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혈룡전 2권 (43화)
7장 팔로금쇄멸혼진(八路禁鎖滅魂陣) (1)/
“좋아! 지금부터 장원으로 침투한다! 모두 미종보를 이용해 최대한 기척을 죽여라!”
흩어져 있던 대원들이 모두 모인 후 황보혁제의 명에 따라 비천대가 소리 없이 장원을 향해 움직였다.
권(拳)으로 유명한 황보세가였지만, 그들은 독특하게도 모두 검 두 자루를 등에 메고 있었다.
동시에 수투(手套)도 착용하고 있었는데, 허리에는 비도가 수납되어 있는 가죽 띠를 두르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살수들처럼 은밀하고 조용했다.
신웅과 황보영천 적산은 뒤에 남았다.
아무래도 이번 잠입은 적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했기에 일단은 비천대에게 맡겨 둔 것이다.
반면 신웅과 황보영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갈무진은 비천대와 함께 움직였다.
후계자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공을 세울 기회를 절대 놓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당히 비천대를 뒤따르기만 하면 별로 위험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비밀 작전에 특화된 비천대답게 그들은 숨소리조차 흘리지 않고 장원 담장에 도착했다.
순간 황보혁제가 주먹을 들어 대원들을 멈춰 세웠다.
황보혁제의 시선이 담장 주변을 훑었다.
혹시 매복해 있는 적이나, 함정들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황보혁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언가 너무 허술하군.’
하오문의 정보처럼 이곳이 문제가 있는 곳이라면 이렇게 경계가 허술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정보가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왠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정보가 잘못된 것이라면 조사해 보고 바로 철수하면 될 일!’
오히려 정보가 잘못된 것이라면 장원 안에는 별다른 위험 요소가 없을 것이다.
그저 평상시 정보 조사나, 잠입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은밀히 장원을 조사하고 물러나면 그만이었다.
결정을 내린 황보혁제가 팔을 앞으로 뻗어 장원의 진입을 명했다.
오십 명의 비천대원들이 비조처럼 담장을 뛰어넘었다.
바로 그때였다.
구우우우웅!
“헉!”
“어엇!”
담장을 넘던 비천대 대원들이 갑자기 균형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진이다!”
갑자기 느껴지는 압력에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담장 너머로 내려선 황보혁제가 다급히 소리쳤다.
삐이이이이익!
그때, 사방에서 귀를 찌르는 고성이 울려 퍼졌다.
“적이다!”
“침입자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천대원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에 빠졌다.
그것은 제갈무진도 마찬가지였다.
진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실전 경험이 전무한 그였기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이런!’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모두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주변을 경계하라!”
명을 내린 황보혁제가 급히 상황을 살폈다.
뒤쪽에서 따라오던 제갈무진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창백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다행히도 비천대원들은 황보세가의 정예들답게 어느새 정신을 추스르고 있었다.
문제는 몸을 내리누르는 엄청난 압력이었다.
비천대의 움직임에 상당한 제약을 주고 있었다.
그때, 장원의 무사들이 비천대를 향해 활을 겨눴다.
“이런!”
황보혁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상태에서는 화살을 피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살 역시 색깔이 칠흑처럼 검은 것이 범상치 않은 물건인 듯했다.
“웬 도둑고양이 새끼들이 겁도 없이 담을 넘은 것이냐? 후후.”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얀 중년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무사들 앞으로 나섰다.
특이하게도 그의 두 눈에는 흰자위가 없이 모두 검은색이었다.
창백한 얼굴과 피처럼 붉은 입술이 인간 같지 않은 몹시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황보혁제의 표정이 굳었다.
은연중에 느껴지는 사내의 기도(氣度)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용담호혈(龍潭虎穴)이었구나!’
황보혁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경계가 너무 허술함을 느꼈을 때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장원 둘레에 펼쳐진 진법이 단지 대상자에게 압력을 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이었다.
황보혁제는 우선 기운을 끌어 올려 어느 정도 움직임이 가능한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압력의 세기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은 몰라도 수하들은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지장은 받겠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순순히 항복하고 정체를 밝히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그때, 검은 눈의 사내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황보혁제는 이를 악물었다.
절대 항복할 수는 없었다.
자신들이 황보세가 사람임이 알려지면 세가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단 내가 진을 뚫고 나가서 최대한 빨리 검은 눈 녀석을 해치운 후 궁수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문제는 그때까지 대원들이 버텨 줄 수 있느냐였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밖에 있는 신웅이 떠올랐다.
신웅은 초절정을 훌쩍 넘어선 고수였다.
그라면 이 정도 압력은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가 도와 궁수들만 처리한다면 진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흥! 이깟 압력만 있는 허접한 진법 따위로 우리를 어찌할 수 있으리라 보느냐!”
황보혁제는 공력을 실어 최대한 크게 외쳤다.
신웅이 듣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후후, 살길을 열어 주겠다는데도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군.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검은 눈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궁수들을 바라봤다.
