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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209화 (20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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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키아아아아악-!

나가들이 사람들을 공격했다. 대피소의 벽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돌무더기에 깔렸다. 주위로는 나가들이 깔려있어 도망칠 곳도 여의치 않았다.

뒤늦게 헌터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은 후였다. 어느 대피소는 살아남은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들이 더 많기도 했고, 생존자 하나 없이 모든 사람들이 죽은 대피소도 있었다.

그것이 한국의 상황이었다. 헌터들의 수가 적은 국가 중, 어느 곳은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기도 했다.

승한이 가는 곳의 상황은 그나마 나았다. 이미 나가들에게 공격받아 생존자가 없는 곳만 아니라면 금세 나가들을 정리해 나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승한이 가진 두 개의 손으로는 수많은 대피소를 다 감당할 수 없었다.

“……개판이군.”

승한은 지금의 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함이 있었다.

사람들이 다 죽고 난 대피소의 광경을 보고 있자면 개판이라기보다는 지옥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승한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얼마나 많은 나가들을 죽였는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타임 포인트로 인해 알 수 있었다.

[보유 타임 포인트 : 111707500]

[스테이지 6 - 성검]

* 등급 : 上

* 분류 : 패시브

* 레벨 : 6

* 요구 타임 포인트 : 32768000

승한은 획득한 타임 포인트 중 일부를 [성검]에 투자했다. 아무래도 성화를 사용하면서 지속적으로 힘을 소모하는 것보다는 [성검]의 레벨을 올려 듀란달만으로 나가들을 쓰러뜨리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훨씬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획득한 타임 포인트는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어떤 능력의 레벨을 올릴지는 아직 정확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강림]을 사용하기 위한 타임 포인트로는 충분했고,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증폭]과 [귀신]의 레벨이었다.

‘가능한 많은 타임 포인트가 필요해.’

벌써 대피소를 돌아다니며 나가들을 사냥하기 시작한지가 반나절이 넘어갔다. 나가들은 끝도 없이 나타났다. 대피소 한 곳을 쑥대밭으로 만든 나가들은 헌터들이 막고 있는 다른 대피소로 움직이곤 했다.

많은 수의 나가들이 있는 만큼, 많은 수의 나가들을 잡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괴물들과는 달랐다. 처음에는 그 수가 많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헌터들의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건가?’

나가들 하나하나가 주는 타임 포인트는 결코 적지 않았다. 31250포인트. 이런 나가들을 상대하고 있는 만큼, 헌터들의 수준도 점차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싸움이 길어질수록 헌터들 중에서도 점차 사상자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중에서도 7스테이지도 통과하지 못한 헌터들은 나가들 하나 둘을 상대하기도 벅찬 상태였으니, 사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스테이지 9.1]

달성 조건 : 사탄의 부활을 막아라. 사람들은 죽고, 혼란에…….

제한시간 : 24시간

남은시간 : 11 : 24 : 09

성공 : 최종 스테이지로의 이동.

실패 : 9.2스테이지로의 이동

아직까지 스테이지는 실패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람들이 꽤 많이 죽었을 텐데도. 사탄이 부활할 만큼의 조건이 채워지지 않았거나, 24시간이라는 시간이 모두 지나야 되는 모양이었다.

‘이 사단이 났는데 아무 일 없이 넘어갈 리는 없겠지.’

승한은 사탄이 부활할 것을 확신했다. 이미 사람들은 충분히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죽지 않은 사람들도 대피소 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들도 귀가 있고, 눈이 있다면 밖에서 헌터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슬슬 마무리가 된 건가?”

휘익-.

더 이상 남아있는 나가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미 대부분의 나가들은 정리가 된 상태였다. 남아있는 나가들은 헌터들이 지키고 있지 않은 대피소를 헤집어놓고 다른 대피소로 이동하고 있는 녀석들뿐.

사실상 나가들의 공격으로부터 대피소를 지키는 방어는 끝이 난 셈이었다. 승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쓰군.”

승한은 힐끔 뒤를 돌아봤다. 반쯤 박살난 대피소 안에서는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승한이 도착한 대피소는 나가들로부터 막 공격을 받고 있었다. 다행히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닌지라 다급히 나가들을 공격해서 사람들을 지켜냈지만, 응급처방에 불과했다.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가족인 경우가 많았다. 가족의 죽음에 그들은 울었고, 분노했다. 때로는 왜 이리 늦었냐며 승한과 윤재를 원망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아-.”

몸은 멀쩡했지만, 정신이 어지러웠다. 몇몇 사람들의 원망어린 목소리를 들을 때면 힘이 쭉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러게, 조금만 더 서두를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서두를 걸…….

‘아니, 이제 와서 자책해 봤자겠지.’

저들의 원망이 왜 자신에게 돌아오는지를 생각하기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는 게 나았다. 승한은 조금씩 흘러가는 시간을 체크했다. 시간이 일분일초씩 줄어들 때마다 덩달아 심장박동도 함께 빨라지는 기분이었다.

승한은 주머니에서 전음구를 꺼냈다. 급한 대로 지원이 필요한 대피소는 이미 모두 정리한 상황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은 이제 국내가 아닌, 국외였다.

“안석환씨. 혹시 지원이 필요한 다른 대피소가 있습니까?”

