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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그것이 바로 악마들의 삶이다. 외롭고, 심심하지.”
“신들은요?”
“그들에게는 에덴이 있다.”
그 대답에 승한은 에덴을 내려다보았다. 저 넓은 땅에 어떤 힘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 땅이 있음으로서 신들은 악마들과는 달리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덴의 땅은 영원한 삶을 가진 신들에게 유일한 안식처와 같은 곳이다. 하지만 그곳에 악마들의 발길은 허락되어 있지 않지.”
“그래서… 악마들은 이곳을 빼앗고자 하는 겁니까?”
“그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악마들은 에덴에 발을 들일 수 없다면서요?”
“발을 들일 수 있는 악마가 하나 있다. 스스로는 물론, 악마들까지도 함께 말이지.”
그 대답에 떠오르는 존재는 하나뿐이었다.
“설마…….”
“그래. 사탄이다.”
승한은 그때서야 왜 그렇게 악마들이 사탄을 부활시키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탄이 가진 힘이 문제가 아니었다. 에덴의 신이자 모든 세상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의 어두운 이면이자 반쪽. 그는 악마들을 에덴에 들일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악마들은 그것을 알고 사탄을 다시 되찾고자했다. 그를 되찾아, 에덴에 발을 들이고 신들을 몰아내 에덴의 땅을 자신들이 가지고자했다.
그것이 바로 악마들의 생각이었다.
“그는 내가 만든 첫 악마다. 나로 인해 만들어졌고, 악마지만 에덴에 발을 들일 수 있지. 내가 땅에 묻었지만… 너희로 인해 녀석은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저희가 아니라 당신이 그리 만든 것 아닙니까? 당신이……!”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다. 악마들과 사탄은 언제까지고 에덴을 노릴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너희가 희생되었어야 했지. 난 그것을 직접 개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너희를 만들었지.”
악마들을 승한의 세상으로 보낸 것은 에덴의 신이 뜻한 바였다. 그것은 확실했다. 직접 그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에덴의 신이 아니었더라도 언제고 벌어질 일이었다. 어쩌면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실제로 헌터라는 존재들이 없었다면 피해가 얼마나 커졌을지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언젠가 때가 오기를 기다리느니, 시기가 조금 앞당겨지더라도 준비된 상태에서 그들을 맞는 것이 나을 터. 그리고 그 준비가 바로 너희들이다.”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승한은 에덴의 신이 자신을 불러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가 궁금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아니, 지금은 신과 인간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에덴의 신과 비교하면 하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넌 그럴 자격이 있다. 적어도 넌,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있어.”
“자격이라니요? 그리고 대체…….”
승한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말을 하고는 싶은데, 목이 턱 막혀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에덴의 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승한은 자신의 다리가 흐릿하게 사라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저 아래에서 수고해 주거라.”
승한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미 그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
쏴아아아-.
기분 좋은 바람이 머리를 흩날렸다. 승한의 멍한 눈으로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담았다.
그 주위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다. 지금과 같은 광경을 얼마 전에도 본 것 같았다. 8스테이지를 막 시작하게 되었을 때, 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시작된 건가?’
갑작스럽게 장소가 옮겨졌지만 헌터들은 이전처럼 크게 혼란스러워하지는 않았다.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한은 사람들의 반응에 8스테이지가 왜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연습 같은 것이었다.
‘악마들은?’
승한은 주위를 둘러봤다. 에덴의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 건지, 아니면 이전에 왔던 그 자리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당장 악마들은 시야에 보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건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몇몇 신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레드 드래곤과 같은 용족의 신들이나 페가수스, 유니콘,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신들까지. 신수와 닮은 모습들이었지만 에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정체가 신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여긴 또 어디지? 사탄은?”
승한과 가까운 곳에 있던 윤재가 다가왔다. 그는 당장에라도 사탄이 등장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풍경이 아름다운 초원이 나타나자 당황한 모양이었다.
대부분의 헌터들이 같은 생각이었다. 다른 헌터들은 몰라도 8스테이지를 통과한 이 자리의 헌터들은 모두가 사탄과 관련된 스테이지 메시지를 받은 상태였다. 그 때문에 당장 어떤 악마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에덴이에요.”
“에덴?”
익숙한 이름에 윤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승한은 자세한 말을 하기보다는 거기서 설명을 끝냈다. 그 때, 주위에 있던 헌터들이 하나 둘 승한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다가왔다.
“승한씨! 여기서 또 보는군요.”
“승한씨도 이번 스테이지에 관한 메시지를 받으셨죠?”
“사탄이라는 악마가 나타난다는데, 여긴 대체 어디인지…….”
질문은 많았고, 승한은 혼자였다. 승한은 대답에 일일이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등장에 신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저들도 모르는 건가?’
