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동현은 청명 공주를 재가시키려 설득하고, 양량의 혼인을 주선하다.
동현은 온사문이 방을 나가자 진지한 표정으로 청명 공주에게 민감한 말을 한다.
“저, 공주님.”
“예. 스승님. 무언가 하실 말씀이라도…….”
“조금 민감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동현의 말에 청명 공주는 굳은 얼굴로 대답한다.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알겠습니다. 제 혼인 때문에 그러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예전에 공주님께서 한 번 혼인하셨다고는 하나 이제 그 분께서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
“공주님께서 그 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저도 압니다. 예전에 저를 떠나서 궁에 돌아오시고 난 후, 제게 서찰로 말씀하시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전 더욱 기뻤습니다. 서로 사랑해서 혼인을 하면 잘산다는 말이 있어서 말입니다.”
“…….”
“허나 공교롭게도 그 분께서는 건강이 좋지 못하셨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것에 대한 공주님의 기분이 어떠셨을지… 소인은 상상도 하기 힘들군요. 아마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허나 공주님. 제가 공주님을 가르칠 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라는 말, 기억 하십니까?”
동현의 말에 청명 공주는 표정을 찡그리며 대답한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단 말씀이십니까?”
“공주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아닌 줄 아오나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고 계십니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같은 황실 식구들에게 말입니다.”
“황실 식구들…….”
“그렇습니다. 그들은 공주님께서 그 분을 떠나보내시고 난 후, 공주님이 상처를 하루라도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들어오는 혼인도 공주님의 눈치를 보며 거절을 했다고 하지요.”
“저는 분명 저를 신경 쓰지 말고 혼인을 하라고 말까지 했습니다.”
“저도 압니다. 그러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허나… 그게 어디 쉽게 되겠습니까? 공주님.”
“…….”
“특히 귀족들이면 모르나 황실 분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황실은 체면을 중시하는 곳. 공주님께서 재가를 하지 않으신다면 계속해서 황실 식구들과 불편하게 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
“그리고 이제 선제 태왕 폐하는 물론이고 같이 계셨던 태황후 마마께서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황실 사람들이 더욱 더 공주님의 눈치를 볼 것입니다.”
동현의 말에 청명 공주는 여전히 언짢다는 듯 대답한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마음 내키는 대로 언행을 실천해 왔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을 했었지요. 그게 잘못이란 말입니까?”
“저는 공주님께서 잘못했단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변의 시선이 있으니 한 번쯤은 꺾여 주시라는 겁니다.”
“…….”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이런 풍토를 바꾸고 싶습니다. 허나 아직은 이런 의식이 주를 이루니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는 법. 이럴 때는 순리대로 따르면서 천천히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하는 법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확 바꾸었다가는 그에 따른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
“공주님께서 마음을 잡지 못 하시겠다면…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제가 사실 공주님께 어울리는 사람을 태왕 폐하의 명령에 보고 왔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나서 결정을 하십시오. 만약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저도 태왕 폐하께 따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공주님께 혼인을 강요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동현의 말에 청명 공주가 깜짝 놀란다.
“대막리지… 아니 스승님. 저도 이제 나이가 꽤 많습니다. 헌데 저를 원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에게 혼인을 강요한 것 아니십니까?”
동현은 청명 공주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아닙니다. 그 분도 공주님처럼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긴 한데 이제 성인이 되었고 말입니다. 공주님과 비슷한 조건이니 절대 강요는 아닙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공주님. 제가 말한 조건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스승님의 부탁이니 일단 만나는 보겠습니다. 헌데…….”
“걱정 마십시오. 제가 예전부터 한 약조는 꼭 지킵니다. 다만 공주님도 약조해 주십시오.”
“……?”
“돌아가신 그 분을 생각하여 새롭게 남편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배척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봐주십시오. 그게 공주님께 제가 말할 수 있는 약조입니다.”
동현의 말에 청명 공주는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 가시려고요?”
“예. 공주님. 도성에서 할 일이 꽤 많아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조심히 가십시오. 스승님.”
