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혈룡전 2권 (46화)
7장 팔로금쇄멸혼진(八路禁鎖滅魂陣) (4)/
“모두 철문에서 떨어지시오!”
다급히 외친 진운룡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철문 바로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아아앙!
동시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며 철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터져 나갔다.
퍼퍼퍽! 쉬악!
철문의 파편들이 무서운 속도로 복도를 향해 쏘아져 나왔다.
붉게 달궈진 파편들은 당장에라도 진운룡의 온몸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릴 듯했다.
터터터터텅!
하지만 놀랍게도 파편들은 진운룡의 바로 앞쪽에서 벽에라도 부딪힌 듯 모조리 뒤로 튕겨 나갔다.
진운룡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진운룡의 시선은 먼지 사이로 걸어 나오고 있는 인영을 향하고 있었다.
잡혀 있던 자들과 소은설은 멀찍이 뒤로 물러선 채 두려운 얼굴로 상황을 지켜봤다.
“이거 중요한 일 때문에 미처 손님이 오신 줄 몰랐소이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인영은 둥글둥글한 얼굴에 서글서글한 눈매가 전체적으로 친근하고 편안한 인상을 주는 중년인이었다.
“하기야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니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겠구려?”
사내는 우선 주변을 둘러봤다.
“응? 그런데 이들을 풀어준 것이 당신이오?”
곤란하다는 얼굴로 사내가 진운룡에게 물었다.
“허허, 애써 모은 사람들인데 주인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이렇듯 멋대로 행동하면 아무리 손님이라도 곤란하오.”
사내의 목소리가 점점 차가워졌다.
“바, 방염?”
감옥에서 빠져나온 자들 중 하나가 사내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저자가 방염?’
진운룡이 무표정한 얼굴로 방염을 바라봤다.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무척 익숙했다.
혈마에게서 느꼈던 그 사이한 기운이었다.
“후후후, 그렇다. 내가 바로 방염이다.”
방염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하게 변했다.
과연 이자가 좀 전까지 푸근한 미소를 짓던 그 방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니,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이를 드러낸 채 좌우로 길게 찢어진 입, 잔뜩 충혈 된 두 눈, 게다가 이빨들 역시 맹수의 그것처럼 날카로워져 있었다.
“크크크크!”
방염의 입술 사이로 음산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네놈이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무덤으로 걸어 들어온 꼴이로구나! 큭큭큭, 네놈에게 혈신대법(血神大法)을 통해 변모한 이 몸의 첫 제물이 될 영광을 내려 주도록 하마!”
방염이 혈신대법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순간 진운룡의 눈에 섬광이 일었다.
‘혈신대법!’
혈신대법, 혈마, 너무도 익숙한 단어였다.
그의 기억이 혈마를 없애기 위해 혈궁(血宮)에 도착했던 때로 돌아갔다.
진운룡이 혈궁에 도착했을 때, 혈마는 대전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대전 바닥과 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문양들과 마귀들의 그림이 가득 그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무슨 사이한 의식을 시도하고 있었던 듯했다.
진운룡의 등장에 혈마는 분노했다.
하필 대법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진운룡의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일전을 벌였고, 결국, 혈마는 진운룡의 손에 죽고 말았다.
당시 혈마가 시도하던 술법이 바로 혈신대법이었다.
진운룡은 그제야 왜 이렇게 이곳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분위기가 익숙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혈마와 무슨 관계냐?”
진운룡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혈마라는 이야기에 뒤에서 지켜보던 소은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운룡이 말하는 혈마가 누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혈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크크크. 내가 그딴 놈을 알 리가 없지 않느냐?”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혈마와 연관이 없는 것인가?’
미묘하게 다르긴 했지만, 분명 혈마를 보았을 때 느꼈던 기운이었다.
한데, 방염의 태도로 보아 놈은 전혀 혈마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았다.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이제 그만 끝내자!”
우우우우우웅!
순간, 방염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압력이 뿜어져 나왔다.
촤아아아악!
동시에 엄청난 흡인력이 일어나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 들이기 시작했다.
쉬아아아악!
“어엇!”
“허억!”
소은설과 감옥을 탈출한 이들 역시 거기에 말려들었다.
화아아악!
그때, 진운룡을 중심으로 부드러운 기의 파동이 일어나더니, 방염의 흡인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응?”
다소 놀란 눈으로 방염이 진운룡을 새롭게 바라봤다.
“보통 놈이 아니구나!”
그제야 진운룡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너무도 담담하게 자신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방금 전 보여 준 한 수는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흥! 하지만 거기까지다!”
눈썹을 치켜세운 방염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두 손은 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진운룡은 주변 상황을 살폈다.
