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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57화 (15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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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쾅-!

등을 뒤로 돌린 악마가 땅 아래로 추락했다. 승한과 루이즈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두 사람은 이미 멀리 떨어진 자리에 해리슨과 함께 몸을 피한 상태였다.

“괜찮습니까?”

“……그럭저럭이요.”

간발의 차이로 해리슨이 공간이동 능력을 사용해 승한과 루이즈를 구해냈다. 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악마의 등 뒤에 몸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우웁…….”

승한은 속이 메스꺼워 무언가를 왈칵 토해냈다. 위에서 올라온 검게 죽은피가 토해진 것이었다.

‘그러게 내가 뭐랬냐.’

아롤이 승한을 타박했다. 하지만 승한은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머리가 핑 돌며 세상이 어지럽게 보였다. 정신도 점차 흐릿해 지는 것을 간신히 정신력으로 다잡았다.

“우으윽.”

“쿨럭!”

그리고 그것은 루이즈와 해리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림포스]와 성화로부터 몸을 보호하지 못한 루이즈는 승한보다 상태가 더 심각했다. 그는 승한보다 더 심하게 피를 토하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해리스는 아주 잠시 동안 마기 속에 뛰어든 것뿐이었는데, 어지러운 건지 몸을 조금 휘청거렸다. 그는 승한과 루이즈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런 곳에서 싸웠다고?’

해리슨은 아주 잠시, 찰나 동안 악마가 뿜어낸 마기의 공간 속에 뛰어들었을 뿐이었다. 공간이동으로 승한과 루이즈를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시간으로 본다면 1초 남짓한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잠깐 동안 마기의 영향을 받았을 뿐인데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조금 굳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악마가 만들어낸 마기의 공간 속에서 장시간 동안 버티며 싸운 승한과 루이즈가 괴물로 보였다.

“이주희 헌터, 치료를!”

해리슨은 주희에게 쓰러진 루이즈와 피를 토한 승한을 치료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해리슨 역시 상태가 온전한 건 아니었지만 루이즈와 승한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특히 루이즈는 아예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한가롭게 치료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네?”

“저 녀석, 아직 안 죽었습니다.”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서 악마가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치료는 싸움이 다 끝난 다음에나 받을 일이었다.

“이런…….”

헌터들은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승한과 루이즈가 몸을 망치면서까지 공격을 했건만, 악마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들의 눈에 서서히 공포심이 피어올랐다.

“쫄 거 없어요. 저 녀석도 정상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주희 넌 루이즈씨나 서둘러 치료해줘. 가능한 빨리.”

승한은 주희에게 루이즈의 치료를 맡겼다. 어차피 당장 주희가 전투에 참여해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루이즈역시 정신을 잃고 전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냉정하게 말해 헌터들 중 악마와의 싸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바로 루이즈였다. 승한은 자신이 악마와 싸우는 사이 주희가 루이즈를 회복시키길 바랐다.

“크아아아아아아-!”

악마의 고함이 산맥을 크게 울렸다. 그 속에는 울분과 분노가 가득했다. 승한은 쩌렁쩌렁 울리는 악마의 고함소리에 울상을 지었다.

“아직 힘이 넘치네.”

악마가 다시 일어나 날개를 펼쳤다. 악마의 주위로는 아직까지도 마기가 흩어져 있어 뿌옇게 보였다. 적어도 저 안에서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젠장. 이제 슬슬 힘든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방금 전 악마의 등을 찔렀을 때, 녀석을 확실하게 쓰러뜨렸어야 했다. 다리에 힘을 주려고 해도 힘이 풀리고, 메스꺼운 속 때문에 계속해서 피를 토할 것 같았다.

날개를 펼친 악마가 다가왔다. 녀석도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가슴에는 듀란달에 찔린 상처가 길게 아래로 이어져 있었고, 날개를 펼쳐 날아다니는 모습이 위태로웠다.

“그래, 그래야지.”

