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28화 (28/150)

# 28

/혈룡전 2권 (28화)

1장 피의 저주 (3)/

까마귀 한 마리가 삼층 높이의 전각 창문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까악!

마치 자신이 왔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까마귀가 부리를 벌리고 크게 울었다.

덜컹.

그러자 창문이 열리며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간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얼굴을 드러냈다.

“복령수(僕靈獸)?”

사내의 눈동자가 세로로 가늘게 좁혀졌다.

번쩍!

동시에 사내의 눈에서 안광이 터져 나왔다.

―통주를 뵈옵니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까마귀로부터 사람의 말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무슨 일이냐 삼호?”

통주라 불린 사내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제녕의 초가장이 무너졌습니다.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

예상치 못했던 보고였기 때문이다.

“누구 짓인가? 제검문인가?”

당장에 제녕에서 위험이 될 만한 요소는 그들뿐이었다.

하지만 제검문도 결코 초가장의 상대는 아니었다.

제검문의 전력이라야 빤했기 때문이다.

절정고수는 문주인 임혁군과 홍천상뿐이었고, 일류에 이른 고수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중 문주인 임혁군이 이번 일에 직접 나섰을 리는 없으니, 기껏해야 홍천상 하나만 제대로 처리하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인 셈이다.

그에 반해 초가장의 전력은 월등했다.

장주인 초진도는 절정을 훨씬 웃도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외에도 두 명의 절정 고수가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무사들이 일류에 근접했거나 넘어선 이들이었다.

제검문 전체가 달려왔다 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도움을 준 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내의 날카로운 눈이 더욱 사나워졌다.

“도움을? 대체 누가?”

―하오문입니다.

통주라는 사내의 눈에서 서늘한 한기가 일었다.

“하오문이 제검문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된다는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란 말이냐?”

하오문은 사실상 무림 문파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구성원들의 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물론, 신법이나 은신 따위의 잡술에는 제법 뛰어난 자들이 몇몇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하오문 전체가 덤벼들지 않는 이상 초가장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제녕 분타라면 하오문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 초가장을 상대할만한 전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미, 믿어 주십시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놈들 중에 젊은 사내 하나가 있었는데, 그자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자는 복령수도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복령수를?”

사내의 표정이 일변했다.

“네가 보았던 것을 그대로 나에게 전하라!”

심각한 얼굴로 사내가 까마귀와 시선을 맞추었다.

순간 까마귀의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동시에 삼호가 보았던 진운룡의 영상이 그대로 사내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초진도의 팔을 자르고, 초진도를 심문하는 모습.

소진태의 행방에 대해 묻는 모습이 그대로 펼쳐졌다.

그리고 진운룡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영상이 ‘팍’ 하고 꺼져 버렸다.

“으음…….”

사내가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을 흘렸다.

분명 삼호의 말이 맞았다.

놈이 복령수를 알아본 것이다. 게다가 그 능력 또한 불가사의했다.

고작 이십 대의 애송이가 절정을 넘어선 초진도를 일 수만에 제압했다.

초진도의 금제가 발동한 것으로 보아 심령을 제압하는 술법도 사용한 듯했다.

정도(正道)의 무인이라면 여간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 수법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오문에 저런 자가 있는 거지?”

사내의 안면 근육이 꿈틀댔다.

‘하오문이 비밀리에 키운 인재라도 되는 것인가?’

그럴 리는 없었다.

하오문의 능력으로 인재를 키워 봐야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금력을 동원해 영약을 퍼 먹이고, 좋은 무공 스승을 붙여 줬다 해도 근본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승무공이 없는 이상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전통 있는 문파들이 무서운 것이다.

오랫동안 쌓여 온 지식과 무공, 깨달음, 그리고 상승 경지로 이끌어 주는 스승, 이런 것들이 바로 그들을 항상 강자로 다른 이들의 머리 위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요소들이다.

그들이 세대마다 수많은 고수들을 배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역시 하오문 제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하오문도들과 함께 제검문을 도왔는지 의문이었다.

‘뭐, 어쨌거나 대계(大計)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해.’