소은설과 탈출자들이 두 사람의 싸움에 휩쓸리지 않게 하려면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진운룡의 시선이 문이 부서져 나간 복도 끝 방으로 향했다.
방염을 그쪽으로 몰고 가 방 안에서 싸운다면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 한 번 혈영수(血影手)를 막아 보거라!”
그때, 방염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진운룡에게 뻗어 냈다.
순간, 그의 손톱이 마치 채찍처럼 길게 늘어나 진운룡을 향해 쏘아졌다.
슈우우우욱!
열 가닥의 혈조가 빠른 속도로 진운룡을 덮쳤다.
막 혈조가 온몸을 꿰뚫는다 싶은 순간, 진운룡의 신형이 밑으로 쑥 꺼졌다.
혈조가 그의 머리 위를 간발의 차로 스치고 지나갔다.
낮게 가라앉은 그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방염을 향해 치달았다.
파파파파팟!
동시에 열 가닥의 지풍이 방염을 노렸다.
따다다다당!
혈조와 지풍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간발의 차로 지풍을 막아 낸 방염이 눈을 부릅떴다.
‘혈영수가 얼얼할 정도의 충격이라니!’
혈영수는 무쇠를 부수고 도검을 막아 낼 정도로 단단했다.
한데, 그런 혈영수가 충격을 받은 것이다.
방염은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흥! 그렇다 해도 혈신대법을 성공한 내가 질 리는 없다!’
구우우우웅!
방염이 더욱 공력을 끌어 올렸다.
붉은 아지랑이가 방염의 몸을 둘러쌌다.
순간, 진운룡의 주먹이 방염의 턱을 노리고 아래에서부터 위로 번개처럼 솟구쳐 올랐다.
쉬아악!
“으압!”
방염이 양팔을 교차시켜 진운룡의 주먹을 막았다.
콰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방염이 부서져 버린 문 안쪽까지 뒷걸음질 쳤다.
진운룡이 의도했던 대로 방염을 복도 끝 방에 밀어 넣은 것이다.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진운룡의 신형이 쏘아졌다.
쩌어엉!
콰아아앙!
진운룡의 어깨가 방염의 가슴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너무도 빠른 일격에 미처 방비하지 못한 방염이 피를 뿌리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쿠웅!
“크윽!”
방 반대쪽 벽에 부딪힌 방염이 신음을 토해 냈다.
‘대, 대체 어떻게 혈신대법으로 새로 태어난 나를 상대로 이런 힘을 보여 줄 수 있단 말인가!’
방염은 경악스러운 얼굴로 진운룡을 바라봤다.
진운룡이 방염을 쫓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이 바로 혈마의 기운이 흘러나오던 곳이었다.
방에서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약 냄새가 진동했다.
진운룡은 방염을 무시한 채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벽과 바닥이 온통 기괴한 문양으로 뒤덮여 있었다.
게다가 한쪽에는 인간의 심장으로 보이는 것이 열 개의 나무통에 담겨져 있었다.
아마도 황포의원 환자들에게서 뽑아낸 심장일 것이다.
모든 것이 혈신대법이 이곳에서 시행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당시 혈마가 시행했던 혈신대법에 비해서는 규모도 작았고, 무언가 한참 부족했다.
‘응?’
그때, 진운룡의 시선이 우측 기둥에 멈췄다.
그곳에는 온몸이 쇠사슬로 묶인 청년 하나가 의식을 잃고 있었다.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다른 이들과 같이 이곳에 잡혀 들어온 것 같았다.
진운룡이 기감으로 파악했던 초절정을 넘어선 인물이 바로 그였다.
겨우 스물 중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듯했는데, 벌써 초절정의 경지를 넘어섰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청년에게서 관심을 거둔 진운룡이 다시 한 번 소은설과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은 혹여 두 사람의 싸움에 말려들까 봐 멀찌감치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이 정도면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진운룡의 능력이면 격돌로 인한 충격파가 방 안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놈! 감히 나를 두고 한눈을 팔다니!”
방염이 일그러진 얼굴로 악을 썼다.
자신을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은 진운룡의 모습에 분노가 인 것이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공력을 끌어 올렸다.
이미 진운룡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인지한 상태.
위이이이잉!
붉게 달아오른 그의 양손에서 벌이 날아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혈영수의 마지막 초식 혈수천벽(血手天壁)을 시전하려는 것이다.
“하아아앗!”
사자후와 함께 방염의 양손이 십여 개의 붉은 장영을 그려 냈다.
마치 방염 앞에 붉은 벽이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쒜애애액!
붉은 장벽이 그대로 진운룡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왔다.
