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혈룡전 2권 (32화)
3장 천향루 (2)/
진운룡은 창고를 자세히 살폈다.
상당한 규모였으나, 이백 명을 수용할 정도로 넓지는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지하에 또 다른 공간이 있거나, 창고 안에 다른 곳으로 연결된 비밀통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두 사람이 뒤뜰로 나오자 경비무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진운룡과 신웅은 천천히 창고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어떻게 할 셈인가? 저 철문도 안쪽에서 잠그는 것으로 보이는데?”
특이하게도 창고의 문은 안쪽에서 잠그는 형태였다.
아마도 안쪽에 항상 한 사람 이상 사람이 상주하는 모양이었다.
“저들에게 열게 하든지, 아니면 부숴 버리면 그만이오.”
진운룡이 씨익 웃으며 창고로 다가갔다.
“하긴, 뭐 이대로 밀고 들어가는 것도 괜찮겠지.”
혼자라면 몰라도 진운룡이 함께하고 있으니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고 느꼈다.
“이곳은 관계자 외에 출입이 금지된 곳이오. 물러서시오!”
두 사람이 다가서자 무사들이 검 손잡이를 잡으며 경고했다.
“난 꼭 들어가야겠는데?”
진운룡이 차갑게 웃으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쉬쉬쉬쉬쉭!
순간 다섯 줄기의 지풍이 무사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퍼퍼퍼퍽!
“허억!”
“끅!”
다섯 명의 무사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졌다.
“저, 적이다!”
그 중 유일하게 의식을 잃지 않은 무사 하나가 즉시 고함을 쳤다.
“이런! 한 녀석을 놓쳤군그래!”
신웅이 앞으로 달려 나가려는데 진운룡이 막았다.
“일부러 비껴 맞춘 거요.”
신웅이 의아한 얼굴로 진운룡을 바라봤다.
순간, 진운룡의 신형이 앞으로 주욱 늘어났다.
“크윽!”
진운룡의 신형이 창고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어느새 정신을 잃지 않은 무사의 목을 잡고 있었다.
자신이 당한 것이 생각난 신웅이 씁쓸한 표정으로 목을 어루만졌다.
“문을 열어라.”
진운룡이 무사에게 말했다.
“크윽! 저, 절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부수고 들어갈 수도 있다. 단지 귀찮아서 너를 이용하려는 것뿐이야.”
“크크크! 두, 두께만 세 치가 넘는 철문을 부수겠다고? 어,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거라!”
목이 잡힌 상태에서도 경비무사는 전혀 굴하지 않았다.
아마도 상당한 훈련을 받은 자 같아 보였다.
쉽게 굴복할 것 같지 않았다.
퍼억!
미련 없이 경비무사를 기절시킨 진운룡이 신웅을 돌아봤다.
“문을 열어 주기 싫다는군. 부수시오.”
진운룡이 철문을 가리키며 너무도 태연히 말했다.
“내, 내가?”
신웅이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여기 당신 말고 다른 누가 또 있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진운룡의 모습에 신웅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철문을 바라봤다.
“설마 못 부수는 거요?”
진운룡이 조금은 딱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신웅이 발끈했다.
“모, 못 부수긴! 부술 수 있지!”
“그럼 부수시오.”
“아니, 왜 내가 부숴야 하나?”
“난 무사들을 해치웠으니 이제 당신 차례 아니오? 나 혼자 다 처리하려면 뭐하러 당신이랑 함께 다니겠소?”
“크, 크흠. 그건 그렇구만.”
신웅이 겸연쩍은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아니 근데, 자네 나이도 한참 어린 것 같은데 아까부터 말이 좀 짧은 거 같구만!”
갑자기 생각난 듯 신웅이 목소리를 높였다.
“먹을 만큼 먹었으니 문이나 부수시오.”
“뭐라고? 정말 이 사람이?”
욱, 하던 신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신이 분노해 봤자 진운룡에게 뭘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그의 실력을 겪어 본 신웅이기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젠장!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참아야지.”
스스로를 합리화시킨 신웅이 도를 빼 들고 자세를 잡았다.
번쩍!
콰아앙!
신웅의 도가 움직이고 섬광이 일었다.
하지만 철문은 깊게 파이기만 했을 뿐 아직 두 사람을 막고 서 있었다.
번쩍!
그때, 다시 한 번 신웅의 도격이 철문에 작렬했다.
콰아아앙!
번쩍!
쩌어어엉!
연달아 세 번의 도격이 작렬하자 철문이 좌우로 쩌억 갈라지며 뒤로 넘어졌다.
“흥! 봤지? 이깟 철문쯤이냐 나도 충분히 부술 수 있다고. 따라오게!”
신웅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과 달리 창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음식 재료들과 침구들, 여러 가지 기루에 필요한 물품들이 쌓여 있을 뿐이었다.
“어라?”
신웅이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이, 이상하군. 놈들이 애써 막은 것을 보면 분명 무언가가 있을 텐데?”
진운룡은 기감을 끌어 올려 창고와 주변을 살폈다.
역시 창고에는 사람이 감지되지 않았다.
‘응?’
순간, 진운룡의 눈동자가 빛났다.
창고 지하에서 옅은 기운이 감지되었던 것이다.
“느껴지시오?”
“뭐가? 엇!”
의아한 얼굴로 감각을 끌어 올리던 신웅이 무언가를 느낀 듯 탄성을 질렀다.
“지하로군!”
진운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구를 찾아야 하오.”
진운룡은 기운이 느껴지는 쪽 바닥으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출입구는 누군가가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고 입구에서 소란이 있었던 것을 놈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니, 미리 대비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 근처에 입구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신웅 역시 같은 생각인지 기척이 느껴지는 곳 근처를 뒤졌다.
