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4 / 0223 ----------------------------------------------
23. 죽은자
승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듀란달을 꺼내들었다. 동시에 등 뒤에 메어두었던 방패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꽈앙-!
승한의 방패에 부딪힌 작은 창 하나가 폭발했다. 보라색의 마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주위를 휩쓸었다. 정면에서 창을 얻어맞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퍼져나간 마기만 하더라도 만만치 않았다.
파즈즈즉-.
투명한 막에 가로막힌 마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바로 에밀리가 만들어낸 막이었다. 회복보다는 방어 능력에 특화된 헌터라더니, 방어 능력이 꽤나 뛰어났다.
“이건…….”
에밀리가 깜짝 놀라 창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승한은 곧장 몸을 날렸다. 위에서 날아오던 악마가 날개를 크게 펼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승한은 듀란달을 들고 악마를 정면에서 막아섰다. 주희가 승한의 몸에 버프를 걸어주었다. 악마가 다시금 손에 마기의 창을 만들어 승한을 향해 찔러왔다.
쩌엉-!
화르르르륵-.
마기의 창과 듀란달이 부딪히자, 황금색의 성화가 피어오르며 둘의 사이를 떨어뜨려 놓았다. 승한은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전과는 달리 [성검]이 2레벨에 불과한 승한은 정면으로 악마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불굴의 육체]를 올리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네.’
천사들은 악마를 모두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천사들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악마 하나가 승한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나마 둘이 아니고 하나밖에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물론, 이전보다 [성검]의 레벨이 하나 부족한 것 외에 지금의 승한에게는 여러 가지 이점이 더 있었다.
성화의 레벨이 6레벨까지 올랐으머, [불굴의 육체]와 [올림포스]의 레벨도 더 높아졌다. 이 정도면 [성검]의 부족한 레벨 하나를 메우고도 남을 만큼의 성과였다. 특히 성화의 힘은 5레벨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높았다.
‘문제는 내 힘이 멀쩡하지 않다는 건데…….’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더 높아지긴 했지만 이것만으로 성화를 이전처럼 다룰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더군다나 소모된 힘이 회복되는 것도 어느 정도일 뿐, 완벽하지는 않았다.
절반. 승한은 [불굴의 육체]의 레벨을 올리고, 주희와 에밀리의 능력으로 회복된 자신의 힘이 딱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의 힘만으로 눈앞에 있는 악마를 막아야 한다.
“하아, 빡세네.”
다시 한 번 타임 포인트를 사용해야 하나 고민이 됐지만 뒤로 묻어두었다. 여기서 더 타임 포인트를 소모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스테이지를 통과하기 위한 방책으로 한 번, 다음 번 괴물들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한 번. 최소한 두 번의 [강림]을 사용할 만큼의 타임 포인트를 남겨 두어야 하니 말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화악-.
승한은 듀란달에 성화의 힘을 가득 머금었다. 황금색의 성화는 지금까지보다 더욱 뜨겁고 신성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듀란달 자체의 힘도 있지만, 성화의 힘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라 자신감은 충분했다.
[성검]의 레벨이 부족한 만큼 정면 싸움보다는 되도록 방어 위주로 싸울 생각이었다. 루이즈처럼 악마의 움직임을 막아줄 헌터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루이즈는 마물들과 싸우고 있었다.
악마는 승한이 가진 성화의 힘을 경계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그가 가진 대부분의 힘을 경계하고 있었다. 듀란달이라는 검과 [올림포스]라는 힘까지, 승한의 힘은 어느 하나 무시할 수 없었다.
“귀찮은 힘을 쓰는군.”
“너야말로 아주 귀찮은 녀석이야.”
승한은 성화를 머금은 듀란달을 휘둘렀다. 황금색의 검격이 뿜어지자 악마는 날개를 펄럭이며 그것을 피해냈다. 정면으로 부딪혀오지 않고 피하는 것을 보면 역시나 성화의 힘을 정면으로 받아내기는 힘에 부친 모양이었다.
