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45화 (45/150)

# 45

/혈룡전 2권 (45화)

7장 팔로금쇄멸혼진(八路禁鎖滅魂陣) (3)/

콰콰콰콰쾅!

지풍은 정확히 문의 걸쇠를 강타했다.

자물쇠와 걸쇠가 부서져 나가며 문들이 힘없이 열렸다.

슈슈슈슈슈욱!

다시 열 줄기의 지풍이 나머지 문에 작렬했다.

“사, 살았다!”

“가, 감사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자유를 찾은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휘청거리며 감옥에서 걸어 나왔다.

모두 오래 갇혀 있었던 탓에 몸 상태가 많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은설이 조바심 어린 얼굴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훑어봤다.

갇혀있던 사람들은 숫자가 제법 많았다.

스무 개의 방에 서너 명씩 가두어져 있었던 듯 대략 육칠십 명 정도의 인원이었다.

입술을 깨물며 사람들을 확인하던 소은설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아, 아버지!”

소은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키가 오 척이 조금 넘는 고집스러운 인상의 중년 사내가 하나 서 있었다.

목소리를 들은 사내의 시선이 소은설을 향했다.

“으, 은설아!”

소진태가 떨리는 목소리로 손을 뻗었다.

“아버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달려간 소은설이 소진태에게 안겼다.

“네, 네가 어떻게 여기에.”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소진태가 소은설의 두 뺨을 어루만졌다.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소은설이 아버지를 데리고 진운룡에게 다가왔다.

“정말, 정말 고마워요, 진 공자!”

그녀의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버지 이 모든 게 이 사람 덕이에요! 흐흑!”

소진태가 이채가 이는 눈으로 진운룡을 바라봤다.

하지만 진운룡은 두 사람을 외면한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운룡의 시선이 소진태와 다른 이들을 천천히 훑었다.

그때였다.

쉬이이이이익!

갑자기 주변의 기운이 급속도로 복도 끝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모래가 유사에 빨려 들어가듯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기운이 한꺼번에 철문으로 흡수되었다.

‘이것은!’

진운룡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드드드드드드드!

동시에 복도 끝 철문이 낮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모두 철문에서 떨어지시오!”

다급히 외친 진운룡의 신형이 철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   *

신웅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봤다.

“이, 이게 대체 뭐, 뭐란 말인가……!”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밖에서는 진 안쪽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끈적하게 몸에 달라붙던 검은 안개는 보이지 않았다.

비천대 대원들은 그저 제자리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신웅이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말을 잃을 정도로 놀란 이유는 대원들의 상처로부터 핏물들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핏물이 긴 줄기를 이루며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 끝에는 피로 만들어진 붉은 구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아마도 대원들의 피를 빨아들이는 근원이 바로 그것인 듯했다.

‘이, 이것은!’

신웅의 머릿속에 진운룡이 자신의 피를 흡수하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신웅은 쓸데없는 의심을 지웠다.

지금 중요한 것은 비천대원들을 진에서 구해 내는 것이었다.

비천대 대원들은 눈이 반쯤 풀린 채 허우적대고 있었다.

상처가 없었던 황보혁제만이 이리저리 검을 휘두르며 애쓰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당장 멈춰라!”

신웅이 몸을 돌려 검은 눈 사내를 향해 도를 겨눴다.

“후후, 싫다면?”

사내의 두 눈이 검게 빛났다.

“네놈을 죽여서라도 멈추도록 해 주지!”

검은 눈 사내 입가의 미소가 짙어졌다.

“얼마든지 상대해 주지! 큭큭큭!”

그때였다.

“오 사령님! 뇌옥에 침입자가 있습니다!”

무사 하나가 급히 달려오며 외쳤다.

검은 눈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

“침입자가? 그럼 이것들이 다가 아니었단 말인가?”

검은 눈 사내가 신웅을 노려봤다.

“양동작전을 썼구나!”

신웅의 얼굴에 희망이 어렸다.

‘진 공자군!’

진운룡이 잠입에 성공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자들은 역시 진운룡이 장원에 들어왔는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아마 비천대가 무리를 하다 들키지만 않았다면 지금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소은설까지 데리고 있는 상태에서 참으로 경탄할 만한 능력이었다.

