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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31화 (31/150)

# 31

/혈룡전 2권 (31화)

3장 천향루 (1)/

한편, 자신의 방에서 폭풍이 휘몰아치고 지나갔음을 알지 못한 채 진운룡은 천향루에 도착했다.

천향루는 천미각 못지않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기루답게 삼경이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일단은 손님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새벽이 되면 아마도 집으로 돌아갈 이들은 돌아가고, 남은 자들 역시 기녀를 끼고 잠자리에 들 것이다.

아무래도 그때 움직이는 편이 덜 번거로울 듯했다.

지금은 손님과 천향루 종업원을 가려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다린 지 반 시진 정도 지나고 나자 기루도 어느 정도 조용해졌다.

물론, 아직 많은 손님이 기루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놀 놈들은 밤을 새워 놀 것이기에 진운룡은 이쯤에서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휘익!

진운룡이 한 마리 비조처럼 천향루 꼭대기로 훌쩍 날아 올라갔다.

단 한 번의 도약만으로 무려 십 장에 이르는 높이를 뛰어오른 것이다.

천향루 주변으로는 기루를 관리하고 말썽 부리는 손님들을 처리하는 몇몇 무사들만 있을 뿐 그다지 눈에 띠는 자들이 없었다.

그들 역시 무공을 익혔지만 그다지 뛰어나 보이지는 않았다.

진운룡은 기감을 확장시켜 우선 건물 안쪽을 탐색했다.

일단 초가장의 경우처럼 지위가 있는 자를 잡아 정보를 캐내는 것이 가장 좋을 듯싶었다.

꼭대기 층인 오층에는 제법 강한 자들이 몇 보였다.

문제는 그들이 손님이냐, 아니면 천향루 사람이냐였다.

오층은 아무래도 기루 최고급 손님들을 접대하는 곳이기에 손님 중에서도 무공이 높은 자들이 있을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자는 좌측 끝 방에 머물고 있었다.

‘이미 절정을 넘어섰군. 오히려 초진도보다 더 강한데?’

다른 자들이 대부분 몇 명씩 모여 있는 반면, 그자는 혼자서 방에 머물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기루에 혼자 머문다는 것은 분명 수상한 일이었다.

‘우선 저자부터 확인해 봐야겠군!’

순간 진운룡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목적지에 도착한 진운룡은 지체하지 않고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그림자가 스며들듯 소리조차 없었다.

“누구냐!”

순간, 방 안에 있던 중년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마흔 살 정도로 보이는 중년인은 독특하게도 수염을 허리 근처까지 길게 기르고 있었다.

‘호오, 제법인데?’

진운룡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자신이 창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알아차린 것을 보니 상대의 실력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높다는 이야기였다.

“자객인가!”

어느새 도를 뽑아 든 사내가 지체 없이 진운룡을 향해 돌진했다.

창문으로 들어온 자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스아악!

파공성과 함께 사내의 도가 진운룡의 육신을 대각선으로 갈랐다.

도가 지나가고 소리가 터져 나올 정도로 섬전 같은 쾌도였다.

하지만 어느새 옆으로 한 발자국 움직여 가볍게 사내의 도를 피해 낸 진운룡이 미끄러지듯 사내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헉!”

놀란 사내가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쩌엉!

사내가 급히 도를 회수해 진운룡의 주먹을 막았다.

주르륵!

사내가 미처 진운룡의 일 권에 담긴 강력한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뒤로 죽 밀려났다.

“크윽! 대, 대체!”

사내가 놀란 가슴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진운룡의 신형이 주욱 늘어났다.

부우웅!

사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휘두른 도가 허공을 가른 순간 갑자기 진운룡의 오른손이 잔상 속에서 쑤욱 튀어나왔다.

콰아악!

“커헉!”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진운룡의 오른손이 사내의 목을 틀어쥐었다.

사내의 두 눈동자에 경악이 어렸다.

자신을 단 두 수만에 제압할 수 있는 고수라니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그대는 천향루에서 어떤 위치에 있지?”

그때, 진운룡이 노란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사내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무, 무슨 소리! 커억!”

목이 잡혀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진운룡이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조금 뺐다.

