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223화 (22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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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쩌어어억-.

사탄의 몸이 허물어짐과 함께, 에덴의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검은 균열이 닫혔다. 마치 거대한 입을 닫는 것처럼 균열은 천천히 자취를 감췄다.

스윽-.

악마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더 이상 사탄이 에덴에 없는 이상 그들은 에덴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에덴의 신이 만들어놓은 절대적인 법칙이었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악마들의 모습에도 신들은 덤덤했다. 애초에 이곳은 그들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그저 틀어졌던 무언가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뿐이었다.

‘정말… 이제 끝났구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손으로 최초의 악마를 베어냈고, 에덴이라는 신들의 땅을 구해냈다. 아롤이 어떤 세상을 구했던 것보다 더한 업적이었다. 정말로 영웅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승한은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아직까지 [강림]의 지속시간은 남아있었다. 그는 헌터들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끝났어! 끝났다고!”

“정말 끝이야? 정말?”

악마들이 사라지자 헌터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를 질렀다. 그들 역시 이번 싸움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일의 원흉이 사탄이고, 그를 부활시키기 위해 악마들이 벌인 일임을 아는 헌터들은 사탄이 죽었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승한은 그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비로소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이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가슴 깊은 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승한아!”

“승한씨!”

그 때, 윤재가 승한을 발견하는 것으로 다른 헌터들 역시 그를 반겼다.

승한은 그들에게로 가다갔다. 가장 먼저 윤재가 승한을 향해 달려왔다.

“잘 했어, 이 새끼야!”

윤재는 승한의 얼굴을 거칠게 끌어당기며 자신의 팔꿈치 사이에 끼웠다. 그답지 않게 과격한 표현이었는데, 그만큼 기뻐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승한을 아는 헌터들 모두가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아니, 사실상 그를 모르는 헌터는 이 자리에 없었다. 이곳까지 온 헌터들이라면 최소한 한 번쯤은 승한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승한은 그들을 모두 알지 못하지만, 이 자리의 모든 헌터들은 승한을 알고 있었다.

윤재는 승한을 팔꿈치 사이에서 풀어놓고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승한은 헌터들의 환호에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수고했다. 사탄을 잡은 거, 너 맞지?”

승한이 홀로 사탄을 잡겠다고 나선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마땅한 부상은 없었지만 승한은 꽤나 지쳐보였다. 연달아 [강림]을 사용한 부작용이었다.

“뭐… 엄밀히 말해서 저 혼자는 아니지만요.”

자신의 역할이 크긴 했지만 승한 혼자서 사탄을 잡은 건 아니었다. 해리슨의 도움도 있었고, 다른 신들의 도움도 있었다. 마지막에 사탄의 마기를 뚫어낸 것도 수많은 신들의 힘을 모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가 없었다면 사탄을 잡아내지 못했을 것은 사실이었다. 승한 역시 그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크게 생색을 내지 못하는 것은 그의 천성이었다.

윤재 역시 그것을 알기에 씩 웃었다. 승한 역시 그런 윤재를 보며 히죽 웃었다.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자, 몸에 힘도 풀렸다.

“그나저나 왜 안 끝나는 거지?”

“그러게. 슬슬 끝나고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나?”

몇몇 헌터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탄이 죽고, 9스테이지가 끝났다. 에덴에서의 일이 끝났으니 이제 현실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최종 스테이지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랬었나?”

한 헌터의 중얼거림에 사방이 술렁였다. 승한 역시 그 때서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보상이…….’

9.2스테이지. 사탄으로부터 에덴을 지켜낸 후, 그 보상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닌 최종 스테이지로의 이동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헌터들은 사탄을 죽이고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최종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승한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눈을 뜨자, 나타난 곳은 무척 익숙한 곳이었다.

새하얀 순백의 공간. 붉은 천사 아델과 아롤과 만났던 곳이었다.

“……여긴 오랜만이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랄 만도 했지만 승한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여러 차례 놀랄 만한 상황은 겪어왔다.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가만히 멀뚱히 서 있던 승한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최종 스테이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게 누군지는 뻔했다.

“기다렸나?”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꽤나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달갑지는 않았다. 승한은 몸을 뒤로 돌려 물었다.

“당신은 왜 항상 제 뒤에서 나타나는 겁니까?”

“그러게 말이다. 우연이로구나. 너는 항상 나를 등지고 있으니 말이야.”

에덴의 신. 그를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된 건 의외였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언제나처럼 에덴의 높은 하늘 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는 양 무릎을 펼쳐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승한은 그와 마주 앉을 생각을 않고는 그 자리에 서서 물었다.

