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213화 (21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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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그어어어어어어-.

키아아아악-!

크르르르르르르-.

까드드득, 까드드드득-.

온갖 끔찍한 몰골의 괴물들이 거대한 균열을 헤집고 나타났다. 균열은 하늘을 가득 메웠다. 대체 어디까지 이어진 것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바알이나 아포피스와 같은 거대한 악마라도 손쉽게 헤집고 나올 정도로 거대했다.

균열 속에서 나온 괴물들 아니, 악마들의 모습에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머리 위에는 뿔이 자라나 있다는 것이었다.

‘악마들…….’

수많은 악마들이 균열을 통해 에덴에 나타났다. 태양과 같이 하늘에 떠 있던 무수히 많은 별들이 균열에 가려지고, 에덴에는 어둠이 찾아왔다.

그들 가운데서는 하급 악마와 같이 큰 힘을 가지지 않은 악마들도 있었지만, 몇몇 악마들은 헌터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힘을 가진 대악마들도 있었다. 헌터들은 악마들의 등장에 덜덜 몸을 떨었다.

‘역시… 아직 악마들을 상대로는 무리야.’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의 실력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만, 악마들은 별개였다.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이라면 몇몇이 힘을 합쳐 하급 악마까지는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알이나 아포피스와 같은 수준의 악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그들이 나가들을 사냥하고 타임 포인트를 획득해 강해졌다 해도, 고위 신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대악마를 상대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대들의 시험이 우리를 도와 악마들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했나?

신들은 악마들의 등장에 몸에서 날을 세웠다. 악마들이 내뿜는 흉흉한 기운과는 달리, 그들의 힘은 헌터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헌터들은 그때서야 안정을 얻었다. 아군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자신들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헌터들만으로 악마들을 막아내라 한다면 절망적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신들이 함께 있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악마들 중, 약한 이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악마들은 이미 하늘을 가득 메운 상태였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나타났지만,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균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체 몇이나 될까? 끝이 없었다. 신들 역시 악마들의 등장을 알아차리고 에덴의 곳곳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에덴의 땅은 끝없이 넓었지만, 균열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었다. 힘을 더 밀집시킨 쪽은 악마들이었다.

크어어어어엉-!

그러던 중, 거대한 익룡의 모습을 한 악마가 포효를 터뜨리며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바알이나 아포피스와 비교해도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거대한 덩치가 지상으로 내려오자, 신들도 움직였다.

수많은 악마들과 신들.

그 거대한 세력이 격돌했다.

**

신과 악마의 싸움.

헌터들은 물론이고, 승한 역시도 그 싸움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몇 번씩이고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에덴의 땅이 비좁다 느껴질 만큼 거대한 존재들이 싸우고 있었다.

헌터들은 그저 몸을 사리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몇몇 하급 악마들이 헌터들을 노리고 공격했지만, 승한이 나서 처리했다. 다행히 고위 악마들 중에서는 헌터들을 신경 쓰는 이들이 없었다. 아무래도 에덴의 땅의 원래 주인인 신들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체… 내가 뭘 할 수 있지?’

승한은 다른 헌터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현실에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래로 자신이 이렇게까지 초라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물론 승한이 약하다는 건 아니었다. 신들의 수는 무수히 많았고, 현재 에덴에 존재하지 않는 신들도 분명 있었다. 붉은 천사가 그러하고, 올림포스의 신들이 그러했다. [강림]을 통해 승한은 그들의 힘을 빌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힘을 빌려온다고 해서, 이 싸움을 이길 수 있을까?’

미력하게나마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력한 도움일 뿐이었다.

이 자리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신들이 있었고, 악마들이 있었다. 승한이 [강림]을 사용한다 해도, 그들 가운데 조금 힘을 빌려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는… 왜 우리를 이곳으로 보낸 거지? 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승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그저 하염없이 눈앞에 나타난 악마들과 싸우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승한은 눈을 반짝이며 손에 성화를 일으켰다.

화륵-.

성화의 힘이 붉은 천사의 모습을 만들었다. 작은 천사의 모습이었지만, 승한은 거기에 붉은 천사의 영혼을 불어넣었다.

‘아직도 이야기 하실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무슨 이야기를요?’

붉은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껏 침묵하던 그녀는 이제 와서 승한의 목소리에 대답을 해주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승한은 속으로 물었다.

‘저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걸 저에게 묻는 이유는요?’

‘모른다고 하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알고 있긴 하군요.’

무슨 까닭인지 이전처럼 목소리가 호의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모른다는 대답이 아니니 다행이었다.

‘당신이 에덴의 신에게 속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네. 하지만 속인 건 아니에요.’

