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을지문덕, 천석한의 계책을 간파하다.
연태조는 석우의 말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등을 두들겨 주며 격려한다.
“자네의 재능 덕분이지. 그리고 그 재능을 알아봐 준 주변 사람들과 태왕 폐하 덕분이고 말이야. 그러니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 하네.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막리지.”
“자… 오늘은 늦었으니 하루 푹 쉬고 내일 운두산성으로 향하도록 하게. 우리 집에서 하루 묵고 가.”
“감사합니다. 막리지.”
그렇게 석우는 노비에서 면천을 받고 순식간에 벼슬을 하는 관직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장안성(평양성)에 있던 천석한은 자신이 계획한대로 일을 실행시키려 했다.
천설유에게 말해 점점 몸이 쇠약해지는 것처럼 보였고 화병으로 자리를 보전해 일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의원들도 천설유를 진맥할 때 원인을 모르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흔들었고 그렇게 꽤 오랜 기간이 흐른 뒤 천석한은 드디어 행동을 개시할 때라고 느꼈다.
“숙부님. 언제부터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까?”
“안 그래도 내일 고구려 왕을 직접 보고 이 일을 말씀드릴 참이다. 그렇게 해서 허가가 떨어지면 내가 수나라의 양량에게 가서 교섭을 시도해보마.”
“알겠습니다. 헌데… 고구려 왕에게 허가가 날 때까지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어후… 죽겠습니다. 숙부님.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누워만 있으니 좀이 쑤셔서 말입니다.”
“이해한다. 그래서 밤에는 나와 네가 부르지 않으면 방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인들에게 명령도 해놓지 않았느냐?”
“저도 압니다. 하지만… 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니 답답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큰일을 위해서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천석한의 말에 천설유는 한숨을 크게 쉬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 날 아침, 천석한은 영양 태왕을 알현하고 자신이 생각해 둔 바를 말했다.
“천설유가 화병이 들었다고?”
“예. 의원들도 병의 원인을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해 주니 마음에 큰 병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화병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으음…….”
“거기다 저희가 본래 이곳에 볼모로 오다보니 집 주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나마 최근에야 태왕 폐하의 은혜 덕분으로 저잣거리까지 행동반경이 허락 되었습니다. 헌데… 설유가 그 이후 몸 상태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저잣거리까지 행동반경을 허락해 주었는데 더 심해졌다?”
“예. 그래서 의원에게 어떻게 하면 설유를 예전처럼 활달한 모습으로 돌릴 수 있는지를 물어보니…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나고 교류를 하라고 하더군요. 헌데 그걸 저희가 어찌 하겠습니까? 저희는 이곳에 온 볼모인데 말입니다.”
“하긴… 저잣거리에서 다른 사람과 말을 하는 것도 제한을 했으니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야.”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그러니 저희를…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교류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천석한이 자신의 조카딸의 화병에 대해 고백하며 눈물까지 보이자 영양 태왕은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 조치는 자신과 신하들과 이야기해서 내놓은 조치인 만큼 함부로 그 결정을 바꾸어서는 안 되는 법.
그래서 영양 태왕은 잠시 고민하고는 말한다.
“일단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바로 내가 답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군. 처우에 관련된 내용은 신하들과 협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어서 말이야. 그러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게.”
“어… 언제 그 협의 내용이 결정되겠습니까?”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결정되도록 해 주겠네. 그러니 너무 걱정 말게.”
“예. 태왕 폐하…….”
그렇게 천석한은 고구려 왕을 알현하고 궁을 나왔다.
천석한이 궁을 나가자 영양 태왕은 바로 막리지 연태조와 을지문덕 대모달을 호출하여 이번 일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하하하하!!”
“으하하하!!”
“아니? 두 사람은 왜 그리 웃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태왕 폐하. 으하하하! 그 천석한이라는 자가 말한 것이 너무나도 얕은 꾀라 비웃었을 뿐입니다.”
“얕은 꾀라니?”
“대모달도 그 자의 꾀에 대해 아니 대모달께 한번 물어보시지요.”
