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30화 (30/150)

# 30

/혈룡전 2권 (30화)

2장 악연/

“젠장!”

제갈무진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눈엣가시처럼 생각했던 진운룡이 알고 보니 상상을 불허하는 고수였다는 사실에 그의 정신은 거의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천미각에서 진운룡에게 들이댔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얼른 제갈세가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세가에서 온 연락으로 인해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세가에서는 제갈무진과 제갈성진이 황보세가에 남아 진운룡에 대해 좀 더 정보를 알아 오기를 원했다.

마음 같아서는 제갈성진만 남겨 두고 자신을 돌아가고 싶었으나, 제갈성진은 이번이 강호 첫 출행이었다. 그런 동생을 혼자 남겨 두고 자신만 돌아가는 것을 세가에서 용납할 리가 없었다.

결국엔 세가의 명을 어떻게든지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운룡 근처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무슨 수로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단 말인가.

그렇다고 제갈세가의 가주 자리를 노리고 있는 자신이 자존심까지 굽히면서 진운룡에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결국 근본조차 알 수 없는 자가 아닌가.

어차피 혼자 아무리 강해 봐야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같은 거대한 세력과 맞설 수는 없었다.

“흥!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잘난 척하다가 언젠가는 큰코다치지!”

콧방귀를 뀌며 진운룡을 비웃던 제갈무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현재 그는 그의 형 제갈영진과 후계자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갈세가의 특성상 후계자는 장자 계승이 아닌 능력을 기준으로 뽑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제갈영진이 간발의 차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일 이번에 어느 정도 공을 세울 수 있다면 자신이 후계자 경쟁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자존심 때문에 이런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리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제갈무진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갈등어린 얼굴로 고민에 빠져 있던 제갈무진이 결심이 선뜻 방문을 열어젖혔다.

“젠장! 어쩔 수 없지! 부딪혀 보는 수밖에.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어차피 진운룡 같은 고수를 감시해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꼴이었다.

그렇다면 거짓으로라도 비유를 맞춰 주면서 근처를 얼쩡거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결국, 진운룡을 직접 찾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라? 시간이 너무 늦은 거 아니야?”

하지만 밖에 나와 보니 어느새 날이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방 안에서 고민에 빠져 있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여름 해가 긴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삼경에 가까운 시간인 듯했다.

“지금 찾아갔다간 자칫 욕만 얻어먹겠군.”

그렇지 않아도 별로 반갑지 않은 만남인데, 이 시간에 찾아가 봐야 좋은 반응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쳇!”

눈살을 찌푸린 제갈무진이 막 돌아서려는데, 마침 제갈성진이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진 공자 숙소에 있다가 오는 것이냐?”

제갈무진이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동생과 자신이 진운룡에게 자존심도 버리고 매달리는 꼴이 너무도 우스워 보였기 때문이다.

“예, 저녁에 갔는데 어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아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한데, 방금 전에 소은설 낭자가 오늘은 일이 있어 새벽에나 들어올 거라고 하더라구요.”

진운룡은 천운상회를 나온 후 바로 천향루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그 자식 때문에 너나 나나 이게 무슨 고생이냐! 수고했으니 들어가 쉬거라.”

“네, 형님. 형님도 편히 쉬십시오.”

제갈성진과 작별인사를 나눈 후 제갈무진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가만!”

그때,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듯 제갈무진이 움직임을 멈췄다.

‘진운룡이 지금 숙소에 없다고?’

제갈무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현재 가문에서 원하는 것은 가능하면 진운룡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진운룡에 대한 정보를 얻는 일이다.

어차피 제갈무진이 진운룡과 친해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정보를 얻는 일은 달랐다.

진운룡이 숙소를 비운 지금 그의 방을 뒤져 본다면, 무언가 그에 대한 숨겨진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다가 진운룡의 정체와 관련된 물건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물론, 별다른 것이 없을 가능성도 많았다.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방에다 놓고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방 안의 장에 넣어 두고 자물쇠를 걸어 놓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운룡의 방을 자신 마음대로 뒤져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쩐지 뒤통수에 한 방 먹이는 것 같아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그 하오문 계집이 새벽에나 돌아온다 했으니 그전에만 빠져나오면 돼!’

결정을 내린 제갈무진이 진운룡의 숙소로 향했다.

*   *   *

진운룡의 숙소에 도착한 제갈무진은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안쪽에서 잠그지 않는 한 별다른 잠금장치가 없는 문이기에 제갈무진은 쉽게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제갈무진은 눈이 어둠에 적응될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방 안의 풍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침상 위에 간소한 짐 보따리가 보였다.