“이번엔 자네가 부숴 보는 게 어때?”
주변을 샅샅이 뒤져도 기관장치가 보이지 않자 신웅이 진운룡을 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어디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원한다면.”
피식, 웃은 진운룡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아아아악!
순간, 진운룡을 중심으로 엄청난 기운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허억!”
신웅이 깜짝 놀라 뒤로 급히 물러서자, 진운룡이 한쪽 발을 무릎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가 힘차게 내려찍었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마치 화탄이 폭발하기라도 한듯 강력한 폭음과 함께 창고 바닥이 터져 나갔다.
“허…….”
신웅이 할 말을 잃은 채 진운룡을 멍하니 바라봤다.
자신은 세 번의 칼질로 간신히 베어 냈던 철문을 발길질 한 방에 날려 버리다니, 다시 한 번 진운룡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운룡은 허공에 뜬 채 구멍 난 창고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제법 깊은 동공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몇 가닥의 쇠사슬이 밑으로 내려져 있었는데, 도르래가 연결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쇠나 나무로 된 수레나 두레박을 이용해 사람들을 위아래로 이동시킬 수 있는 장치인 듯했다.
하지만 문이 부서진 여파로 망가져 버린 상태였고, 수레나 두레박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쇠사슬이 아직 끊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신웅이나 진운룡의 실력이면 쇠사슬만 잡고도 충분히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군! 제법 깊은 것 같은데, 쇠사슬이 끊어졌다면 밑으로 내려가지 못할 뻔했어!”
신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먼저 쇠사슬을 잡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엇!”
조심스럽게 아래쪽으로 내려가던 신웅은 너무 놀라 하마터면 쇠사슬을 놓칠 뻔했다. 진운룡의 신형이 마치 유령처럼 자신을 추월해 밑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그것도 쇠사슬을 잡지 않은 채로 말이다.
“느, 능공허도?”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진운룡의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겨우 스무 살 나이에 저런 경지에 오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지.’
이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는 진운룡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반로환동 했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려가는 속도를 높였다.
바닥까지의 높이는 대충 봐도 이십 장은 족히 넘어 보였다.
바닥에 도착하니 역시 예상대로 비밀통로가 있었다.
천장이나 벽이 고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본래 존재하던 천연의 동굴을 이용해 만든 통로인 듯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횃불이 밝혀져 있어 시야를 비추고 있었는데, 부서진 철문과 그 근처로 두 명의 무사들이 피떡이 된 채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밑에 쪽에서 도르래를 작동시키던 이들인 듯했다.
부서지면서 떨어져 내린 철문과 수레에 깔려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들의 처참한 몰골을 본 신웅이 눈살을 찌푸렸다.
“서두르지. 이미 놈들이 우리가 침입한 것을 눈치챘을 걸세. 혹여 납치한 소녀들을 상하게 할지도 몰라.”
고개를 끄덕인 진운룡이 즉시 신법을 펼쳤다.
그 역시 소진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 * *
비밀통로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길었다.
아마도 제남 외곽의 어느 곳과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이 정도 비밀통로를 만들려면 상당한 시간과 인원이 동원됐을 텐데?”
신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세력이 관여된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딸깍!
그때였다.
신웅의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기관!”
순간 천장과 바닥 양쪽 벽에서 철시(鐵矢)들이 쏘아져 나왔다.
쉬쉬쉬쉬쉭!
기관장치에 의해 쏘아진 화살들은 사람이 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날아왔다.
따다다다당!
하지만 쾌도가 특기인 신웅답게 그 짧은 시간에도 철시들을 쳐 냈다.
진운룡은 날아오는 철시들을 손으로 잡아채 본래 쏘아져 나온 곳으로 돌려보냈다.
파파파팍!
콰콰쾅!
철시를 쏘아낸 기관들이 단숨에 파괴되어 버렸다.
“이, 이봐 살살하라고, 그러다 통로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신웅이 핼쑥한 얼굴로 진운룡을 말렸다.
“함정이 있는 것을 보니 목적지에 거의 다 온 모양이오!”
진운룡이 눈을 빛내며 전방을 주시했다.
“그건 그렇군!”
신웅이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설마 벽력탄이나 진천뢰라도 깔아 놓은 것은 아니겠지?”
신웅의 말에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초가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흔적을 지우는 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였다.
말이 씨가 되는 것일까?
갑자기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가 느껴졌다.
치이이이이!
“이런! 도화선이 타들어 가는 소리야! 젠장!”
이대로 통로가 무너져 내리면 산채로 매장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진운룡이나 신웅 같은 고수라면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통로가 사라지면 놈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운룡의 두 눈에서 안광이 터져 나왔다.
그의 감각에 모두 일곱 개의 도화선이 타들어 가는 것이 잡혔다.
파파파파팟!
진운룡의 양손에서 열 갈래의 지풍이 쏘아져 나갔다.
퍼퍼퍼퍼퍽!
흙더미들이 튀어 오르며 도화선이 타들어 가던 소리가 멈췄다.
진운룡의 지풍이 도화선을 자른 것이다.
“휴……. 다행이군!”
신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는 다시 한 번 진운룡의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물론, 자신도 도기를 날려 도화선을 잘라 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일곱 개의 도화선을 동시에 잘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곱 도화선의 위치를 모두 정확히 파악해 냈다는 것이다.
‘대체 어디서 저런 자가 나타났을까?’
신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철컥!
순간, 오른발이 무언가를 밟는 느낌에 신웅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기관!’
도화선이 모두 잘린 것에 너무 안도한 나머지 미처 기관들을 살피지 않은 것이다.
번쩍!
신웅이 밟는 것과 동시에 앞쪽 통로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젠장! 또 다른 점화 장치가!”
콰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통로가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