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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49화 (49/150)

# 49

/혈룡전 2권 (49화)

8장 돌아온 황태자 (3)/

콰앙!

순간, 오 사령이 연못 왼쪽에 있던 바위를 부숴 버렸다.

구르르르르르릉!

동시에 장원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바위는 장원을 무너뜨리는 기관 장치다! 나를 계속 쫓는다면 뇌옥에 있는 이들은 절대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잡을지 탈출자와 일행을 구할지 잘 생각해라! 큭큭큭!”

비릿하게 웃은 오 사령이 몸을 날려 도주했다.

“허…….”

진운룡이 어이없는 얼굴로 오 사령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한 방 제대로 맞은 것이다.

이대로 장원이 무너진다면 장원 가장 심처인 뇌옥에 있는 탈출자와 소은설은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 사령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진운룡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   *   *

구르르르르릉!

갑작스러운 지진에 소은설을 비롯한 일행은 몹시 당황했다.

“무, 무슨 일이지!”

“사, 사람 살려!”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물론, 땅마저 갈라지고 있었다.

“모두 이쪽으로 오세요!”

소은설이 전각 입구 쪽으로 사람들을 인도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쇠약한 탈출자들은 빨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우지끈!

“으악!”

“커억!”

지붕과 대들보가 무너져 내리면서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이 그대로 깔렸다.

쩌저적!

동시에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빨리요! 전각을 나가야 해요!”

그래도 전각을 벗어나면 그나마 위험이 적을 것이기에 소은설은 사람들을 재촉했다.

“어엇!”

그때, 소진태가 부서진 기둥에 걸려 넘어졌다.

“아버지!”

소은설이 깜짝 놀라 아버지를 돕기 위해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제 손을 잡으세요!”

소은설이 소진태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우드득!

순간, 소진태와 소은설이 있던 바닥이 갈라지며 밑으로 꺼졌다.

“아악!”

두 사람은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소은설과 소진태는 그대로 질끈 눈을 감았다.

‘엇!’

그때, 무언가가 소은설의 허리를 낚아챘다.

깜짝 놀란 소은설이 황급히 눈을 떴다.

“다, 당신은?”

어느새 진운룡이 소은설과 소진태를 옆구리에 끼고 전각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턱!

진운룡이 소은설과 소진태를 안전하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남궁 공자가 아직 안에 있어요!”

갑자기 생각난 듯 소은설이 다급히 소리쳤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남궁린을 아무도 챙기지 못한 것이다.

진운룡이 지풍을 쏘아 내며 전각으로 다시 몸을 날렸다.

퍼퍼퍼퍼퍽!

사람들 위로 무너져 내리던 건물 잔해들이 지풍에 맞아 멀리 날아갔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던 탈출자들이 황급히 전각 밖으로 나왔다.

전각 안쪽으로 사라졌던 진운룡이 잠시 후 남궁린을 옆구리에 낀 채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남궁린은 아직 무사했던 것이다.

소은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온 것을 확인한 진운룡이 소은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부터 사람들을 데리고 무조건 장원 바깥쪽으로 달려. 내가 뒤에서 보조할 테니.”

소은설이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진운룡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소진태와 눈을 맞춘 소은설이 사람들을 데리고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모두 체력이 쇠약해진 상태라 한계가 있었다.

건물 지붕이 갑작스레 일행을 덮쳐 오고, 그들이 디디던 땅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진운룡의 활약이 빛났다.

건물이 일행 위로 무너져 내리면 지풍이나 검기를 날려 멀리 쳐 냈고, 땅이 무너져 빠진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끄집어냈다.

장애물이 앞을 막고 있으면 부수고 지나갔고, 무너질 것 같은 건물들은 아예 광구를 날려 없애 버렸다.

마치 그들 앞에 새로운 길이 생겨나는 듯했다.

게다가 소은설의 천령안도 빛을 발해서 비교적 안전한 길을 잘 찾고 있었다.

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불안정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활약으로 일행은 위험천만한 곳을 빠져나왔다.

장원 밖으로 빠져나온 일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일행 모두에게는 족히 십 년은 넘게 흐른 듯한 기분이었다.

장원 밖에는 적산을 비롯해 황보세가와 신웅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군! 내 분명 무사할 줄 알았소! 크하하하!”

진운룡이 나타나자 적산이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반갑게 맞이했다.

“쿨럭! 결국은 모두 구해 냈구만! 정말 수고했네!”

신웅이 엉망이 된 몸을 추스르며 진운룡을 치하했다.

“구하지 못한 사람도 있어요.”

소은설이 슬픈 눈으로 말했다.

전각 바닥이 갈라지며 추락한 이들과 지붕이 무너질 때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도 일곱 명이나 됐던 것이다.

“안타깝지만, 진 공자가 신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들을 구해 낸 것만 해도 사실 대단한 일이야.”

신웅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애초에 진운룡의 말을 들었다면 그들도 모두 살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비천대도 절반에 가깝게 목숨을 잃었다.

살아 있는 대원들 역시 상세가 심각했다.

황보혁제가 착잡한 얼굴로 진운룡에게 다가왔다.

“미안하오. 모든 것이 그대의 말을 따르지 않은 내 책임이오.”

그의 맘은 지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쓰라렸다.

자신의 책임으로 수하를 잃었으니 당연했다.