연태조가 웃음을 지우지 못한 채 을지문덕에게 영양 태왕의 궁금함을 풀어드리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을지문덕이 웃음을 겨우 가라앉히고는 말한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자가 다른 이와 교류를 허락해 달라는 것이 왜 그런 것이겠습니까? 정말 천설유의 병 때문에 그렇다고 보십니까?”
“음… 자네 말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천설유의 병은 십중팔구 꾀병일 것입니다.”
“꾀병?”
“예. 태왕 폐하.”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현재 불열 말갈의 처지와 지금 이곳에 있는 그 두 명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불열 말갈과 볼모들의 처지라…….”
“예. 태왕 폐하. 현재 불열 말갈은 저희 고구려에 철저히 복종하며 모든 것을 따르고 있습니다. 조공도 잘 바치고 말입니다. 그리고 볼모도 이곳에 있으니 현재 불열 말갈은 저희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국력을 키워나가고 있죠.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나도 그건 알지.”
“헌데 주변 정세를 잘 살펴보십시오. 우리와 수나라는 언제 전쟁이 또 다시 터질지 모릅니다. 비록 자신들이 우리 고구려에 절대적인 충성을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만약 우리가 다음 수나라의 침임 때 패하기라도 한다면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죠. 그러려면 그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놓아야 하는데 그것이 이번 볼모들이 꾸민 일과 크게 연관이 있을 겁니다.”
“우리와 수나라 전쟁 결과에 따른 것이라…….”
“예. 태왕 폐하. 현재 이 장안성에는 그 둘 말고 볼모가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
을지문덕의 말에 영양태왕은 순간 놀라며 대답한다.
“수나라 막내 황자 양량!”
“바로 보셨습니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수나라와의 전쟁에 질 가능성도 존재하니 분명 그자와 교류토록 해서 수나라에 선을 넣으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약 우리 고구려가 전쟁에 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면 평소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며 충성하던 모습에서 돌변하여 오히려 우리 고구려를 공격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수나라에 자신들의 나라를 보장받으려 할 것이고 말입니다.”
“과연… 일리가 있도다.”
“다만 여기서 알아볼 것은 이 볼모 둘 만이 단독으로 꾸민 일이냐… 아니면 현재 불열 말갈의 조정과도 연결된 것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라면 아마 둘이 단독으로 벌인 것 같군. 그들 주변에는 우리 군사들이 계속 붙어 있고 아무것도 교류를 하지 못하게 막고 있으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두 볼모를 크게 혼을 내주어야 합니다.”
“방법이 있는가?”
“예. 제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오! 무엇인가? 말해 보게!”
을지문덕은 영양 태왕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일단 천석한의 말에 대한 답변을 미루시옵소서.”
“나를 알현하러 올 텐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알현을 거부하시옵소서. 하루는 고뿔이 안 좋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태후 마마가 편찮으셔서 살핀다든가… 생신이라든가 등등의 핑계를 대면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태왕 폐하께서 그렇게 거부를 하시면 분명 천석한은 답답한 마음을 느낄 것이고 저잣거리로 나올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아니라면?”
“아마 천설유 그쪽에서 문제가 생기겠지요.”
“천설유가 병자 생활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예전에 그 여자를 태왕 폐하께서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본래 성정이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볼모로 있으면서 모든 것이 억눌려져 있었지요. 헌데 근래에 태왕 폐하께서 저잣거리까지 이동을 허용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천석한의 계책에 의해 다시 통제를 당했지요. 그럼 그 여자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을지문덕의 말에 영양 태왕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분명 돌출 행동을 하겠지. 병자 흉내를 더 이상 내지 않겠다면서 말이야.”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천석한의 말은 태왕 폐하를 우롱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그것을 이용해 둘을 다시 압박하고 구속한 뒤 불열 말갈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시오. 그럼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대응하시면 됩니다.”
“정말 기가 막힌 계책이오! 하하하하!”