승한은 악마를 향해 다가갔다. 주희가 루이즈를 치료하고 있었다. 악마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루이즈만 회복할 수 있다면 확실히 승산이 있었다.

물론 그 시간을 버는 것은 승한 혼자의 역할이 아니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 건 승한과 루이즈 뿐이었다.

헌터들이 악마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들은 악마를 두려워했다. 방금 전 악마가 순식간에 다섯 명의 헌터들을 학살한 장면이 그들의 눈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도망갈 수는 없었다. 사실상 악마와의 싸움은 승한과 루이즈가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계속해서 그 둘에게 맡기는 건 그들의 자존심이 상했다.

“이 빌어먹을 벌레들이…….”

악마는 자신의 주위를 포위하고 나선 헌터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다른 때라면 그들을 비웃으며 순식간에 마기를 날리며 학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승한과 루이즈를 제외한 다른 헌터들은 악마에게는 우스운 상대였다. 하지만 승한의 듀란달과 성화에 당한 상처와 몸속을 헤집어놓은 성화로 인해 악마의 상태는 과히 좋지 못했다.

악마의 몸속에는 아직까지도 승한이 불어넣은 성화가 불타고 있었다. 성화는 악마에게 있어서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치명적인 극독이었다.

힘이 충분했다면 성화를 마기로 상쇄시킬 수 있었겠지만, 그러기에는 악마는 힘이 꽤 많이 빠진 상태였다. 승한과 루이즈를 죽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마기를 뿜어냈고, 몸속에 직접적으로 심어진 성화의 힘이 제법 강했다. 악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성화에 의해 계속해서 약해지고 있었다.

“다 죽어가는 주제에 센 척은.”

승한은 악마를 정면에서 바라보며 그를 비웃었다.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승한은 그의 몸속에 아직까지 성화가 불타고 있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악마는 성화를 꺼뜨릴 만큼의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네놈들 정도는 쉽게 비틀어 죽일 수 있다.”

“네 상태가 멀쩡했을 때도 난 쉽게 못 죽였지.”

“네놈이 혼자였다면…….”

“악마님께서 인간을 상대로 변명이나 하고, 안 쪽팔리냐?”

“크아아아악!”

악마가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세와는 달리 악마의 움직임에는 힘이 없었다. 헌터들은 그가 확실히 약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승한을 대신해 한 명의 헌터가 악마를 막아섰다. 그는 손을 뻗어 눈앞에 투명한 장벽을 만들었다. 악마는 자신을 가로막는 헌터를 한 방에 죽일 생각으로 손을 뻗었다.

콰드드드득-.

쩡-!

악마의 손이 부딪힌 장막이 산산이 깨어졌다. 이전 같았으면 유리처럼 부수어진 장막을 뚫고 단번에 헌터의 목을 움켜쥐었을 테지만, 힘이 빠진 악마는 장막을 깨뜨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 짧은 틈을 다른 헌터들이 놓칠 리 없었다. 헌터들은 일제히 악마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번개가 떨어지고, 거대한 화살이 쏘아졌다. 다양한 능력을 이용해 헌터들은 악마를 공격했다.

“꺼져라!”

악마는 날개와 팔을 휘두르고, 마기를 쏘아내 헌터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전에는 모든 공격을 무시했던 악마였지만, 승한의 성화로 몸이 약해진 지금 헌터들의 공격을 맨 몸으로 막아내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물론 상처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악마는 악마였다. 악마가 쏘아낸 마기를 미처 막아내지 못한 헌터들이 부상을 입고 밀려났다. 하지만 그 뿐이지 이전처럼 한 순간에 목숨을 잃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때, 하늘에서 불을 쏘아대던 윤재의 레드 드래곤이 땅 아래로 내려왔다. 거대한 드래곤은 하늘에서 내려오며 악마의 몸을 짓밟았다.

쉬이이이익-.

쿵-.

“크악!”

