말끔하게 치료되었다.
그것은 승한의 듀란달이 박혀든 반악마의 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처가 치료된 탓에 승한의 듀란달은 반악마의 몸에 박혀들어 버렸다.
“……무슨 치료가 패시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