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202화 (202/223)

0202 / 0223 ----------------------------------------------

23. 죽은자

일본은 국토 면적 대비 인구밀도가 높고, 헌터들의 수준이 높은 강대국이었다. 또한 가까운 곳에 한국이 있어 위급할 때에는 한국의 헌터들에게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도쿄는 그런 일본 내에서도 헌터들의 수가 가장 많고, 무엇보다 일본 최고의 헌터라는 토마가 있는 곳이었다. 그를 더불어 도쿄에 있던 실력 있는 헌터들은 하급 악마와 나가들을 상대로 분투하고 있었다.

“하, 하하하하하! 뭐야, 악마라더니 왜 이렇게 약해?”

붉은색 머리를 어깨 아래까지 기른 스물 초반의 남자. 그는 두 개의 낫을 휘두르며 도쿄에 나타난 악마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는 바로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며, 일본에서 최고의 헌터로 알려져 있는 토마였다.

두 개의 낫을 사용하는 토마는 빠른 움직임과 무엇이든 베어내는 절단력으로 유명했다. 무엇보다 싸움에 미친 듯이 괴물들과 싸우는 모습은 어쩌다 한 번씩 함께 싸우는 헌터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힐 정도였는데, 그 때문에 토마와 함께 싸우는 헌터들은 얼마 없었다.

“토마! 놀지 말고 집중해라!”

“어서 그 녀석을 처리해야 지원을 갈 수 있어!”

토마와 함께 팀을 이뤄 싸우고 있는 두 명의 헌터는 모두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토마와 꽤 친분이 있는 이들이었는데, 적어도 토마가 낫을 들고 미쳐 날뛸 때 피해를 입지 않을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었다.

하급 악마가 처음 도쿄에 나타났을 때, 헌터들은 그에게서 밀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수준이 낮은 헌터들은 순식간에 악마에게 목숨을 잃었고, 8스테이지를 통과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이들도 악마에게 큰 힘을 쓰지는 못했다. 적어도 그와 같은 실력자들 열 명은 모여야 겨우 하급 악마 하나를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토마의 등장으로 인해 싸움의 양상은 전혀 달라졌다. 하급 악마의 등장에 일본 최고의 헌터라는 토마가 지원을 왔고, 그가 악마를 일대일로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끄러! 이런 녀석을 또 어디서 본다고! 조금만 더 놀다가…….”

쉬이이익-.

피잇-.

악마가 뻗은 손에 토마의 뺨에 작은 상처가 생겼다. 한눈을 팔다가 상처를 입은 토마는 화를 내기는커녕, 씩 웃으며 낫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콱-!

“그래, 그래야지!”

토마는 즐겁다는 듯 악마를 향해 두 개의 낫을 쉴 세 없이 휘둘렀다. 악마는 날개를 휘둘러 그것을 막고, 마기를 뿜어내며 토마가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토마는 악마가 마기를 뿜어내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악마의 몸에 착실하게 상처를 입혔다.

물론 토마 역시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승한처럼 확실한 방어 능력이 없는 그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 악마를 베어나갔다. 하지만 토마는 자신이 상처를 입는 것보다 더 큰 상처를 내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생각대로 악마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가 수백 개씩 생겨났다.

텅-.

그 순간, 악마의 몸이 위로 튕기듯이 떠올랐다.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악마를 보며 토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한참 재미있을 때에…….”

토마는 악마를 쫒아서 날아갔다. 하나의 낫을 아래로 눕히더니 그 위로 발을 올렸다. 낫을 타고 날아든 토마는 빠른 속도로 악마의 뒤를 향해 날기 시작했다.

“도망쳐봐야 넌 내 손에 죽어!”

토마가 씩 웃으며 하나 남은 낫을 양 손으로 쥐었다. 그대로 등을 돌려 도망치는 악마의 몸을 두동강내려던 순간이었다.

콰득-.

“……어?”

토마는 바로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악마를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정확히는 악마가 사라진 것을 보고 그런 게 아니었다. 어디선가 빠르게 나타난 거대한 용이 악마를 한 입에 잡아먹어버렸던 것이다.

악마의 뒤를 쫒던 토마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용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또 뭐야?”

으적-.

으드득- 오도도독-.

악마를 한 입에 잡아먹은 용은 입안에서 악마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 소화가 잘 되라는 것처럼.

“악마를… 먹어?”

용. 아니, 이무기는 악마를 잘근잘근 씹어먹고는 꿀꺽 삼켰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바로 아래에 있는 토마를 힐끗 내려봤다.

‘뭐, 뭐야 저 녀석은?’

토마는 이무기의 눈빛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악마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고 오히려 싸움을 갈망했던 그의 본능이 도망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이무기의 눈빛은 사납고 무서웠다. 양 손으로 잡고 있는 낫이 덜덜 떨렸다. 본능은 도망쳐야 한다고 소리치지만, 머릿속에서는 한 번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르르르르-.

낮은 울음소리. 하지만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인지 그 소리는 귓가에서 바로 울리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순간, 토마의 머릿속으로 한 거대한 존재가 떠올랐다.

바알. 전혀 닮지 않았지만 이무기의 모습에서 바알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토마는 양 손으로 부여잡고 있던 낫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하, 하하… 이거 진짜… 골 때리는 녀석이 나타났네.”

토마는 죽을 각오를 했다. 오히려 그러자 몸에서 떨림이 멈추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마지막 발악은 해 보자고 결심한 때.

