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점점 강해지는 고구려와 위기에 몰리는 신라.
동현은 회귀 전 역사 기록을 떠올린다.
‘그래. 기억이 나는군. 내 기억으로는 아들이 없어서 딸이 자리를 이어받았지. 그게 덕만이라는 여자였는데? 으음… 근데 잠깐? 내 기억으로 자매가 한 명 더 있었다고 들었어… 그런데 누가 장녀인지는 기록마다 달랐고 말이야. 으음…….’
동현은 잠시 고민하고는 이정에게 묻는다.
“딸은 몇 명이라고 하던가?”
“세 명이라고 합니다.”
“딸이 세 명이라고?”
“예. 첫째가 천명, 둘째가 덕만, 셋째가 선화라고 합니다. 헌데 선화 공주는 현재 백제의 왕과 혼인을 해서 왕비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동현은 선화 공주가 있다는 말에 놀랐다.
실존 인물이 아닌 그저 책 속의 이야기.
즉, 꾸며낸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그녀가 실존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만약 딸을 볼모로 보낸다면 둘 중 하나를 보내겠군.”
“그럴 겁니다. 딸이라도 보내라고 할까요?”
“음… 그게 좋겠어. 헌데…….”
“……?”
“신라에서 딸을 볼모로 보내게 되면 누구를 보낼 것 같은가?”
“그야 당연히 차녀인 덕만을 보내지 않겠습니까?”
동현은 이정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내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르군. 나는 첫째인 천명 공주를 보낼 것이라 생각하네.”
“어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알기로 천명 공주는 전형적인 여자라고 들었네. 학문에도 관심이 없고 권력을 가지겠다는 욕심도 없지. 그저 여자들이 잘 입는 옷을 짓거나 신라왕이나 왕비에게 식사로 올라가는 음식을 관리하며 지낸다고 하더군.”
“그럼 둘째 덕만이라는 여자는 다릅니까?”
“그렇다네. 둘째 덕만이라는 여자는 모든 일에 호기심이 많으며 백성들을 살피는 일에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고 하더군. 그리고 최근 들어온 세작 보고에 의하면… 귀족들을 견제하기 시작한 모양일세.”
“그렇습니까?”
“그래. 귀족들의 뒤를 캐내서 신라왕에게 고해 귀양을 보내거나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권한을 뺏는 일이 꽤 많아졌다고 하는군. 덕만이라는 여자에 의해서 말이야.”
“그래서 장녀인 천명 공주를 우리 고구려의 볼모로 보낸다고 말씀하신 것이군요.”
“그렇지. 신라왕은 자신의 위치에 대해 스스로 잘 자각하고 있는 자를 바보가 아닌 이상 데리고 있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후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야.”
동현의 말에 이정이 매우 놀란다.
“여자를 후계로 말입니까?”
“그렇다네. 현재 신라왕은 자신의 핏줄을 매우 중요시 하는 사람이야. 그렇기에 자신의 후계를 여자라 하더라도 그 자리를 잇게 할 것이라 생각하네.”
“허어… 여자가 한 나라의 지존이 되는 것은 고금에 없던 일인데…….”
“그렇지. 하지만 내가 아는 신라왕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일세.”
이정은 그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여태까지 동현의 말에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그럼 아예 덕만을 보내라고 지목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그러는 편이 우리가 신라를 병합하는데 훨씬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자네는 신라가 예전의 진흥왕 때처럼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군.”
“맞습니다. 소인 비록 수나라 사람이라 하나 장군 밑으로 들어온 뒤부터 이 나라의 역사들을 빠짐없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역사 기록 내용을 보던 중… 신라의 역사를 보고 난 뒤 제가 결론을 내렸는데…….”
“……?”
“장군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신라는 정말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전 기록을 정말 상세하게 봤나보군.”
“그렇습니다. 과거 신라가 백제는 물론 왜에 계속해서 침탈당하고 도성이 심각하게 위협을 당할 때 고구려가 엄청나게 많이 도와주었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헌데 자신들이 위기를 넘기고 나니 훗날에는 그 은혜를 모르고 뒤통수를 치더군요.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왔고 말입니다.”
동현은 이정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자네 말이 모두 맞아. 그래서 내가 신라를 제일 먼저 병합시켜야 한다고 말하여 이 일을 추진한 것일세. 꼭 병합을 해야 하지. 그것도 이번 공격 단 한 번으로 말이야! 그래야 수나라에 맞설 힘을 더욱 크게 키울 수 있다.”
