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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승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이즈가 왔다면 이제 드디어 저 영상 속에 있는 괴물과 싸울 때였다. 곧이어 방 안으로 크루먼을 비롯한 모든 헌터들이 들어왔다.
승한과 윤재, 주희를 비롯해 총 열여덟 명의 헌터들이 방안에 가득 들어왔다. 승한은 그 중 루이즈라는 헌터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엄청 크군.’
방 안에는 해리슨도 들어와 있었다. 승한과 윤재를 델고 오느라 힘을 소진했던 그는 주희 덕분에 빠르게 힘을 회복할 수 있었다. 같은 미국 내에 있는 헌터인 루이즈 한 명을 데리고 오는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았는지, 그는 별로 힘들어 하지 않았다.
해리슨 역시 상당한 키와 덩치를 가진 헌터였다. 백인 계열의 사람인 그는 2미터에 가까운 키와 넓직한 어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그조차도 옆에 있는 루이즈에 비하면 작다는 느낌을 받았다.
2미터가 훌쩍 넘어, 2미터 10센치는 넘어보였다. 다른 무엇보다 웬만한 남자의 허벅지 두께는 될 듯한 우락부락한 팔 근육과 흉측할 정도로 발달한 어깨는 엄청난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에는 새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조폭같은 인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승한은 전체적인 그의 인상이 꽤나 사납다고 생각했다.
‘보디빌더라도 됐었나? 몸 한 번 끝내주네.’
저런 몸을 가진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었을 리 없었다. 아마도 일전에 운동을 했던 사람일 터였다.
물론 저 근육이 루이즈의 능력을 대신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근력에 보탬이 될 수는 있겠지만, 헌터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능력의 종류와 레벨에 기인하니 말이다.
“여기 계신 분이 루이즈씨입니다.”
크루먼은 승한에게 루이즈를 소개하고는 루이즈에게 영어로 승한을 소개했다. 아무래도 루이즈라는 헌터는 크루먼이나 해리슨과는 달리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루이즈는 주머니에서 전음구를 꺼냈다. 승한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는 이상 두 사람은 서로의 언어를 모르더라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반갑다. 미국 정부 소속 헌터 루이즈 칼렙이라고 한다.”
“김승한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승한의 입에서는 존대가 나왔지만 애초에 영어에는 존댓말과 반말의 개념이 없어서 루이즈는 승한이 자신을 높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반면 승한은 머릿속을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자신을 높여 부를 생각 자체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뭐… 영어니까 어쩔 수 없나?’
머릿속으로는 그의 목소리가 한국말로 들려왔지만 애초에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였고, 한국말을 조금도 모르는 만큼 굳이 그의 말투에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었다.
루이즈가 승한을 향해 손을 건네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러자 예상 외로 선한 눈빛이 나타났다.
턱-.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 루이즈의 손이 워낙 커서 승한의 손이 마치 아기 손처럼 작게 느껴졌다. 그러자 마치 승한의 손 전체를 루이즈의 손이 감싸는 듯이 보였다.
꽈아아악-.
루이즈의 손아귀가 승한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의 악력에 승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장난인가?’
가벼운 장난이긴 했지만 승한은 루이즈가 걸어온 장난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승한은 자신도 손에 더욱 힘을 주어 응수했다.
꽈아아악-.
우득, 우드득-.
‘무슨 힘이……!’
승한은 루이즈의 손에서 느껴지는 힘에 깜짝 놀랐다. 단순히 손이 큰 것뿐만이 아니라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 승한의 힘보다 훨씬 강했던 것이다.
도무지 손을 잡은 악력을 풀어낼 수가 없었다. 승한은 결국 [증폭]의 힘까지 사용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조금은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힘은 루이즈가 훨씬 더 강했다.
“루이즈.”
그 때, 크루먼이 루이즈를 불렀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꽤 오랫동안 손을 잡고 있는 것에서 그가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러자 루이즈가 잡고 있던 손을 풀어냈다. 그 역시 승한을 보며 꽤 놀란 표정이었다. 상대적으로 승한의 손이 더 벌겋게 물들었지만, 루이즈 역시 손을 놓으며 작게 손을 털었다.
“대단한데?”
손을 툭툭 털어내며 하는 말이 진심으로 감탄한 모양이었다. 승한은 비상식적으로 강한 루이즈의 악력에 그의 능력을 추측할 수 있었다.
‘능력이 힘에 치중되어 있는 건가? 아니면 능력을 얻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힘에 능력의 힘이 더해진 건가?’
헌터들의 근력과 악력을 비롯한 모든 힘은 [불굴의 육체]에서 나온다. 이 능력은 이미 근접 전투를 하는 헌터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 알려져 있었고, 헌터들이 가진 힘의 기초와 근간이 되는 능력이기도 했다.
그밖에 다른 능력을 통해 힘을 더욱 강화시킬 수는 있었다. 승한이 가진 [증폭]역시 그런 능력에 속했고, 비슷한 종류의 능력은 여럿 있었다.
승한이 가진 [불굴의 육체]의 레벨은 5레벨. 현재로서는 승한보다 더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높은 헌터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증폭]이라는 능력까지 있는 이상에야, 승한은 자신보다 힘이 강한 헌터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괜히 미국 제일이 아니었군.’
이만하면 꽤 믿을 만했다. 루이즈와의 인사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크루먼은 루이즈를 윤재와도 다시 인사시켰는데, 루이즈는 이번에도 윤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됐습니다. 승한이와 똑같은 장난을 하다가는 제 손이 먼저 으스러질 겁니다.”
[불굴의 육체]라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윤재는 루이즈의 악수를 거절했다. 루이즈는 머쓱하게 웃으며 손을 치웠다.