“……그래서, 저는 왜 또 이곳으로 부르셨습니까?”

“급한 모양이구나.”

“당연하지요.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니었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 끝나는 게 아닙니까?”

최종 스테이지다. 이번에야말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마지막이었다. 에덴의 신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한 것이니 확실할 것이다.

그의 시험대로 승한과 헌터들은 모든 스테이지를 통과했다. 에덴을 침공한 악마들을 막아냈다. 악마들의 시련인지, 에덴의 신이 부여한 시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낸 것이다.

승한은 어서 이 모든 일을 매듭짓고 싶었다. 승한이라고 해서 언제 죽을지 모를 사선을 넘나들고 싶지는 않았다. 추악하게 생긴 악마들과 싸우는 일상보다는, 예전의 평화로운 일상이 훨씬 좋았다.

“역시 넌 예전이 좋은 모양이구나.”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립니까?”

“지금 가진 능력이 마음에 들지 않으냐?”

승한은 에덴의 신이 던진 질문에 잠시 생각했다. 답은 금방 나왔다.

“마음에 들지 않을리가요. 싸울 때 말고는 써먹을 데가 없겠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물론, 예외는 있었다.

“단지… [영생]은 좀 그렇습니다. 영원히 살아봤자, 별로 좋을 게 없을 것 같거든요.”

“그건 자격이다. 반쪽이라고는 하나, 네가 신이 되었다는 자격. 그것이 있다면 넌 마음먹기에 따라 에덴에 발을 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전 에덴을 알지 못합니다. 그곳에 대한 좋은 기억도 없고, 그곳이 제 고향도 아닙니다. 대체 왜 영생을 살아가는 신들이 그토록 에덴의 땅에 집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하나 때문에 영원한 삶이라는 저주를 감당하기는 싫네요.”

승한은 [영생]을 저주라 생각했다. 그것은 분명 대단한 능력이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가진 승한에게 있어서는 끔찍한 일이었다.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수명이 다해 죽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축복일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왕과 영웅은 불로장생을 꿈꿨지만, 그 꿈을 꾸는 이들은 극소수일 뿐이었다.

백 년은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가면, 아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혼자 남게 될 것이다. 타인과 섞이지 못하고 시간이 덧없게 느껴질 것이다. 그것은 불과 이십여 년이 넘게 살아왔을 뿐인 승한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영생]은 저주였다.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설마, 이 능력들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승한은 혹시나 싶은 불안감이 들어 물었다. 다른 능력들은 상관 없지만 [영생]은 아니었다. 이 능력만큼은 결코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가지게 된다면, 극단적으로 언젠가 승한은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것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왜 아니겠느냐.”

“……맙소사.”

승한은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대체 뭡니까?”

“…….”

“최종 스테이지라는 건 뭐고, 이 능력은 왜 계속 유지된다는 겁니까? 끝나면 다시 가져가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 능력을 준 건 내가 아니다.”

“그건 알지만… 당신이 전혀 상관이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승한의 물음에 에덴의 신은 잠시 말이 없었다. 승한은 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며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미안하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돌아온 대답은 그것이었다. 승한은 허탈함에 물었다.

“할 말은 그게 답니까?”

“네가 지금 가장 궁금한 건 네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무엇인지겠지?”

승한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최종 스테이지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후, 승한의 머릿속으로 최종 스테이지에 대한 내용이 떠올랐다.

[최종 스테이지]

달성 조건 : 사탄의 부활을 막아라. 사탄은 죽었지만, 사람들의 감정이 악해지고 그들이 불행할 때 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가 부활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조율하고, 부활하였을 때를 대비하라.

제한시간 : --

남은시간 : --

성공 : --

실패 : --

승한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마음 같아서는 눈앞에 있는 신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승한은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이를 으스러져라 갈았다.

“말하십시오.”

“네게는… 미안하구나.”

“처음부터 이러실 생각이었습니까?”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면, 너희에게 이런 짓을 하지도 않았겠지.”

승한이 받은 최종 스테이지.

그것은 바로 기약할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사탄이 다시 부활할 것을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그가 가진 능력으로 사람들을 조율하여 악하고 불행하지 않도록 하고, 다시 그가 부활하였을 때는 다시 그를 죽여 봉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영원히. 수천, 수만, 수억 년이 될지 모를 평생 동안 말이다.

“왜 당신이 직접 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왜요!”

“그것이 약속이다. 나는 그저 너희들을 돌볼 뿐이다. 이번 일처럼 말이지.”