영상으로 확인한 진운룡의 능력은 분명 뛰어났다.

하지만 그뿐.

아무리 날뛰어 봐야 이미 대계는 시작되었고, 그들의 주인이 움직이게 되면 세상은 피에 잠길 것이다.

복령수를 알아본 점이 조금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당장에 중요한 것은 대계였다.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 두는 것이 좋겠지. 감히 겁도 없이 우리를 건드린 대가도 치르도록 해야 하고 말이야.’

사내는 영상 속에서 진운룡이 소진태에 대해서 물었던 것을 떠올렸다.

소진태라면 하오문 제녕 분타주였다.

보고에 의하면 초가장에 대해서 캐고 다니다 초진도에게 붙잡혔다고 되어 있었다.

“소진태는 지금 어디에 있지?”

―제남입니다.

사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일었다.

“그럼 놈들도 제남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겠군.”

소진태를 찾는다고 했으니 결국은 제남으로 오게 될 것이다.

“후후후. 그렇다면 사령들께 도움을 청해야겠군. 어디 네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해 보도록 하자.”

사내가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   *   *

한편, 적산은 진운룡이 알려 준 심법을 수련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어느새 거칠고 느글느글한 성격 또한 회복한 상태였다.

진운룡이 처음 적산에게 내려 준 무공은 파천신공(破天神功)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심법이었다.

파천신공은 특이하게도 삼단전에 동시에 공력을 쌓기 때문에 내공이 늘어나는 속도가 다른 심법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빨랐다.

문제는 이 심법을 사용하려면 세 개의 단전이 모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하단전을 만드는 데만도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린다.

하물며 세 개의 단전을 모두 생성했다면 강호에서는 이미 손에 꼽는 고수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심법을 배우기 위한 조건이 삼단전이 모두 생성되어 있어야 한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진운룡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진운룡의 종이 되기로 한 다음 날 적산은 다시 한 번 지옥을 맛봐야 했다.

몸이 채 회복하지도 않은 적산에게 진운룡은 경악스럽게도 인위적으로 세 개의 단전을 만들어 줬다.

물론, 억지로 단전을 만드는 만큼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몸속의 모든 뼈가 부서져 나가고 근육과 피부가 갈가리 찢기는 극한의 고통이 무려 세 시진이나 이어졌다.

적산은 기절하지조차 못하고 그 고통을 모조리 겪어 내야 했다.

그 독하디독한 적산마저도 여인처럼 비명을 질러 댔을 정도였다.

단전을 만들고 난 후 그 여파로 의식을 잃었다 사흘만에야 깨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운룡은 ‘죽으면 말고. 어차피 제 놈 복이지.’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해 소은설과 후기지수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의식을 되찾은 적산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삼단전이 열린 그는 그 기도(氣度)부터 달랐다.

게다가 진운룡이 단전을 생성하며 집어넣어 준 공력만 해도 거의 일 갑자에 달했다.

일 갑자면 거의 절정고수라 부를 수 있는 내공 수준이었다.

그 이후로 적산은 진정한 진운룡의 수족이 되었다.

그 거칠고 싸움 좋아하는 성질은 여전했으나, 진운룡의 말 한 마디면 순한 양이 되었다.

한편 적산의 변모된 모습을 확인한 후기지수들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더욱이 단 하루 만에 고수 한 명을 뚝딱 만들어 내는 진운룡의 능력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간 진운룡이 보여 준 무공실력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 갑자에 가까운 공력을 적산에게 주고도 진운룡은 전혀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도대체 현 무림에서 이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아마도 강호제일 고수들이라고 일컫는 십이천(十二天) 정도는 돼야 겨우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것도 짐작일 뿐이지 과연 그들조차 이런 일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그만큼 진운룡의 등장은 무림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후기지수들이 곧장 이 사실을 각 가문에 알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황보영천 역시 자신의 아버지이자 현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보혁군에게 진운룡에 대해 보고했고, 황보혁군은 급히 진운룡을 가주의 손님으로 대우했다.

또한 소진태를 찾는 데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소은설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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