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53화 (15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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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성화의 레벨이 올랐음에도 붉은 천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승한은 아롤이 했던 말 중, 신들이 승한을 만나는 건 ‘선택’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아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승한이 필요한 건 능력의 레벨이 올라감으로서 얻는 힘이었지, 붉은 천사와 대화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으니까. 정 필요하다면 [강신]을 사용해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말이다.

‘다시 한 번 [강신]을 사용하게 되면 또 능력의 레벨이 오르는 걸까?’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럴 확률이 높았다. 어차피 눈앞에 있는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강신]의 사용이 필수적이니 곧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저 녀석을 유인해야 하는데, 그 역할은 누가 할까요?”

해리슨이 영어와 함께 한국말로 말하며 승한과 윤재, 그리고 자리에 모여 있는 헌터들을 둘러봤다.

“제가 하겠습니다.”

승한이 손을 들고 나서자 헌터들의 시선이 승한에게로 모여들었다. 한국말을 잘 모르더라도 승한이 자진해서 나섰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부탁드립니다.”

다른 헌터라면 모를까, 승한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었다. 이미 승한에 대한 소문은 미국에까지 퍼져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리에 있는 헌터들도 승한이 이미 한국에서 나타난 거대한 균열의 괴물을 잡았다는 이야기에 그의 실력을 확실히 인정한 상태였다.

“형, 부탁해요.”

“레드 드래곤 말이지?”

“네. 그거라도 있어야 저 녀석 앞에서 안 꿀리지 않겠어요?”

승한의 요구에 윤재가 피식 웃었다. 악마의 날개를 가진 거대한 용과 레드 드래곤의 만남은 꽤나 장관이 될 것이다.

“그래, 알았다.”

화악-.

윤재가 손을 들어 허공을 훑었다. 그러자 거대한 열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헌터들은 윤재가 능력을 사용하자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았다.

곧 작은 불덩이가 생겨나더니 점차 형체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용의 모습이 되었고, 윤재의 레드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르-.

레드 드래곤은 윤재를 한 번 보더니 멀리 떨어져 있는 거대한 괴물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자신과 비슷한 덩치를 가진 괴물에게 적대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레드 드래곤의 등장에 괴물 역시 관심을 가졌다. 아니, 이전부터 괴물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승한과 윤재는 레드 드래곤의 등에 올라탔다.

“빠른 이동이 가능한분들은 알아서 따라 오십시오. 아무래도 흩어져서 움직이는 게 나을 테니까요. 혹시 이동이 불가능한 분들은 이 위로 타시고요.”

“이동이 불가능한 분들은 제 능력으로 이동하면 되니 괜찮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저희 먼저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구구구구-.

레드 드래곤이 날개를 펼쳤다. 다른 헌터들이 해리슨의 능력으로 이동한다면 뒤쳐질 걱정은 없었다.

화르르륵-.

승한의 몸에서 성화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힘은 단번에 괴물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다른 검은 인영들 역시 승한의 성화에 반응했다.

괴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개를 펼친 녀석은 승한과 윤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형, 출발하죠.”

레드 드래곤이 방향을 틀었다. L.A의 북쪽에 있는 가브리엘 산맥을 향해서 말이다.

쿠구구구구구-.

레드 드래곤이 이동하는 속도는 빠르다. 이제 막 날아오르기 시작했는데도 순식간에 날아올라 도시 아래를 스쳐 지나갔다.

승한은 레드 드래곤이라면 괴물을 충분히 따돌리거나 녀석이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유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본 순간, 승한은 그런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뭐 저리 빨라?”

날개를 펄럭이며 입을 벌린 채 날아오는 괴물은 빠르게 레드 드래곤과의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좁혀지는 거리를 보며 승한은 듀란달을 꺼내들었다.

지이이잉-.

승한은 손안에 생겨난 듀란달에 성화를 둘렀다. 조금이라도 거리가 좁혀지는 걸 막기 위해서 승한은 성화를 담은 검격을 괴물을 향해 날렸다.