“소인이 반드시 해내 보이겠습니다!”
“그래. 자네라면 안심이야.”
동현은 그렇게 이정을 격려해 주며 당항성의 수비를 더욱 강화했다.
그리고 이것은 남천을 점령했던 고요종도 마찬가지였는데, 조송과 수연이 사신으로 가 조약이 체결된 덕분에 마음 놓고 수비를 강화할 수 있었다.
특히 남천의 경우 본래 신라의 관리들에 의해 폭정에 시달리다가 고요종에 의해 백성들이 안정을 되찾고 민심이 안정되었다.
오히려 백성들이 고요종이 하고자 하는 일을 발 벗고 나서서 도우려 했다.
영양 태왕은 이런 일들을 전령을 통해 보고를 받았고 보고를 받자마자 매우 기뻐하며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들었는가?! 하하하! 당항성은 물론이고! 남천을 점령했으며! 조약으로 한강 유역을 모조리 되찾았다는구만!! 여기 용양장군이 보낸 서찰을 보게!”
영양 태왕은 매우 기뻐하며 연태조와 을지문덕에게 서찰을 보였다.
연태조와 을지문덕은 서찰을 영양 태왕에게 받아 읽어보고는 매우 기뻐한다.
“역시 용양장군입니다. 태왕 폐하! 하하하! 태왕 폐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까지 좋은 성과가 나타날지 몰랐습니다!”
“암! 나도 그렇다네! 솔직히 군을 나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많은 걱정을 했네. 한군데 전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했었지. 각개 격파를 당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소신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보니 그것이 모두 기우였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아… 용양장군 밑에 부장으로 참여 했던 자가 고요종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예전에 강이식 대장군이 있던 요동성의 관리로 있었으며 을지문덕 대모달이 과거에 추천해서 귀족들로 인해 황폐화 된 지역을 잘 다스렸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 저번에 들었었다. 이거… 우리 고구려에 훌륭한 장수들이 늘어나는구만!”
“이게 다 태왕 폐하의 큰 복이십니다.”
“하하하! 암! 이 나라의 복이지! 아… 그리고 여기 보니 우산국도 점령했다고 하는군. 그 나라의 국왕과 황실 사람, 귀족들을 전부 이 장안성(평양성)으로 압송해 오고 있다고 하는데… 자네들은 이들에 대한 처분을 어찌 했으면 좋겠나?”
영양 태왕의 말에 을지문덕이 대답한다.
“그 자들을 이용하십시오.”
“이용하라? 어떻게?”
“듣자하니 우산국에 있는 자들은 신라에 있는 고위층과 연관이 꽤 깊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들을 잘 구슬려서 신라를 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 말은… 죽이거나 노비로 만들지 말고 우리 고구려의 귀족 신분으로 신분만 강등시키며 대우를 해주되 그들을 품으라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단… 지금 고구려 귀족들의 대우와는 달라야 합니다.”
“더욱 잘 해주라는 소린가?”
“그렇습니다. 서찰을 보니 자신의 군이 다 박살난 뒤로는 전세의 불리함을 바로 깨닫고 별다른 저항 없이 스스로 몸을 묶어 항복을 했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수군끼리 부딪쳤을 때 항복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다면 희생이 아예 없었을 것이 아닌가?”
“태왕 폐하. 잊으셨습니까? 저들은 우리의 무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파진포도 그렇고 판옥선에 있는 화포라는 것에 대한 것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저들은 우리 수군과 붙어볼만 하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러니 그 점은 태왕 폐하께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을지문덕의 말에 영양 태왕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하긴… 자네 말을 들으니 이해가 가는군. 섬에 있는 작은 나라지만 국가의 위신과 체면이라는 것도 있으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좋아. 그럼 그들에 대한 처분은 대모달 자네 말대로 하도록 하지. 헌데… 신라가 정말 수군에 대해 감추고 있는 것일까?”
“태왕 폐하. 용양장군이 말한 것이 어디 빗나간 적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분명 수군에 대한 훈련을 숨기기 위해 우산국으로 향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영토가 된지 모르고 말입니다.”
“하하하! 하긴… 용양장군의 뛰어남은 우리 고구려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마음 편히 기다려 줘야겠군.”
“그렇사옵니다. 태왕 폐하. 계속 믿으셔야 합니다.”