그런 진운룡이라면 충분히 인질들을 구해 내고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순간, 신웅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결국,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하는 바람에 진운룡에게 짐이 된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운룡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진운룡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그때, 오 사령의 입가에 비웃음이 일었다.

“흥! 제법 머리를 썼다만,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구나! 큭큭큭! 어차피 지금쯤 의식도 끝났을 테니 첫 제물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큭큭큭!”

너무도 자신만만한 오 사령의 모습에 신웅은 왠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사령님 그럼 뇌옥은…….”

보고했던 무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후후, 신경 쓸 필요 없다. 그쪽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어디 그럼 나도 좀 즐겨 볼까?”

구우우우우우웅!

순간, 오 사령이라 불린 검은 눈 사내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신웅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보다 결코 아래가 아니었다.

오 사령의 몸 주위로 붉은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신웅은 신중한 자세로 도를 움켜쥐고 오 사령을 노려봤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 버릴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흐압!”

기합과 함께 신웅의 신형이 먼저 움직였다.

번쩍!

신웅의 도가 번개처럼 공간을 갈랐다.

도기가 섬전처럼 오 사령의 육신을 세로로 쪼갰다.

스걱!

반으로 갈라진 오 사령의 몸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도기가 가르고 지나간 것은 오 사령의 잔상이었던 것이다.

어느새 뒤로 훌쩍 물러난 오 사랑의 손에 핏빛으로 빛나는 혈륜(血輪)이 들려져 있었다.

사람 머리통 보다 조금 큰 혈륜은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날이 돋아 있었다.

특이한 것은 혈륜에 가느다란 붉은 실이 연결되어 오 사령의 중지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후후, 어디 큰소리친 만큼 실력이 있는지 볼까?”

쉬이이이잉!

혈륜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신웅에게 쏘아져 왔다.

그 빠르기도 빠르기였지만 마치 생명을 가지고 있는 듯 꿈틀대며 날아와 궤적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낮게 깔려 오던 혈륜이 갑자기 신웅 바로 앞에서 위로 솟아올랐던 것이다.

신웅이 급히 도를 들어 혈륜을 막았다.

카카카캉!

신웅의 도와 혈륜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오 사령이 손목을 튕기자 혈륜이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궤도를 바꿔 이번엔 신웅의 왼쪽 관자놀이를 노렸다.

신웅이 재빨리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쉬아아아앙!

혈륜이 굉음을 터뜨리며 신웅의 신형을 바짝 뒤쫓았다.

신웅의 시야에 나무와 바위들로 조성된 인공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장애물이 많은 곳에서는 혈륜이 제 역할을 못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실까지 연결되어 있으니 분명 바위나 나무에 걸리게 될 것이었다.

신웅은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정원으로 몸을 날렸다.

“흥! 어림없다!”

하지만 신웅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콰콰콰쾅!

폭음이 터져 나오며 혈륜을 가로막던 아름드리나무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혈륜의 파괴력이 생각보다 더 강력했던 것이다.

서걱! 스악!

더욱 놀라운 것은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붉은 실은 나무와 바위들을 그대로 자르고 지나갔다.

“크크크! 혈염사(血染絲)를 너무 우습게 보는구나!”

괴소를 터뜨린 오 사령이 손목을 다시 움직이자, 혈륜의 속도가 배가 되었다.

쒜애애애액!

신웅은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혈륜을 막았다.

콰아아앙!

폭음이 터져 나오며 신웅의 신형이 뒤로 쭉 미끄러졌다.

“크윽!”

속이 진탕될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젠장! 공력이 나보다 윗줄이야!’

신웅이 낭패한 얼굴로 오 사령을 노려봤다.

오 사령은 혈륜을 거둬들인 채 너무도 여유로운 모습으로 신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개 염상의 장원에 저런 고수가 숨어 있었다니…….’

신웅을 곤란하게 만들 정도의 고수가 강호에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자가 무림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제 모든 상황이 진운룡의 의심이 옳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질 수는 없지!’

여기서 신웅이 무너지면 비천대는 모두 죽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이를 악문 신웅이 오 사령을 향해 돌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