에덴의 신은 악마들이 이곳을 침범할 거라고 했다. 당장 헌터들만 해도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그들 중, 승한의 눈에 익숙한 신이 들어왔다. 에덴에 있는 신들 중에서도 유독 거대한 덩치를 가진, 윤재의 능력과 관련이 있는 레드 드래곤이었다.
쉬이이이익-.
“어, 어어어?”
거대한 덩치의 레드 드래곤이 아래로 내려오자 몇몇 헌터들이 그를 경계했다. 몇몇 헌터들이 괴물이나 악마로 착각해 공격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승한이 외쳤다.
“공격하지 마세요!”
승한의 외침에 주위에 있던 헌터들이 그의 말을 전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헌터들이 있었지만, 어디선가 Stop! 이라며 누군가 외치자 헌터들은 각기 행동을 멈추며 물러났다.
레드 드래곤의 덩치가 워낙 크다보니 내려앉을 자리를 만드는 것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레드 드래곤은 헌터들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모두 자리를 비킬 수 있을 때쯤에야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크르르르르-.
헌터들은 승한의 말대로 그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레드 드래곤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여타 괴물들이나 악마들과는 달랐고, 승한을 알아본 헌터들이 그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대한 산과 같은 덩치의 레드 드래곤을 경계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윤재와 친분이 있고, 그와 교류가 있었던 몇몇 헌터들은 레드 드래곤이 윤재가 사용하는 능력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지만 그렇지 않은 헌터들이 훨씬 많았다.
-여긴 무슨 일이지?
레드 드래곤의 시선이 함께 있던 승한과 윤재에게로 향했다. 그의 음성은 다른 모든 헌터들에게로 또렷하게 들렸다. 언어가 아닌, 직접 그 의사를 전달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윤재는 레드 드래곤을 본 순간, 그가 자신이 사용하는 능력의 근원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능력을 직접 사용하고, 그의 영혼을 일부 떼어 소환하여 부리던 윤재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승한의 경우에는 이미 에덴에서 레드 드래곤을 한 번 만나본 경험이 있었다. 승한은 그가 자신들이 왜 이곳에 온 것인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는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이곳은 에덴의 땅이다. 너 하나가 왔을 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이 많은 인간들이 이곳에 발을 들인 것은 이상하군. 허락되지 않은 자들이, 이렇게 많이…….
“확실히 이곳은 영생을 허락받은 신들의 땅이지. 인간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땅인 것은 분명해.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문제라니?
“곧 악마들이 이곳으로 오게 될 거야.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가까운 시일 내로…….”
승한과 레드 드래곤의 대화에 주위에 있던 헌터들이 술렁거렸다. 악마들이 곧 이곳으로 와서 싸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스테이지의 진행 상황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곳이 신들의 땅이라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반면, 헌터들과는 달리 레드 드래곤은 전혀 다른 사실에 놀랐다. 레드 드래곤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질 때쯤, 그 주위로 수십여 개의 작은 빛들이 떠올랐다.
우웅, 우우우웅-.
붉은색과 하늘색, 흰색, 황금색. 가지각색의 색을 가진 빛들이었다. 그것들은 자신들의 형체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들의 형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승한뿐이었다.
‘인간의 형상을 가진 신들.’
레드 드래곤과는 달리, 그들은 인간의 모습을 가진 신들이었다. 그 말은 즉, 붉은 천사나 아롤과 같은 수준의 고위 신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이 정말인가?
-얼마 전에도 찾아왔던 인간이군.
-악마들이라니?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승한에게 물었다. 승한은 그들의 목소리에 머리가 울려왔지만 침착하게 답했다.
“……당신들은 저희들의 세상과 악마들, 그리고 당신들 신들이 저희에게 능력이라는 형태로 힘을 주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겠지요?”
승한은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다른 헌터들도 모두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대다수 헌터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관련된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 중에서는 정보의 교환을 통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이들도 꽤 있었지만, 대다수는 괴물을 사냥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존재들이 신이라는 것과, 그들이 자신에게 능력을 주었다는 것에 놀랐다. 몇몇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도 이곳에 있는 이들이 신이라는 것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승한은 헌터들이 이제 막 알았다는 반응을 보이자, 왜 다른 헌터들이 모르는 사실을 자신이 알게 됐을까 싶었지만 지금 당장 짚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승한은 신들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저희에게 이런 능력을 주도록 개입한 존재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건 사실이다. 우리들 역시 너희에게 힘을 주도록 계시를 받았으니까.
“그 계시를 내린 게 바로 에덴의 신이겠지요?”
-……인간, 넌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지?
신들이 술렁거렸다. 생각보다 승한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덴의 신에 관한 것은 신들, 그리고 악마들 외에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넌 이미 인간이 아니군.
-아, 그랬던 건가?
-……그렇다면 상관 없겠지.
신들은 승한을 보통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영생]때문일까? 승한은 다른 헌터들과 달리 자신을 특별하게 취급하는 이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이제 자신을 인간과 완전히 동떨어진 별계의 존재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