‘……또 그 소리군요. 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당신도 그걸 알고 있고요. 그럼에도 말하지 않았다는 건, 속였다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울컥 치밀어 오른 화에 승한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소리쳤다.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상대가 모를 것임을 알면서 말하지 않은 것은 속인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붉은 천사 역시 자신의 말이 괴변이라는 것을 알고는 승한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그건가요?’

‘……좋습니다. 어차피 이 일이 끝나면 당신과도 엮일 일이 없을 테고, 당신도 에덴의 땅이 망가지는 것은 원치 않을 테니,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은 뭡니까?’

‘당연한 걸 묻는군요. 에덴을 지켜야지요.’

너무나도 당연한 대답이었다. 애초에 그것은 스테이지의 진행 상황에도 나와 있는 말이었다. 승한이 그것을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승한씨, 당신이 가진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아요. 제가 있고, 다른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힘을 당신에게로 모으면 이 자리에 있는 그 어떤 신보다도 강해질 수 있어요.’

승한에게 능력이라는 형태로 힘을 준 신만 해도 최소 셋이었다. 아직 [영생]과 [귀신], [증폭]은 신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그 능력까지 신이 있다고 한다면 무려 여섯 명의 신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과연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지금 나타난 악마들의 수를 생각해 보면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당신은 너무 욕심이 크군요.’

‘애초에 그러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바알을 잡은 것도, 아포피스를 잡은 것도 승한이었다. 애초에 그것을 승한이 혼자서 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단지 그럴 능력을 가진 사람이 승한밖에는 없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에덴의 신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미약한 힘을 가진 헌터들을 이곳으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승한은 붉은 천사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탄을 죽이세요.’

‘……사탄을요?’

‘다른 악마들은 상대할 필요 없어요. 애초에 저들이 이 자리에 올 수 있던 이유도, 에덴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사탄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가 사라지게 되면, 다른 악마들은 에덴에서 사라질 거예요.’

‘사라지게 된다는 건…….’

‘죽는 건 아니에요. 원래 자신들이 속해있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악마들이 다시 에덴에 발을 들이게 될 일은 없겠죠. 사탄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결국 끝판왕은 그 녀석입니까?’

불만스럽게 말했지만 상황이 최악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 나타난 모든 악마들을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탄 하나를 죽이고 다른 악마들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나을 테니까.

‘사탄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그럼 이 많은 악마들 가운데서 찾아야 하는 겁니까?’

‘그래야지요.’

승한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덴을 가득 메운 거대한 악마들 가운데서, 사탄이라는 악마 하나를 찾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어떻게 생겼는지라도 알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생긴 모습도 알 수 없었다.

‘만나게 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래도 막연하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악마들을 상대해야 했을 때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승한은 신들과 악마의 싸움을 지켜보다 한 발 앞으로 걸어갔다.

“……싸우려고?”

옆에서 함께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윤재가 승한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승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형은 여기 있어요. 가능한 다른 헌터들도… 움직이지 않도록 해 주고요.”

보통 헌터들은 스테이지 속에서 죽어도 현실에서의 죽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단지 다음 스테이지로 진행이 되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승한을 비롯한 헌터들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스테이지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곳 에덴의 땅에서의 죽음을 단순히 스테이지 속에서의 죽음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 것이다.

“그래도 너 혼자서…….”

“괜찮아요. [강림]을 사용하면 악마들에게도 꿀리지 않아요. 그리고… 저도 저것들과 한꺼번에 싸울 생각은 없어요.”

승한의 대답에 윤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고위 악마들과 싸울 만한 힘이 없는 다른 헌터들은 그저 몸을 사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실제로도 몇몇 헌터들이 겁 없이 나섰지만,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금방 죽고 말았다.

“……그래. 부탁한다.”

“다녀올게요.”

승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위로 떠올렸다. 동시에 그의 눈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화륵-.

[5000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림’을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붉은 천사’의 힘과 영혼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

붉은 색의 날개가 승한의 등에 돋아났다. 황금색의 눈동자를 번뜩이며 승한은 악마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승한은 주위를 살피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잠시 힘 좀 빌리겠습니다.’

승한은 듀란달에 대고 그렇게 속삭이고는 두 번째로 [강림]을 사용했다.

우우우우우웅-.

듀란달에 검은색의 글씨가 새겨졌다. 한쪽 눈이 검은색으로 물들며, 승한의 머릿속으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싸울 생각이 들었냐?’

아롤. 그는 악마들의 등장과 동시에 그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는 어느 세상에도 속하지 않고, 오직 에덴의 세상에만 속해있는 신이었다.

[강림]을 사용하게 되면 그곳에 있던 신이 사라지고, 승한과 하나가 된다. 애초에 승한에게 능력을 주었던 신들 중, 에덴에 몸을 담고 있는 신은 아롤밖에는 없었다.

‘그럼 이번엔…….’

승한은 다음 신을 떠올렸다.

[5000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림’을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올림포스’의 힘과 영혼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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