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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소모 되는 타임 포인트가 무려 500만이었다. 10만 타임 포인트가 필요했던데 비해 무려 50배로 훌쩍 뛰어올라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니, 500만 타임 포인트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 능력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다음번에 악마가 나타나더라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강림]의 효과는 기본적으로 [강신]과 닮아있었다. [강신]역시도 승한과 연관이 있는 신의 힘을 타임 포인트를 대가로 하여 빌려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림]은 [강신]과는 달리, 신의 힘의 ‘일부’를 빌려오는 것이 아닌, ‘전부’를 빌려올 수도 있었다. 또한 선택하자면 그 신을 직접 소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신의 힘을 온전히 빌려오거나, 그 신을 소환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강림]이라는 능력이었다.
500만 타임 포인트.
다른 때라면 꿈도 꾸기 어려울 만큼 높은 수치의 타임 포인트였다. 하지만 승한에게는 하급 악마를 잡고 획득한 타임 포인트가 있었다. 이거면 [강림]을 한 번 사용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형.”
“응?”
“아직 타국에는 괴물들이 남아있다고 했죠?”
승한의 눈이 갑작스럽게 반짝이며 살아나자 윤재가 다시금 당황했다. 승한이 겪은 일을 알지 못하는 그는 승한이 갑자기 쓰러졌다가 멍하니 일어나고, 갑자기 눈을 반짝이는 게 이상하게만 보였다.
“어, 어. 그런데?”
“안석환씨에게 연락 좀 넣어주세요. 도와야 할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정부에는 연락하지 않고? 아마 이번에도 지난 번 말레이시아처럼 도와야 할 나라를 정해 줄 텐데…….”
한국 정부는 자국의 헌터들을 타국으로 보내는 대신, 여러 가지 이권을 가져오곤 했다. 헌터들에게도 그에 따른 보상이 돌아오는 건 물론이었다.
당장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그런 지원은 헌터 인력이 절실하게 부족한 곳을 알려줄 수 있는 정보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승한은 윤재의 말대로 정부에 연락을 취했다.
승한은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저장해둔 번호를 통해 전화를 걸었다. 잠시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고, 막 신호음이 끊어질 때 쯤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연락을 주실 일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사실 번호를 드리고도 절 찾을 일이 없으실 것 같았는데 말이죠.
“박원영 총리님, 급한 부탁이 있습니다.”
승한이 전화를 건 상대는 바로 박원영 국무총리였다. 가까운 사람인 강동훈 소령에게 연락을 취해도 될 일이었지만 시간을 단축시키기에는 바로 높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게 빨랐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타국에서 지원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들어왔지요.
“가장 급한 곳, 가장 위험한 곳이 어디입니까? 괴물들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요.”
승한의 질문에 박원영 총리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승한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십니까?
“이유는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보다 얼른 알아봐 주십시오. 한 시가 급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승한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잠시 대답이 없던 통화음 사이로 부스럭거리며 종이를 넘기를 들려왔다. 아무래도 서류를 뒤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필리핀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온 게 있습니다. 그밖에 러시아와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 12개국에서 지원이 들어왔습니다.
“필리핀을 언급하신 건, 그곳이 가장 급하다는 의미입니까?”
-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헌터의 수가 부족한 곳이니까요. 인구밀집도와 비교하자면 턱없이 부족한 곳 중 한곳입니다.
아무래도 그는 지원이 들어온 나라의 인구와 헌터의 수를 고려해 승한에게 정보를 전해준 모양이었다. 박원영은 타국의 헌터 전력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꿰뚫고 있었다.
-혹시 필리핀으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네. 지원이 들어왔다면 저와 김윤재 헌터가 그곳으로 가는 걸로 처리를 좀 해주십시오.”
-이동은 어떻게…….
“능력을 이용해서 갈 수 있습니다. 필리핀까지는 금방 갈 수 있을 겁니다.”
윤재의 레드 드래곤을 이용하면 필리핀까지는 몇 시간 걸리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비행선을 타는 것보다도 더 빨랐다.
-알겠습니다. 그럼 승한씨와 김윤재씨가 필리핀으로 지원을 가는 것으로 해 두겠습니다. 그곳에서의 성과는 따로 보상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에 더 지원을 필요 없겠지요?
“네. 저와 윤재형 둘이면 충분합니다.”
-다행이군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워낙 지원 요청이 들어온 곳이 많아서 말입니다. 그럼 필리핀 정부에는 연락을 해 두겠습니다. 다른 헌터가 오지 않더라도 승한씨가 온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건투를 빕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승한은 그의 말이 끝나자 급히 전화를 끊었다. 승한은 다시 윤재에게로 시선을 돌려 물었다.
“형, 부탁해요.”
“……그래,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자.”
딱-.
윤재가 손가락을 튕기며 불을 피웠다. 작은 불이 점차 커져 레드 드래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운동장만한 크기였지만 승한은 윤재의 레드 드래곤이 작다고 느꼈다. 에덴에서 본 드래곤의 모습이 워낙 컸던 탓이었다.
이미 한 번 에덴에서 본래의 모습을 가진 드래곤을 만났었기 때문일까? 전혀 다른 장소에서 금방 다시 마주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크르르르르-.
레드 드래곤은 모습을 드러내자 윤재가 아닌 승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중간에 승한이 자신의 머리 위에서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레벨밖에 되지 않는 윤재의 능력으로 레드 드래곤을 소환해 타인과 소통하게 만드는 것은 무리였다. 일부 힘을 가지고 소환된 레드 드래곤은 윤재 외에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쉬익-.