영양 태왕은 을지문덕의 계책을 듣고 감탄하며 그 계책을 그대로 따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막리지 연태조가 말한다.
“헌데… 태왕 폐하.”
“말해 보게.”
“태제 전하에 대한 처분은 언제 주실 것이옵니까? 모두가 그 일에 태왕 폐하를 주목하고 있사옵니다.”
“그래. 결정은 해야겠지…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바로 죽이고 싶네. 다만…….”
“같은 형제이며 핏줄이니 망설여지시는 겁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태후 마마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역시 막리지는 내 맘을 잘 아는군. 당연히 후자일세. 같은 형제라도 나라에 걸림돌이 된다면 마땅히 베어야지. 하지만 지금 내 동생을 벤다면 태후 마마께서 너무나도 마음 아파하실 것일세. 그리고 분명 제발 동생만은 살려 달라며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에게 와서 부탁을 하지 않겠는가?”
영양 태왕의 말에 연태조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태왕 폐하. 그럼 태후 마마께 이리 말씀하십시오.”
“……?”
“태제 전하를 죽이지 못하면 나라를 잃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면서 말입니다.”
“……!”
“자신이 망국의 군주가 될 수 있는데 괜찮겠냐고 말씀하시면 태후 마마께서도 아무 말씀을 못하실 겁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어쩔 수 없습니다. 태왕 폐하. 강하게 말씀드리셔야 합니다.”
연태조의 말을 들은 영양 태왕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 시기 동현은… 여전히 백암성에서 백성들을 살피고 군을 조련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때 같이 백성들을 위무하러 다니던 사훈이 말한다.
“장군. 이제 고승 장군의 처분에 대해 결정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죽이고 싶지 않으신 것이로군요.”
“맞네. 고승 장군이 비록 나이가 드셨다고는 하나 여전히 무력이 뛰어나신 분이시며 그 동안 쌓아 온 전쟁의 경험은 어디로 가지 않네. 마음만 돌려 준다면… 우리 고구려의 소중한 전력이 되시는 분이지.”
“음… 그렇다면 장군께서 직접 설득을 해보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내가 직접?”
“그렇습니다. 장군도 언변에 매우 뛰어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군의 말에서 느껴지는 그 진실성만큼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으음…….”
“고승 장군은 워낙 충성스러운 분이라 저희가 설득한다 해도 제대로 듣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장군께서 직접 나서시는 것이 맞습니다.”
“자네들과 내가 설득 하는 것이 다를까? 똑같은 설득인데…….”
“전혀 다릅니다.”
“어째서?”
동현이 궁금해 하자 사훈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장군 대신 저나 박준이 대신 간다면 고승 장군은 이제 자신을 장군께서 무시한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다.”
“장군께서 고승 장군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고승 장군께서는 다르시겠지요. 도성으로 돌아가는 것에 실패해 죄인 신세가 되었으니, 자신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분명 자신의 목이 달아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겠지요. 그러면서 결코 자신이 목숨을 구걸하는 일 없이 대응하리라 다짐했을 겁니다.”
사훈은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장군이 자신을 보러오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이 세상을 하직 할 생각도 갖고 있겠지요. 하지만 저희가 가면 분명 불 같이 화부터 낼 겁니다. 그래도 자존심을 지키며 장군을 뵙고 멋지게 세상을 하직하고 싶었는데 그 수하들을 보내니 이제 죄인이라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분명 고승 장군은 죽을 때까지 장군을 저주하며 죽으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으음… 이름 있는 자에게 죽겠다? 그런 것인가?”
“바로 보셨습니다. 고승 장군은 마음속으로 장군을 깊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군이 최소 자신을 대할 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랄 것이며 자신이 죽을 때도 분명 장군보고 직접 자신의 목을 베어 달라 할 것입니다.”
동현은 사훈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래. 사훈 네 말이 맞다. 고승 장군은 예전부터 자존심이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었지. 좋아. 내가 직접 고승 장군을 만나 뵙고 설득을 해보겠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렇게 동현은 직접 옥에 갇혀 있는 고승을 보려 향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