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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201화 (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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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경종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마기가 중간에 끊어진 것은 아무래도 강 아래로 몸을 숨겼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들어가 봐야겠지?’

승한은 강 아래로 내려갔다. 마기의 흔적이 끊어진 수면 위로 승한이 손바닥을 가져가 대었다.

쿠구구구구-.

[올림포스]의 힘이 강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승한은 그 힘을 한 점에 집중했다. 그러자 승한의 손을 중심으로 강물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촤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악-!

강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과 동시에 그 아래에 잠들어있던 거대한 뱀이 튀어나왔다. 승한은 깜짝 놀라 황급히 방패를 앞으로 내밀어 뱀의 어금니로부터 몸을 보호했다.

“큭, 이건 또 뭐야?”

까드드드득-.

[올림포스]를 덧씌운 방패에 흠이 가고 있었다. 힘이 어찌나 강한지 방패를 씹어 먹을 것만 같았다.

그 때, 승한의 눈에 뱀의 입안이 보였다.

‘저건……!’

승한의 눈에 보인 것은 악마의 잔해였다. 살점이 없이 뼈로 이루어져 있는 하급 악마의 시체. 씹다 말았는지 잔뜩 으스러져 있었지만 아직까지 형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전부 먹은 건가?’

승한은 악마들의 흔적을 따라 여기까지 따라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강가를 기점으로 악마들의 흔적이 사라져버렸다. 승한은 그것을 물속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악마들의 흔적이 사라진 것은 그들이 이 뱀에게 먹혔기 때문이었다.

화륵-.

승한은 성화의 힘을 방패에 덧씌웠다. 황금색의 불길이 방패를 감싸자 방패를 씹어 먹을 듯 힘을 주던 뱀이 입을 크게 벌리며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잠시 거리를 벌린 승한은 자신을 공격한 뱀을 바라봤다.

“……저건 또 뭐 하는 괴물이지?”

처음 보는 괴물이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나가와는 달랐다. 인간과 뱀을 섞어놓은 듯한 나가와는 달리, 녀석은 뱀과 용을 섞어놓은 모습이었다. 백 미터는 되는 거대한 길이에 두 개의 날개를 단 모습은 뱀도 용도 아닌, 이무기라는 신수를 연상케 만들었다.

검은 이무기. 그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괴물의 정체였다. 승한은 검은 이무기가 하급 악마들 따위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존재임을 알아보았다.

‘저 얕은 강가에서 저런 녀석이 어떻게 나온 거야?’

승한은 의문이 들어 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올림포스]의 힘이 남아있는 강은 아직까지도 갈라져 있었는데, 수면 아래의 바닥에 거대한 구멍이 하나 뚫려져 있는 게 보였다.

‘저기 숨어 있었던 건가?’

승한은 혹시라도 이무기가 오래 전부터 강 아래쪽에 서식하고 있었던 건가 싶어 모골이 송연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자신이 능력을 얻기 전에는 절대 상대할 수 없는 적을 가까이 두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오도도도독-.

이무기는 입안에 남아있던 악마의 잔해를 씹어먹으며 승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무기는 승한의 성화를 경계하는 것인지 쉽게 달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악마를 입안에서 씹어 먹으며 승한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언제든 기회가 되면 물어뜯으러 달려들 것만 같았다.

‘단순한 괴물은 아니야. 그렇다고 악마도 아니고.’

악마라면 특유의 마기가 느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무기에게서는 특별한 마기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은은한 마기 또한 먹어치운 악마 때문에 느껴지는 것일 터였다.

‘대체 왜 악마들이 저 녀석을 찾아온 거지?’

가장 큰 의문은 악마들은 어떻게 이무기가 여기에 있는지 알고 찾아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헌터들과 싸우던 중, 갑작스럽게 이곳으로 향했다. 그렇다는 건 이무기와 악마들이 어떤 소통을 했다는 뜻이었다.

“……이 녀석을 잡으면 알게 되겠지.”

승한이 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캬아아아아아-!

뱀은 거대한 입을 벌리며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껍고 거대한 몸뚱이가 총알처럼 빠르게 승한을 향해 쏘아졌다.

화르르르르륵-.

콰앙-!

승한은 듀란달을 둥그렇게 돌려 성화를 눈앞에 크게 펼쳤다. 거기에 [올림포스]의 힘을 덧씌우자, 성화의 막이 펼쳐지고 이무기의 머리가 그 위를 두드렸다.

쩌저저정-.

성화의 막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깨어졌다. 승한은 그 틈에 이무기의 아래로 몸을 파고들었다.

사아악-.

성화를 머금은 듀란달이 검격을 뿜어냈다. 단숨에 이무기의 몸을 반으로 베어낼 생각으로 휘두른 검격이었다. 승한은 지금의 자신이라면 하급 악마라도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들었다.

촤악-!

이무기의 몸에 큰 상처가 생겨났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에 비하면 작은 상처라고 할 수 있었다. 승한은 이무기가 한번에 베어지지 않자 살짝 놀랐다.

쉬이이이익-.

퍼억-!

이무기의 꼬리가 승한의 몸을 옆에서 후려쳤다. 황급히 방패를 들어올려 몸을 보호하긴 했지만 승한의 몸은 멀리 날아갔다.

쉬이이익-.

쾅-!

강가 너머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 승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힘이 어마어마했다. [올림포스]를 덧씌운 방패로 몸을 보호했건만, 충격이 꽤 컸다.

‘예전 같으면 뼈도 못 추렸겠군.’

