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37화 (137/200)

137화. 무너진 한국(3)

쏴아아아-!

잠깐 이어지고 말 거라 여겼던 그 빗줄기는 며칠간을 내리 이어졌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한 기세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이제 유성도 멈춰 서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움직인다.’

숱한 전쟁 여파에 의한 방사능 따위에 오염되었을지를 걱정했던 유성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이곳에만 머무를 수는 없었다.

‘이제는 내 육체조차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강건했던 그의 육체는 점차 메마르고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 있던 근육은 점차 말라가고, 내부를 끝없이 채워나가며 가파르게 성장했던 마력의 기량 또한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가장 걱정해야 할 오염물의 초기 농도는 떨어졌을 거다. 이미 며칠간을 내리쏟아진 이상, 처음의 위협적인 수치는 사라졌겠지.’

쏴아아아!!

유성은 쏟아지는 빗줄기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큭, 무슨 놈의 깊이가?’

그는 폭우로 불어난 물의 생각보다 엄청난 깊이에 이를 악물었다.

흙탕물이 되어버린 수심은 무려 가슴팍에 닿을 만큼이나 깊숙했다.

흐르는 물살을 거스르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걸음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게다가 유난히 깊숙한 지점 또한 있었던지라, 방심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괜찮아. 움직인다. 지금 난 뭐라도 먹어야만 해.’

유성의 체력 손실은 극단적인 결과로 이루어진다.

즉각적인 전투력의 저하로, 뒤를 감당치 못하게 될 터였다. 그러니 여기선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움직이는 편이 맞았다.

그의 눈이 도심 속 폐허의 어둠 속에 소리를 죽인 채로 미동도 없는 거대한 그림자에 꽂혔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저 변종 벌레놈들조차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정도인가.’

녀석들은 쏟아지는 비를 피해 건물의 안에 파고들어 있었다.

대개 극렬한 환경의 변화를 피하는 곤충들의 습성상, 아마 대부분의 개체가 저렇게 숨어 있을 터였다.

‘찾았다.’

얼마 뒤, 유성은 적당한 상대를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상대하기에 괜찮을 듯 보이는 체구를 가진 녀석이 보였다.

[크르르르-.]

그 상대는 무려 ‘개미’ 였다.

다만, 그 앞에 붙는 특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거대해진 개미였을 뿐이다.

녀석은 유성 그만큼이나 커다랬으나, 일전의 녀석 정도로 무식하게 거대하진 않았다.

저 정도라면 힘들겠지만 감당 못 할 상대는 아니었다.

심혈을 기울인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놈을 사냥한다.’

꽈악.

세게 움켜쥔 쇠 지렛대에서 흐릿한 마력이 푸른 빛을 밝히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평소라면 간단했을 마력을 끌어올리는 행위조차, 지금은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크르르.]

녀석은 조금의 미동조차 없었다.

그저 제 자리에 선 채로, 더듬이만을 위아래로 흔들며 빗줄기가 쏟아지는 바깥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한 놈의 뒤쪽을 돌아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유성은 발소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신경 쓰지 않아도 무수히 떨어지는 빗줄기에 의해 먹먹할 정도로 모든 소리들이 묻히고 있었다.

유성은 녀석의 행동을 참을성 있게 관찰했다.

마치 주변을 탐색하는 듯하던 녀석의 고개는, 일정 순간에 우뚝 멈추는 경향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녀석이 일순 움직임을 멈춘 순간.

그는 기다리던 순간이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지금이다……!’

그는 쇠 지렛대를 힘껏 움켜쥔 채 놈의 측면에서부터 내달리며 접근했다.

[키익?]

타닷!

녀석이 무엇인가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틀었을 때, 이미 그는 코앞까지 접근하여 무기를 녀석의 미간에 박아넣고 있던 순간이었다.

유성은 자신의 사냥이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그의 시퍼런 마력을 뿜어내는 무기가 날카롭게 틀어박히며 섬뜩한 소음을 자아냈다.

콰직.

* * *

타닥. 타닥.

타오르는 불길에 녀석의 고기를 익혔다.

