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혈룡전 2권(34화)
4장 동창 (2)/
“동창 당두가 대체 왜 여기 있는 건가?”
진운룡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흥! 감히 네놈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아직 앙금이 가시지 않았는지 동창 당두가 살기 어린 목소리로 진운룡에게 소리쳤다.
“동창?”
신웅이 상대가 동창의 당두라는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가만 보니 그 외에도 관원의 복장을 한 자가 서너 명 더 보였다.
‘대체 동창이 왜?’
신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동창이 소녀들을 납치할 이유가 짐작되지 않았다.
‘아니지……. 동창 전부가 관여한 것이 아니라, 저자와 수하들이 납치범들과 연계가 된 것일 수도 있지.’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만일 동창 전체가 관계된 일이라면 일이 매우 복잡해진다.
자칫 오히려 신웅과 진운룡이 역도로 몰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이야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겠지만, 운신을 하는 것이 매우 귀찮아질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가족이나 친척들마저 놈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높았다.
“소녀들을 납치한 것이 동창과 관계가 있소?”
신웅이 신중한 얼굴로 물었다.
“납치라니! 누가 납치를 했다는 것이냐? 이 계집들은 모두 궁녀가 될 아이들이다!”
진운룡과 신웅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옥사들을 바라봤다.
“궁녀가 될 아이들을 왜 철창에 가둔 것이오? 그리고 이들 모두 가족의 허락을 받고 데려온 것이오?”
순간, 신웅의 질문에 동창 당두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대답을 못하는 것을 보니 납치가 맞군!”
신웅이 눈썹을 위로 추켜올렸다.
아무리 뒤끝이 찝찝하다 해도 이런 일을 모른 채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흥! 어찌 됐든 네놈들은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을 것이다! 뭣들 하느냐? 당장 놈들을 쳐라!”
당두가 수하들을 재촉하자 사십여 명의 무사들이 진운룡과 신웅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뒤쪽에 있던 동창 위사들이 그물을 던졌다.
이미 진운룡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으나, 최소한 움직임을 방해할 수는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촤아악!
그물이 막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순간 진운룡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물들이 허공에서 멈췄다.
“어엇!”
놀란 무사들과 동창의 위사들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촤아아악!
곧이어 진운룡의 오른손으로부터 기파가 쏘아져 나온다 싶더니, 갑자기 그물들이 뒤로 튕겨져 나가 머뭇거리던 무사들을 덮쳤다.
쿠당탕!
“허억!”
“어어!”
그물에 엉킨 무사들이 균형을 잃고 바닥에 자빠졌다.
그야말로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이, 이런! 어서 일어나 놈들을 막아라!”
진운룡의 신위에 놀란 동창 당두가 무사들에게 다시 한 번 명을 내린 후 네 명의 위사와 함께 계단으로 향했다.
무사들이 진운룡과 신웅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틈을 타 도주하려는 것이다.
“나머지 계집들은 버리고 간다!”
그들은 소녀들을 밀쳐 내며 계단에 올랐다.
동시에 그물에 걸리지 않은 무사들이 진운룡과 신웅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운룡은 제법 비장한 표정을 하고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에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그물에 허우적대는 이들을 빼면 겨우 이십 명을 간신히 넘어서는 인원이었다.
그들이 진운룡과 신웅을 상대로 시간을 끈다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스걱! 슈악!
“크아악!”
신웅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도에는 일말의 인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놈들이 소녀들을 데리고 달아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시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터억!
그때, 진운룡의 신형이 한 마리 비조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터억!
휘이이익!
무사 하나의 머리를 밟은 진운룡이 단숨에 계단을 향해 쏜살같이 쏘아져 나갔다.
“허억!”
진운룡이 갑작스럽게 덮쳐 오자 당황한 동창 당두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이, 이런! 허튼 짓을 하면 계집들을 죽이겠다!”
급히 검을 뽑아 소녀들의 목에 가져다 댔다.
하지만 그의 검이 소녀들의 목에 닿기도 전에 진운룡의 주먹이 명치를 강타했다.
퍼억!
“커헉! 우웩!”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동창 당두의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이놈!”
우두머리의 위기를 본 네 명의 위사들이 다급히 진운룡에게 검을 휘둘렀다.
순간, 고꾸라지는 당두의 목덜미를 잡아챈 진운룡이 손가락을 펼쳤다.
따다다당!
동시에 지풍이 네 자루의 검날을 마치 나무젓가락처럼 부러뜨려 버렸다.
퍼퍼퍼퍽!
곧이어 몸을 위로 띄운 진운룡의 발길질이 네 위사를 덮쳤다.
발길질에 맞은 네 위사가 몸이 기괴하게 꺾인 채 계단 아래로 튕겨져 나갔다.
허공에서 한 번 몸을 튼 진운룡이 훌쩍 뛰어 계단 아래에 착지했다.
동창 당두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진운룡은 일단 소진태를 찾기 위해 옥사를 살폈다.
천천히 옥사를 훑어본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소진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위쪽에?’
대부분의 소녀들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상태였으나, 혹시라도 놈들이 침입을 감지한 순간부터 사람들을 이동시켰다면 이미 계단 위쪽으로 올라간 자들도 있을 것이다.
“계단 위로 올라간 이들도 있나?”
진운룡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소녀들에게 물었다.