순간, 진운룡의 두 눈에 섬광이 일었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지이이이잉!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력한 빛이 검을 감싸는가 싶더니 순간 긴 빛줄기가 유성처럼 허공을 갈랐다.
번쩍!
마치 세상이 위아래로 갈라지는 듯 공간이 둘로 쪼개졌다.
쩌어어엉!
동시에 붉은 장벽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갔다.
“크아악!”
방염이 양 손목에서 피를 뿌리며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그의 양손은 잘려져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다.
붉은 장벽을 부순 은빛 섬광이 방염의 혈영수를 단숨에 잘라 버린 것이다.
“크으윽! 나, 나는 부, 불사의 몸이다! 네, 네놈이 무슨 짓을 하든 결코 나를 죽일 수 없다!”
방염이 고통에 신음하며 악을 썼다.
혈신대법을 받은 자는 인간의 피를 마시기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다.
진운룡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과연 그럴까?”
진운룡의 눈동자가 노랗게 변했다.
우우우우우웅!
순간, 대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
방염의 잘린 손목으로부터 핏물이 허공으로 쏟아져 나왔다.
“허어억! 이, 이럴 수가!”
방염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손목에서부터 흘러나온 피가 진운룡에게 흡수되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것은 분명 피의 권능이었다.
피의 권능은 아무나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 중에서도 특별히 주인의 은혜를 입은 이들만이 혈신대법을 통해 영생을 얻고, 피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한데, 지금 그의 눈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피의 권능을 사용하는 자가 나타난 것이다.
자신들 외에 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게다가 같은 피의 권능을 부여받은 자신의 피를 어떻게 마음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말인가.
“너, 넌 대, 대체……. 끄어어어억!”
살과 뼈가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에 방염이 눈을 뒤집어 깐 채 경련했다.
핏줄기가 점점 더 굵어지고 진운룡의 두 눈이 노란 눈동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붉게 변했다.
방염의 육신이 차츰 쪼그라들더니 마치 목내이처럼 변해 버렸다.
진운룡이 광기 어린 눈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방염을 바라봤다.
한꺼번에 상당한 양의 피를 흡수했기에 소은설의 피로 잠재웠던 마기가 다시 날뛰고 있었다.
진운룡은 잠시 숨을 고르며 솟구쳐 오르는 마성(魔性)을 억눌렀다.
소은설의 피 때문인지 마성은 다른 때보다 쉽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방염을 바라봤다.
방염은 놀랍게도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진운룡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어…… 어떻…… 게…… 이…… 럴…….”
방염은 이미 말소리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진운룡이 아직 붉은색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방염을 내려다봤다.
“넌, 가짜니까. 네 혈신대법은 진짜가 아니야.”
차갑게 이야기한 진운룡이 말라비틀어진 양손으로 방염의 머리를 붙잡았다.
“대체 누가 너에게 잘못된 혈신대법을 알려 준 것인지 궁금하군.”
순간 진운룡의 두 눈에서 섬광이 일었다.
번쩍!
제령안이 시전된 것이다
진운룡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하자 방염의 뼈만 남은 육신이 마치 도마 위의 생선처럼 파닥거렸다.
“금제?”
퍼억!
순간, 방염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초진도의 경우처럼 머릿속에 금제가 가해져 있었던 것이다.
진운룡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생겼다.
금제 때문에 알아낸 것이 거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방염과 연결시킬 수 있는 실마리라곤 천사교뿐이었다.
하지만 배후에 훨씬 거대한 세력이 버티고 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었다.
‘과연 누가 방염에게 혈신대법을 알려 준 것인가.’
이것은 진운룡에게도 어느 정도 중요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자신의 저주를 풀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든 반드시 찾아내야 해!’
물론, 완벽하지 않은 혈신대법을 전해 준 것을 볼 때, 그들 역시 혈신대법을 제대로 알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이 지긋지긋한 피의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허투루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일단은 뒷정리를 해야겠군.’
우선은 소은설과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안전하게 이곳을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
퍼억!
순간, 진운룡의 오른손이 방염의 왼쪽 가슴을 파고들었다.
드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다시 빠져나온 진운룡의 손에는 방염의 심장이 들려 있었다.
피가 없이 쪼그라든 상태였음에도 방염의 심장은 천천히 뛰고 있었다.
화아아아악!
진운룡의 오른손에서 불꽃이 일며 방염의 심장을 태워 버렸다.
끼아아아아악!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귀곡성이 방 안을 휘돌다 사라졌다.
진운룡은 사슬에 묶인 채 기절해 있는 청년을 어깨에 들쳐 메고 천천히 방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