* * *
“엇!”
장원으로 진입하던 비천대의 모습을 지켜보던 신웅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막 지붕을 넘어서는 순간 대원들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저럴 수가!”
황보영천 역시 갑작스러운 깜짝 놀라 숨어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 저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멀쩡하게 담을 넘던 사람들이 갑자기 담장 안으로 휘청대며 떨어졌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적에게 공격을 받았거나 함정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삐이이이이이익!
그때, 귀를 찌는 소음이 장원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발각된 건가!”
황보영천이 안타까운 얼굴로 장원을 바라봤다.
“진이다!”
멀리서 황보혁제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진!”
신웅의 표정이 굳었다.
어쩐지 외곽을 지키는 경비무사들이 없다 여겼더니 진법이 펼쳐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신 대협!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황보영천이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흥! 이게 다 저치들이 주군의 말을 따르지 않은 대가요! 저들이 적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이제는 인질들까지 위험하게 됐소!”
적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황보영천이 이를 악물었다.
적산의 말대로 인질들이 잘못된다면 비천대의 책임이었다. 당연히 황보세가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웠다.
“비천대가 실수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소! 일단 당장에 중요한 것은 인질의 안전과 저들을 구해 내는 것이오! 조금이라도 빨리 수를 내야 인질들을 구해 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오!”
이미 적에게 발각된 이상 인질들을 구출하려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신웅이 고민에 빠졌다.
진법에 대해서는 자신 역시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칫 잘못 움직였다가는 도움은커녕 세 사람 역시 진법에 빠져 꼼짝도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안쪽의 상황을 볼 수 없으니 더욱 답답했다.
황보혁제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흥! 이깟 압력만 있는 허접한 진법 따위로 우리를 어찌할 수 있으리라 보느냐!”
신웅의 눈동자가 빛났다.
황보혁제의 의도를 눈치챈 것이다.
“신 대협!”
황보영천 역시 신웅을 바라봤다.
“그대들은 여기서 기다리게!”
신웅이 즉시 장원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삐이이이이이익!
“이런!”
갑작스런 굉음에 진운룡이 움직임을 멈췄다.
“무, 무슨 일이죠? 우리가 발각된 건가요?”
소은설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말을 안 듣는 자들이군!”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그새를 참지 못하고 장원으로 뛰어든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나았군.’
하지만 후회를 해 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잠입이 발각된 이상 놈들이 인질들을 빼돌리거나 해를 입히기 전에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업혀라!”
진운룡이 소은설에게 등을 돌렸다.
양손을 다 쓰려면 소은설을 업고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소은설이 난감한 얼굴로 멈칫 거렸다.
사내의 등과 자신의 가슴이 맞닿는다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시간 없어. 어서!”
진운룡이 굳은 얼굴로 소은설을 재촉했다.
지금은 소은설과 장난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선 한시가 급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소은설이 얼른 진운룡의 등에 업혔다.
“꽉 잡아라!”
소은설이 눈을 질끈 감고 진운룡의 목을 꼭 껴안았다.
순간, 진운룡의 신형이 빗살처럼 계단 아래쪽으로 쏘아졌다.
쉬이이익!
바람이 소은설의 볼을 거칠게 할퀴고 지나갔다.
후읍!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엇! 누구……!”
퍼퍼퍼퍽!
지하 일층을 지키던 다섯 무사가 미처 소리도 지르기 전에 머리가 터져 나갔다.
“아악!”
놀란 소은설이 비명을 질렀으나, 진운룡은 그대로 다음 층으로 돌진했다.
“적이다!”
그제야 진운룡의 침입을 알아차린 다섯 무사가 급히 돌아섰지만, 진운룡은 이미 다음 층 입구에 다다라 있었다.
“커헉!”
털썩!
진운룡이 입구를 통과하자 그제야 머리가 잘린 다섯 무사의 육신이 땅에 무너져 내렸다.
어느새 검을 빼 들은 진운룡이 지하 삼 층의 무사들을 덮쳤다.
“막아라!”
번쩍!
순간, 진운룡의 검이 횡으로 길게 은빛 섬광을 발출했다.
스걱!
동시에 은빛 섬광의 궤도에 있던 다섯 무사의 육신이 위아래로 분리된 채 허물어졌다.
핏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소은설은 진운룡의 놀라운 신위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느꼈다.
진운룡의 손속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의 검이 휘둘러지고 손발이 움직일 때마다 무사들의 목숨이 사라져 갔다.
‘단단히 마음먹어야 해. 소은설!’
소은설은 입술을 꽉 깨물며 마음을 다졌다.
“침입자다! 문을 닫아라!”
소란을 들은 아래층 무사들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르릉!
동시에 굉음이 일며 철창이 내려와 아래층으로 향하는 입구를 막았다.
철창이 입구를 막고 있음에도 진운룡은 결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부, 부딪히겠어요!”
소은설이 다급히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