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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41화 (41/150)

# 41

/혈룡전 2권 (41화)

6장 비천대 (2)/

“응?”

막 방염의 장원 담벼락에 도달한 진운룡이 급히 신형을 멈췄다.

주변의 기의 흐름이 수상했다.

진운룡이 아니었다면 느낄 수 없었을 정도로 미묘한 어긋남이었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진운룡은 감각을 끌어 올렸다.

“진(陣)?”

아무래도 장원 전체에 진이 펼쳐진 듯했다.

‘그래서 경계가 허술했던 거군.’

그제야 장원 외곽에 경비 무사가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진이 펼쳐져 있는 이상 따로 경비 무사들을 배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을 통과하는 거야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진운룡의 실력이라면 모두 부수고 들어가면 그만이다.

문제는 적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침입이 들키게 되면 자칫 잡혀 있는 인질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운룡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진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기는 했으나 그다지 해박한 편은 아니었다.

‘기운의 움직임을 보면 예사로운 진법은 아니야.’

지금으로서는 들키지 않고 잠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냥 순식간에 다 부숴 버리고 인질을 구해 내?’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인질이 어디에 있는지, 과연 이곳에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가만!’

그때, 진운룡의 머릿속에 소은설의 얼굴이 떠올랐다.

‘천령안!’

천령안을 가진 그녀라면 아무런 문제없이 진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다만 문제는 그녀의 안전이었다.

‘흠…….’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진운룡이 결정을 내렸다.

‘그 아이 하나 정도야 큰 무리가 없지.’

소은설 한 사람 정도라면 충분히 보호하며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혈마 같은 놈이 튀어나오지만 않는다면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지.’

결정을 내린 진운룡은 즉시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   *   *

진운룡이 바로 되돌아오자 신웅을 비롯한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인가 잊은 거라도 있는 것인가?”

진운룡이 소은설에게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나랑 함께 가야겠다.”

갑작스런 이야기에 소은설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 정말요?”

진운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설로서는 그야말로 원했던 바였다.

아버지 소진태를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우리는 대기하도록 해 놓고 무공도 변변치 않은 소저는 괜찮다는 말이오?”

제갈무진이 눈썹을 추켜올리며 따졌다.

공을 세우기 위해 이곳까지 왔건만, 진운룡의 구경꾼이나 하게 생겼으니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비천대 역시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진운룡을 노려봤다.

“소 소저의 안전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신웅도 진운룡을 만류했다.

진운룡은 진이 펼쳐져 있다는 설명을 하려다 문득 멈췄다.

진에 대해 설명을 하려면 소은설의 천령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했다.

천령안은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희귀한 능력이었다.

모든 진을 파훼할 수 있는 눈이라니,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낼 만한 특별한 능력이었다.

이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면 소은설의 능력을 노리는 자들이 수도 없이 생겨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제갈세가나 신기문 같은 진법에 능통한 문파나 가문들에게는 소은설의 능력이 위협이 될 것이다.

여러모로 소은설의 능력은 되도록 비밀로 하는 편이 나았기에 일단 진운룡은 대충 꾸며 대기로 했다.

어차피 이들은 장원에 들어갈 일이 없을 테니 굳이 진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다.

“뭐, 이 아이 하나 정도는 내가 책임질 수 있소. 그리고 원래 도둑 출신이라 은신이나 신법은 어느 정도 괜찮은 편이니 크게 방해되지도 않을 것 같고.”

“도, 도둑이 아니라 의적이에요!”

소은설이 당황한 얼굴로 급히 진운룡의 말을 부인했다.

“우리 은신 실력이 고작 하오문 소녀만도 못하단 말이오?”

황보혁제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진운룡을 노려봤다.

진운룡은 태연한 얼굴로 황보혁제의 시선을 받았다.

어차피 불만이 있다면 모두 돌려보내면 그만이었다.

“허! 아무리 무공이 강하다 하지만, 황보세가마저 우습게 보다니…….”

제갈무진이 슬쩍 황보세가를 들먹이며 비천대의 분노를 부추겼다.

이번 기회에 황보세가와 진운룡 사이를 갈라 놓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비천대원들은 당장에라도 진운룡에게 달려들 듯 잔뜩 기운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운룡은 여전히 담담하기만 했다.

“모두들 진정하십시오.”

황보영천이 급히 제갈무진과 비천대를 말렸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진 공자의 뜻에 따르라는 아버님의 당부를 잊으셨습니까?”

“이익!”

한동안 진운룡을 노려보던 황보혁제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황보영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제갈무진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비천대에게 관심을 거둔 진운룡이 소은설을 바라봤다.

“그럼 지금부터 움직일 테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순간, 소은설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엇!”

소은설은 너무 놀라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어느새 진운룡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허공으로 날아오른 것이다.

휘이이잉!

주변의 풍경들이 한 줄기 선이 되어 빠른 속도로 뒤로 밀려났다.

소은설은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속도도 속도였지만, 허리가 잡힌 채 진운룡과 밀착되어 있는 상황이 너무도 두근거리고 숨이 막혔다.

“무, 무슨…….”

뭐라 항변하려는 소은설의 입을 진운룡이 막았다.