“시간이 되면 가끔씩 놀러오겠습니다.”
동현은 그렇게 청명 공주의 방을 나가려는데 갑자기 청명 공주가 동현을 뒤에서 부른다.
“저… 스승님!”
“……?”
“아까 제게… 사람들의 인식을 천천히 바꾼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그 일을… 스승님께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동현은 청명 공주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저는 이미 그 일을 실천 중입니다. 아직 많은 것이 한꺼번에 변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변하고 있는 중이지요. 공주님의 기대에 꼭 부응할 테니 계속 저를 지켜보십시오.”
동현의 말에 청명 공주는 동현의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스승님을 믿겠습니다.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동현은 그런 청명 공주와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는 청명 공주의 처소를 나왔다.
동현은 청명 공주의 처소를 나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가 살던 현대에서는 일부일처제와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을 할 수 있었지. 허나 이 시대는 달라. 아니, 시대라고 할 수는 없겠군. 이 고구려에서는 생각보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혼인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야.’
동현은 공주의 처소를 돌아보다 생각을 이어나갔다.
‘다만… 황실은 내 예상대로다. 경직되어 있는 생각. 마음이 맞는 사람이 없어서 혼인을 안 하는 건데 혼인을 안 하면 뭐가 어때서? 후우… 하지만 지금 이 황실의 생각은 나와 사고방식이 다르니 일단 따라줘야겠지. 부디 공주님이 고요종을 마음에 드셔야 할 텐데…….’
동현은 그렇게 한숨을 쉬며 자신이 일을 하는 대막리지 관부로 향했다.
그믐(30일)후.
동현은 드디어 도성에서 일을 다 보고 백암성으로 돌아가기 전 고보장을 알현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 가려는 것인가?”
“예. 태왕 폐하. 귀족들 문제도 다 해결되었고 다시 백암성으로 돌아가 북방을 살피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게.”
“예. 헌데…….”
“……?”
“공주님으로부터 무슨 소식은 없었습니까?”
“아직까지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네. 다만 내가 듣기에 고요종이 가끔씩 공주의 처소에 들른다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한 번뿐 아니라 더 들렀다고 합니까?”
“내가 들은 바로는 그렇네.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일단 공주님께서 고요종을 거절한 것은 아니니 좀 더 지켜보시지요. 공주님은 결단력이 있으신 분이니 언젠가 무슨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좀 더 기다려 봐야겠어. 아무튼 이제 그 일은 좀 더 지켜봐야 하니 이제 자네가 신경쓰지 말게. 자네의 역할은 공주와 고요종을 연결시켜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예. 태왕 폐하. 그럼 소신 백암성으로 가서 종종 소식을 전하겠나이다. 그리고 제가 백암성으로 가더라도 제가 내준 과제는 꼭 하십시오. 돌아오면 확인할 것입니다.”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절을 하고 백암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백암성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양량도 함께했다.
“도성 못지않은 성이군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아, 저기가 자네의 처소야. 앞으로 저기서 지내면 되네.”
“감사합니다. 매형.”
“감사는 무슨. 이제 우리는 한 집안인데 말이야. 앞으로 종종 보세나. 자네 누나도 옆에 있으니 자주 와.”
“예. 그리하겠습니다. 헌데 매형.”
“음?”
“저는 언제 하북 지방으로 갑니까?”
“하북 지방에서 계책이 실행되려면 시간이 좀 걸려. 그곳 사람들과 종종 연통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때가 되면 하북 지방으로 보내주겠다. 그 때부터는 네가 정말 바빠질 것이니 준비를 철저히 해놓거라. 알겠느냐?”
“예. 매형.”
동현은 양량에게 백암성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양량은 백암성을 둘러보며 매우 놀란다.
‘아니… 무슨 변방에 있는 성이 도성보다 더 좋은 것 같군. 오래 전부터 매형이 관리하고 발전시켜서 그런 것인가? 그렇다는 건 매형의 능력이 정말 뛰어나다는 것인데… 누님께서 시집을 잘 갔다고 봐야하나?’