“악마들을 이용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이 돌보는 것이었습니까?”

“……미안하구나. 나는 이번에 너희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모양이야.”

승한도 알고 있었다. 승한이 사는 세상을 공격한 것은 악마들이었다. 단지 에덴의 신은 그것을 막아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가 승한의 세상을 돌보는 것이 의무라면 의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 일 또한 그가 말한 돌봄의 방식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승한의 세상에 있는 이들이 직접 그것을 극복하기를 원했다. 나아가 승한과 같은 이들이 생겨나 앞으로도 그러한 일을 극복해 나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을까요?”

“에덴의 땅이 있는 한, 악마들은 포기하지 않겠지.”

에덴에 대한 악마들의 집념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쉽게 에덴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승한의 세상과 사탄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이상 승한의 세상에는 계속해서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이었다. 악마들은 이미 사탄을 부활시키기 위해 일을 벌였고, 그것이 실패한 이상 다시금 그런 일을 반복할 것이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말이다.

“그래서… 제가 필요한 겁니까?”

“네가 없다면, 더 많은 이들이 죽을 것이다. 에덴의 땅이 악마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선과 악이 바뀌게 되겠지.”

“선과 악이 바뀐다는 건…….”

“악이 옳고, 선이 그르게 된다. 사람들은 폭력과 살인을 당연시하고, 선행을 경멸할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폭력과 살인과 같은 일들이 당연하고, 선행이 경멸할 일이 되다니.

그때서야 승한은 에덴의 땅이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에덴의 신이 그곳을 악마들로부터 지키려 하는 것인지도.

“어째서… 직접 나서지 않는 겁니까? 또 그 빌어먹을 약속이라는 것 때문입니까?”

“나는 중립이다. 어느 쪽에도 치우쳐서는 안 되지.”

승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그의 행동은 선과 악의 중립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의 모습을 한 에덴의 신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 맞다. 난 중립이어야하지만, 그렇지 못하지. 그 때문에 너희를, 너를 이용했다. 직접 나서지 못하기 때문에 말이야.”

“당신은… 에덴의 땅이 신들의 것이었으면 하시는군요.”

“애초에 그곳은 그들의 땅이었다. 나로 인해 사탄이 생겨나고, 신들로 인해 악마들이 생겨났지. 그 모든 것들은 나로 비롯된 것들이니, 나는 그들 모두를 포용하고 어느 누구의 편도 들어서는 안 된다. 다만 난 옳은 것이 선하기를 바랄 뿐이다.”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승한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에덴의 신에 대한 좋지 않던 인식들이 바뀌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왜 이런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니 납득이 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수긍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전 앞으로도 계속 그걸 위해 살아야 하는 겁니까?”

“그랬으면 좋겠구나.”

강요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하나가 다르게 보이니 다른 것들도 다르게 보였다. 승한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왜 접니까?”

[영생]을 얻었기 때문일까? 그 이유 하나만은 아닐 것 같았다. 승한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에덴의 신을 보좌하는 붉은 천사 아델이 자신을 선택한 것부터, 바알을 통해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오른 것까지. 이 모든 일들이 그의 안배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승한의 생각을 뻔히 알면서도 에덴의 신은 부정하지 않았다.

“너라면 내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무슨 근거로요?”

“나는 너를 알기 때문이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 너는 나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승한은 정곡을 찔린 듯 시선을 피했다. 그의 말대로 승한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최종 스테이지라는 말로 영원히 하나의 일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 알 수 없기에, 저울은 자연히 기울 수밖에 없었다.

“다른 헌터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순리대로 돌아가겠지.”

“능력을 유지하는 건, 저 혼자뿐입니까?”

“당장은 괜찮을 것이야. 지금 너희들에게는 그들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언젠가 그 힘도 사라지겠지.”

“결국 나중에는 이 힘을 가지는 것도 저뿐이라는 것이군요.”

“그것이 순리야. 하지만 언젠가, 다시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또 모르는 일이지. 그 때가 온다면… 자네는 다시 지금처럼 해 주면 되네.”

말은 참 쉬웠다. 그것이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인지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하지만…….

“저 말고는 정말 할 사람이 없는 겁니까?”

승한은 그것을 알고도 물었다. 돌아올 대답이 뻔하다는 것을 알고도.

“있었다면 영생은 너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돌아갔을 테지.”

“그렇다면…….”

승한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승한의 대답에 에덴의 신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손을 뻗어 승한의 손을 맞잡았다.

“고맙네.”

**

길고 긴 소동이 끝났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힘을 모았다.

