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65화 (16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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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에덴에 오고 나서 가장 놀랄 일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던 차에 승한의 귓가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답지 않은가?”

승한은 고개를 획 돌렸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있을 리가 없었다. 에덴의 땅 위도 아니고, 이 높은 곳에 있으면 누가 있단 말인가?

“여기다.”

하지만 있었다. 승한은 조금 더 위쪽으로 보이는 곳에 새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이 서 있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백발의 머리와 함께 새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그는 이상하게도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누구… 십니까?”

“네가 생각하는 신은 참으로 단순하구나. 이 모습은 신이라기보다는… 산신령에 가깝겠어.”

노인은 허허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승한은 그를 경계했다. 에덴의 존재인 만큼 그 역시 신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경계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승한은 까닭 없이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다른 신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질적인 느낌의 정체는 참으로 모순적이었다.

‘정말… 신 같군.’

그는 에덴에 있는 어떤 신들보다도 가장 신다웠다. 아니, 정확히 승한은 다른 신들은 신처럼 느끼지 않았지만 그 하나만큼은 신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거나 용이나 해태와 같은 모습을 한 다른 신들과는 달리, 그는 승한이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신의 모습에 가장 가깝게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신입니까?”

“에덴의 당에 신이 아닌 존재는 너 하나뿐일 게다.”

그는 승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승한은 그를 올려다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설마 당신이… 에덴의…….”

다른 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에 승한은 그가 에덴의 신이 아닐까 했다. 하지만 그것을 감히 직접 물을 수가 없었다. 말을 다 잇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굳이 말 해 주지 않더라도 아는 모양이구나.”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었다. 에덴의 땅을 내려다보던 그는 승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신이라는 자들을 이런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냐? 참으로 개성 없는 인간이로군.”

“당신의 모습이… 제가 생각하는 신의 모습이라는 겁니까?”

“무의식일 뿐이지만.”

“왜 그런 모습으로…….”

“그럼, 내가 네 앞에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냐?”

노인의 물음에 승한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달리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노인의 존재에 기가 눌렸다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인상을 썼던 노인의 표정이 풀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는 금세 다시 인자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옆집 할아버지처럼 푸근한 인상으로 보였다.

“장난이다. 겁먹지 말거라. 그럴 생각은 아니었으니.”

“예……?”

“난 너희에게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아니, 너희가 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정확할 테지.”

“저희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까?”

“원죄라 함이다. 먼 옛날로부터 이어져온 죄는 지금의 인간들은 물론, 이후의 인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 너희가 내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승한은 확신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가 바로 에덴의 신이자, 자신들의 세상의 신이라고 말이다.

“당신이 저를 여기로 부르신 겁니까?”

“글쎄. 어때 보이나?”

“……당신이 아니고 에덴의 땅으로 신이 아닌 인간을 초대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 같습니다. 평범한 신이 에덴의 땅으로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만.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노인은 여전히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가 신이라는 느낌이 점점 지워져갔다. 신이라기보다는 인간 같았다.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내가 나를 본떠 너희를 만들었으니 말이야.”

승한은 그가 자신의 생각을 읽자 깜짝 놀랐다. 그러다 문득, 아롤이 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떠올랐다.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신은 하나뿐이라고 했었지?’

그게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신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신은 에덴을 비롯해 모든 것을 만들어낸 신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구나. 네가 궁금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닐 텐데?”

“……저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겠느냐? 너희들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헛짓거리들 때문이지. 쯧.”

짧게 혀를 차던 그는 몸을 돌렸다. 그는 끝없이 펼쳐진 에덴의 땅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승한은 그가 보이지 않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답지 않으냐?”

처음 노인이 물었던 질문이었다. 노인은 경황이 없어 대답하지 못했던 그것을 다시 물어왔다.

당연한 질문이었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에덴의 땅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승한이 사는 세상과 닮아있었지만, 에덴은 달리 때가 묻어있지 않았다. 에덴은 처음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름답습니다.”

“너희들의 세상은 어떻지?”

빌딩으로 가득한 도심의 모습과 아름다운 들판을 비교하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세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말하는 것이었다.

분명 승한의 세상과 에덴은 닮았다. 하지만 승한은 에덴과는 달리 자신의 세상은 선뜻 아름답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은 비슷했음에도 말이다.

“왜 대답을 못 하지?”

“그건…….”

“알고 있나 보구나. 너희들의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말이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런 시각적인 모습 따위에 연연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세상은 외적인 것에서 나오지 않았다.

승한은 에덴에 처음 발을 담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 순간의 포근함과 행복함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외적인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에덴이라는 땅과 세상이 가지는 힘이었다.

“왜…….”

“왜냐고 물었느냐?”

