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89화 (18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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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사람이 너무 없어서 말입니다. 도로 주행 하는 기분더라고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시내 한복판에 차를 끌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긴 했다. 그래도 승한이 아는 안석환은 사람이 많은 거리로 차를 끌고 다니는 편은 아니었다. 몇 번 그의 차를 얻어 타봐서 안다.

“어디로 갈까요? 보아하니 식당이나 카페는 문을 연 곳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자리라면 근처에 있는 저희 기업으로 가시죠. 거긴 오늘도 문을 열었거든요.”

아무래도 화안그룹은 오늘 같은 날에도 출근을 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화안 그룹의 본사는 헌터가 직접 지키고 있다고까지 할 정도이니 안전상의 문제는 없을 것이다.

“타시죠.”

승한은 조수석에 앉았다. 시내 한복판에서 시동을 걸며 안석환이 운전하는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로는 한산했다. 안석환이 탄 차가 빠르게 속도를 밟았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니 금방 도착할 것이다.

“활약은 잘 봤습니다. 대단하시더군요.”

승한은 그 역시 7스테이지를 통과했던 헌터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8스테이지 내에 워낙 많은 헌터들이 있어서 그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역시 승한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아닙니다.”

“겸손은 이럴 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승한씨가 아니었다면… 헌터들은 다 죽었을 겁니다.”

“죽는 게 아니라 스테이지를 통과하지 못하는 거였겠지요.”

“뭐, 비슷한 것 아닙니까? 승한씨도 알다시피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은 각국의 최고 실력자들입니다. 그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하지 못한다면 다음에 나타나는 괴물들을 막아낼 확률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그 뒤의 일이야 뻔하지요.”

사실상 괴물들을 막아내고 있는 건 군인들이 아닌 헌터들이었다. 괴물들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군인들의 총화기는 먹히지 않았고, 그들을 막아낼 수 있는 존재는 헌터들밖에 없어졌다.

“대체 그건 뭐였습니까? 승한씨가 대단하다는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스테이지에서 승한씨가 보여준 그 능력은 반칙 아닙니까?”

“절 보려고 한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까?”

“뭐, 겸사겸사지요.”

하긴, 궁금하긴 할 것이다. 그만큼 승한이 보여준 능력은 다른 헌터들과는 규모나 힘의 크기가 전혀 달랐으니 말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능력이 어느 신에게서 빌려온 작은 힘이라면, 승한은 그들보다 더 높은 고위 신의 힘을 직접 사용하는 것이니 말이다.

승한은 자세한 것을 말해줄까 하다가 말았다. 안석환이 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일일이 다 말해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당장 승한만 하더라도 안석환의 능력을 다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얘기할 마음이 들지 않는군요.”

“그렇습니까? 그러시다면야.”

안석환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지만 그렇다고 재촉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승한은 적이라기보다는 아군에 가까웠고, 그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전혀 나쁠 게 없었다.

8스테이지가 끝난 이후 승한에 대한 입지는 이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그렇지 않아도 승한은 루이즈와 함께, 아니 어쩌면 독보적이라 할 만큼 세계적으로 알려진 헌터였다.

하지만 이번 승한의 활약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8스테이지에 도전한 헌터들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헌터들. 그들 모두가 승한의 얼굴을 알고, 그의 실력을 눈앞에서 확인했다.

“그거 아십니까? 이번에 승한씨의 활약이 영상구에 다 남겨졌다는 것을요.”

“영상구에요?”

“네. 그 자리에 있던 헌터들의 수가 수만 명이었습니다. 그 중 영상구를 가지고 있는 헌터가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몇몇 헌터들은 자신의 스테이지 속 과정을 영상구로 기록해놓곤 하는데, 이번 스테이지는 다수의 헌터들이 함께 진행하는 이유에서인지 영상구를 작동시킨 헌터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저희 한국의 헌터들도 있지요.”

안석환은 한국 내의 헌터들 가운데서 정보통이었다. 화안 그룹을 등에 업은 그는 헌터 연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며 헌터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는 남들이 아는 대부분의 정보를 알고 있고, 남들이 모르는 정보까지도 손에 쥐고 있었다. 승한이 그를 가까이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저 역시 승한씨의 영상을 저장해 뒀습니다.”

“……안석환씨도 말입니까?”

“네.”

안석환은 운전대를 왼 손으로 잡으며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영상구를 꺼냈다. 그것을 한 손으로 잡자, 영상의 내용이 머릿속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승한과 하급 악마들의 싸움. 그리고 바알의 등장과, 승한과 바알의 싸움. 짧은 시간이었지만 승한은 영상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승한씨를 만나고자 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이거라니요?”

“승한씨가 강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독보적으로 말입니다.”

승한은 수만 명의 헌터들이 조금의 생채기조차도 내지 못했던 바알을 쓰러뜨렸다. 단순히 생각해 봐도 승한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헌터들 수만 명을 합친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제약이 뒤따랐다. 500만 타임 포인트를 소모해야하며,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에는 제약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러한 점을 모두 고려해 봐도 승한의 존재는 다른 헌터들에게 있어서 반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요?”

“승한씨가 중심이 되어 주십시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헌터들로부터 말입니다.”