그 중심에는 ‘헌터’라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진바 능력을 동원해 무정부한 세상을 이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지만, 기술력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세상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고작해야 몇 년. 그 시간이 지났을 때, 사람들은 괴물의 등장과 헌터들의 존재를 서서히 당연시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났다.

“엄마, 저기 봐봐.”

승아는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를 불렀다. 넓직한 집의 거실에서 대형 TV를 보고 있던 그녀는 입에 과자를 물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고는 거실로 향했다. 어머니는 승아가 보고 있던 TV를 보더니 흐뭇하게 웃었다.

“우리 아들, 인물 사네.”

“내 동생 출세했어. 이제 연예인 다 됐다니까?”

“이번엔 또 뭘 했다니?”

“왜, 얼마 전에 바뀐 화안 그룹 회장이랑 승한이랑 친분이 꽤 있잖아. 화안 그룹에서 승한이 기부하기로 한 단체에 거액을 함께 기부했다는 이야기네.”

십 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세상은 많이 변화했다.

그 중심에는 승한과 화안 그룹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안 그룹의 기술력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로 세상은 뒤흔들었고, 그로인해 세상은 조금 더 발전했다.

“내가 아들 하나는 참 잘 키웠다니까.”

“요즘 쟤 얼굴 팔리면서 기부 열풍에, 봉사 열풍에 난리라니까. 그런데 쟤는 왜 나이를 안 먹나 몰라. 이 누나는 요즘 얼굴에 주름이 많아 죽겠구만.”

“그러게 이년아, 얼굴에 주름 더 잡히기 전에 얼른 시집을 가.”

“엄마! 난 독신주의라고!”

TV에서는 승한의 인터뷰가 한창이었다.

**

수많은 사람들이 승한을 앞에 두고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기자들과 헌터들. 그들은 이번 승한의 촬영을 보기 위해 멀리서부터 온 이들이었다.

“세계 헌터 연맹의 중심이신 승한씨께 묻겠습니다. 현재 헌터들의 능력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준비된 기자의 물음에 승한은 오래 전부터 담아두고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순리대로 돌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순리라면 어떤 것입니까?”

“애초에 저희들이 가지고 있던 힘 자체는 저희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괴물들과 싸우고, 그 이후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했지만 더 이상 이 힘이 불필요한 만큼 사라지는 게 당연하죠.”

예상치 못한 답이어서 그럴까? 기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럼 승한씨는 헌터들의 능력이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승한씨 본인의 능력이 사라져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인지요?”

승한은 씩 웃었다.

“그렇습니다.”

승한은 세계 헌터 연맹의 중심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건 현 화안 그룹의 회장인 안석환이었지만, 승한이 그들의 얼굴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 승한이 헌터들의 능력이 사라져도, 자신의 능력이 사라져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대답하자 기자들은 달리 물어볼 거리가 없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대처 방안이나 향후 계획 등을 듣고 싶었던 것인데 말이다.

“질문할 것이 없으시다면 제가 말해도 될까요?”

승한의 물음에 기자가 황급히 대답했다.

“네, 당연합니다.”

“감사합니다.”

승한은 기자들을 쭉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저희들의 능력이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승한은 처음 능력을 얻었을 때를 떠올렸다.

“능력을 얻고, 저희는 싸웠습니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 다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그 다음에는 목적 없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싸우다 보니 결국 싸움은 끝났고, 세상은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았지요. 바로 지금처럼 말입니다.”

승한은 기자들을 비롯해 그 뒤쪽으로 모여 있는 헌터들을 바라봤다.

“말했다시피 저희의 능력이 사라지는 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필요한 세상은 괴물이 나타나거나, 사람들이 서로를 위협하는 무질서한 세상입니다. 지금의 세상과는 거리가 멀죠.”

승한은 간절한 염원을 담아 다음 말을 이었다.

“저는 그저, 저희가 필요한 날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완결입니다..

중간중간 다사다난한 일도 많았지만(소설 속이 아닌 제 일상에서요) 14년 7월 22일경부터 이어지던 쉴 틈 없던 연재가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시원섭섭하면서도 정말 홀가분하네요. 이제 그간 가보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곳,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밀린 독서나 영화 드라마.. 당분간은 여가생활에 투자를 할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따라와주신 독자님들, 그리고 중간에 하차하셨을 독자님들까지 모두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작품,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 헌팅 타임 -> 헌터 타임 / 제목 변경합니다.

* 헌터 타임은 완결일(7.24) 이후 45일 뒤 프리미엄으로 전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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