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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수십의 신들과 사탄의 싸움은 생각보다 일방적이었다. 아무리 신들이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해도, 사탄이 뿌린 마기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덩달아 사탄의 마기는 조금씩 신들이 펼쳐놓은 막을 건드리고 있었다. 이전보다 약해졌다지만 사탄의 힘은 막을 조금씩 충격을 누적시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신들이 펼쳐놓은 막이 부서지고, 악마들이 안으로 들어올 게 뻔했다.
“에덴의 신이 오지 않는 이상, 난 죽지 않는다!”
사탄의 외침에 사방에 퍼져있던 마기가 사납게 들끓었다. 하지만 신들의 저항도 거셌다. 아슬아슬하게 그들은 사탄의 마기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이 사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몸이 성치 않아서 그렇지, 그의 능력이라면 신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원래라면 순식간에 소멸시켜버릴 수 있었다. 단지 상처를 빠르게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영생의 존재는 있어도, 불사의 존재는 없다. 사탄, 너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테지.
신들은 사탄을 잡을 기회가 지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에덴과는 상관이 없다 할 수 있는 인간이 그 기회를 만들어 놓았다. 사탄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존재가 과연 에덴의 땅에 얼마나 될까? 아마도 혼자서 그런 기적을 이뤄낼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인간이 해냈으니, 이제 그 뒤를 에덴의 주인인 자신들이 받쳐줄 차례였다. 상처 입은 사탄조차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이후에 그의 상처가 회복된 후에는 절대 그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신들은 사탄의 마기를 막아내며 그를 공격했다. 어느 신은 검과 창을 가지고 있었고, 어느 신은 새하얀 빛을 조종하기도 했다. 어느 신은 뇌전을 부리기도 했는데, 저마다 능력은 다 달랐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사탄에게 통하지 않았다. 마기를 두른 사탄에게 닿는 즉시 힘이 소멸해 버린 것이다.
-이 땅에서 사라져라!
한 신이 사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등 뒤로 창을 찔러 넣었다. 날카로운 창 끝이 사탄의 머리를 꿰뚫으려던 순간이었다.
퍽-.
신의 창이 꿰뚫은 것은 사탄의 머리가 아니었다.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던 마기의 덩어리. 창은 그것을 뚫어내지 못했다.
“너야말로 사라지거라.”
스스스스-.
마기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창과 함께 황금색으로 번쩍이던 몸이 소멸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마기가 몸을 휘감자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다스릴 수 있는 존재가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더 이상 그의 육신은 물론, 힘과 영혼까지도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았다.
사탄은 하나의 신을 소멸시키고 다른 신들을 둘러봤다. 그들은 미련하게 사탄을 향해 직접 달려들지 않았다. 먼저 움직일 법도 하건만, 사탄은 그런 신들을 향해 직접 달려들지 않고 있었다.
“그 녀석은 어디로 갔지?”
사탄의 물음에 신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탄이 말하는 ‘그’가 누군지 알면서도 말이다.
“반쪽짜리 신. 아니, 인간이라고 해야 하나? 그 녀석은 어디로 갔느냐?”
-우리가 그 질문에 답할 이유가 있는가?
돌아온 대답에 사탄은 피식 웃었다.
신들 사이로 승한이 보이지 않았다. 사탄이 섣부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였다. 이미 그에계 몇 번이고 속아 부주의하게 움직였다가 큰 상처를 연달아 입었기 때문이었다.
도망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탄은 승한이 도망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그와 맞서 싸우던 승한은 도망 따위를 선택할 위인이 아니었다.
“또 무슨 잔재주를 꾀하고 있는 건가?”
꿍-.
쿠구구궁-!
주위가 뒤흔들렸다. 신들이 쳐놓은 막을 악마들이 부수고 있는 소리였다. 사탄 역시 이렇게 된 이상 신들을 상대로 홀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일단 저 귀찮은 막부터 지워버려야겠군.”
스스스스-.
사탄의 마기가 신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는 작정하고 신들이 만들어낸 막을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일정량의 마기를 남겨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승한이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그를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탄이 가장 경계하는 존재는 주위에 있는 수많은 신들이 아닌, 바로 승한이었다.