악마는 순식간에 검격을 피해 승한에게 다가왔다. 승한은 일전에 하급 악마와 싸웠을 때를 떠올리며 성화의 장막을 펼쳐 앞을 가로막았다. 악마는 잠시 멈칫하더니 성화의 장막을 손으로 찢어내며 다가왔다.
사아악-!
성화를 머금은 듀란달이 악마의 손을 정면에서 받아냈다. 동시에 악마의 몸을 [올림포스]의 힘이 짓눌렀다.
“큭.”
순간적으로 몸을 짓누르는 힘에 악마가 잠시 휘청거렸다. 이전과는 달리 3레벨까지 오른 [올림포스]의 힘은 꽤나 효과적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밀려났을 승한은 [올림포스]의 힘을 이용해 악마의 힘을 최소화시켰다.
서억-.
검과 악마의 손이 부딪히며 손아귀를 베어냈다. 베어낸 자리로 성화의 불길이 스며들었다. 어지간한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을 하겠지만, 성화의 힘은 악마의 마기를 억제시키며 상처를 회복시키는 것을 방해했다.
[올림포스]의 힘이 악마의 힘을 억제시켰다. 짓누르는 힘 때문인지 악마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했다. 승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사악, 촤아아악-!
듀란달이 악마의 손을 가르며 가슴을 베었다. 뼈밖에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뼈가 베어지만 그 속에 있던 마기가 흘러 나왔다.
악마는 펼친 날개를 오므려 승한과 자신의 몸을 함께 감쌌다. 승한은 급히 검로를 바꾸어 날개를 베어내려 했다.
사악-.
느낌이 왔다. 하지만 악마의 날개는 완전히 베어지지 않았다. 악마는 자신의 날개가 베어지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승한의 몸을 날개로 감싸 붙잡았다.
“이런!”
승한은 급히 빠져나가려 했지만 한 발 늦은 상태였다. 성화를 머금은 듀란달이라면 날개를 베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악마의 날개는 훨씬 더 단단했다. 단숨에 베어내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승한은 급히 몸을 오므리고 [올림포스]의 힘으로 몸을 보호했다. 거대한 한 쌍의 날개가 승한의 몸을 뒤덮고 그대로 날아올랐다.
“같잖은 짓도 이제 끝이다.”
악마의 뼈뿐인 얼굴이 웃었다. 일단 손안에 들어왔으니 이제 승한을 죽이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악마는 그대로 자신의 날개에 가둬진 승한을 자신의 마기로 썩혀 죽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날개 속에서 악마의 마기가 꿈틀거렸다.
“이건……”
악마는 승한을 붙잡고 있던 날개를 펼치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악-!”
화르르르륵-.
둥글게 승한을 감싸고 있던 날개를 풀자, 그 속에서 뜨거운 성화의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승한은 온 몸에 성화를 두른 채 듀란달을 높게 들어올렸다. [귀신]을 이용해 허공을 밟으며 승한은 악마의 가슴을 다시금 크게 베었다.
방금 전 베었던 자리 그대로! 승한은 이미 한 번 검을 휘둘러 베었던 검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가 아닌 손으로 말이다.
서걱-.
악마의 가슴이 크게 베어졌다. 방금 전 승한의 검격이 얕았다면, 이번엔 훨씬 더 깊었다. 단숨에 숨통을 끊지는 못했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상처임에는 분명했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성화를 머금은 듀란달은 그 상처 속에 황금색의 성화를 남겨두었다.
“네놈이!”
“퍼펑.”
승한의 입술이 달싹이는 순간.
콰아아아앙-!
악마의 몸속에 남아있던 성화가 승한의 의지를 받아 폭발했다. 그 폭발에 악마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이전에도 악마는 몸속에 스며든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는데, 이번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성화였다.