승한은 윤재의 옷을 잡고는 빠르게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레드 드래곤의 등 뒤에 타자, 레드 드래곤이 윤재의 명령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왜 이리 갑자기 급해?”
“당장 타임 포인트가 필요해요.”
“타임 포인트가 필요하지 않을 때가 어디 있었어? 그게 갑자기 급해 질…….”
“500만.”
승한은 오른손을 펼쳐보이며 말을 이었다.
“새로 얻은 능력을 한 번 사용하는데 500만 타임 포인트가 필요해요.”
“……능력의 레벨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사용하는데?”
“애초에 다음 레벨이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에요.”
“대체 무슨 능력인데?”
승한은 윤재에게 [강림]에 대해 알려주었다. 윤재 역시도 승한이 놀랐던 것처럼 경악했다.
“신을… 소환한다고?”
“네. 제가 그 힘을 모두 사용할 수도 있고요.”
“어, 얼마나 오랫동안?”
“대충 한 시간 정도… 일 거예요.”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이지, 일거라는 건 뭐야?”
“확실하게는 모르겠어요. 그냥 그 정도 될 거라는 감은 오는데,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강림]의 지속시간은 영구적이지 않다. [강신]역시도 대략 한 시간이 되지 못해서 힘이 사라지곤 했다. 승한은 [강림]도 [강신]과 마찬가지로 지속시간이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 능력만 있으면, 악마가 와도 문제없겠는데?”
“일회성 능력이라는 게 문제죠. 한 번 사용하면 끝이에요. 다시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500만 타임 포인트가 다시 필요하죠. 게다가 능력의 레벨이 3레벨 이상이 되어야지만 사용이 가능해요.”
승한이 가진 능력 중, 3레벨을 달성한 능력은 성화뿐이었다. [성검]은 2레벨에 머물고 있었고, [올림포스]역시 2레벨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림포스]는 3레벨까지 올리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800만 타임 포인트가 넘게 필요한 [성검]과는 달리, [올림포스]는 200만 타임 포인트면 충분했다. 이 정도는 금방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화 하나만으로도 당분간은 문제 없겠지.’
성화의 주인인 붉은 천사는 한 세상의 신으로 받들어지는 존재였다. 이름 있는 고위 악마인 아포피스를 봉인했을 정도의 신이라면 충분히 믿을 만했다.
그래도 가능하면 다른 능력들도 3레벨까지 달성해 놓는 편이 속은 편할 것이다. [강림]역시 [강신]처럼 다수의 신의 힘을 몸에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500만이라… 아득하군.”
“적지 않죠. 다행히 악마를 잡고, 얻은 타임 포인트가 꽤 되요. 한 번 정도는 사용할 수 있어요.”
“한 번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불안하죠. 적어도 두 번은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타임 포인트를 모아둬야 해요.”
분명 [강림]은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긴 하지만 신의 힘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악마를 막아낼 수 있는 희망이 생긴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단지 한 번 사용할 정도의 일회성 능력이라면 큰 수확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승한은 [강림]의 지속시간조차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얼마나 그 힘이 지속되는지 알 수 없는 만큼 되도록 타임 포인트를 많이 모아두어야 한다.
“그래서 괴물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가려는 거냐?”
“네. 한국은 다른 헌터들이 대부분 괴물들을 정리한 상태라고 하니까요. 비교적 헌터들의 수가 부족한 타국에서 타임 포인트를 모아둘 생각이에요.”
“바쁘겠군.”
윤재는 승한이 갑작스럽게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를 깨닫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역시 넌 대단한 녀석이야.”
승한이 그러했던 것처럼 윤재 역시도 루이즈에게 악마들과 사탄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는 머릿속이 복잡해져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앞으로의 일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승한의 존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작해야 하급 악마에 불과한 존재를 간신히 쓰러뜨리고서야 다른 악마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승한의 이야기를 듣고서 윤재는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설사 악마가 나타나더라도 승한은 신의 힘을 직접 빌려올 수 있었다. 그거라면 희망이 있었다.
물론 윤재와는 달리 승한의 머릿속은 마냥 희망으로 가득하지만은 않았다. 승한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에덴에서의 일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어찌되었든…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되겠지.’
승한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강림]이라는 능력을 얻게 됨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늘어났을 뿐이었다.
승한과 윤재를 태운 레드 드래곤의 몸이 필리핀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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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한과 윤재는 박원영이 빠르게 손을 써둔 덕분에 수고할 것 없이 필리핀 정부와 마주할 수 있었다. 윤재의 능력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던 박원영은 승한과 윤재가 레드 드래곤을 타고 필리핀으로 갈 것을 알고 있었고, 미리 필리핀 정부 측에 승한과 윤재를 부탁한다고 연락을 해 둔 것이었다.
승한과 윤재는 필리핀 정부의 안내를 통해 검은 인영들이 정리되지 않은 구역을 설명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관계자가 있었고, 전음구가 있는 이상 언어의 장벽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상황이 더 최악이군.”
“인구가 1억이 넘는데 활동 가능한 헌터는 3천명이라니. 게다가 땅덩이는 한국보다 세 배는 넓고…….”
필리핀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나마 처음에 있던 헌터 5천 명 중에서 2천명이 죽고 남은 수가 3천 정도였다. 이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끝내주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