-막아라!
신들은 다급해졌다. 당장 사탄 하나를 상대하는 것만 해도 벅찬데, 막이 깨어지고 악마들이 싸움에 끼어들게 되면 더 이상 승산이 없었다.
사탄의 마기를 저지하며 신들이 힘을 쏟아 부었다. 주위를 감싸고 있는 막에 마기가 닿지 않도록.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키는데 급급할 뿐, 사탄의 힘은 수십 명의 신들의 힘을 압도했다.
-크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곳곳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사탄의 마기를 이겨내지 못한 몇몇 신들이 마기에 뒤덮여 소멸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탄은 그런 신들을 보며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승한과 함께 수십 명의 신들이 나타났을 때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싶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승한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승한이 사라진 지금, 신들을 상대로 사탄은 상처를 이겨내고 그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내심 불안했지만 그 불안함도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니. 그 녀석이라면 무슨 꿍꿍이가 있을 테지.’
불안감의 정체는 아직 나타나지도 않고 있었다. 오히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욱 수상했다.
도망친 것도 아니고,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필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신들 역시 승한이 사라진 것을 알면서도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무언가 생각해둔 게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봤자 이제 다 끝났다.’
스스스스스-.
신들은 사탄의 마기를 막아내지 못했다. 흘러든 마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결국 신들이 쳐 놓은 막에 도달했다.
쩍, 쩌저적-.
황금색의 막이 갈라졌다. 사탄의 마기를 견디지 못하고, 막은 조금씩 얇아지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신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막. 하지만 사탄의 마기에 그것은 오래 견디지 못했다.
쩡-!
사탄의 마기를 견디지 못한 막이 결국 산산이 깨어졌다. 깨어진 막이 녹아내리듯 소멸하며, 그 밖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제 작별할 시간이…….”
신들과 악마들의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한 사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안녕?”
막이 사라지고, 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승한이 사탄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신들이 사탄을 기다리고 있었다.
**
‘머리 한 번 잘 썼군.’
아롤의 감탄에 승한 역시 동감했다. 승한 역시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해 낸 것이 대견스러웠다.
‘설마 했는데, 진짜 가능할 줄이야.’
신들이 승한에게 건넨 제안은 그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 승한이 막 밖으로 나가 신들과 사탄이 있는 공간을 신들이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승한은 막 밖으로 나와 악마들을 베고, 한 명의 신을 찾아야 했다.
해리슨에게 공간 이동의 능력을 주었던 신. 그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해리슨을 먼저 찾고, 그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면 그만이었다. 헌터들과 신들은 서로 의사를 전할 수 있었는데, 해리슨에게 능력을 주었던 신은 승한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
몇몇 사람이 공간을 넘나드는 해리슨과는 달리, 그에게 직접 능력을 전해준 신은 차원이 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 바로 공간 자체를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균열 근처에 있던 신들과 사탄은 어느새 신들이 있는 한 가운데로 이동해 있었다. 승한은 신들을 한데 모으고, 막이 사라지는 것을 기다렸다.
“또 네놈의 짓이냐?”
사탄은 승한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벌써 몇 번이고 승한에게 당했던 그는 이제 승한의 얼굴만 봐도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막이 사라지고, 그 주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들의 수는 감히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들 역시 이 일의 원흉인 사탄만 사라지게 되면 균열이 사라지고, 악마들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스스스스-.
그 순간, 사탄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주위에 가득 퍼져있는 마기 속으로 동화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나타난 곳은 승한의 앞이었다.
쩡-!
승한은 급히 듀란달에 성화를 일으켜 사탄의 손길을 쳐냈다. 다행히 빠르게 반응한 덕분에 검을 잡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만약 사탄의 손에 듀란달이 잡혔다면,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듀란달이 소멸될 뻔했다.
“거 화가 많이 나셨나 보군.”
“건방지다. 건방져!”
