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94화 (19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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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안석환의 표정이 살벌해졌다.

“당신은 별 생각 안 했겠지. 그래도 아들이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부족함 없이 키웠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나도 당신 덕분에 남들보다 더 좋은 집, 좋은 음식, 좋은 옷 입고 살 수 있었어.”

찰칵-.

안석환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것은 그가 오래 전부터 차고 있던 시계였다.

“당신이 준 돈으로 산 물건들. 모든 사실을 알고 나고부터 다 구역질이 나더라. 그런데도 당신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건, 당신이 아버지이고… 그래도 이렇게나마 날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안석환은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

안철환이 있는 서울 강남과는 멀리 떨어진, 안양이라는 도시에서. 그에게는 보모가 있었고, 집사가 있었다. 집으로는 매 달 거액의 돈이 보내지고 부족함이 없이 아니, 풍족하다 못해 남들보다 넘치도록 가질 수 있었다.

안석환은 그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나마 아버지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안철환을 만나고 난 뒤 사라졌다.

그는 자신을 아들로 생각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치부일 뿐. 어머니와는 달리 그래도 피가 섞인 피붙이기에 죽이지는 못했을 뿐이었다.

“모든 일을 알게 되고, 내가 당신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은 미안하다는 거였어. 버려둬서 미안하다고. 그때 일을 후회하고 있다고. 그런데 당신은 날 도구로밖에 보지 않았지. 당신 아들이니까, 당연히 당신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그렇지?”

“그건…….”

“입 열지 마! 아직 말 안 끝났어.”

안석환의 외침에 안철환은 입을 꾹 다물었다. 서슬 퍼런 기세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안석환은 작게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지. 아버지라고도 부르지 못하게 하는 당신을 보며, 난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걸 포기했어. 그 대신 당신이 후회하기를 바랐지. 나를 버린 걸, 어머니를 죽인 걸.”

안석환의 어머니에 대한 죽음이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거론되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승한과 안철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안철환이 안석환의 아내이자, 자신과 살을 섞은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지. 어떻게 해야 날 버린 걸 후회하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보니 내가 당신보다 더 위로 올라가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 내가 저렇게 대단한 아들을 버려두었구나, 하고. 그때 와서 다시 아들이라 부르며 손을 뻗으면 그 손을 뿌리칠 생각이었어. 당신이 뼈에 사무치게 후회하도록.”

“……지금 내가 후회하는 것처럼 보이느냐?”

“아니. 화내는 것처럼 보여.”

안철환은 안석환을 놓친 걸 후회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안석환의 행동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안철환의 모습에 또 다시 안석환을 화가 났다. 결국 안철환은 후회하지 않았다. 원래 안석환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래, 당신은 후회하지 않고 있지. 내가 잘못 본 거야. 당신은 어떤 일에 후회할 사람이 아니었어. 잘못 된 일이 있으면 후회하기보다는 잘못 된 일을 바로잡고, 바로잡을 수 없다면 포기하는 사람이지.”

“그것을 알면서도 이런 일을 벌인 거냐?”

“아니, 알고 벌인 일이 아니야. 이제 알게 된 사실이지. 그렇잖아? 내가 당신을 처음 본 건 몇 달 되지 않은 일이라고.”

“결국… 원하는 건 내 입으로 널 버린 것에 대해서 사과 받고 싶었던 것이냐?”

안철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표정이 씁쓸하게 번졌다.

“돌아가자.”

안철환이 몸을 돌렸다. 그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할 말도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네놈에게 사과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원히. 후회하는 일 또한 없겠지.”

안철환은 떠나기 전, 안석환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안석환은 그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마지막까지 그는 안석환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길 바란다.”

안철환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났다. 흉흉해진 분위기 가운데 승한과 윤재, 안석환만이 남았다. 윤재는 승한과 안석환, 안철환이 싸우는 것을 보며 얼떨떨해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

“그게… 설명하려면 좀 길어요.”

승한은 윤재에게 이것을 설명해 줘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안석환은 승한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 해도 상관 없다는 뜻이었다. 평소 승한이 윤재와 많이 가깝게 지내는 것도 알고, 자신 때문에 둘 사이에 비밀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앞에 없을 때 이야기 할 수도 있고 말이다.

승한은 윤재에게 안석환과 안철환 회장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를 짧게 설명했다. 둘 사이가 보통 부자지간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과, 얼굴도 모른다지만 안석환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안철환 회장이 죽였다는 것을 들은 윤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미친…….”

윤재의 감상평은 간단했다. 욕설 외에는 달리 나오는 말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뭐 그런 아버지가 다 있어?”

“세상 모든 가족들이 다 평범하지는 않지요. 특히나 저희 집안은 말입니다.”

승한은 안석환의 표정을 살피다 물었다.

“좀 후련하십니까?”

“네. 조금은요. 하고 싶은 말 다 했고, 대답도 들었습니다. 이제 저 인간과 얽힐 일은 없겠죠.”