“고, 공자님이 이곳에 들어오기 바로 전에 스무 명 정도가 먼저 위로 올라갔어요.”
소녀 중 하나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그중에 중년 사내도 있나?”
“사, 사내라뇨? 무사들을 제외하고는 이곳에는 저희 같은 소녀들만 있었는데요…….”
소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운룡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소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진태는 이곳에 없었다.
하지만 놈들이 소진태를 소녀들과 따로 격리했을 가능성도 염두해 두어야 했다.
위쪽에 또 다른 감옥이나 공간 존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진운룡의 시선이 기절한 동창 당두에게 향했다.
제령안을 써서 놈의 기억을 훑는다면 정확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위로 끌려간 소녀들의 안위가 문제였다. 제령안을 사용하는 동안 무사들이 소녀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뚝뚝하고 무심한 진운룡이라지만, 죄 없는 어린 소녀들의 목숨을 모른 채 할 정도의 냉혈한은 아니었다.
‘일단 소녀들을 구하면서 소진태를 찾아봐야겠군. 그 후에 이 녀석의 기억을 살펴보면 될 일!’
결정을 내린 진운룡이 막 무사들을 처리한 신웅에게 시선을 돌렸다.
“난 위쪽으로 끌려간 소녀들을 구할 테니, 여기는 당신이 맡아 주시오.”
진운룡의 목소리에 신웅이 고개를 돌렸다.
“알겠네. 내가 남은 소녀들을 풀어준 뒤 위로 데리고 올라가도록 하지.”
도에 뭍은 핏물을 떨쳐내며 신웅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진운룡의 실력이 자신보다 훨씬 윗줄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혼자 움직이는 편이 소녀들을 더 빨리 구할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놈도 부탁하오.”
진운룡이 기절한 동창 당두를 가리켰다.
“동창 녀석이군! 걱정 말게. 내 이놈을 잘 감시하도록 하지.”
신웅에게 뒤처리를 맡긴 진운룡은 곧장 뒤돌아 계단 위로 달려 올라갔다.
* * *
위쪽으로 끌려간 소녀들을 따라잡는 것은 금방이었다.
소녀들의 걸음으로 족히 이십층은 넘는 계단을 오르는 것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녀들의 기척을 확인한 진운룡은 속도를 늦추고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폈다.
소녀들을 인솔하는 무사들의 숫자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두 명이 선두에 서고 한 명이 가운데, 그리고 후미에 다시 두 명이 위치해 있었다.
소녀들은 모두 스물다섯 명이었는데, 기운들이 무척 쇠약해져 있었다.
소녀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무사들을 재빨리 해치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진운룡은 지체하지 않고 곧장 몸을 날렸다.
퍼퍽!
“크악!”
“악!”
진운룡의 발차기에 직격 당한 뒤쪽 두 무사가 목이 꺾인 채 허물어졌다.
“허억!”
놀란 무사들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진운룡이 가운데에 있던 무사 한 명을 더 해치운 후 가장 선두에 있는 두 무사를 덮치고 있었다.
“누, 누……!”
퍼퍽!
미처 말을 다 내뱉지도 못하고 남은 두 무사 중 하나가 진운룡의 발길질에 머리가 터져 나갔다.
“허억!”
남은 무사 하나가 오줌을 지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꺄악!”
그제야 놀란 소녀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 모든 것이 채 두 호흡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전광석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극쾌(極快)의 움직임이었다.
진운룡의 시선이 마지막 남은 무사에게로 향했다.
그는 두려움에 팔다리를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위쪽에도 인질이 있나?”
무사가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오문 제남 분타주를 너희가 잡아 오지 않았나?”
“모, 모르겠소……. 여, 여기에는 소녀들밖에……. 나, 나는 그저 명에 따랐을 뿌, 뿐……. 제, 제발 살려 주시오.”
무사가 극심한 두려움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잠시 제령안을 쓸지 망설이던 진운룡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무사의 상태로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런 비밀스러운 조직에서 졸개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 봐야 쓸모가 없는 정보가 대부분일 것이다.
제령안을 쓰느라 시간을 낭비하느니 진운룡이 직접 위쪽을 확인하고 나머지 놈들을 처리하는 편이 더 쉬운 방법이었다.
그때, 진운룡의 눈에 주저앉아 떨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눈앞에서 사람이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것을 보았으니 놀랄 만도 했다.
“너희를 구하러 온 것이니 두려워 말거라.”
진운룡은 우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소녀들을 진정시켰다.
“저, 정말인가요?”
소녀들이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동안 상당한 고초를 겪은 때문인지 쉽게 믿기지 않는 표정들이었다.
“그렇다. 이제 너희들은 자유다.”
진운룡은 힘 있는 목소리로 좀 더 분명하게 말했다.
그제야 소녀들은 진운룡이 자신들을 구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믿었다.
자신들이 자유가 되었다는 말에 소녀들이 기쁨과 안도감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진운룡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풀려났으니 곧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위쪽을 더 정리해야 하니 너희는 다른 아이들과 합류해서 천천히 올라오거라.”
말을 마친 진운룡의 신형이 계단 위쪽으로 사라졌다.
소녀들은 진운룡의 신묘한 움직임에 아마도 악인들을 벌하기 위해 신장이 지상에 내려온 것이라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