제갈무진은 망설이지 않고 짐 보따리를 뒤졌다.

여행 중에 남은 건량과 육포, 갈아입을 옷 한 벌 외에는 특별한 것을 찾기가 어려웠다.

‘은자도 한 푼 안 가지고 다니는 것인가?’

사실 여비는 소은설이 관리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제갈무진은 조심스럽게 보따리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은 후 침상과 탁자를 뒤졌다.

제갈무진이 침상의 이불을 들추고 안쪽을 살피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문밖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지?’

깜짝 놀란 제갈무진이 감각을 집중해 밖의 상황을 살폈다.

‘발자국 소리가 조심스러운 것을 보면 분명 진운룡은 아닌데…….’

그때, 정체불명의 인영이 진운룡의 방 문밖에서 멈춰 섰다.

인영은 무엇 때문인지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뭐야? 설마 나처럼 놈이 없는 틈을 타서 방을 뒤지려는 자는 아니겠지? 아니, 혹시 하오문 계집이나 그 무식한 적가 놈일 수도 있어!’

만일 그렇다면 큰일이다.

적당한 변명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젠장!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자!’

상대가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수도 있었다.

제갈무진은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최대한 기척을 죽였다.

“진 공자 안에 계시나요?”

그때, 상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갈무진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모용 소저가 왜?’

놀랍게도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모용주란이었던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제갈무진이었다. 하기야 어떤 사내가 모용주란 같은 여인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데, 대체 그녀가 왜 이 늦은 시간에 진운룡의 방으로 찾아왔단 말인가.

제갈무진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진 공자님, 저 모용주란이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왠지 떨리는 듯하면서도 촉촉한 그녀의 목소리가 제갈무진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설마!’

“공자님. 저 지금 들어갈게요.”

순간, 모용주란이 문고리를 잡고 방문을 열려 했다.

‘젠장!’

여기서 모용주란에게 들키면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볼지 빤했다.

머리를 굴리던 제갈무진이 재빨리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었다.

일단, 자는 척하면 알아서 돌아갈 것이라 여긴 것이다.

“아무 말도 없으시니 허락하시는 것으로 알게요…….”

잠시 머뭇거리던 모용주란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제갈무진은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꼼짝하지 않았다.

“진 공자님, 이렇게 무례하게 찾아뵈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여인인 저 역시 이런 늦은 밤에 사내 혼자 있는 방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순간 제갈무진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모용주란이 갑자기 침상으로 다가오더니 그 위에 걸터앉았기 때문이다.

“저……. 실은 처음 공자님을 본 순간부터 부끄럽지만 마음에 담고 있었어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제갈무진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첫눈에 반해 버린 모용주란이 하필 진운룡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니.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제갈무진은 이 상황 자체를 부정했다.

‘아마도 그녀 역시 가문의 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놈과 가까워지려는 것일 거야!’

그렇지 않다면 그런 근본도 모르는 놈에게 마음을 줄 리가 없었다.

“저 여기까지 오기 위해 많이 망설였어요. 몇 번씩 되돌아가다 겨우 용기를 낸 거예요……. 이대로 절 쫓아내시진 않으실 거죠?”

그녀의 목소리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제갈무진은 뭔가 최악의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 설마…….’

모용주란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진운룡이 자신을 받아 줬다고 여겼다.

“저……. 고, 고마워요. 허락해 주셔서.”

부끄러운 듯 머뭇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동시에 천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르륵!

순간, 제갈무진을 지탱하던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모용주란이 자신의 앞에서 옷을 벗은 것이다.

그것도 그 근본도 없는 진운룡을 위해.

처음엔 분노가 밀려왔다.

대체 그까짓 놈이 뭔데 모용주란이 자신의 몸을 바치려 한단 말인가.

하지만 모용주란의 벗은 몸을 상상할수록 점점 욕정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그녀의 농염한 육신이 있다고 생각하니 달아오르는 음심(淫心)을 도저히 자제할 수 없었다.

제갈무진은 슬쩍 이불을 들어 모용주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부끄러운 듯 뒤돌아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나신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 내고 있었다.

‘꿀꺽’

제갈무진은 극도로 흥분되는 자신을 느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아랫도리에 피가 몰렸다.

바로 눈앞에 자신에게는 여신과 같던 모용주란이 있었다.

그것도 옷을 모두 벗은 채 알몸인 상태로.

‘이익!’

흥분을 참지 못한 제갈무진이 그대로 모용주란을 끌어안았다. 이미 뒷감당 따위는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아!”