쏴아아아-.

이무기가 두 개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두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말이다.

“……갔네?”

토마는 속으로 안도했다. 싸우려던 상대가 등을 돌렸음에도 이렇게 안심이 되는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이무기는 싸우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조금 지나서는 굴욕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토마는 멀어져가는 이무기의 뒤를 바라봤다. 어째서 녀석이 자신을 그냥 살려뒀는지 알 수 있었다.

가치가 없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무기에게 있어서 토마라는 헌터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존재였다.

“제에에에엔자아아아앙-!”

토마는 거칠게 낫을 휘두르며 비명을 질렀다.

**

“……그래서, 놓쳤다는 겁니까?”

-그래. 놓쳤다. 어쩔 수 없었어.

안석환은 일본 지역의 헌터, 토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그는 혹시라도 거대한 뱀을 보게 된 헌터가 있으면 연락을 해 달라고 주변에 부탁을 했었는데, 그러던 차에 토마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 때가 언제였습니까?”

-삼십 분 전쯤이었다. 갑자기 악마를 잡아먹더니 사라지더군.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킥.

“……어디로 날아갔습니까?”

-기억 안 나.

토마의 대답에 안석환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알아낸 것은 한 시간 전에 일본 도쿄에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인공위성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이 때, 이무기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꼭 잡아라. 그 녀석, 김승한 헌터가 아니면 잡을 수 있는 녀석은 없어. 내가 확신한다.

“충고 감사합니다.”

안석환은 그 말을 끝으로 전음구를 주머니에 넣었다. 몸을 뒤로 돌린 안석환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찾아야죠. 어디에 있는지.”

이무기를 놓친 승한이 찾아온 사람이 바로 안석환이었다. 그는 나가들을 잡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을 이무기를 잡는 것으로 생각했다.

승한은 이무기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알았다. 이미 한 번 싸워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녀석을 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루이즈 정도의 헌터가 여럿씩 필요했다. 즉, 루이즈라고 하더라도 이무기를 잡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나저나 악마를 잡아먹는다는 게 정말이었군요. 대체 뭐 하는 녀석인지…….”

“문제는 악마들이 스스로 그 녀석에게 잡아먹히려 한다는 겁니다.”

승한은 이무기를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안석환을 찾았다. 덩치가 워낙 큰데다가 움직이는 것도 빨라서 이무기는 승한이 혼자 쫒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이무기가 어디에 있는지 헌터들을 통한 정보망으로 찾아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은 이 바닥에서 안석환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그는 지난 번 세계 헌터 연맹을 만드는 자리에서 세계의 유명 헌터들과 모두 인사를 나눴다. 대부분의 헌터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힌 덕분에 그는 세계 각국의 헌터들과 전음구를 통해 바로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토마는 바로 그런 헌터들 중 한 명이었다. 안석환은 헌터들 각각에게 이무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던 차, 이미 이무기를 만난 토마라는 헌터를 발견한 것이다.

“아무래도 녀석은 악마를 잡아먹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아마도…….”

“더 강해지기 위해서겠죠.”

“네.”

승한은 악마들을 씹어 먹었던 이무기를 떠올렸다. 녀석은 애초에 가지고 있는 기운이 없었다. 오로지 순수한 육체뿐이었다. 가죽이 질기고, 덩치에서 나오는 힘이 강하다는 것뿐. 그 때문에 승한은 녀석의 기척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악마를 잡아먹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녀석은 마기를 조금씩 흘렸다. 그것은 악마를 잡아먹고 그 마기를 흡수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그런 이무기에게 악마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몸을 내주었다.

“조금해하지 마세요. 금방 연락이 올 겁니다. 제가 만났던 헌터들은 여기에 있는 해리슨씨도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니, 연락만 오면 바로 당장에라도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안석환의 말에 바로 옆에 있던 해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무기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녀석을 잡기 위해 승한에게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도쿄의 헌터 토마까지 손을 쓰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녀석을 잡을 만한 헌터는 승한밖에는 없었다.

“차라리 악마를 먼저 제거하고 다니는 것은 어떨까요?”

“그건 힘듭니다.”

“왜입니까?”

“곳곳에 나타났던 악마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루이즈씨가 두 마리의 악마를 잡고, 베이징에 나타난 악마가 처리되었다고는 하지만 다른 악마들의 소재는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악마들이 사라졌다. 승한은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짐작이 갔다. 아마도 이무기를 찾아서 갔을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이무기에게 이끌리고 있었다. 이무기를 찾기 전까지 먼저 악마들을 잡는다는 생각은 꽤 그럴싸했지만 악마들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마저도 사용할 수 없는 계획이었다.

“그럼 이대로 놓을 놓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글쎄요. 이무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전까지는 아마도…….”

답답하다는 듯한 해리슨의 목소리에 안석환 역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쩌면 안석환에게서 연락을 받지 못한 어느 지역의 헌터들, 혹은 대피소의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무기에게 공격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부에게도 이미 연락을 취해 놓았습니다. 이무기가 갑자기 하늘로 솟아오르거나 땅으로 꺼진 게 아니라면, 분명 연락이 올 겁니다.”

“혹시 모르죠. 진짜 땅으로 꺼졌을지도.”

승한은 이무기가 처음에는 땅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만약 녀석이 정말로 땅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찾아낼만한 방법이 없었다.

“승한씨.”

그 때, 안석환이 조금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도망치던 악마를 발견했다는 보고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