사탄의 목소리가 사방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의 목소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균열에까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목소리와 그가 일으킨 거센 마기에 멀리 떨어져 있는 악마들이 반응했다.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눈이 뒤집힐 만큼 분노한 탓인지는 모르나 몇 분 뒷면 악마들이 이곳까지 들이닥칠 것이다.
“네놈을 죽여주마. 소멸시키지 않겠다. 육신은 죽이고, 영혼을 남겨마. 영원한 삶 동안 너희가 말하는 지옥에서 살아가거라!”
검보라 빛의 마기가 주위로 가득 퍼져나갔다. 지금까지 보여준 힘이 장난으로 느껴질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였다. 그는 순식간에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신들을 그대로 증발시킬 셈이었다.
그와 가까이 있는 승한은 단지 느껴지는 힘만으로 몸을 떨었다. 하지만 승한은 도망가지 않고, 그와 가까이서 또렷이 눈을 마주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퍼억-!
사탄의 양 어깨 위로 순백의 창이 꽂혔다. 하늘에서 떨어진 그 창은 사탄이 몸에 두르고 있는 마기를 꿰뚫고, 그의 몸에 직접 상처를 입혔다.
퍼억, 퍼억-!
하늘에서 연달아 같은 형태의 창이 떨어졌다. 사탄은 자신의 몸에 꽂히는 여러 개의 창들을 눈으로 확인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마기를 일으키고 있음에도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다행이야. 너 하나의 힘이, 이 많은 신들의 힘을 다 더한 것보다 강하지는 않아서.”
승한은 안도했다. 만약 이번에도 사탄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우려는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네 몸을 두르고 있는 마기는 정말 대단한 힘이야. 어떤 것이든 소멸시키는 힘이라는 건, 네 몸을 건드리려는 어떤 힘이라도 마찬가지로 소멸시켜버린다는 뜻이니까. 절대적인 무기이자, 방패이기도 하지.”
퍼억-, 퍽-.
승한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사탄의 몸에는 계속해서 순백의 창이 박혀들었다. 양 어깨와 등, 목, 머리, 팔과 다리. 창이 박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너와 싸우면서 하나 깨달은 건, 그 마기는 정말 대단한 힘이지만 넌 그렇지 않다는 거다. 그 마기를 뚫어낼 수만 있다면… 네 몸은 특별할 게 없다는 거지. 상처입고, 피를 흘리고. 오히려 육신은 다른 고위 악마들보다도 못해.”
“끄어…….”
창으로 꿰뚫린 입을 벌리며 사탄이 신음을 흘렸다. 아직까지도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승한은 긴장으로 침을 삼켰다.
“이 많은 신들의 힘이 집약된 창이다. 도박이었지. 이 많은 신들의 힘이 집약된 창이, 네 몸을 두르고 있는 마기를 뚫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수많은 신들의 힘을 한데 모아 무기의 형태로 바꾸는 것.
그것은 승한이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사탄과의 싸움을 통해 그에 대해 이해하고, 그를 쓰러뜨리기 위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 마기를 뚫어내기만 하면, 넌 그저 조금 강한 악마에 불과해.”
승한은 듀란달을 들어올렸다. 수많은 창이 몸에 박힌 사탄은 더 이상 마기를 뿜어낼 힘조차 없는지 몸을 휘청거릴 뿐이었다.
이 정도 마기라면 충분히 베어낼 수 있다. 승한은 듀란달에 성화를 가득 머금었다.
“붉은 천사… 아니, 아델이 그러더라. 넌 절대 죽지 않는다고. 에덴의 신과 함께 영생(永生)이자 불사(不死)한 존재라고. 넌 죽어도… 언젠가 다시 살아날 거라고.”
이 말을 들었을 때, 승한은 충격을 먹었다.
이 고생을 해서 죽인다 해도 사탄은 죽는 게 아니었다. 단지 잠시 봉인되는 것과 같았다.
그는 언젠가 다시 부활한다. 악(惡)이라는 감정과 어두운 이면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됐건… 당장은 이곳에서는 좀 꺼져줘야겠어.”
들어 올린 듀란달이 아래로 떨어졌다. 성화의 힘과 함께, 듀란달의 검격이 사탄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촤악-!
[스테이지 9.2을 성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