-대부분 대피소에는 이미 헌터들이 각기 두 명 이상씩 배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따로 지원이 필요한 곳은 특별하게 없습니다.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안석환의 말대로 이미 대부분의 대피소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헌터들이 배치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빠른 대처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안석환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의 헌터들의 정보 교환과 합동이었다.

세계 헌터 연맹이 구축되고, 서로간의 얼굴과 이름을 익혀 두었던 덕분에 빠르게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배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인력이 부족한 곳은요?”

-동남아 지역이 조금 급하다고는 하는데, 그곳에는 이미 중국 쪽 헌터들이 파견이 된 상태입니다. 한국에 있는 헌터들은 이미 꽤 여유가 있습니다. 승한씨와 윤재씨 덕분에요.

승한 혼자서 세계 전역을 감당할 수는 없지만, 승한과 윤재 둘이서 백 명에 가까운 헌터들의 몫을 할 수 있었다. 레드 드래곤을 이용한 기동력과 승한의 빠른 살상력은 몇 분 만에 대피소 하나를 습격한 나가들을 정리할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 덕분에 다른 국외와는 달리, 한국에 있는 나가들은 이미 모든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또한 국내의 헌터들이 국외로 나가 도움을 주고 있었고, 나름대로 빠른 대처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승한은 어쩌면 사탄이 부활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정말 좋겠지만 말이야.’

괜한 기대를 품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11시간 정도가 더 지나면 알게 될 일이었다.

“동남아 지역에 인력이 부족한 곳을 알려 주십시오.”

-쉬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문제없습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지나가고 있었다.

**

에덴의 땅을 내려다보던 신은 감상에 젖었다. 에덴의 땅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곳을 살아가는 주민이라 할 수 있는 신들은 평소처럼 한가롭고 평온하지 않았다.

신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는 다른 존재가 신이라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왔느냐?”

신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에덴의 다른 신들과는 다르게.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향하는 존재는 신의 뒤에서 오연하게 서 있었다.

“네. 왔습니다.”

“생각보다 늦었구나. 조금 더 일찍 오게 될 줄 알았거늘.”

“당신이 그러신 것 아닙니까? 그래도 저를 평생 놓아둘 생각은 아니셨던 모양이군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 가느다란 목소리는 남자의 것 같기도 했고, 여자의 것 같기도 했다. 체격 또한 그리 크지 않았다. 신은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말했다.

“그래. 내가 그랬지. 다 때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

“언제나 그 때를 정하는 건 당신이었지요.”

“나는 그저 조율할 뿐이지. 나는 인간들에게 실망했지만,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더구나.”

신의 말에 미지의 존재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는 신이 바라보고 있는 에덴의 땅을 바라봤다. 높고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에덴의 땅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푸르고 파란 땅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곳이었다.

“무엇이 궁금한 것이냐?”

“……당신은 왜 저 아래로 가지 않으십니까? 왜 바라보기만 하시는 겁니까?”

에덴의 땅과 달리, 신이 있는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름다운 에덴의 풍경이 보인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라보아야만 할 떡에 불과했다. 저 아래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아는 존재는 결코 내려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터인데…….

“당신은, 욕심이라는 게 없으신 겁니까?”

“쓸데없는 걸 묻는구나.”

“……그렇군요. 오랜만이라 감상적이었나 봅니다. 당신께서 저를 묻을 때, 감정까지 함께 지우시지 그랬습니까? 그랬다면 이렇게 기어 나올 일도 없었는데 말이죠.”

신은 허허 웃었다. 그를 이렇게 웃음 짓게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오래간만이었다.

“그래, 그럴 걸 그랬구나.”

그 말이 끝이었다. 신은 낚시를 나온 낚시꾼마냥 에덴의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염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떤 존재는 천천히 신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름답지요?”

“최초의 세상이다. 아름답지.”

“당신도 아름다움을 아시다니, 신기하군요.”

“나에게서 태어났으면서 나에 대해 아는 게 없구나. 난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거늘.”

“당신은 늘 자신을 숨겨오지 않았습니까? 제가 당신에 대해 알 수 있을 리가 없지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두 존재는 그 대화가 자연스러운 듯 이어나갔다. 중간에 이야기가 끊어질 법도 하건만, 잡스럽고 구름 뜬 이야기들이 십여 분이 넘게 이어졌다.

“왜 저를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십니까?”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제가 그 부탁을 꼭 들어드려야 합니까?”

“난 부탁하지 않는다. 단지 너로 인해 그리 될 뿐이지. 하지만 네가 없으면 안 된다.”

“……결국 그놈의 순리 타령이신 겁니까? 이젠 저까지 거기에 엮으려고 하시는군요.”

그는 기가 차다는 듯이 웃고는 기지개를 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자신은 다시 세상을 밟을 수 있었고, 역할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지켜보고 있으마.”

아직까지도 한가로이 말하는 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손가락을 날카롭게 세웠다.

“네. 그리하십시오. 계속 지켜보고만 있으셔야 할 겁니다. 당신께서 직접 나서실 일이 없길 바라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약속이니까.”

“……고맙습니다.”

그는 에덴의 땅을 내려다보며 서서히 표정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드러난 얼굴의 표정 중, 입은 웃고 있었다.

신의 반쪽, 사탄이 말했다.

“당신의 세상, 제가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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