“암…! 그래야지! 용양장군에게 격려하는 글을 좀 써줘야겠군. 아… 아니지… 고기와 술을 좀 보내 줘야겠어. 대모달은 고기와 술을 넉넉하게 준비해서 용양장군에게 보내도록 하게.”
“예. 그리하겠습니다. 용양장군 뿐만 아니라 우산국과 용양장군이 있는 곳에도 보내겠습니다.”
“그리하게! 후후후… 기대가 되는구만! 신라가 나에게 넘어온다니 말이야!”
영양 태왕은 다시 한번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연태조, 을지문덕과 한 동안 정무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당항성은 물론이고 남천, 우산국이 고구려 영토가 확실히 되어 수비에 대한 신경을 바짝 쓰고 있었다.
이제는 한강 유역 또한 신라 관리와 군사들이 물러나고 고구려 관리와 장수들이 부임해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라는 동현의 의도대로 신라에서 볼모로 덕만을 장안성으로 보내게 되었다.
진평왕은 이런 고구려의 요구에 매우 큰 분노를 느꼈지만, 힘이 약하니 만큼 고구려에 대항할 수 없었기에 애써 꾹 참으며 덕만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며 당부했다.
“덕만아. 미안하구나… 우리 신라의 힘이 약하다보니 이런 수모를 겪게 되었어.”
“…….”
“빠르게 우리 신라의 국력을 키워서 너를 반드시 고구려에서 꺼내오겠다. 그러니 그 동안만… 고구려에서 볼모 생활을 하거라. 알겠느냐?”
“왜 꼭… 저여야 합니까? 언니도 있는데…….”
“고구려에서 너를 볼모로 보내라고 하는구나. 네 언니는 장녀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
“미안하다. 덕만아…….”
그렇게 덕만 공주는 고구려에 보내졌고 진평왕의 뒤를 이어 한국사 최초의 여왕이 되었던 선덕여왕은 고구려에서 볼모 생활을 하게 되었다.
* * *
한편, 우산국에서는.
“음? 저 배는 뭐지?”
“어디?”
우산국에서 순찰을 하는 고구려 군사들이 멀리서 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신라의 배가 올지 모르니 잘 보라고 하지 않았어?”
“맞아. 그리고 절대 배에 깃발을 꽂지 말라고 말씀하셨잖아. 신라에서 오면 그 사람들을 잡아야 하는데 깃발을 보면 도망칠 거라고 말이야.”
“그래. 그러셨지. 그럼 내가 저 배가 어디 배인지 상대에게 들키지 않는 선에서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볼게. 그러니 너는 얼른 총사께 가서 소식을 알려!”
“알겠어!”
포구 근처를 순찰하던 고구려 군사들은 정체모를 배가 아주 멀리서 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보고를 올린다.
보고를 받은 석우는 이석과 함께 바로 포구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보고 드립니다!”
“그래. 보고 왔느냐?”
“예! 깃발을 보니 신라의 배가 확실했습니다!”
“그래? 여러 번 확인한 것이더냐?!”
“물론입니다! 총사!”
“수고했다. 물러 가거라.”
“예!”
배에서 신라의 배를 확인한 군사는 빠르게 배를 몰아 먼저 석우에게 보고를 했고 보고를 받은 석우는 군사를 물리고는 이석에게 말한다.
“용양장군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예상해 내다니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오. 자… 그럼 우리는 우산국 사람처럼 위장하고 신라 사람들을 태연하게 맞이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배에서 내리면 그들을 모두 포박하는 거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럼 지금 바로 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 이곳에 상륙하려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군요.”
“하하하! 아까 보고를 받자마자 내 수하들에게 미리 준비를 해도도록 했소이다. 그러니 걱정 마시오!”
“역시 장군이십니다. 그럼 이번 일은 장군만 믿겠습니다.”
이석은 석우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수하들을 부른다.
“너희들은 우산국 신하의 복색을 갖춰서 입고 태연하게 포구로 나가 신라 사신들을 맞이하 거라. 그리고 신라의 사신들이 완전이 뭍으로 올라오면 바로 생포하도록 해. 알겠는가?”
“예! 장군! 일부 군사들을 수부들로 위장시켜 매복까지 시켰으니 손쉽게 잡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잘했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이행하야 할 것이야! 알겠느냐?!”
“예! 장군!”
명을 받은 이석의 수하들은 신라 사신을 잡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