몸이 제법 단단했다. 성화와 [성검]의 레벨이 오르고, [불굴의 육체]가 [영생]으로 진화한 게 아니었다면 작은 상처도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올림포스]의 레벨이 오르고 [영생]을 통해 몸이 더욱 단단해졌는데도 충격이 남았다는 건, 이전 같으면 꽤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캬아아악-!

승한의 숨통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이무기가 다시금 달려들었다. 승한은 급히 움직여 이무기의 꼬리를 피해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승한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잔상을 남기며 흩어진 승한의 몸이 이무기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못 죽일 정도는 아니지.”

푸욱-.

듀란달이 이무기의 머리를 관통했다. 워낙에 가죽이 단단해서 깊이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승한은 이무기의 머릿속으로 성화의 불길을 흘려보냈다.

키아아아아악-!

이무기가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성화의 열기에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승한은 듀란달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버텼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승한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무기는 승한을 떨쳐내기 위해 땅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그래도 승한이 검을 잡은 손을 놓지 않자, 이무기는 더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퍼억-!

“커억!”

휘두른 꼬리를 얻어맞은 승한의 몸이 휘청거렸다. 아무리 [올림포스]와 단단한 맷집으로 버틴다 해도, 계속해서 버티면서 충격이 누적되다 보니 아예 피해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어지간히 안 죽네!’

7레벨의 성화였다. 하급 악마만 하더라도 몸속에 직접 성화를 집어넣으면 금방 타 죽을 것이다. 머리에 듀란달을 꽂아 넣은 순간, 금방 싸움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이무기는 쉽사리 죽지 않았다.

질기다. 덩치가 크기 때문일까? 아니면 성화에 대한 면역이 있는 것일까? 승한은 결국 이무기의 머리에 박아놓았던 듀란달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촤악-.

이무기의 머리에 박혀있던 듀란달이 뽑혀져 나왔다. 이대로 계속해서 얻어맞느니, 조금 거리를 벌리는 게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승한은 급하게 움직이느라 뒤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위로 몸을 피하는 승한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이무기의 브레스가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화르르르르륵-.

“이런……!”

방패를 들어올리기에도 늦었다. 승한은 급히 성화를 앞으로 펼쳤다. [올림포스]를 두른 방패보다야 못하겠지만, 이 정도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방어는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성화의 막과 이무기의 브레스가 부딪혔다. 시커먼 안개를 뿜어낸 것 같은 브레스는 승한의 성화를 녹여내고 승한의 몸을 덮쳤다. 성화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승한은 듀란달을 앞으로 뻗어 크게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검은 브레스가 베어졌다. 검으로 형체가 없는 기운을 베어낸 것이다. 3레벨에 이른 [성검]은 베지 못하는 것을 벨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롤의 검술이었다.

반듯하게 베어진 브레스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 직후, 승한은 브레스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던 이무기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로 갔지?”

승한은 긴장한 채 주위를 살폈다. 무슨 까닭인지 검은 이무기는 악마들이나 나가들과는 달리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움직이는 기척만으로 찾을 수밖에 없는데, 그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캬아아-!

그 때, 이무기의 울음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승한은 고개를 위로 올려 멀리 작아져가고 있는 이무기를 바라봤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이무기를 보며 승한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도망가는 건가?”

확실했다. 이무기는 승한에게 브레스를 뿜은 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등을 돌려 도망치고 있었다. 당장 싸운다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승한이었지만, 전력으로 도망가고 있는 이무기를 잡을 자신은 없었다. 기동력에서는 녀석이 승한보다 훨씬 더 빨랐던 것이다.

당장 쫒아가 봤자 놓칠 게 뻔하니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금 쫒아가서 놓치느니 어디로 갔는지를 파악하고 미리 해리슨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큰일 났군.’

검은 이무기는 강했다. 아포피스를 이번 괴물들의 보스로 생각하고 있던 승한은 보스도 아닌 이무기를 잡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헌데 생각보다 이무기는 강했고, 결국 놓치고 말았다.

하급 악마 정도는 이제 우습게 보일 만큼 강해진 승한이었다. 헌터들의 수준도 높아져서 하급 악마 하나 정도는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이라면 힘을 모아서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검은 이무기는 아니었다.

녀석은 승한이 아니면 잡기가 힘들 것이다. 최소한 루이즈 정도의 실력자가 필요하다는 게 승한의 생각이었다. 그런 녀석을 놓쳐버렸으니, 피해가 커지는 건 불가피했다.

‘그나저나, 저런 녀석이 또 있는 건가?’

이전에는 보통 괴물들과 보스, 이렇게 두 종류만이 나타나곤 했다. 일전에는 지금껏 출현했던 모든 괴물들이 종류별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보스 외의 괴물들이 나타났다.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아포피스와 하급 악마들, 이무기. 승한은 이들의 등장이 석연치 않았다. 무엇보다 이무기는 지금껏 나타났던 괴물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녀석은 악마를 먹었다.’

악마들은 마치 이무기에게 먹히기를 원하는 것처럼 이곳으로 왔다. 승한은 그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하급 악마라고는 하나 그들 역시 신과 같은 존재들이었는데, 한낱 이무기에게 먹힌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대체 왜?

승한은 그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쩌면 이무기가 이대로 도망쳐 다른 악마들을 잡아먹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단순하게 잡아먹는데서 그치지 않고 악마들의 힘을 흡수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면 추후에 승한이 감당하기 어렵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능하면 빨리 잡아야 해.’

승한은 이무기가 사라진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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