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혈룡전 2권 (37화)
5장 요동치는 강호 (2)/
“젠장! 빌어먹을!”
제갈무진은 연달아 욕지기를 토해 냈다.
그의 심사가 이토록 꼬인 이유는 진운룡이 소녀들을 구해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진운룡은 이제는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 있었다.
모든 이들이 진운룡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든 그와 친교를 맺으려 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그저 제갈세가의 애송이에 불과했다.
“진운룡!”
제갈무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운룡의 오만하고 건방진 얼굴을 생각하기만 해도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때, 갑자기 제갈무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어렸다.
“흥, 그래도 모용주란은 내가 차지했지. 후후!”
지금도 그녀의 부드럽고 탄력 있는 육체를 생각하면 아랫도리가 불끈 솟아올랐다.
다시 한 번 그녀를 탐하고 싶은 욕망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못할 것도 없지! 어차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는 못할 테고, 그녀도 속으로는 바라고 있을지도 몰라. 후후. 이참에 한 번 쳐들어가 볼까?”
언제까지 황보세가에 머물 수는 없었기에 그전에 모용주란을 완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모용주란 곁에는 항상 오빠들이 붙어 있었다.
“밤에 몰래 방으로 들어가 덮친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반항하지 못할 것이다.
모용주란의 나신을 상상한 제갈무진이 입맛을 다셨다.
‘아니야. 이미 내 것이 된 거나 마찬가지인 여자인데, 괜히 서두를 필요 없지. 자칫 들키기라도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야.’
무리해서 움직이다가 모용세가 사람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다 된 밥에 재를 빠뜨리는 꼴이었다.
“모용주란, 어쨌든 넌 나를 벗어날 수 없어! 후후후.”
제갈무진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걸렸다.
* * *
신웅은 빈객 자격으로 당분간 황보세가에 머물기로 했다.
납치사건의 배후에 대해 더 조사할 필요도 있을 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진운룡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며 진운룡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피를 흡수해서 납치된 소녀들의 위치를 알아낸 것이라든가,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던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걸렸다.
‘대체 진 공자의 정체가 뭘까?’
그가 숙소 앞을 어슬렁거리며 한참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당신이 신도무적이오?”
신웅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머리를 산발한 청년 하나가 삐딱하게 서 있었다.
척 봐도 시비를 걸려는 의도가 빤히 보였다.
“허…….”
어이가 없었던지 신웅이 헛웃음을 지었다.
“당신이 신도무적이냐고 물었잖소?”
청년은 도발적인 눈빛으로 신웅을 노려봤다.
“내가 신도무적이라 부르는 사람이 맞네만, 자넨 누군가?”
기껏해야 이십 대로 보이는 애송이가 다짜고짜 자신에게 시비를 걸다니, 신웅은 너무 어이가 없어 화도 나지 않았다.
“난 적산이라 하오. 주군이 당신을 상대할 수 있으면 함께 싸울 수 있다고 했소. 그러니 한 번 붙어 봅시다!”
마치 동네 파락호 같은 적산의 태도에 신웅은 헛웃음을 지었다.
강호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한 신도무적이 어디서 이런 대접을 받아 봤겠는가.
한편으로는 황당하고 한편으로는 재밌기도 했다.
“대체 자네 주군이라는 자가 누군가?”
신웅이 허탈한 표정으로 물었다.
“후후, 나의 주인은 바로 천하제일인 진 공자요!”
“지, 진 공자?”
신웅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천하제일인이라 부를 수 있는 진 공자라면 그밖에 없었다.
“진 공자가 자넬 보냈다?”
진운룡과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에 신웅은 다시 한 번 자세히 적산을 살폈다.
나이치고 공력이 상당했다.
‘이 정도면 공력만으론 강호십룡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군. 한데, 진 공자는 왜 이 청년을 나에게 보낸 거지?’
진운룡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뭘 그리 빤히 보는 거요?”
적산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비무를 하자는 것인가?”