녀석은 물컹거리는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물처럼 내부를 이루고 있던 살점들이 흘러내리던 통에, 유성은 녀석의 머리통을 냄비처럼 사용하여 끓는 불에 익혔다.

금세 보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녀석의 머리 그릇을 응시하며, 그는 생각했다.

‘가능하면 이런 변종 괴수를 먹는 일 따윈 벌이고 싶지 않았는데.’

녀석은 개미였다.

그 본래의 형상은, 틀림없이 끓어오르는 대지의 오염물에 의하여 변질된 지구상의 생명체였다.

무슨 오염물에 노출된 것인지는 몰라도 이것을 섭취하는 것이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유성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놈을 먹어야만 했다.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테니까. 차라리 이 현실에 감사라도 해야 해.’

유성은 묵묵히 살점을 후루룩 삼켰다.

그가 사냥했던 변종 개미의 살점에선, 오래된 타이어 냄새가 났다.

* * *

유성이 이곳에 떨어진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하루는 이틀이 되었고, 이틀은 금세 일주일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약 한 달가량이 지나있던 상태였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며 이제 그는 이 현실에 어느 정도 적응해 있었다.

“…….”

유성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하얀 점박이와 같은 것들이 펑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서부터 쏟아지는 눈송이에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신이 나갔군. 이번에는 눈이 내리는 건가.”

역시나 극악한 환경이었다.

변종 괴수 놈들에 쏟아지는 비와 눈이라니.

보통의 인간들은 감히 살아남을 수도 없을 정도로 극멸한 상황들이 연달아 펼쳐졌다.

후우-.

내뱉는 유성의 숨에 새하얀 서리가 서렸다.

강한 냉기가 급속도로 찾아들고 있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어떻게든 입을 만한 옷을 찾아냈다는 것 정도겠지.’

그는 쓴웃음을 흘렸다.

현재 유성은 그가 사냥해낸 변종 괴수들의 갑각류를 갑옷처럼 걸친 상태였다.

그 안에는 오래된 폐허에서부터 찾아낸 묵은 옷가지들을 껴입고 있었다.

덕분에 춥지는 않았으나, 그에 따른 단점들은 그 이상이었다.

“변종 괴수 놈들의 흔적을 전혀 찾아보기가 어려워. 마주치지 않기를 전적으로 운에만 바라야 하는 상황이라니.”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사전에 주변 건물의 외벽이나 지면에 남아 있던 흔적을 살피고, 변종 놈들의 영역에서부터 돌아 나오는 식으로 상황을 줄곧 회피했다.

하지만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그러한 행동은 하등의 소용조차도 없게 되었다.

녀석들의 흔적마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크아아악!]

“크윽?!”

유성은 쫓기고 있었다.

* * *

“허억, 허억.”

유성. 그는 숨을 헐떡였다.

뒤편에서부터 그를 추격해오는 것은 무려 그의 키의 두 배 이상에 해당하는 늑대였다.

쾅!

거대한 변종 늑대.

놈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구조물들을 몸으로 박살 내며 유성을 향해 일직선으로 접근했다. 무시무시한 육체 능력이다.

심지어 등판의 거친 털은 보통의 재질이 아니었다.

마치 갑옷처럼 가시들이 바짝 서서, 절대로 유성이 접근하여 일말의 기습을 노릴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공격을 가하려 했다간 무조건 저 거친 가시들에 의하여 부상을 입게 될 터였다.

‘따라잡히면, 죽는다…!’

콰직!

유성이 힘껏 몸을 낮춘 순간, 녀석의 커다란 앞발이 그가 있던 자리를 스치듯 지나쳤다.

옆의 건물 외벽에 처박힌 놈의 발톱 자국이 선명했다.

섬뜩할 정도로 강렬한 흔적이었다.

‘제기랄! 기가스만 있었어도!’

기가스에만 탔더라면 녀석 정도는 별 것 아닌 듯 쓰러트렸을 터다.

아니, 어쩌면 심상치 않은 상대임을 알아차리고 녀석이 알아서 덤비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유성은 기가스에 탑승하지 않았다.