악마의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날개를 펼칠 힘조차 없었다. 타임 포인트 획득 메시지가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쓰러뜨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아. 하아.”
승한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악마를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올림포스]와 성화로 몸을 보호하긴 했지만, 악마의 날개에 덮어져 마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역시 고통스러웠다. 더군다나 방금 전 일으킨 성화의 폭발은 거의 성화를 온 힘을 다해 뿜어낸 것이었다.
“힘들다.”
승한은 마기로 상처 입은 온 몸이 따끔거려 인상을 찌푸렸다. 다행히 힘은 그렇게 많이 소모하지 않았다. [올림포스]와 성화를 동시에 사용했다고 해도, 악마가 무리해서 도박을 걸어준 덕분에 일찍 싸움을 끝낼 수 있었다.
‘뭐, 그게 아니었어도 제대로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면 당하는 건 나였겠지만.’
승한은 듀란달을 내려다보며 방금 전의 상황을 다시 돌이켜 보았다.
3레벨의 [성검]으로는 역시나 악마를 단칼에 베어낼 수 없었다. 검의 예리함이나 검에 실리는 힘도 훨씬 떨어졌고, 듀란달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도 2레벨과 3레벨은 큰 차이가 있었다. 제대로 가슴을 베어내려고 했는데도 얕은 상처에 그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승한은 악마의 가슴에 한 번 상처를 입히고, 그 검로를 따라 상처 위를 다시 한 번 똑같이 베어냈다. 그 덕분에 [성검]의 레벨이 이전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악마의 몸을 크게 베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승한이 그와 같은 일을 하지 못했다면 다시금 당하는 건 승한이 되었을 것이다. 승한은 자신이 그 검로를 똑같이 복기해 내었다는 사실이 감탄스러웠다.
‘[성검]덕분인가?’
아롤의 검 듀란달을 얻고, 그의 검술과 능력을 얻는 능력. 승한은 자신의 검술 실력이 늘어난 이유가 [성검]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강신]을 통해 [성검]을 3레벨까지 올렸던 때의 감각이 아직 남아있거나.
‘뭐든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어쨌든 악마 하나를 쓰러뜨렸다. 승한은 힘을 미처 다 회복살 틈도 없이 천사들과 악마들이 싸우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승한의 성화에 의해 조금 타격을 입은 악마들을 상대로 천사들은 꽤나 잘 싸워주고 있었다.
악마 하나를 놓친 건 아무래도 큰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오히려 악마의 수가 하나 줄어들자 밀리지 않고 꽤나 안정되게 싸우고 있었다. 신수들과 마물들은 천사와 악마들의 싸움에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다음으로 승한은 마물들과 싸우고 있는 헌터들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싸우고 있었다. 헌터들의 수준이 높아서일까? 그들은 신수들을 도우며 마물들을 점점 더 빠르게 몰아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왕좌왕하던 헌터들도 다수와 함께 싸우며 점차 호흡이 맞춰갔는지 공격과 수비, 보조, 그리고 빠질 땐 빠지고 몸을 회복하고 다시 싸우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전 세계의 헌터들이 모두 힘을 합쳐 싸우고 있었다. 생각보다 큰 피해는 없어보였다. 승한은 굳이 헌터들을 도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상황이 꽤 좋아.’
헌터들이 마물들을 밀어내고 있는 건 꽤나 희소식이었다. 아직까지도 마물들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이쪽에도 신수들이 있는 건 마찬가지. 헌터들이 이대로 큰 피해를 입지 않고 계속해서 마물들을 상대로 피해를 입혀 준다면 승기를 잡아오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 왜…….’
승한은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천사들과 악마들에게로 시선이 돌아갔다. 분명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굳이 [강림]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될 정도로.
하지만…….
‘왜…… 불안하지?’
승한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단순한 예감만이 아니었다. 승한의 몸속에 있는 성화가, 조금씩 그 불길함을 감지하며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