신웅이 긴 수염을 어루만지며 조금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의도가 무엇이든 진운룡과 관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산에게 관심이 갔다.
“비무든 싸움이든 한 판 붙어 봅시다.”
적산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검을 뽑았다.
어느 정도 흥미가 생긴 신웅이 적산을 시험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원하니, 어디 한 번 실력을 볼까? 선배의 도리로 삼 초를 양보할 테니 먼저 오게.”
“흥! 수염이 잘려도 난 모르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산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슈욱!
적산의 검이 일직선으로 신웅의 심장을 노렸다.
‘빠르군!’
적산의 군더더기 없는 찌르기에 신웅은 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빤히 보이는 공격인데다, 너무 단순했다.
신웅이 도를 뽑지도 않은 채 도집 채로 적산의 검을 막았다.
따앙!
검이 뒤로 튕겨 나가는 순간 적산의 몸이 회전했다.
부웅!
검의 반탄력을 이용해 날린 적산의 왼발이 신웅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엇!”
갑작스런 공격에 깜짝 놀란 신웅이 급히 뒤로 물러섰다.
적산의 발이 신웅의 코끝을 간발의 차이로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적산이 어깨를 들이밀며 앞으로 주욱 미끄러져 들어왔다.
‘제법이군!’
신웅이 속으로 탄성을 토해 냈다.
적산의 공격은 찌르기와 베기, 단순한 주먹과 발길질뿐이었으나, 정형적인 초식이 없었다.
게다가 상당히 시기적절했다.
터억!
신웅이 도집으로 적산의 어깨를 막았다.
순간, 적산의 신형이 밑으로 꺼졌다.
휘익!
동시에 적산의 다리가 땅을 훑으며 신웅의 다리를 노렸다.
“흥!”
코웃음을 친 신웅이 다리에 공력을 집중했다.
퍼억!
“크윽!”
다리와 다리가 부딪힌 순간 적산이 신음을 토해 냈다.
두 사람의 공력차가 있었기에 정면으로 부딪혀서는 적산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후웅!
적산이 검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젠장! 당신 세군!”
찡그린 얼굴로 적산이 다리를 어루만졌다.
“이제 내 차례네!”
신웅이 도를 빼들고 비호처럼 돌진했다.
쉬이익!
섬전 같은 쾌도가 적산의 머리를 반으로 쪼갤 듯 무섭게 내려쳐 왔다.
“웃!”
적산이 급히 검을 들어 신웅의 도를 막았다.
쩌어엉!
“큭!”
신웅의 막강한 도격에 적산이 신음을 토해 냈다.
간신히 막기는 했으나 속이 진탕될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 몸 내부를 강타했다.
신웅의 도가 검을 내리눌렀다.
“끄응!”
적산이 양손으로 검을 지탱하며 힘을 끌어 올렸다.
“공력도 제법이군!”
신웅이 도에 기운을 더 가했다.
이대로라면 적산은 자신의 검에 머리가 베일 것이다.
“으앗!”
기합성을 토해 낸 적산이 급히 몸을 낮추며 앞으로 돌진했다.
슈욱!
신웅의 도가 적산의 등 뒤로 흘렀다.
후우웅!
동시에 신웅의 가슴으로 파고든 적산의 검이 횡으로 움직였다.
쉬익!
신웅의 가슴이 위아래로 갈라졌다.
“젠장!”
하지만 적산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검에 걸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산이 가른 것은 신웅의 잔상이었던 것이다.
어느새 뒤로 훌쩍 물러선 신웅이 도를 검처럼 찔러 왔다.
쉬이익!
적산은 검을 대각으로 세워 신웅의 도를 막았다.
우우우웅!
순간, 신웅의 도 주변으로 기운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서걱!
신웅의 도가 적산의 검을 그대로 동강냈다.
“헛!”
적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신웅의 도첨이 적산의 목에 다다라 있었다.
적산은 멍한 눈으로 신웅의 도와 자신의 잘린 검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