저 거대한 늑대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할 정도로 훨씬 작았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그 자신만큼이나 먹기 좋고 쉬운 사냥감이 없을 터였다.

그때였다.

고오오-.

그의 눈에 저 멀리 시커먼 지하철역이 보였다.

‘지하철역! 저기다!’

시커먼 지하 공간이 그를 향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지하철역,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다.

온갖 변종들이 도래하게 된 이 종말의 도시였기에, 저 안에는 무엇이 도사릴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지금만큼은 유성도 뒤가 없었다.

저곳이 아니라면 그가 어디로 도망치는 끝내는 붙잡혀 죽을 터였다.

이를 악문 그의 눈동자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을 듯 희끄무레한 푸른 기운이 번뜩였다.

‘나는 죽지 않는다! 이런 아무도 없는 황폐한 폐허 속에서라면, 더더욱!’

유성이 도달할 곳은 라피스와 리브가 있는 본래의 시대였다.

이곳 또한 그가 살아온 세상이기는 하였으나 여긴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시혁’ 이 살던 시대다.

유성이 살던 시대는 까마득한 미래였다.

탓!

전력을 다해 도약했다.

그가 거칠게 지하철역의 계단을 향해 몸을 굴리기가 무섭게.

뒤편에서 늑대의 아가리가 콰득 닫혔다.

간발의 차이로 간신히 놈의 공격을 회피한 그는 지하철역의 아래쪽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하필이면 경사진 계단이 있던 탓에 그는 형편없이 지면을 굴러야만 했다.

“크윽!”

유성은 정말이지 엉망진창으로 아래까지 굴렀다.

그로서도 멈출 수 없었다.

마력조차 끌어올릴 기력이 없었기에,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살아남기만을 기도하며 버티는 일뿐이었다.

그러다 퍽! 소리와 함께 아래의 벽면에 맞부딪혔다.

‘멈, 췄다.’

간신히 멈춘 그는 흐릿한 눈을 억지로 치켜뜨며 저 위쪽의 지상과 이어진 출구 방향을 보았다.

[크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린 거대한 변종 늑대가, 그를 타는 듯한 눈으로 노려보다 이내 자리를 비웠다.

사냥감으로 점찍어두었던 유성을 포기한 것이었다.

‘드디어 포기했군. 빌어먹을 자식.’

끈질기게 그를 추격했던 녀석이 포기하고서 멀어지는 것을 보며, 유성은 쓴웃음을 흘렸다.

살았다. 정말로 간발의 차로 살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는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각이 진 계단을 구르며 양 팔다리는 물론 온몸에 상처들이 빼곡하게 생겨났다.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그대로 다시금 제자리에 엎어졌다.

지면에 엎드린 채로 그는 가물거리는 눈을 깜빡였다.

‘점차 의식이 흐릿해진다.’

일어서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여긴 최소한의 탐색과 안전조차 확보되지 않은 장소였다.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지점.

그러한 장소에서 의식을 잃는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일어서야…….’

생각과는 다르게 유성은 자신의 의식이 흐려지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마력조차도 바닥이 난 탓에, 무뎌져가는 육체의 감각을 다시금 일깨울 힘조차도 없었다.

그때였다.

저벅.

저 지하철 통로의 반대편에서부터, 무슨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곧 잠시간의 침묵을 가진 후에, 금세 유성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뭔가 다가오고 있어. 일어서지 않으면 죽는다.’

흐려진 의식. 무거운 육체 감각.

먹먹한 감각 속에 잠겨든 유성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간신히 손가락 마디를 움찔거리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그의 앞에까지 다가온 그 정체불명의 상대가, 힘껏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이쪽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 방금 전 그 자식한테 당했나 본데?”

“뭐? 누가 쓰러져 있다고?”

익숙한 말소리. 생소하기는 하지만 알고 있는 대화 소리다.

테라 어(語) 가 아닌 과거의 지구 언어였다. 그것도 무려.

‘한국어? 설마…….’

사람인가.

그 말을 낮게 읊조린 것을 끝으로, 유성은 의식을 완전히 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