―조용. 지금부터 들키면 안 돼.

소은설이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얼른 입을 닫았다.

진운룡의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가 걸렸다.

사실 현재 소은설과 진운룡은 기막(氣膜)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아무리 크게 소리치고 발버둥을 쳐도 외부에서는 기척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데려온 이유는 장원에 진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소은설은 결코 어리석지 않았기에, 곧바로 진운룡의 의도를 파악했다.

자신이 천령안인가 뭔가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진운룡의 말이 기억났던 것이다.

‘나보고 길을 찾아 달라는 거구나!’

천령안이 모든 진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했으니, 그 때문에 자신을 데려온 것이 분명했다.

그때, 진운룡의 신형이 멈췄다.

소은설이 주변을 살펴보니 두 사람은 어느새 장원의 담장에 다다라 있었다.

소은설이 보기엔 그저 평범한 모습이었다.

―정신을 집중해서 길을 찾아봐.

진운룡의 전음을 들은 소은설이 눈을 부릅뜬 채 장원에 시선을 집중했다.

‘보인다!’

담장으로 흐르는 색색의 기운들이 소은설의 시야에 들어왔다.

혈귀곡에서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기운들은 서로 엉키고 흩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담장 안쪽으로 향하는 길이 보였다.

소은설이 막 이야기를 하려는데 진운룡의 검지가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

―쉿!

‘읍!’

깜짝 놀란 소은설이 몸을 움츠렸다.

전음을 할 수 없는 소은설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진운룡이 소은설을 자신의 앞쪽으로 데려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뭐, 뭐하는 거야! 이 사람!’

깜짝 놀란 소은설이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녀의 심장은 터질 듯 방망이질 쳤다.

진운룡의 체온이 등에 그대로 느껴졌고, 숨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네가 떨어져 있으면 기막을 유지할 수 없으니, 지금 이 거리에서 절대 벗어나면 안 돼. 이제 천천히 길을 찾아 움직여. 그럼 내가 그대로 따라갈 테니까.

‘그, 그렇다고 끌어안을 필요까진 없잖아.’

소은설은 뭐라 따지고 싶었으나, 소리가 새어 나가 들키게 될까 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왠지 기분이 들뜨고 조금은 몽롱해졌다.

‘저, 정신 차리자.’

고개를 세차게 한 번 흔든 소은설은 눈에 보이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조심조심 움직이는 소은설을 보며 진운룡이 피식 웃었다.

사실 그냥 말로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괜한 장난기가 발동해 그녀를 놀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여유였다.

하지만 어쩐지 소은설과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가볍게 허공으로 떠올라 담장을 넘은 두 사람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우선은 진을 빠져나가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소은설은 길을 따라 움직이며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사람들이 여기저기 지나가고 있었음에도 진운룡과 소은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투명 인간이라도 된 듯 그들은 두 사람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진운룡이 기막을 통해 공간을 왜곡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소은설의 걸음이 멈췄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앞쪽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열 명의 무사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이 소은설이 가야 할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눈치챈 진운룡이 전음을 보냈다.

―저곳이 길인가?

소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생문에 무사들을 배치해 놓은 모양이군.’

그것은 곧 무사들만 통과하면 진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혹시 무사들 위쪽은 뚫려 있어?

소은설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었다.

후우웅!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허공으로 부웅 떠오르더니 마치 한 조각 깃털처럼 무사들의 머리를 훨훨 뛰어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명의 무사들은 두 사람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신이 난 소은설이 무사들의 뒤통수에 주먹감자를 날렸다.

무사들을 지나쳐 오자 더는 기의 왜곡이 느껴지지 않았다.

―진을 통과했다.

가장 가까운 전각에 도착하자 진운룡이 전음을 보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소운설이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아직 진운룡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은설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허리를 가리켰다.

피식 웃은 진운룡이 소은설의 허리를 놔줬다.

―대신 절대 움직이지 마.

기막의 범위를 벗어나면 곧장 장원의 경비들에게 들키게 되기 때문이었다.

소은설이 아직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운룡은 일단 기감을 끌어 올렸다.

제령안을 사용할 적당한 인물을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그 방법이 인질들을 찾기엔 가장 시간이 적게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로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중 오른쪽 전각에 있는 자의 기운이 제법 강해 보였다.

거의 절정에 근접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소진태에 대해서 모르더라도 인질들이 잡혀 있는 장소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엇!”

소은설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또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진운룡이 다시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신형을 날린 것이다.

진운룡은 지붕과 지붕을 박차고 경쾌하게 허공을 날았다.

소진설의 시야에 세상이 위아래로 왔다 갔다 했다.

당장이라도 멀미가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진운룡의 신형이 멈췄다.

두 사람은 사방 서른 평 정도 되는 아담한 전각 지붕에 도착해 있었다.

전각 앞에는 두 명의 무사가 번을 서고 있었다.

소은설이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그런데 아까 분명 소리를 냈는데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잖아?’

진운룡이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짧은 비명을 질렀는데, 아직까지 두 사람이 들킨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다 여긴 소은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하지만 역시 전각을 지키는 두 경비무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소은설은 그제야 진운룡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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