헌터 연맹이 창설된 처음 목적은 헌터들의 이익이었다. 겉으로는 헌터들의 담합을 통해 괴물에게서 발 빠르게 대응을 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끌어 모은 안석환은 화안 그룹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헌터 연맹의 성질은 차차 바뀌었다.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 그대로 말이다.

괴물에게 대항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헌터 연맹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한 편, 정부와의 조율과 헌터 연맹 자체적인 소통을 통해 괴물로부터 발 빠르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이익을 챙기기보다는 정부와의 불협화음을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헌터 연맹 자체에서도 정보를 공유하고 능력을 키우는 한 편, 그들끼리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가 내부적인 관계일 뿐이다.

끼이익-.

안석환의 차는 수십 층 높이의 거대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서초구에 있는 화안 그룹의 본사였다.

다른 건물들은 불이 다 꺼져있었는데, 화안 그룹의 사옥은 군데군데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였다. 안석환은 차를 아무데나 주차시켜 놓고는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서 하도록 하죠.”

안석환은 그렇게 말하고는 앞장섰다. 승한은 안석환의 뒤를 따라 화안 그룹의 본사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안석환은 답답한 듯 넥타이를 풀러 어깨에 걸쳤다. 몇몇 사람들이 1층에서 안석환과 승한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승한은 그들 중 한 사람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헌터군.’

느껴지는 기운이 남들과 달랐다. 수준이 아주 높다고 볼 수는 없지만 헌터임에는 분명했다. 화안 그룹의 본사를 지키는 헌터들이 따로 고용되어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진짜인 듯했다.

“어서 오십시오, 안석환님. 회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안내해 주세요.”

승한과 안석환은 앞장선 헌터의 안내를 받아 위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끝없이 올라갔다. 아무래도 꽤나 높은 곳에 회장실이 있는 모양이었다.

‘화안 그룹의 회장이라…….’

승한은 갑작스럽게 너무 큰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당황스럽거나 긴장이 되지는 않지만, 안석환이 자신의 아버지이지 화안 그룹의 회장을 소개시켜주는 건 의외였다.

화안 그룹은 이미 한국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그룹이었다. 1980년도부터 화안 주식회사를 중축으로 형성된 기업체로 대기업중의 대기업,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화안 그룹의 회장이라면 이미 한국의 대통령과도 맞먹는 권력과 권위가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사람은 총 여섯 명이었는데,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 네 명이 갈라서며 자리를 비켰다. 승한과 안석환이 가장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경호원들이 그 뒤를 따라붙었다.

회장실은 엘리베이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헌터로 보이는 경호원이 승한에게 악수를 건넸다.

“승한씨의 이름은 많이 들었습니다. 한 번쯤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얼굴을 뵐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승한은 그가 건넨 손길을 맞잡았다. 얼굴 한 번 본 거 가지고 영광이라느니 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별 말씀을요.”

한 번 악수를 나누고 나자 그는 회장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들어가시죠. 회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예.”

안내를 마친 경호원들은 회장실의 앞에 섰다. 안석환이 회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회장님, 안석환입니다. 승한씨와 함께 왔습니다.”

“어서 들어와라.”

대답이 들려오자 안석환이 문을 열었다. 승한은 그 뒤를 따라 화안 그룹을 책임지는 회장의 집무실로 발을 들였다.

‘넓군.’

한 명을 위한 공간치고는 지나치게 넓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럼에도 텅 비어있지 않고, 꽉 차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 편으로는 어지럽혀지지 않고 정리가 잘 되어있었다. 집무실의 인테리어는 고급스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싸 보이지도 않았다. 사치스럽지도 소박하지도 않다.

‘저 사람이 화안 그룹의 회장.’

화안 그룹의 회장 안철환. 그는 승한을 맞이하며 반갑게 웃고 있었다. 아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안철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집무실 한쪽의 자리를 가리켰다. 손님과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는지 상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두 개의 소파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앉으시죠.”

승한은 그의 말대로 자리에 앉았다. 푹신한 소파의 느낌이 썩 편안했다. 이대로 앉은 채로 잠이 들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건 얼마 짜리일까.’

흔히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화안 그룹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만큼 한국 내에서 화안 그룹이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그들의 사업 하나에 움직이는 돈만 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곳의 회장이 바로 안철환이었다. 그리고 그가 머무는 곳을 꾸며놓은 가구라면 그 가격이 얼마가 될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마 승한이 아는 소파의 가격과는 천지차이일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마실 거라도 내 오도록 하겠습니다. 커피? 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냉수 한 잔이면 됩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안철환은 상 가장자리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여기 냉수 세 잔만 가져다주게.”

안석환의 의견은 듣지도 않았다. 승한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원래는 그렇게까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헌터가 된 이후로 사람들의 감정이나 기분 같은 것들이 쉽게 느껴졌다.

‘안석환을 아들로 생각하기나 하는 건가?’

집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안철환은 안석환에게 시선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병풍처럼 있는 듯 마는 듯 취급하고 시선은 오직 승한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말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냉수나마 2개가 아니라 3개로 가져오게끔 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요?”

승한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자리에 오래 있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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