“그대가 천향루의 주인인가?”

진운룡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오 층에서 가장 강한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무, 무슨 소리지? 그대야말로 천향루에서 보낸 자객이 아닌가?”

사내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진운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쩐지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손을 풀지 않은 채 진운룡이 다시 물었다.

“천향루 사람이 아닌가?”

그제야 사내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급히 입을 열었다.

“그대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정황을 보아하니 천향루에 무슨 용건이 있는 모양이군?”

사내의 눈동자가 빛났다.

진운룡의 손에 목이 잡혀 있는데도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다면?”

“그럼 일단 이 손부터 놓고 이야기하지.”

진운룡은 순순히 사내의 목을 놓아 주었다.

어차피 언제든지 다시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놀랍군! 그대와 같은 고수가 있다니!”

사내가 목을 어루만지며 탄성을 토해 냈다.

진운룡이 빨리 본론을 이야기하라는 듯 신웅을 노려봤다.

“아, 알겠네. 우선 내 소개를 하지. 나는 강호에서 신도무적(神刀無敵)이라 알려진 신웅일세. 아마 자네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봤을 것이네.”

신도무적 신웅.

강호에서 상당한 무게를 가진 이름이었다.

강호 제일 고수를 일컫는 십이천(十二天)에는 들지 못했으나, 정도 무림에서 가장 강한 백 명을 꼽을 때 항상 상위권에 위치하는 고수였다.

항상 백의 유삼을 입고 다니고, 관운장처럼 멋들어진 수염을 길러 백의운장(白衣雲長)이라고도 불렸다.

폭이 좁은 도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강호를 종횡하며 수많은 협행을 벌여 정도 무림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이였다.

또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홀로 움직이며, 항상 신출귀몰한 그의 행적 때문에 많은 이야기꾼들의 단골 주인공이기도 했다.

하지만 백 년이 넘도록 혈귀곡에만 있었던 진운룡이 그를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진운룡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무안해진 신웅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뭐 모를 수도 있겠지. 흠흠, 하여간 나는 신웅이라는 사람이고, 사실 나도 천향루에 용건이 있어서 왔다네.”

신웅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진운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크흠, 그것 참 재미없는 사람이군그래……. 평상시 그런 소리 많이 듣지?”

신웅이 겸연쩍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는 사실 한 달 전부터 이곳 천향루를 눈여겨보고 있었네. 몇 달 전부터 산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종사건들을 쫓다 보니 이른 곳이 바로 이곳이었거든.”

진운룡이 실종사건이라는 말에 눈을 빛냈다.

신웅은 진운룡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자네도 관심이 있는 모양이군?”

“다른 지역에서도 실종 사건이 있었던 거요?”

신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진운룡도 실종사건 때문에 이곳에 왔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 산동지역 전체에서 몇 달 동안 무려 이백 명에 가까운 실종사건이 있었네. 그것도 대부분 어린 소녀들이었지.”

“어린 소녀라 했소?”

진운룡이 조금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렇다네. 납치된 소녀들을 추적한 결과 그 동선(動線)이 모두 천향루로 이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네.”

진운룡은 생각에 잠겼다.

‘어린 소녀들의 실종이라…….’

일단 실종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천향루는 확실히 의심스러웠다.

물론, 소진태가 어린 소녀는 아니었지만, 그가 실종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비밀을 지키기 위해 소진태를 납치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신웅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해서 드디어 오늘 놈들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손님으로 가장하고 이곳에 온 것이네.”

진운룡이 심드렁한 얼굴로 신웅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평범한 손님으로 가장하기엔 그의 외모는 너무 눈길을 끌었다. 만일 신웅이 자신의 말대로 무림에서 제법 유명한 이라면 천향루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단번에 알아봤을 것이다.

게다가 손님이라면서 기녀도 부르지 않고 혼자 방에 머물다니, 누가 봐도 수상한 행동이었다.

진운룡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뒤돌아섰다.

어차피 신웅이 천향루 사람이 아닌 것을 확인한 이상 빨리 다른 자를 붙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자, 잠깐! 어딜 가는 겐가? 실종자를 찾으러 가는 거라면 같이 가세.”