양량은 그렇게 동현의 밑에 들어와 순조롭게 섞여 들어갔다.
동현은 양량이 진심으로 예전 수나라 때의 모습을 잊고 자신의 가문과 고구려를 위해 군을 훈련시키는 모습을 보자 매우 만족하며 양량의 혼인까지 주선해주었다.
“아니, 매형. 제가 나이가 있는데… 올 사람이 있겠습니까?”
“한 사람, 자네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있네.”
“……?”
“내가 오래 전 신라에서 봤던 여자인데 아주 현명하더군. 나의 막내 부인인 사촌 자매가 되는 사람이야. 승만이라고 하는데 그 여자가 자네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배필인 것 같네. 아직 그 여자가 혼인을 하지 않았거든.”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 않습니까?”
“아마… 한 7살~8살이 어릴 걸세. 허나 그 정도 차이면 괜찮아. 그리고 내 막내 부인이 아직 그 아이가 혼인을 하지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더군. 그러니 일단 만나보게. 자네가 마음에 들면 혼인을 하도록 하지.”
동현의 말에 양량은 얼떨떨하기만 하다.
양아오는 그런 양량을 보며 잘 되었다고 말을 해주었고 혼인을 주선해준 동현에게 고마워했다.
다음 날.
양량은 동현의 막내 부인 덕만과 함께 승만과 만나게 되었다.
양량은 승만을 보고나서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이가 자신의 나이라면 나이도 꽤 있을 텐데도 그 미색이 대단했기 때문.
덕만은 그 모습을 보며 양량에게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제 사촌 동생이 마음에 드시는지요? 장군.”
“예? 아, 예. 마음에 듭니다.”
“다행입니다. 승만이 너는?”
“음… 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혼인을 하는 것은 아니니 좀 더 장군에 대해 알아보고는 싶군요.”
“너도 나이가 찰만큼 찼다. 되도록 빨리 혼인을 해야지.”
“언니. 혼인은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합니까? 저는 반대입니다.”
“으음…….”
“한 100일 정도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 시간 동안 장군과 자주 만나보고 자와 잘 맞으면 제가 직접 혼인을 시켜달라고 말하겠습니다.”
“음… 좋아. 약속 한 거다?”
“예. 언니. 단 100일이 지난 뒤 제가 혼인하기 싫다 해도 아무 말 하지 마십시오. 남자는 장군만 있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애가 지금 장군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죄송합니다, 장군. 얘가 좀 철이 없습니다.”
“아, 아닙니다. 맞는 말인데요. 저도 바로 혼인을 하는 건 반대입니다. 오히려 아주 잘 되었습니다. 만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양량과 승만은 100일간의 연애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분열된 수나라의 각지 영토에서는 여전히 군웅들과의 전쟁이 치열했다.
특히 동현에 의해 밀려난 왕세충은 여전히 이밀과 한중 지역을 두고 치열하게 전쟁을 하고 있었고, 동현이 차지하려는 서주 지역과 과거 오나라 손권이 다스렸던 양주 지역은 사훈과 고경, 장손무기의 계책에 의해 서로 물리고 물리는 치열한 전쟁을 계속해서 치르고 있었다.
업성에서 이 모든 것을 보고 받고 있던 박준과 왕고중은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이대로라면 우리의 계획이 앞당겨 질 수도 있겠군.”
“그럴 것 같습니다.”
“좋아. 일단 일의 진척에 대해 대막리지께 알릴 수 있도록 전령을 보내게. 그리고 서주 지역과 양주 지역에 대한 세작들을 2배 이상 더 늘려. 그 쪽 상황을 알아보고 우리가 빨리 움직이려면 무엇보다도 소식이 빨라야 하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둘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방 밖에서 한 군사가 보고한다.
“대총사! 좌군사 고경님께서 오셨습니다!”
“뭐라? 좌군사님께서? 얼른 모시거라!”
갑작스레 고경이 업성을 찾아왔다는 말을 듣자 박준은 매우 놀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