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혈룡전 2권 (48화)
8장 돌아온 황태자 (2)/
그때였다.
번쩍!
콰쾅!
섬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폭음과 함께 혈륜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엇!”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오 사령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번에는 동시에 세 개의 섬광이 장원 담벼락에 작렬했다.
번쩍!
콰아아아앙!
마치 수십 개의 화탄이 터진 듯 담벼락이 산산조각이 나 부서졌다.
구우우우우웅!
동시에 비천대를 둘러싼 공간이 일그러졌다.
주변의 풍경들이 마치 엿가락처럼 휘어지는가 싶더니 순간.
쩌어어어엉!
공기가 터져나가는 굉음이 들리며 비천대원들을 괴롭히던 팔로금쇄멸혼진(八路禁鎖滅魂陣)이 허무하게 깨져 버렸다.
털썩!
“지, 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황보혁제가 놀란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웬 놈이냐!”
오 사령이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섬광이 날아온 전각 지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옥으로 깎아 놓은 듯한 미청년 하나가 오연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 공자!”
신웅의 목소리에 환희가 맺혔다.
드디어 진운룡이 나타난 것이다.
“네놈이 뇌옥에 잠입했던 놈이구나!”
오 사령의 두 눈에 살기가 일었다.
“가만! 그렇다면……!”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운룡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곧 방염이 당했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방염이!’
방염은 혈신대법을 통해 십 사령으로 거듭날 자였다.
한데, 그가 당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혈신대법이 아직 끝나기 전에 놈에게 당했을 수도 있어!’
오 사령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화경 고수라 해도 혈신대법을 받은 사령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법이 끝나기 전에 난입해 방염을 해치운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방염을 이겼다면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방금 보여 준 신위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일 수에 자신의 혈륜을 튕겨 내고 팔로금쇄멸혼진을 힘으로 깨 버렸다.
팔로금쇄멸혼진을 억지로 부수는 것은 오 사령 자신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상대는 무려 이십 장이 넘는 거리에서 날린 공격으로 그것을 해냈다.
평상시라면 오 사령이 밀렸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피의 권능을 사용해 강력해진 상태였다.
“흥! 용케 방염을 이겼구나!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를 것이다!”
오 사령이 공력을 끌어 올리며 자신 있게 소리쳤으나, 섣불리 먼저 공격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상대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주군!”
그때, 적산이 황보영천과 함께 뛰어 들어왔다.
담장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달려온 것이다.
두 사람은 급히 바닥에 쓰러진 비천대 대원들을 앞을 막아섰다.
아직 백여 명이 넘는 장원의 무사들이 화살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 귀찮은 녀석들부터 정리해야겠군.”
순간, 진운룡의 양손에 눈부신 광구가 나타났다.
준비 동작도 없이 갑자기 주먹만 한 광구 두 개를 생성해 낸 것이다.
오 사령이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두 개의 광구가 장원 무사들을 향해 쏘아졌다.
슈슈욱!
“이, 이런! 피해라!”
놀란 오 사령이 급히 혈륜을 날렸으나, 이미 광구가 무사들을 덮친 뒤였다.
콰아아아앙!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멀리 떨어져 있던 적산과 황보영천조차 귀가 멍멍하여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섬광이 가시고 드러난 모습은 모두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백 명이 넘던 무사들 중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자는 채 서른 명도 되지 않았다.
그들마저도 온전한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절반이 넘는 자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육신은 커녕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도무지 인간의 것이라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능력에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진운룡의 능력은 같은 편에게 마저 두려움을 주는 것이었다.
진에서 빠져나온 비천대주 황보혁제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저런 괴물이었을 줄이야…….’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자신이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바람에 수하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다.
자신이 진운룡을 조금만 더 믿었다면, 아니, 최소한 가주의 명을 저버리지만 않았다면 수하들은 지금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 사령 역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광구가 떨어진 곳을 멍하니 바라봤다.
단번에 칠십 명이 넘는 수하들이 괴멸된 상황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멍한 얼굴로 진운룡에게 시선을 향하던 그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부릅떠졌다.
“아, 이거 힘을 조금 덜 썼나?”
진운룡이 입맛을 다시며 다시 광구를 생성해 낸 것이다.
“저, 저…….”
오 사령이 미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광구가 나머지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앙!