모용주란의 입술 사이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제갈무진의 두 손이 모용주란의 탐스러운 가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 사이로 넘쳐 나는 풍만한 그녀의 가슴에 제갈무진은 더욱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사, 살살 해 주세요.”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제갈무진은 난폭하게 그녀의 몸을 탐했다.

가슴을 유린하던 제갈무진의 손이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하아……!”

모용주란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입김이 흘러나왔다.

제갈무진의 손이 그녀의 골짜기를 파고들었다.

“으음……!”

모용주란이 자신도 모르게 교성을 흘렸다.

제갈무진이 더는 참지 못하고 바지를 내리고 그녀를 돌려 세워 침대에 눕혔다.

모용주란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랑이든 필요에 의해서든 자신의 순결을 바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먼저 자존심을 버리고 달려들었다.

여인으로서 상대를 태연하게 마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제갈무진은 눈을 감은 채 파르르 떨고 있는 모용주란의 나신을 지긋이 내려다봤다.

‘저, 정말 미치게 만드는군!’

침을 꿀꺽 삼킨 제갈무진이 그대로 그녀의 몸 위로 자신의 무게를 실었다.

“흐읍!”

제갈무진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모용주란은 신음을 토해 냈다.

처음 남자를 받아들인 아픔이 그녀의 하반신을 저릿하게 했다.

그때, 제갈무진이 그녀의 몸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의 통증이 지나가고 모용주란의 몸이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흐윽!”

몸을 관통하는 쾌감에 그녀도 모르게 교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팔이 제갈무진의 등을 휘감았다.

“아! 사랑해요……!”

모용주란이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도 사랑하오. 모용 소저!”

순간, 모용주란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들려온 것은 진운룡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얼른 눈을 떠 자신의 위에 올라탄 사내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얼굴은 분명 진운룡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제갈무진!”

제갈무진은 아차 싶었다.

자기도 모르게 말을 하고 만 것이다.

“다, 당신 뭐하는 거예요!”

모용주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당혹과 분노로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제갈무진은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다.

이대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흥! 그대가 스스로 뛰어들었으니, 날 원망 마시오!”

제갈무진은 그대로 그녀의 몸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아악! 이런 나쁜 새끼!”

“흐흐흐,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달려올 거요.”

제갈무진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낮게 말했다.

모용주란이 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다.

이 상태를 절대로 다른 이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이, 이 파렴치한…….”

“흥! 어차피 그런 근본도 모르는 놈에게 순결을 잃느니, 이편이 백배는 낫지!”

제갈무진이 거칠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가쁜 호흡을 몰아쉬는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그만!”

모용주란이 필사적으로 밀어내려 애썼지만, 힘으로 제갈무진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모용주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갈무진은 광기에 젖은 채 모용주란을 유린했다.

모용주란은 이를 악문 채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불길이 잦아들고, 제갈무진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모용주란 위로 쓰러졌다.

“헉, 헉! 역시 대, 대단하군! 후후후!”

제갈무진은 몹시 만족한 듯 얼굴에 만연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갈무진을 밀쳐 낸 모용주란이 천천히 옷을 걸쳤다.

그녀의 두 눈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잠시 한숨을 돌린 제갈무진이 몸을 일으켰다.

“후후후, 날 너무 원망 마시오. 일이 이렇게 된 것에는 그대의 탓도 크오. 또한 나는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오. 반드시 그대를 아내로 맞을 것이니 걱정 마시오.”

옷을 다 입은 모용주란이 몸을 일으켜 제갈무진을 돌아봤다.

“누가 더러운 네놈의 아내가 된다더냐? 넌 오늘 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내 무슨 수를 쓰든 네놈에게 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네놈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제발 살려 달라고 빌도록 만들 것이다!”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모용주란의 말에 잠시 멈칫했던 제갈무진이 코웃음을 쳤다.

“훗! 어차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도 못할 텐데, 내가 겁이라도 먹을 것 같소?”

제갈무진의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만일 제갈무진이 억지로 겁탈이라도 한 것이라면 그도 이렇듯 당당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밤에 홀로 남정네의 방에 찾아와 그것도 스스로 옷을 벗어 던진 것은 모용주란이었다.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녀 역시 끝이었다.

“그리고 그대도 속으로는 즐기지 않았소?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 줄 때 허락하는 것이 좋을 거요. 솔직히 내가 아니면 누가 이미 더럽혀진 당신을 받아들이겠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하는 제갈무진을 보며 모용주란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 어디 두고 보자! 내 모든 것을 동원해서 너를 반드시 거꾸러뜨리고 말 것이다!”

한참을 제갈무진을 노려보던 모용주란이 거칠게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아직 아쉬움이 남은 듯 제갈무진이 입맛을 다시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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