“어차피 당신들에겐 별로 기대한 게 없으니 너무 개의치 마시오.”

위로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묘한 말을 남긴 진운룡이 황보영천을 향해 걸어갔다.

사실 비천대 때문에 오 사령을 놓쳤기 때문에 진운룡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자칫 애써 구한 사람들까지 모두 죽일 뻔하지 않았던가.

그는 이런 상황에서 황보혁제의 기분까지 맞춰 줄 만큼 다정다감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황보혁제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주군! 아까 정말 멋졌소! 역시 내 주군답소! 아까 그 빛나던 구체! 그거 나도 꼭 가르쳐 주시오!”

적산이 호들갑을 떨며 졸졸 따라왔다.

“죄송합니다, 진 공자.”

사실 황보영천은 진운룡의 말을 따를 것을 주장했었다.

하지만 끝내 비천대를 막지 못한 것도 자신의 책임이라 느꼈다.

진운룡도 황보영천이 나중에 적산과 함께 뛰어 들어온 것을 본지라 굳이 그를 탓하지 않았다.

“구출한 사람들은 황보세가에서 맡아 주시오.”

“물론입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해 모두를 책임질 것입니다. 이미 세가에 연락해 두었으니, 곧 사람들이 당도할 것입니다.”

“한데, 소 소저의 아버님은?”

진운룡이 턱짓으로 소은설과 함께 있는 소진태를 가리켰다.

소은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소진태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 다행입니다! 과연 찾으셨군요!”

황보영천이 진심 어린 축하를 했다.

“어?”

그때, 갑자기 황보영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탈출자들 사이에 누워 있는 남궁린을 발견한 것이다.

“저, 저 친구는! 린!”

황보영천이 다급히 남궁린에게 달려갔다.

남궁린과 황보영천은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낸 친우였다.

같은 오대세가의 자재인데다, 두 사람 다 강호십룡 중 하나이니 남다른 친분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린! 정신 차리게!”

황보영천이 남궁린을 흔들어 깨웠으나 반응이 없었다.

“대체 어찌 된 것입니까? 분명 마교에 납치되었다 들었는데, 어찌 이 친구가 이곳에 있는 것입니까?”

진운룡에게 물어봐야 그도 알 도리가 없었다.

신웅과 황보혁제도 놀란 눈으로 남궁린을 바라봤다.

남궁린을 마교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찾아냈다는 사실은 강호에 큰 파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으음……. 혹시 황룡문의 양진 대주 아니시오?”

구출된 이들을 살피던 신웅이 그중 아는 사람을 발견해 냈다.

“아, 신 대협!”

양진도 신웅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쿨럭,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신웅이 기침을 토해 냈다.

“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무인들에게 습격을 당해 의식을 잃고 납치되었습니다. 여기 갇혀 있었던 대부분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경로로 이곳에 잡혀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잡힌 분들은 대부분 강호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무인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구출된 사람들은 모두 무공을 익힌 이들이었다.

지금은 오랜 감금생활로 인해 본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얼핏 보기에도 골격이나 자세들에서 고수의 풍모가 느껴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두 무인이라…….”

분명 심상치 않은 음모의 냄새가 났다.

하지만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무인들을 납치한 것인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한편, 진운룡은 나름대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곳에서 자신의 저주를 풀 실마리를 발견했다.

누군가 방염에게 혈신대법을 전해 준 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오 사령 역시 피를 흡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역시 혈신대법을 통해 힘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는 것은 그들의 꼭대기에 있는 훨씬 강력한 누군가가 그들에게 혈신대법을 알려 주었다는 이야기.

진운룡의 짐작으로는 그자가 일부러 불완전한 혈신대법 이들에게 알려 주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에 하나 완전한 혈신대법을 넘겨 주었다가 종이 주인을 능가하는 경우가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진운룡의 짐작이 맞다면 그 주인이라는 자는 완전한 혈신대법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푸는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아주 작은 가능성에 불과했다.

하지만 진운룡에게는 이 작은 가능성도 결코 그냥 흘려보낼 수 없을 정도로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를 반드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일단 천사교!’

당장에는 방염과 연결된 천사교를 조사하는 것이 먼저였다.

진운룡은 문득 소은설을 바라봤다.

혈신대법에 대해 조사하려면 반드시 그녀가 필요했다.

정기적으로 그녀의 피를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이의 피를 마셔도 됐지만, 그렇게 되면 마기가 쌓여서 결국에는 또 다른 혈마가 되고 만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혈귀곡으로 돌아가 석상이 되어 버리는 편이 나았다.

‘결국, 그녀에게 부탁해야 하나?’

소진태를 찾았으니, 이미 계약도 끝난 상태였다.

이제는 그녀가 자신에게 피를 제공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은 천천히…….’

진운룡은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그때, 소은설의 얼굴이 진운룡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무언가 고민스러운 얼굴로 진운룡을 바라봤다.

그녀 역시도 이제 계약이 끝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진운룡을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왔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왜? 진 공자한테 할 말이라도 있느냐?”

소진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아, 아니예요! 무, 무슨 할 말은!”

소은설이 정색을 했다.

“아니면 아니지 뭐 그리 정색을 하누?”

소진태가 짐짓 장난스러운 얼굴로 소은설을 노려봤다.

“흥!”

볼이 빨갛게 상기된 소은설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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