“후회하지는 않고요?”

“후회요? 제가요? 별로요. 한 방 멋지게 엿도 먹이고, 기분도 썩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안석환은 정말로 속이 시원한 표정이었다. 애초 원하던 대로 안철환의 사과를 받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멋지게 복수를 한 셈이었다. 안철환의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그 역시 조금은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정말 고맙습니다. 승한씨 덕분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저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아까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서로서로 좋은 일이라고요.”

“하지만 저 때문에 안철환 회장과는 적대시 되지 않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화안 그룹에 취직할 것도 아니고, 돈도 벌 만큼 벌었고… 무엇보다 저 인간과 제가 얽힐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승한 역시 안철환 회장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안석환이 안쓰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가 세계 헌터 연맹의 중심으로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괴물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괴물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헌터라는 존재가 사라지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어쩌면 괴물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도 헌터라는 존재는 계속해서 남아있을지도 모르죠.”

승한은 괴물들이 사라지고, 헌터만이 남아있는 세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물론 괴물들을 다 막아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 때가 되면 정말 혼란스러울 겁니다. 힘이 있으면 쓰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겠습니까? 저는 지금 당장 괴물들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헌터 연맹을 통해 그 이후에도 헌터들이 중심을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승한의 말에 안석환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미 한 번 승한은 그를 도왔다. 이제부터는 안석환이 승한이 부탁한대로 제 역할을 할 차례였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

세계 헌터 연맹을 기념한 자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시간이 늦었고, 언제 괴물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이유로 안석환이 자리를 일찍 파한 것이다.

승한이 만난 헌터는 몇 없었다. 각 나라의 정치인들 중에서도 승한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승한은 그들을 보지 않았다. 승한을 만나러 온 헌터 중에서는 루이즈와 순간이동 능력을 가진 헌터인 해리슨이 포함되어 있었다.

승한은 사람들을 만나느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차라리 괴물들과 싸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간혹 승한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정치인들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승한을 도통 놓아주려 하지도 않았다.

‘피곤하군.’

승한은 노곤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 하루 동안이지만 타국에서 온 헌터들과 주요 정치 인사들을 모시기 위해 서울의 이름난 호텔이 문을 열었는데, 승한은 그곳보다는 자신의 집이 훨씬 더 편안했다. 역시 몸이 편한 것보다는 마음이 편한 게 진짜 편한 것인 모양이었다.

“정신 없이 지나갔어.”

승한은 해가 지고 있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가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 기분이었다.

8스테이지가 끝난 이후 승한은 여러 사람들에게 시달렸다. 당장 한국 내에서만 해도 헌터들 사이에서 승한의 입지가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졌다. 몇몇 헌터들의 이야기로는 승한을 진짜 영웅처럼 미화시키기까지 하고 있었다.

아니, 헌터들뿐만이 아니었다. 타국에서 온 정치인들 역시 승한을 영웅이라며 치켜세웠다. 세계 헌터 연맹의 구축을 위해 승한에 대한 정보가 여기저기 알려져 있었는데, 그 중에는 승한이 현실에 나타난 악마를 잡은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바알은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영웅이라.’

승한은 영웅이라는 단어가 낯설기는커녕 이제는 친근하게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승한은 손을 위로 뻗었다.

우우우웅-.

승한의 손안으로 새하얀 검의 손잡이가 나타났다. 이어서 나타난 순백의 검신. 승한은 듀란달을 바라보며 아롤을 떠올렸다.

‘아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영웅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 아롤은 승한이 아는 가장 강한 인간이었다. [성검]의 레벨이 올라가고, [영생]이라는 능력을 얻고 난 후 승한은 점점 더 아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신은 능력이라는 편리함을 통해 [영생]을 얻었지만 그는 순수하게 자신의 몸을 단련해 그와 같은 육체를 얻지 않았던가?

‘나는… 그 사람처럼 될 수 있을까?’

승한은 아직까지도 자신이 신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몸이 더 강해졌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근래 들어서는 오히려 능력을 얻기 전의 평범한 몸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비범함을 넘어서면 평범해진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승한은 인간의 육신이라는 탈을 벗어 던졌다. 능력의 레벨을 하나 올릴 때마다 빠르게 변화하던 육신은 이제 완전히 승한의 것이 되었다. 애초에 승한은 [불굴의 육체]라는 몸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웃기는 노릇이야, 참.”

승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황당한 상황을 냉정하게 생각하는 자신도 참 웃겼다. 어딘가 스스로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스스스-.

승한의 손에 들려있던 듀란달이 흩어져 허공으로 사라졌다. 승한은 침대에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 잠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한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지나 조금씩 저물어가던 해가 넘어갔다. 어둠이 깔리고, 밤이 찾아왔다.

어느 때와 같은 밤. 먹구름이라도 찾아왔는지 달과 별은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아침은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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