신웅이 다급히 진운룡을 잡았다.

그가 그간 조사해 본 결과 천향루는 그야말로 용담호혈 같은 곳이었다.

자신 혼자서 소녀들을 구해 낼 수 있으리란 확실한 보장이 없었다.

진운룡 같은 고수가 함께한다면 금상첨화인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혼자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오.”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하지만 이곳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야. 무인의 숫자만 해도 삼백에 이를 정도야. 거기다 수많은 기관장치와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네. 혼자 움직이는 것 보다는 서로 돕는 편이 나을 것이네.”

“난 괜찮소.”

진운룡은 신웅의 의견을 가볍게 무시한 채 창문으로 향했다.

“잠깐! 자네, 소녀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는 있나?”

진운룡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어차피 한 놈 잡아서 물어보면 그만이오만.”

“나와 함께 가면 그런 번거로움을 생략할 수 있네. 난 그들이 어디에 잡혀 있는지 알거든. 후후후.”

신웅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신웅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운룡이 휙 뒤돌아서며 말했다.

“앞장서시오.”

신웅이 납치된 이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준다면 쓸데없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진운룡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인 것이다.

“그쪽이 아니네.”

진운룡을 불러 세운 신웅이 방문을 열고 오층 계단으로 향했다.

진운룡은 아무 말 없이 신웅의 뒤를 따랐다.

*   *   *

진운룡과 신웅은 태연히 일 층까지 내려왔다.

어차피 이곳은 기루다.

기루에 왔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제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층까지 내려온 신웅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조심스럽게 일층을 살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일층에는 남아 있는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고, 종업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오?”

진운룡이 신웅에게 물었다.

“뒤뜰 쪽에 창고가 있는데, 짐수레와 마차들이 그쪽으로 드나드는 것을 확인했네. 뜰에 외부와 연결된 뒷문이 있긴 한데, 철문이라 안에서 열어 주지 않으면 뒤뜰까지 들어올 수가 없거든. 그래서 아예 천향루 안으로 들어온 걸세. 뒷간이 뒤뜰에 있거든. 뒷간을 가는 척 나가면 창고에 접근할 수 있을 걸세. 바로 저쪽이 뒤뜰로 나가는 문이지.”

진운룡은 신웅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신웅이 가리킨 문은 일층을 가로질러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종업원 두 명이 근처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마치 번(番)을 서는 것처럼 보였다.

“무얼 도와드릴까요?”

그때, 인상 좋은 젊은 점원이 두 사람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는 잠시 진운룡을 유심히 살폈다.

“아까는 혼자 오신 듯한데 아는 분을 만나신 모양이군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점원이 물었다.

아무래도 신웅이 오층에 오를 때는 혼자였었는데, 다른 사람과 같이 내려오니 의문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만큼 다른 손님과 달리 신웅을 예의주시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 전부터 알던 후배인데, 위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만났네. 왜 그런 것은 묻나?”

신웅이 시치미를 땠다.

“아, 그러시군요? 무슨 도움이 필요하신지요? 아니면 벌써 돌아가시려는 겁니까?”

“허허, 아닐세. 뒷간엘 좀 가려는 걸세.”

스스로의 연기에 만족한 듯 신웅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흐음……. 오층에서 여기까지 내려와 뒷간을 가신다고요? 오층에도 방마다 요강이 구비되어 있을 텐데요?”

“크흠! 사내가 계집처럼 요강에 싸지를 수는 없지! 그리고 술도 좀 깰 겸 해서 겸사겸사 내려왔네. 한데, 자네 왠지 지금 나를 심문하는 것 같은 느낌이군그래?”

신웅이 기분 나쁜 얼굴로 말했다.

“아! 아닙니다! 손님을 심문하다니요. 그저 더 편하게 지내실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려던 것뿐입니다. 기분 나쁘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점원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신웅에게 사죄했다.

“흠, 알았네. 우린 이만 가 보겠네.”

점원은 더 이상 두 사람을 막지 않았다.

진운룡과 신웅은 태연하게 뒤뜰로 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창고는 뜰 우측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경비가 제법 삼엄했다.

다섯 명의 무사들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고, 문 역시 두터운 철문으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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