레드 드래곤의 발에 짓밟힌 악마는 그 무게에 비명을 질렀다. 이전 같았다면 레드 드래곤 정도는 간단히 찢어 발길 수 있었겠지만, 약해진 탓인지 레드 드래곤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형, 그대로 누르고 있어요!”

승한은 레드 드래곤의 발아래에 짓밟힌 악마를 향해 검격을 쏘아냈다. 승한의 검격에는 성화의 불길이 맺혀 있었는데,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악마와 마찬가지로 승한 역시 힘이 많이 떨어졌고 지치고 부상을 입은 탓이었다.

퍼석-.

승한이 날린 검격이 레드 드래곤의 발 아래 짓눌려 있는 악마의 머리를 강타했다. 깔끔하게 머리를 베어내지는 못했지만 그 충격은 고스란히 악마의 몸에 누적되었다. 악마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뼈가 부러지며 그 파편이 아래로 떨어졌다.

“감히…….”

쿠구구구-.

악마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짓밟고 있는 레드 드래곤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한낱 용족 주제에 누구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냐!”

오만한 외침과 함께 악마가 레드 드래곤의 발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안간힘을 써서 레드 드래곤의 발아래에서 탈출한 대가는 컸다.

푸욱-.

악마의 머리에 검 한 자루가 박혔다. 악마는 텅 빈 눈으로 자신의 머리를 꿰뚫은 검을 바라봤다. 그것은 매우 익숙한 검이었다.

“네놈…….”

“이제 슬슬 죽을 때가 되지 않았냐?”

성검 듀란달. 악마의 머리를 꿰뚫은 검은 바로 승한의 것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움직일 수 있냐고?”

승한의 옆에는 해리슨이 있었다.

“네 말대로, 난 혼자가 아니거든.”

해리슨의 능력은 유용했다. 공간을 비집고 다른 사람을 함께 이동시킬 수 있는 능력은 마기에 몸이 상해서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승한에게 매우 유용한 능력이었다.

승한은 해리슨의 능력을 통해 악마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악마는 다른 헌터들의 공격을 신경 쓰고 있었고, 윤재의 레드 드래곤에게 짓밟혀 있었다. 그 틈에 해리슨은 승한을 악마의 바로 앞까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승한의 검은 악마의 머리를 꿰뚫었다. 승한과 함께, 다른 헌터들 모두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내가… 혼자 죽을 것 같으냐?”

퍼억-.

“커억!”

악마의 손이 뻗어져 승한의 가슴을 꿰뚫었다. 악마의 머리에 검을 박아놓고 있던 승한은 미처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는 피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아마… 그럴 걸?”

“뭐?”

“미안하게도 말이지.”

악마의 손은 승한의 가슴을 완전히 꿰뚫지 못했다. 그의 손은 승한의 가슴을 조금 파고든 정도에서 그쳤다.

승한의 몸을 감싸고 있던 투명한 막. 바로 주희가 걸어준 보호 능력인 ‘천사의 가호’였다. 이전 같았으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꿰뚫렸겠지만, 약해진 악마의 공격 정도는 한 번쯤 막아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올림포스]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승한임에야, 약해진 악마의 손짓 한 번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자, 이제 끝내자.”

화르르르륵-.

승한은 마지막으로 온 힘을 쥐어짰다.

“너 혼자 말이야.”

승한 역시 남아있는 힘은 거의 없었다. 제대로 움직일 힘도 없어서 해리슨의 능력을 빌려 악마의 앞까지 올 수 있었다.

악마를 죽일 수 있는 헌터는 승한밖에는 없었다. 악마는 웬만해서는 죽지 않을 것이다. 승한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쥐어짜는 힘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서 악마를 죽일 수 있는가 없는가가 판가름 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가슴과 함께 머릿속에 들끓는 성화의 힘.

그것은 그렇지 않아도 약해진 악마가 버텨내기 힘든 것이었다. 그의 텅 빈 눈동자가 환하게 밝혀지며 성화의 불길로 이글거렸다.

그리고 이윽고.

[940000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승한의 검과 성화가 악마의 숨통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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