화아아아악-!

카아아아악-!

성화의 검격을 얼굴에 얻어맞은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얼굴을 크게 흔들며 내지른 비명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승한의 몸이 잠시 얼어붙었다. 괴물의 포효소리에 막대한 마기가 섞여있었다. 괴물은 잠시 주춤했을 뿐, 여전히 레드 드래곤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별 충격이 없는 건가?’

얼굴에 작은 상처가 생기긴 했지만 목숨을 위협할 만한 상처는 아니었다. 저 정도 상처는 백 번을 입힌다 한들 조금 아플 뿐이었다.

조금 더 힘을 끌어내거나, [강신]을 사용해서 확실하게 맞상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거리를 좁혀오는 걸 막기 위함이었지만,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었다.

‘미사일은 어림도 없겠군.’

저만한 방어력이면 미사일을 얻어맞는다 해도 죽지 않을 것이다. 다른 힘도 아니고, 악마에게 치명적인 힘인 성화에 얻어맞고도 저런 충격이라면 말이다.

쿠구구구-.

승한은 검을 휘두르기보다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올림포스]의 힘을 사용했다.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던 괴물의 몸을 거대한 힘이 짓눌렀다. [올림포스]의 힘은 괴물의 몸을 땅 아래로 추락시키지는 못했지만 녀석의 움직임을 훨씬 느려지게 할 정도는 되었다.

크르르르-.

괴물이 입에서 울음소리를 흘렸다. 그 순간, 불길함이 든 승한이 급히 소리쳤다.

“형! 내려가요!”

“뭐?”

승한의 외침에 윤재는 급히 레드 드래곤을 아래로 내렸다. 그 직후, 괴물의 입에서 마기의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콰르르르르-.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숨결이었다. 레드 드래곤의 위쪽을 스치고 지나간 숨결을 보며 승한은 등이 오싹해졌다. 조금만 늦게 피했다면, 저것을 정면으로 얻어맞았을 것이다.

“도착했다!”

몇 분이 되지 않아 레드 드래곤은 가브리엘 산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워낙 거대한 두 용이었고, 기동력도 상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착해 보니 이미 헌터들은 산맥의 아래쪽에서 승한과 윤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쿵, 쿵-.

두 거대한 용이 땅을 밟았다. 괴물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승한과 윤재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굴에 있는 작은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승한이 자신의 몸을 짓눌렀던 것 때문인지 화가 단단히 나보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잡담 떨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해리슨의 인사에 승한은 곧장 듀란달과 함께 방패를 꺼내들며 말했다.

“옵니다.”

쿠구구구구구-.

육중한 덩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물은 빠르게 몸을 띄워 올렸다. 낮게 날아 오른 괴물이 순식간에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날아들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사삭-.

승한의 몸이 사라졌다. 이전보다 훨씬 빨라진 움직이었다. [귀신]의 레벨이 2레벨이나 오른 덕분이었다.

‘못 피할 정도는 아니야.’

방어력이나 덩치에서 나오는 힘은 반악마보다 강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결점이 있다면 덩치가 큰 만큼 느리다는 것이었다. 또한 공격할 수 있는 범위도 훨씬 컸다.

그런 점에서는 반악마보다 상대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재앙이겠지만, [백검]과 성화를 이용해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는 승한에게는 차라리 덩치가 큰 편이 상대하기는 더 나았다.

‘그래도… 방심은 하면 안 되지.’

웬만한 헌터들은 아마 저 방어력을 뚫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승한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승한은 지체하지 않고 [강신]을 사용했다. 이전과는 달리, 처음부터 두 명의 힘을 빌려왔다.

[100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신’을 사용합니다.]

[‘영웅 아롤’의 영혼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능력 - 성검’의 레벨이 일시적으로 1레벨 상승합니다.]

[100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신’을 사용합니다.]

[‘붉은 천사’의 영혼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능력 - 성화’의 레벨이 일시적으로 1레벨 상승합니다.]