다른 헌터들은 이미 승한과 윤재가 미국에 도착한 뒤 소개를 받은 상태였다. 크루먼은 루이즈와 승한, 윤재의 인사가 끝나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유롭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이유는 보다시피 화면에 나타난 괴물이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루이즈씨가 도착하자마자 곧장 괴물과 싸웠어야 했겠죠.”
크루먼은 영어로 말했고, 그의 옆에서 해리슨이 한국말로 통역하여 승한과 윤재에게 말해주었다. 이어서 크루먼의 말이 이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괴물은 한국에서 온 김승한 헌터와 김윤재 헌터가 도착하고부터 이 건물에 머물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희는 이렇게 작전을 짤 수 있는 시간을 벌었죠.”
“작전이 뭡니까?”
“첫째, 유인입니다. 도시 북부의 산 가브리엘 산맥의 남쪽 사면으로 괴물을 유인하고, 그곳에서 싸워야 합니다.”
가브리엘 산맥은 L.A의 북쪽에 있는 산맥이었다. 아무래도 도시 한복판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괴물을 유인해서 산맥에서 싸우는 게 도시에 피해가 적을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 다음에는요?”
“사실… 저희는 여러분이 괴물을 쓰러뜨리지 못할 경우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때를 대비해 괴물에게 날릴 전략 미사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사일의 준비. 확실히 파괴력 면에서는 헌터들의 공격보다는 미사일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 주변에 주는 피해였는데, 이를 위해서 산맥으로 괴물을 유인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때를 위해서 여기 있는 해리슨 헌터의 필요합니다. 해리슨 헌터의 능력은 다들 아시죠?”
“미사일이 떨어지기 전에 이동하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피하는 동안 괴물을 막아줄 헌터가 필요합니다.”
크루먼은 그렇게 말하며 승한과 루이즈를 바라봤다.
“가능하겠습니까?”
해리슨을 통해 크루먼의 말을 통역해 들은 승한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네?”
“저희들끼리 괴물을 잡을 수 있다면, 굳이 미사일을 쏘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핵이라도 떨어뜨리는 게 아니면, 저 녀석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번에는 승한의 말을 해리슨이 영어로 통역해 주위에 알렸다. 그러자 루이즈를 비롯한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은 크루먼 역시 크게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미사일이라는 선택은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일 뿐이었다. 헌터들이 저 괴물을 잡을 수 없다면, 미사일을 떨어뜨리고 그마저도 안 된다면 승한의 말대로 전략 핵무기라도 떨어뜨려야 할 판이었다.
“그러니 자네들이 잘 해 줘야겠지. 부탁하네.”
결국 미사일이든 전략 핵무기든 헌터들이 괴물을 잡는 게 가장 좋은 결과였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죠.”
우우우우웅-.
해리슨이이 다시금 공간을 열었다. 괴물이 건물을 휘어감고 있는 지금, 이대로 지상으로 올라가기는 힘들었다. 그러니 해리슨의 능력을 통해 조금 떨어져 있는 밖으로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가장 먼저 루이즈가 균열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를 선두로 헌터들이 하나 둘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건투를 비네.”
크루먼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승한과 윤재 역시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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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을 통해 나타난 모습은 칙칙한 하늘과 함께 검은 인영들이 넘실거리는 거리의 모습이었다. 승한과 윤재를 비롯한 헌터들이 해리슨의 균열을 통해 도착한 곳은 건물을 휘감고 있는 건물이 훤히 보이는 고층 빌딩의 옥상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장관이네.”
윤재는 눈앞으로 바로 보이는 거대한 용 괴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덩치도 덩치지만 생긴 모습이 다른 괴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괴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덩치가 문제가 아니야.’
막상 지하에서 밖으로 나와서 녀석을 마주하고 있으니 느껴지는 기운이 상당했다. 그저 가만히 건물에 몸을 휘어감고 숨을 내쉬고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반악마와 비교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녀석일지도 모른다. 승한은 생각보다 눈앞에 있는 괴물의 상대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뭐, 그래도 능력의 레벨 자체는 금방 올릴 수 있으니…….’
[보유 타임 포인트 : 3155435p]
반악마를 잡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고 있던 타임 포인트였다. 승한은 몇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어디에 이 타임 포인트를 사용할지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1024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성화’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512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귀신’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1024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귀신’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승한은 보유한 타임 포인트를 통해 3개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하나는 성화의 레벨이었고, 2개는 [귀신]의 레벨이었다.
[불굴의 육체]와 [귀신]사이에서 고민하던 승한은 결국 미루고 있던 [귀신]의 레벨을 올렸다. 이미 근력은 충분했고, 필요한 건 움직임과 검을 휘두를 때 힘을 더욱 보태어준 속도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귀신]은 다른 능력에 비해 소모해야 할 타임 포인트의 수치가 더 낮았다. 당장 [불굴의 육체]를 올려야 할 만큼 힘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당장은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두 종류의 능력의 레벨이 오르니 승한은 변화한 자신의 상태를 빠르게 살펴야했다.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변화는 우선 4레벨까지 오른 [귀신]이었다.
단순히 몸이 조금 더 가벼워지는 정도의 변화가 아니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이 허공에 떠 있는 듯했다. 하나가 아니라 능력의 레벨이 순식간에 두 개나 올랐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성화 역시 크게 달라지긴 했다. 하지만 이미 4레벨의 성화는 일전에 한 번 겪어본 적이 있었다. [강신]을 통해 붉은 천사의 힘을 빌려왔을 때, 성화의 레벨이 4레벨까지 올랐었다.
‘붉은 천사가 반응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