섬광이 터져 나오고 그나마 살아남았던 나머지 무사들이 형체도 남기지 못한 채 모두 사라졌다.
오 사령의 얼굴이 더할 수 없이 심각해졌다.
진운룡은 그의 능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극강의 고수였다.
이제야 방염이 당한 것이 이해가 갔다.
그가 혈신대법으로 힘을 얻은 상태였다 해도 진운룡을 이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피를 흡수한 지금의 자신이라면 어느 정도 버티는 것이 가능할지 몰랐다.
하지만 결국 자신도 방염처럼 진운룡의 손에 죽고 말 것이다.
“하나만 묻지. 너도 혈신대법을 알고 있나?”
그때, 진운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사령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대체 저자가 혈신대법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지?’
방염이 말해 줬을 수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분명 이전부터 알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혈신대법을 아는데다 사령들을 압도하는 엄청난 무력.
도무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자였다.
일단 오 사령은 진운룡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시간을 끌기로 했다.
“혈신대법을 알다니, 네놈은 누구냐?”
오 사령이 오히려 반문을 해 오자 진운룡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잡아서 족치는 편이 빠르겠군.”
상대가 시간을 끌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순순히 대답할 리도 없었으니, 차라리 제령안을 사용하는 편이 나았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운룡의 신형이 오 사령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단호한 진운룡의 움직임에 오 사령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대로 맞부딪히는 것은 어리석은 일. 우선 몸을 피한다!’
냉정하게 상황을 평가해 도주하기로 마음먹은 오 사령이 공력을 끌어 올렸다.
우우우우우웅!
“으아아앗!”
한데, 의외로 오 사령은 혈륜을 날림과 동시에 진운룡을 향해 돌진했다.
그가 생각했던 도주와는 정반대의 행동이었다.
쒜애애애액!
혈륜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진운룡을 향해 돌진했다.
쩌어엉!
어느새 검을 빼 든 진운룡이 혈륜을 튕겨 냈다.
“하압!”
혈륜 뒤에 숨은 오 사령이 그대로 진운룡을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턱!
진운룡이 왼손으로 가볍게 오 사령의 발차기를 막은 순간, 오 사령의 신형이 진운룡을 뛰어넘었다.
진운룡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오 사령의 움직임을 쫓았다.
진운룡을 뛰어넘은 오 사령이 전각 지붕을 타고 곧장 장원 안쪽으로 달렸다.
‘뇌옥으로 가려는 것인가?’
진운룡의 눈동자가 빛났다.
오 사령이 향하는 곳에는 뇌옥이 있었다.
아마도 뇌옥으로 가 탈출자들을 인질로 잡으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흥! 어림없다!”
슈각!
진운룡이 검을 휘두르자 반월 모양의 섬광이 오 사령을 향해 쏘아졌다.
등에서 느껴지는 막강한 기운에 오 사령이 급히 혈륜을 뒤로 날렸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혈륜을 튕겨 낸 섬광이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오 사령을 덮쳤다.
순간, 오 사령의 신형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스억!
콰아아앙!
목표를 잃은 섬광이 그대로 뒤쪽 전각에 작렬했다.
오십 평이 넘는 전각이 단번에 터져 나갔다.
진운룡의 시선이 오 사령을 뒤쫓았다.
어느새 방향을 튼 오 사령이 장원 한가운데 있는 연못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운룡의 미간에 내 천자가 새겨졌다.
오 사령의 목적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주를 하려면 외곽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오히려 장원 한가운데로 왔다.
그렇다고 인질을 잡기 위해 뇌옥으로 간 것도 아니다.
‘비밀통로라도 있나?’
그것밖에는 다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흥! 어리석은 짓!’
지금이야 되도록이면 생포해서 정보를 알아내 볼까 하여 여유를 두고 있었지만, 비밀통로로 도망치려 한다면, 통로 채로 묻어 버릴 것이다.
그때, 갑자기 달아나던 오 사령이 연못가에 멈춰 섰다.
‘역시 비밀통로인가?’
진운룡을 바라보는 오 사령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크크크, 이제 그만 작별을 해야겠다! 네놈과 같은 괴물이 나타날 줄은 우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오 사령이 혈안을 뒤룩거리며 진운룡을 노려봤다.
“놈! 하지만 너무 기고만장하지는 말거라. 주인께서 움직이시면 네 녀석은 그야말로 진정한 공포를 맛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