노인은 승한은 꾸짖었다. 마치 그 당연한 것을 왜 모르냐는 듯이.

“땅은 사람이 일구는 것이다.”

땅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세상이 어떻게 보여 지는가 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승한은 자신들의 세상을 떠올렸다.

자연을 파괴하고, 건물이 올라왔다. 공장을 세우고, 탁한 매연을 뿜었다. 갯벌을 매우고 인간들의 욕심을 채울 땅을 만들었으며, 서로를 헐뜯고 죽여 자신을 배를 불리기 바빴다.

물론 착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당장 가까이 승한의 주변에만 하더라도 찾을 수 있었다. 승한의 어머니와 승아, 윤재. 그밖에도 찾고자 한다면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대다수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승한이 주희를 욕하긴 했지만 사실상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질 낮은 사람은 차고 넘쳤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부모마저 죽이는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아름다움?

턱없는 소리였다. 승한은 자신이 왜 자신들의 세상을 아름답다고 대답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에덴과는 달리, 자신들의 세상이 어떻게 변해있었는지를.

“……실망하셨습니까?”

승한은 그가 화가 나 있다고 생각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그가 정말 승한의 세상의, 에덴의 신이라면 그야말로 전지전능에 가까운 신이라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승한의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거기에 실망하고 분노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만큼 승한의 세상은 더럽혀져 있었다.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도덕과 윤리가 바닥에 처박히고, 선과 악이 뒤바뀌어 악이 승리하는 세상으로 변해갔다.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망은 오래전에 하였다.”

“선악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것이 시작이었지.”

노인은 부정하지 않았다. 뒷짐을 지고 있던 노인이 오른쪽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과일이 들려 있었다.

승한이 먹은 것과 같은 과일. 승한의 입 안에 다시금 침이 고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주최하지 못할 허기와 욕망이 들끓어 올랐다. 승한의 눈에 욕심이 가득해졌다.

“이것을 먹지 말라 한 이유를 알겠느냐?”

승한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선악과를 보는 순간, 그것을 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참더구나. 갸륵하다.”

노인의 말에 승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순간 처음 선악과를 먹었을 때, 그에게 과일의 이름을 알려 주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혹시 그 목소리가…….”

“욕심과 욕망은 모든 악한 감정의 시작이지.”

노인은 승한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그는 선악과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달콤한 과실이 다시금 에덴의 땅 아래로 떨어졌다.

“인간에 대한 욕망, 음식에 대한 욕망, 잠에 대한 욕망. 욕심이 없으면 미움이 없고, 불행을 모르지. 달콤한 선악과의 과실은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깨우는 시작이었다.”

승한은 선악과의 맛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맛. 이보다 더 입에서 달콤할 수 있을까 싶을 그런 맛이었다. 그런 맛을 한 번 본다면, 다시 먹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불행을 스스로 따먹은 아들과 딸을 내치고, 그들을 위해 7일에 걸쳐 세상을 만들었다. 그들은 더 이상 에덴에 살 자격이 없으니까. 더불어 그들의 영생을 빼앗고, 욕심의 책임을 물어 고통을 깨닫게 하였지.”

“대체 왜… 저희의 세상을 에덴과 같이 만든 겁니까?”

승한의 세상은 에덴과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든 존재는 바로 에덴의 신이었다.

그는 인간을 에덴에서 쫒아내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그들을 위해 에덴과 다른 최초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것도 에덴을 본떠 만든 세상을 말이다.

승한은 그 의도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럴 거라면 대체 왜 수고롭게 세상을 다시 만든단 말인가? 사실상 에덴에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인간에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식을 버리기가 그리 쉽지는 않더구나.”

노인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그 순간, 승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가 에덴과 닮은 세상을 만든 이유. 그것은 에덴에서 추방된 이들을 위함이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계속해서 나를 실망시키더구나.”

노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 속에서도 에덴의 땅을 밟을 자격을 갖추는 인간들은 나타났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들이 대부분이었다. 원죄는 인간을 나락으로 이끌고, 죄를 쌓아갔다. 결국 내 자식들은 부모를 실망시켰지.”

“혹시…….”

“그래. 나는 너희를 시험했다. 그리고 그 시험이 바로, 세상을 뒤집는 것이었지.”

40일간 이어진 대홍수.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재앙이었다. 세상이 뒤집힌다는 의미는 바로 그것이었다.

알고 있었다. 이미 노아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의 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신이 그 일을 행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승한이 놀란 이유는 하나였다.

“시험이라니…….”

그가 대홍수를 ‘시험’이라 말한 까닭이었다. 그것은 재앙이었지 시험이 아니었다. 그렇게 알려져 있었고, 그랬어야만 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당신은, 노아로 하여금 세상을 다시 만드려고…….”

“그래. 노아가 세상을 구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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