[성화에 대한 친화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승한의 몸속으로 두 영혼이 들어왔다. 한 명은 아롤이었고, 한 명은 붉은 천사였다. [성검]과 성화의 레벨이 오르고 아롤의 검술과 성화의 친화력을 얻은 승한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얼마나 됐다고 또 부르냐?’

‘그럴 만한 상황입니다.’

승한은 [강신]을 사용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괴물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당장 공격이 적중했음에도 작은 상처 정도로 그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 그럴 만한 상황은 맞네.’

‘작정을 했군요. 반악마도 아니고, 하급이라고는 하지만 진짜 악마를 보내다니…….’

말이 없던 붉은 악마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승한은 진짜 악마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진짜 악마라고요?’

‘반악마는 아니죠. 그렇다고 아포피스나 듀리안, 루시퍼와 같은 상위 악마도 아니지만… 악마들 사이에서 악마라고 인정받지 못한 악마에요.’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악마는 악마라는 소리였다. 어쨌거나 악마라면 반악마보다는 상위의 존재라는 소리가 아닌가?

‘아직 저런 녀석이 나올 때가 아닌데, 이상하네요. 죽은 자들이 부활한 것도 그렇고…….’

‘저 녀석들도 작정을 한 거지. 그럴 만 하잖아?’

‘그렇다 해도 과해요.’

‘이 녀석이 있잖아. 듀리안을 죽였고, 루시퍼를 죽였어. 저쪽에서도 그럴듯한 리액션 아닌가?’

아롤과 붉은 천사의 대화에서 승한은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붉은 천사의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악마들이 수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고, 반악마와 하급 악마가 나타난 이유가 승한이 부활한 듀리안과 루시퍼를 죽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저 녀석이 루시퍼와 닮은 이유는 같은 악마이기 때문입니까?’

‘그럴 거다. 막 부활한, 그것도 불완전한 상태로 부활한 루시퍼가 변할 수 있는 형태는 하급 악마의 모습 정도일 테니까. 그나저나 악마 놈들이 널 죽이려고 아주 작정을 했나봐. 저 녀석, 다른 놈들은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너만 보는데?’

괴물은 흩어져 있는 다른 헌터들을 무시하고 승한을 집중적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성화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롤의 말을 들어보면 아무래도 애초에 녀석은 승한을 노리고 왔던 모양이었다.

‘조심해라. 악마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취급을 못 받기는 해도, 악마는 악마야.’

‘알겠습니다.’

‘온다.’

쐐애애애액-.

괴물의 거대한 몸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번 날개를 펄럭이자 순식간에 승한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승한은 다가오는 괴물을 피해 움직였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조금 늦었다면 피하지 못할 뻔했다.

그 순간, 승한의 눈과 괴물의 눈이 마주쳤다. 승한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 괴물을 보며 아차 싶었다.

“젠장!”

콰아아아아-.

입에서 뿜어진 보라색 숨결이 승한을 덮쳐왔다. 승한은 [올림포스]를 두른 방패를 앞으로 내미는 한편, 성화를 크게 뿜어내 괴물의 브레스에 맞서려 했다.

하지만 그런 승한보다 한 발 빠르게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우웅-.

파앗-.

승한의 몸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눈앞을 가득 메웠던 괴물의 숨결이 사라지고, 승한의 시야에 멀리 떨어져 있는 괴물의 모습이 나타났다.

“괜찮습니까?”

해리슨이었다. 공간 이동 능력자인 그의 도움으로 승한이 그 자리를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올림포스]와 성화의 힘으로도 괴물의 숨결을 막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는데,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감사는요.”

해리슨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미국과 한국 정도로 거리가 멀지 않는다면 공간이동 능력을 연달아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덩치가 크다고 무시할 게 아니군.’

============================ 작품 후기 ============================

말 없이 1연재 해서 죄송합니다.. 공지를 올렸어야 했는데..

연달아 3일동안 이어진 약속에 글을 적다가 다른 일정과 겹쳐 작업을 다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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